21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대답 (2)
“오랜만이야.”
소장의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건강하지? 얼굴을 통 못 봤더니 궁금하단 말이야. 가끔씩 들리는 소식 들으면 잘 지내는 것 같긴 한데.”
소장은 장난처럼 말했다. 태주가 처음에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조금 더, 사나운 관계일 줄 알았는데.
“나야 건강하지. 건강 걱정을 하려면 그래도 나보다는 널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꽤 오래전부터 다치지 않던 몸이라.”
소장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능 역시 전혀 날을 세우지 않은 채 말했다.
“정 궁금하면, 글쎄. 한 번쯤 얼굴 보러 오는 건 어때?”
“미안하네. 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어서.”
소장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너, 나를 보면 어떻게든 잡으려 들 거잖아? 참, 이렇게 피하는 거 알면 적당히 그만할 때도 됐는데.”
“어라, 그래?”
전능은 반대로 웃으면서 말했다.
“너야말로 내가 이렇게 애타게 찾는 거 알면 그만 도망갈 때도 되지 않았어?”
“글쎄. 나는 도망치는 거 그만뒀는데 말이야. 너도 그만두면 어때?”
“하하, 설마.”
전능은 웃었다.
“늘 내가 너보다는 끈기가 있었어. 그렇지 않아? 내가 그런 말 한마디로 멈출 사람이야?”
“…그건 아니지.”
소장이 잠시 주춤한 사이, 전능이 물었다. 곧바로 본론이다.
“참,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 네 부하인지 제자인지 모를 이 녀석, 참, 재미있는 소리를 하더라?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전능은 자연스러운 태도로 물었다.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순간적인 위화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뭐지?’
태주는 곧 깨달았다. 이건 몇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가지를 목표로 한 사람이,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보일 수 있는 반응이 아니다.
마녀가 보이는 반응은, 그래도 꽤 인간적이다. 태주가 하는 말이 마냥 거짓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서 보인 표정은, 태주가 예상한 대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투자했을 전능의 표정은 평온하다 못해 웃음기를 띠고 있다.
태주의 말을 믿지 않거나, 다른 반박할 거리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태주의 말을 듣고 난 뒤, 그게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보이는 반응이다.
“그래.”
“아아, 역시 그런 거야? 정말로?”
지금 이건 소장의 말을 듣고, 그걸 그대로 믿으면서도 저런 반응이다. 이런 건 자신이 평생을 바친 일에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사람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이 아니다.
마녀의 표정과 달리 전능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하다. 한없이 담담하게, 전능은 말했다.
“불가능하다는 게 네 결론이라는 말이지?”
“그래.”
소장은 긍정했다.
“여러모로 그만두는 게 좋아. 그런 건.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그래?”
전능은 여전히 미소지었다. 그리고, 태주는 그제야 전능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은 아닐 거라는 정도의 인식은 너무 안일했다. 조금 특이한 정도의 사람일 거라는 정도의 인식도 잘못되었다. 기껏해야 소장이랑 비슷한 정도일 거라 생각했던 게 문제다.
이 사람은, 절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난 다음에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너, 내 대답 알지?”
이제는 태주도 알겠다.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어.”
“그래.”
소장도 말했다.
“그렇게 대답할 거라 생각했어. 넌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그렇지. 세계 평화 같은 게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뭐?”
전능은, 태주조차 당황할 정도로 상쾌하게 말했다.
“나는 그런 걸로 포기 안 해.”
“그렇겠지. 나도 좀 그렇지만, 너는 정말 고집쟁이니까.”
소장은 씁쓸하게 말했다.
“그래.”
전능도 말했다.
“오래전부터 그랬지.”
* * *
어느 시점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여러 지점이 있겠지만, 가장 적당한 것은 아마 그 시점부터일 것이다.
소장이 아직 소장은커녕 전능이라 불리지도 않던 옛날.
아직 소장이 아닌 그 남자는 마법사였다.
모두에게 그렇게 불린 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마법사라 불렸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드루이드라 불리기도 했다. 나중엔 연금술사 같은 것으로 불리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현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람들이 알아서 자기 멋대로 부르도록, 남자는 내버려 뒀다. 대강 다 할 줄 아니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남자가 굳이 스스로를 일컬을 때는 그래도 그냥 평범한 마법사였다.
