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끝없이 찾아오는 벨소리 (23)
“전화?”
벨소리가 계속해서 울린다.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사무소에 있는 구색만 맞춰 놓은 전화에도 전화가 오고, 마녀 본인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에도 전화가 온다.
“갑작스러운데.”
심지어 요란하기까지 하다. 태주는 혀를 살짝 찼다. 이대로 간다면, 마음속에 있는 진지한 이야기를 조금 들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하지만 타이밍이 이렇게 틀어져 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 태주는 마녀 쪽을 쳐다봤다.
“평범한 전화가 아니라는 것만은 알겠네. 분명 누나가 뭔가 했나 본데. 이런 걸 할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너…!”
마녀는 경악해서는 말했다. 이전까지 하던 대화의 집중은 모두 깨진 모습이다.
“지금 벌써 이걸 모두 깨버렸다고?”
“그런가보네. 내 생각보다도 빠른걸. 아, 나한테 따지지는 마. 내가 한 게 아니라 어떻게 이렇게 빨리했는지는 나도 모르니까.”
태주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애초에 지금 저쪽 일은 아무래도 좋아. 우리는 하던 일이나 해야지.”
마침, 전화도 슬슬 끊어졌다. 다시 조용해진 틈을 타 태주는 말했다.
“지금 너는 소장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어. 그래도 대화를 해 볼 생각은 없는 거야?”
태주는 목을 살짝 까딱하며 소장을 가리켰다. 질문을 들은 마녀는 눈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방금 전까지는 조금은 당황한 표정이었다면, 지금은 확실히 마음을 굳힌 표정이다.
“아니. 안 되겠네.”
마녀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아무리 설득해도 이번 기회에 곧바로 도망치지 않는다는 보장 같은 건 없을 거 아냐?”
마녀는 소장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저게 또 도망치면, 우리는 또 몇백 년을 기다려야 할지 몰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신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라고?”
“그래?”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 맞아. 그런 경우는 특히나 받아들일 수 없겠지. 이번을 놓치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라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소장은 여전히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럼 이건 어떨까?”
“뭐?”
“별거 아니야. 내 생각에 대해 말을 해 볼 테니까, 네 생각을 말해 보라고.”
마녀는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표정이 되었다. 실제로 그렇다.
“이미 너한테 당한 게 있어서 영 신뢰가 안 가는데.”
“아니, 이건 정말로 내 생각을 말하는 것뿐이야. 나도 소장이 어떤 생각을 하고 지금까지 행동했는지, 생각해 본 게 있거든. 그렇잖아?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면서 내가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안 해 봤을까 봐?”
태주는 마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야. 물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방법 같은 건 네가 더 많이 오래 생각해 봤을 테니 그 방법에 대해서 어설프게 지적할 생각은 없어. 실현 가능성도 네가 더 잘 연구했겠지.”
하지만, 과연 소장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생각을 해봤을 것인가. 태주는 그런 질문을 했다.
“아무리 너라도 그런 생각을 나보다 많이 해보지는 않았을 거야. 그럴 수 있을 리가. 너도 그런 주장을 하지는 않겠지? 눈앞에서 그 사람을 보면서 지내는 사람이 너보다 그 사람에 대해 적게 생각해 봤을 리 없잖아? 내가 전능하다는 네 선생님에 대해서 너보다 잘 안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처럼.”
그건 확실히 그렇다. 마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당연히 나도 생각해 봤어. 네가 불만을 가졌던 부분에 대해서 이미 몇 번이고 생각해 봤지. 왜 소장은 그런 세상 모든 일들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 걸까. 의지가 있는데 하지 않으니 소장은 나쁜 사람인 걸까? 전능한 누군가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모르더라도 이 정도 생각은 할 수 있는 거잖아?”
기아와 전쟁을 막지 않는다. 전염병의 창궐과 세상의 온갖 범죄를 방치한다. 모든 것을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을 방치할 뿐으로 보인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힘이 있는데도 막지 않는 건, 글쎄. 좋아 보이지는 않아.”
그렇기에 태주는 소장을 한번 유심히 살핀 적이 있었다. 대체 왜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까.
“뭐든지 의심하는 건 내 나쁜 버릇이야. 물론 이런 일을 할 때를 기준으로는 그렇게 나쁘기만 한 버릇은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런 사람이야. 그래서 소장도 의심한 적이 있지.”
“소장을 의심했다?”
마녀는 눈을 찌푸렸다.
“너한테 소장님이 나한테 선생님 같은 거 아냐? 그런 사람을 의심한다고?”
“너랑은 다르게 나는 중간에, 뭐랄까. 우연히 붙잡혀서 이런 일을 하게 되었달까. 그래서 세상 모든 게 다 의심스러운 사람이었거든.”
