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대답 (1)
“표정들이 왜 그래?”
소장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그 표정은 뭐야?”
“아뇨….”
설이는 조금 당황한 태도로 말했다.
“아무리 소장님이라도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 줄은 몰랐거든요. 그것도 뒤에서 말이에요.”
설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차라리 귀신이라면 안 놀랐을 텐데.
이제 와 두 사람이 귀신 같은 걸 보고 놀랄 정도의 사람들은 아니다. 월이 역시 뾰족한 말투로 말했다.
“그런 식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거 재밌어요? 놀래킬 거면 저쪽을 놀래켜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맨날 우리를 놀래키는 거냐구요!”
하지만 그런 월이의 태도에도 소장은 그저 조금 웃으며 말했다.
“음, 뭐 어쩔 수 없었어. 지금은 다른 수가 없었거든.”
“다른 수가 없다고요?”
설이는 의아하다는 말투로 물었다.
“왜요?”
“상대가 상대니까. 너는 그렇다 쳐도 월이는 티가 나서 상대방에게 뭔가 정보를 줄 여지가 있단 말이지.”
그래서 미리 알려줄 수 없었다. 타당해 보이는 말이지만 설이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근데 미리 알려줄 필요는 없었어도,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서 놀래킬 필요는 없었던 거 아니에요?”
날카로운 지적이다. 소장은 씩 웃었다.
“어라 들켰네.”
소장은 장난기 넘치게 말했다. 월이는 차마 야! 라고는 말할 수 없어 한 템포 참은 뒤 말했다.
“진짜, 그런 식으로 말하기 있어요?”
월이는 눈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장난 조금 친 거지. 너무 뭐라고 하지 마. 너희만큼 신선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주변에 없어.”
소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장난이라는 건 원래 알고 해도 재미있는 법이거든. 모든 걸 아는 나한테는 거의 유일한 재미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말하는 걸 듣고 나니 더 뭐라 하기도 그렇다. 월이는 입술만 몇 번 삐죽거리고는 말했다.
“그래도 다음엔 그러지 마요! 한창 긴장했을 때 사람 놀라게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그래, 다음엔 안 그럴 거야.”
소장은 그렇게 말한 뒤 설이를 보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나 할 시간은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돌아갈까?”
소장은 설이 쪽을 보고는 물었다.
“방금 전에 하던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에도 너희는 뭔가 하고 싶다는 말이지? 그냥 남겨져서 방치되는 건 싫고, 그 이상으로 뭔가를 하고 싶다는 말이야. 그렇지?”
“네.”
“왜?”
소장의 질문은 짧았지만, 동시에 순간 말문이 막힐 정도의 질문이었다.
“대체 뭐하러? 너희가 지금 가 봐야 뭘 할 수 있는데?”
어차피 상대는 전능이다. 지금 하는 건 물리적인 싸움이 될 수가 없다. 결국 그렇게 싸우면 이쪽이 무조건 진다. 전능이라는 건 그런 거다.
“게다가, 사실은 전능도 뭔가 나쁜 짓을 하려는 건 아니야. 다른 의견이 나올 여지는 있지만.”
나쁜 짓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 행동에 대해 막을 방법도 사실상 거의 없다. 그런데도 하고 싶은가.
“너희 둘은 지금 가 봐야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방해나 안 되면 다행이겠지.”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몰라요.”
“그럼? 안 갈 건가?”
“아뇨? 왜 안 가요?”
설이는 역으로 어처구니없다는 듯 물었다.
“별로 없다는 말이지 아예 없다가 아니잖아요? 그럼 거기서 두 사람만 고생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거구요.”
“맞아. 그리고 솔직히 짜증 나요.”
두 사람은 얼굴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상당히 감정적인 이유지만, 이번에는 그래서 믿음직스럽기도 하다. 소장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런 걸 눈앞에서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게 참.”
소장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하긴 그런 성격이니까 내가 너희를 데리고 온 거지만.”
“그래서, 그 여자를 엿먹일 방법 같은 게 있긴 있어요?”
월이의 질문을 들은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당연히. 아무리 상대가 전능이라도 방법은 있어.”
“평소에 좀 이런 식으로 끼어들어 주지. 평소에 전혀 도와주지 않으면서.”
월이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뭐, 지금까지는 그랬지. 설령 용이 나타나더라도 너희는 해결해낼 수 있었잖아?”
소장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라. 이건 내가 안 끼면 안 될 일이야. 어떤 의미로는 내가 만든 일이기도 하고.”
소장은 두 사람에게 말했다.
“너희는 이번에, 사실상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지도 모를 사소한 일을 하게 될 거야. 겉보기에는 바보 같아 보일지도 모르고. 그래도 할 거야?”
부담스럽다면 하지 않아도 좋다. 그런 의도로 하는 말이지만 두 사람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말했잖아요.”
월이는 다시 대답했다.
“대체 왜 안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이는 조금 긴장한 채로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뭘 하게 되는 거예요?”
“아, 뭐 간단하지.”
소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너희가 가장 잘 하는 거 하면 돼.”
“가장 잘 하는 거요?”
월이는 눈을 찌푸리고는 물었다.
“제가 뭘 제일 잘 하는데요?”
“때려 부수는 거지 뭐겠어?”
소장은 농담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월이는 눈을 찌푸렸다.
“그거 칭찬 맞죠?”
“그래. 사람은 안 다치게 하면서 뭐든지 다 때려 부수는 거 생각보다 쉬운 거 아니거든. 근데 너희는 그렇게 할 수 있잖아.”
소장은 담담하게 말했다.
“너는 잘 해 줬어, 지금까지 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말이야.”
월이는 눈을 크게 떴다. 소장이 이렇게 말하는 건 처음 들었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당연하죠!”