이것저것 두루두루 익혀 무엇이라 딱히 정의하기 힘든, 여러 분야에 걸쳐 뛰어난 사람이니 마법사라는 표현이 가장 적당하다.
남자는 무언가를 목표로 마법사가 되지는 않았다.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마법사가 되었을 뿐이다. 별 것 아닌 동기지만, 사실 모든 대단한 사건들의 시작이 그런 식이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을 뿐이다.
특별한 목적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남자는 막연한 목표의식 정도만 가지고 있었다.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지배하고 싶은 것은 없고, 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큰 욕심은 없지만, 여력이 있으니 가능한 선에서 남을 고려할 수 있었다.
바보 같을 정도로 단순한 동기. 그러나 행동력은 좋았다.
남자는 때로는 행상인인 척하면서, 때로는 의사인 척을 하면서 돈을 벌었고, 다음에 할 일을 위해 재료를 모았다. 남는 것들은 적당히 써버리기도 하고, 그렇게 해도 다 쓰지 못할 정도라면 연줄을 만들거나 사람을 돕는 데 쓰곤 했다.
숲과 산, 도시와 시골을 돌아다녔다. 최대한 남들의 이목을 끌지 않도록 움직였고, 가끔씩 연구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사람에게만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그렇기에 남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수상하지만 좋은 사람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마치 지금처럼.
“이러면 낫나요?”
아기를 품에 안은 젊은 어머니가 물었다. 지금은 허름한 의사 행세를 하고 있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열이 좀 내린 것 같기는 한데, 이게 잠깐 그런 것 같기도 해서요.”
“뭘 그렇게 불안한 표정으로 살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아이를 슬쩍 보고는 말했다.
“당장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아마도요.”
“…확실하지는 않은 건가요?”
“확실한 건 없습니다. 지금 당장 크게 위험한 건 없지만 결국 얼마나 잘 먹이느냐에 달린 문제라서.”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반대로 말하면, 잘 먹이면 거의 확실히 나을 겁니다.”
“그런가요.”
어린 엄마는 흐린 눈으로 말했다.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이러다 죽는 아기가 한둘이 아니니까.
“이만 가 보시죠, 걱정만 하신다고 해도 별수는 없으니. 그냥, 어떻게든 잘 먹고 먹이는 것만 고민하시면 됩니다. 제 보장이 얼마나 안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가볍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사라졌다. 공짜 진료라 하니 생겼던 길고 긴 행렬의 끝, 이제 남은 것은 한 사람뿐이다. 남자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럼, 마지막에 남은 건 당신뿐인데.”
문제는 이건 환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확실히 이 부근에서 사는 사람이 아닌 젊은 여자. 남자는 조금 경계하는 눈초리로 여자를 살폈다.
“아파서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왜 거기서 계속 사람을 관찰하고 있었지?”
남자가 진찰을 하고 조언을 하는 내내, 한 여자가 쳐다보고 있었다. 딱히 뭐라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계속 지켜볼 수 있는 거리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솔직히 신경 쓰인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거라면 전문이 아닌데. 물론 상담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지만. 특히 상사병 이야기는 좋지. 흥미롭거든.”
“난 몸도 마음도 멀쩡해. 이게 아픈 사람의 안색으로 보여?”
여자는 기가 막힌다는 말투로 말했다.
“상사병은 더더욱 아니고.”
“아니. 그냥 농담으로 해 본 말이야. 명백하게 환자가 아니니까. 애초에 이 부근 사람도 아니겠지, 너.”
찰랑거리는 금빛 머릿결부터가 이곳 사람들과는 다르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렇게 머릿결을 관리할 여력이 없다.
“하지만, 그럼 왜 나를 구경한 거지?”
“별 건 아니고. 지나가다 보니 의사 행세하는 마법사가 있길래 조금 신경이 쓰였을 뿐이야. 당신, 마법사지? 정확한 계통까지는 모르겠지만.”
“흐음.”
당당하고 확신에 찬 태도. 자신이 먼저 밝히지 않았는데 상대편에서 먼저 알아낸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마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들킨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다면 대충 짐작이 간다. 남자는 순순히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
보통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편이기는 하지만, 이 경우는 밝혀지더라도 문제는 없다.
“그럼 너도 마법사겠군.”
그것도 실력이 꽤 괜찮거나, 최소한 재능은 있는 수준일 거다.
하긴, 여자 혼자 몸으로 돌아다니는 걸 보면 뻔한 이야기다. 이건 실력과 대담함이 모두 갖춰져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나보다 한참 젊어 보이는데, 대단한걸.”
“너도 마법사치고는 꽤 젊은 편 아냐? 그런 소리를 할 정도가 되나?”
“최소한 열 살 정도는 차이가 나 보이는데.”
“별로 차이도 안 나면서 연장자 행세는 그만해. 내가 나이 이야기나 하자고 여기서 계속 기다린 줄 알아?”
“아니겠지.”
남자는 턱을 짚고는 물었다.
“하지만 마법사라면 더 이상한데. 무슨 용건으로 왔지? 그냥 인사만 하려고 수많은 환자들이 모두 진료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건 좀 정성스러운데.”
“네가 너무 환자를 많이 받아서 그런 거잖아. 뭐 하나만 물어보려고 했는데 짜증나게.”
“물어보려고 그렇게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질문이 아니라면 대답을 바로 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 사람들 있는 데서 이런 걸 물어볼 수는 없거든.”
여자는 대놓고 물었다.
“너, 뭐하러 그 사람들을 챙긴 거야?”
“챙기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인가?”
“그건 네 맘이지. 하지만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조금 의문이라는 말이야. 아직 실력을 정확히 파악한 건 아니지만, 너 정도의 마법사라면 찾는 사람도 많을 거야. 어딜 가도 한자리 차지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되어 보이는데. 왜 굳이 이런 짓을 하고 있지? 그것도 숨어서 말이야.”
“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 말인가.”
남자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이건 시간 낭비가 아니거든.”
“흐으음?”
여자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었다.
“시간 낭비가 아니다? 돈도 제대로 안 받고 오히려 네 지식을 쓰기만 하는 게?”
“그래. 나도 나름 얻어가는 게 있어서. 이 사람들은 나름 내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그래?”
남자의 말을 들은 여자는 뭔가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봤다.
“그럼 그 짓은 언제까지 할 거야?”
“언제까지라, 그건 기준이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이렇게 의사 노릇 하는 게 기준인 건가? 아니면 이 마을에 머무르는 걸 기준으로 하는 건가? 어느 쪽이든 몇 주 정도는 걸리겠지. 사람은 많고, 나는 혼자뿐이니.”
“그래? 잘됐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그 몇 주 정도 같이 돌아다니자.”
돌아다니게 해달라, 가 아니라 돌아다니자, 인가. 남자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물었다.
“남과 같이할 정도로 대단한 일은 아닌데.”
“누가 같이 한데? 구경이나 좀 하려는 거지.”
“그럼 더더욱 필요 없는 것 아닌가? 차라리 그냥 가는 게 좋겠군. 남에게 보여줄 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니까.”
“그래?”
여자는 눈을 반짝이고는 말했다.
“그럼 꼭 더 자세히 봐야겠는걸.”
기가 막힌 일이다. 거절의 말을 뭐라고 이해하고 있는 걸까.
“…어처구니가 없군.”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별 볼 일 없는 일뿐이야. 그냥 진료를 좀 봐 주고, 필요한 것만 조금 챙기는 게 다야.”
“그 ‘필요한 것’이 뭔지 궁금해서 그래. 이런 노동의 대가로 뭘 챙길지 신경이 쓰여서.”
“영업 방해야. 여자를 끌고 다니는 방랑 의사라는 것이 존재할 리가 없지 않나. 분명 의심을 사겠지.”
그런 오해를 받으면 피곤해진다.
“그럼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보는 건 괜찮아?”
“뭐, 그렇다면 상관이야 없지만….”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알아서 해. 꽤 지루한 과정이니, 중간에 간다고 말리지는 않도록 하지.”
“좋아!”
여자는 말했다.
“똑똑히 지켜봐 주지!”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단단히 잘못 걸렸구나.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