월이는 아직도 조금 놀란 눈으로 말했다.
“소장님은 그런 말 잘 안 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렇긴 하지. 확실히, 반성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은 가끔 해.”
소장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뭐, 한 번쯤은 이런 말을 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어.”
* * *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이게 무슨 느낌일까. 말문이 막힌 채 생각하던 마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느꼈다.
이게, 이게 바로 공포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만만히 봤다. 첫인상 자체가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 그저 무해해 보이는 남자일 뿐이었다. 오히려 뒤에서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해 보이는 여자 쪽이 신경 쓰였다.
사실 그때까지는 이런 무해해 보이는 남자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정체 같은 것이 들통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물론 대화를 하던 도중 생각만큼 바보는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깨달았지만.
그렇기에 다음에 만날 때는 조금 더 준비를 해서 갈 생각이었고, 실제로도 준비를 조금 했지만, 상대방은 이미 짐작을 마친 채였다.
거기까지는, 그래. 그럴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아쉬움이나 허탈한 감정이었지 두려움은 아니었다. 본인이 어느 정도 넘겨짚었다고 밝히기도 했고, 보험 몇 개 정도는 준비해 둔 게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뭔가.
“자, 전화가 왔네요.”
태주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이해가 안 간다. 어떻게 저 남자는 웃을 수 있는 걸까.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은 막히고, 상대방은 이 시점에 와서도 여전히 웃고 있다. 타이밍도, 말투도.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일 정도다.
혹시라도 정말로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어쩌면 눈앞의 이 녀석은 자신과 선생님마저 이곳에 찾아올 가능성을 처음부터 염두에 뒀던 것이 아닐까? 정말로 그렇다면 어떤 확실한 대책 같은 것이 있는 건 아닐까?
마녀는 그런 생각이 들고 말았다.
“너….”
표정 관리가 안 된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한 건 처음이고, 전화벨 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이렇게 소름이 돋은 것도 처음이다.
“너…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생각해 둔 거야? 처음부터, 우리 선생님이 올 것까지도 예상했던 거야?”
태주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글쎄. 그게 중요한 문제인가? 뒤집을 수 없을 거라며? 그럼 어차피 상관없는 거잖아? 내가 어디까지 생각을 해 놨든.”
직접적인 대답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불안하게 만든다.
“말도 안 돼.”
마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닐 거야. 시간을 끌려고 아무 말이나 하는 거겠지.”
저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안 된다. 그게 정말로 불가능한 일이라면, 아주 곤란한 일이다.
“그냥 지금까지 도망친 것처럼 억지를 부리는 걸 거야.”
마녀는 찌푸린 눈으로 말했다.
“그냥 거짓말로 시간을 끄는 걸 거야, 넌.”
“글쎄.”
태주는 역으로 물었다.
“여기서 시간을 끄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의미가 있을 수가 있나?”
마녀는 부정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전능이 눈앞에 온 시점에서 대부분의 행동은 의미가 없어진다. 오히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을 가장 가까이에서 봐 왔기에 그렇다.
그 어떤 함정도, 전략도 무의미해진다. 뭐가 어디에 있는지만 알면, 그리고 어떻게 하는지만 알면 말 그대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선생님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다.
그러니 원래대로라면 절대로 저렇게 당당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저런 태도다. 실감이 없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어느 범위의 일까지 할 수 있는지 알면서.
그렇기에 마녀는 처음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혹시 정말로, 우리들의 목표는 불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마녀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안 그래도 상대는, 뭐든지 알고 있는 그 인간의 부하 아닌가.
그걸 알았는지, 태주는 계속 이어 말했다. 대답도 듣지 않고, 그냥 쭉.
“내가 지금까지 한 말들은 거짓말이 아니야. 거짓말을 했다면 너나 너희 선생님이 중간에 안 끼어들었으려고?”
태주는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를 일부러 잠시 방치한 채 말했다.
“아니지. 그러니까 당황하는 거야. 너는 최소한 그 정도는 분간할 능력이 있어. 내가 그저 시간을 끌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 거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마녀는 멈추고 말았다. 전화벨 소리가 어지럽다.
“너희 목표는, 불가능해.”
따르르르릉—!
계속해서 핸드폰이 울린다. 태주는 눈앞의 두 사람을 보고는 생각했다.
‘그래도 반 정도는 성공인가.’
목표는 두 사람이 다 당황하도록, 냉정하게 생각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눈앞의 저 전능이라는 사람은 소장만큼이나 오래 살았을 거다. 이제 와 이 정도의 말로 흔들린다면 그쪽이 더 말도 안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지.’
사실상 이 정도가 한계다.
“이미, 당신도 생각해 본 적 있는 주제였군요.”
태주는 말했다.
“그래. 당연하지.”
전능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마녀의 질문에, 전능은 살짝 웃어 주면서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잠시만 조용히 해 달라는 뜻이다.
“나도 알아. 알면서도 하려는 거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건 알고 있었어.”
전능은 미소를 지었다.
“생각을 꽤 많이 했구나. 짧은 시간에, 거기까지.”
“그렇죠?”
“그래, 그 정도로 자신만만할 정도로는 보이네. 확실히 너는 그 녀석이랑은 전혀 다른 사람이구나.”
전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이유로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전능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일단 그 전화부터 받고 이야기를 할까? 아무래도 너무 시끄러워서 말이야.”
중간중간, 전화벨 소리는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전화를 받으렴.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해서. 어차피 너와 대화하는 것보다는 저 녀석과 대화하는 편이 좀 더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전능은 기대하는 말투로 말했다.
“어쨌든, 얼마만의 대화인지 모르겠네. 수백 년은 더 넘은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