그렇기에 소장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반대로 그래서 더 내 결론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지. 그냥 그렇다고 알게 된 것과 의심 끝에 확인한 것 중, 뭐가 더 사람이 확신을 가질 수 있겠어?”
그것 역시 틀린 말이 아니다. 마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결론이 뭐였는지 알아?”
“나야 모르지.”
“소장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야. 못 하는 거야.”
의지의 부재가 아니라, 능력의 부재다. 그 말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마녀는 물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 수 있는데?”
“어떻게 아느냐.”
태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몇 번이나 보다 보니까, 깨달았거든.”
“깨달아? 뭘?”
“소장님에 대해서.”
태주는 말을 걸었다.
“그 사람은 신 같은 게 아니야. 어쩌다 보니 뭐든지 알게 된 사람이지, 처음부터 그런 특별한 존재로 태어난 게 아니라고.”
그렇기에 태주는 말했다.
“전지, 뭐든지 아는 남자. 뭐라 부르든 그래. 내가 보기에는 그냥 한 사람이야. 그것도 아주 평범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마녀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든지 알고 있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일 리 없잖아?”
“그래. 거기서 네가 착각하고 있는 거야.”
태주는 말했다.
“뭐든지 알고 있는 사람은, 그냥 사람이 아닐 거라고 다들 생각해 버리고 말아. 뭔가 대단하고 특별한 무언가라고 생각하지.”
뭐든지 안다는 그 능력을 걷어내고 나면 거기에 남는 것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처럼,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마지막이 그렇게 비참하게 되지 않도록 지켜봐 주기도 한다.
좋아하는 작품이 있고, 그것 때문에 싸인 하나 받으려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같이 장난을 치는 데 동참하기도 하고, 가끔은 부하 직원을 놀려먹기도 한다.
“그게 뭐 특별한 사람이 하는 일 같아? 아니야. 소장은 평범한 사람인 거야. 조금 특별한 면모가 있을 뿐이지.”
태주의 말을 들은 마녀는 눈을 찌푸렸다.
“그래서, 너희 소장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그래. 그 사람은 모든 걸 감당할 힘이 없어. 그냥 알 뿐이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초인 같은 게 아니야.”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물었다.
“자, 내가 보기에는 소장은 사람이야. 그 가진 능력이 평범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본인은 사람이야. 그냥 평범한.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어?”
태주의 질문을 들은 마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아니, 넌 알아들었어.”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소장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사소한 걸로 즐거워하고, 사소한 걸로 기분 상하고. 가끔 잘난 척도 좀 하고, 장난도 치고. 그냥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을 굳이 건드려야 하겠어?”
마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그딴 소리를 듣고 포기하겠어? 소장도 사람이라서 그럴 수 없다고? 아냐, 그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어. 내가 보기엔 그래. 우리 선생님도, 너희 소장도 평범한 사람 같은 게 아니야. 그렇게 볼 수 없어.”
마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만한 힘을 가졌으면, 그 정도는 해 줘도 괜찮잖아. 왜 우리 선생님은 하겠다고 하는 일을, 너희 소장이라는 양반은 계속 피하고 도망만 치는 건데?”
“그런가.”
태주는 말했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래. 나는 그렇게 생각해.”
마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시간 낭비 같으니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이제 곧 오실 거야.”
“오시다니, 누가?”
“뻔하잖아? 우리 선생님 말이야.”
마녀는 말했다.
“규칙을 벌써 깰 줄은 몰랐어. 너희는 내 생각보다 대단했다는 말이겠지. 내가 틀렸어. 솔직히 분하네, 내 예상의 대부분이 틀렸다는 말이니까.”
마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후련하다는 듯 말했다.
“이건 솔직히 요행이야. 우리 선생님을 너희가 불러버린 건 말이야.”
일종의 최후의 수단이었다. 이런 식으로 사용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그러니까 애초부터 너랑은 대화를 할 필요도 없었던 거야. 그런 되지도 않는 소리나 할 거였다면, 그냥 도망이나 치지 그랬어?”
결국, 그런가. 태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이 찾아온다면 대화를 할 생각은 없다는 말이지?”
“결과적으로는 내가 유리해. 그런 상황에서 내가 왜 저런 배신자에게 그런 설득을 해야 하지?”
태주는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어쨌든, 그래. 대화를 시도는 했으니까.”
마녀는 웃으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선생님!”
이미 어느새, 처음 보는 여자가 이 방 안에 들어왔다. 태주는 곧바로 느꼈다. 아, 이 사람이 전능이구나.
“반가워.”
처음 보는 여자가, 시아의 어깨를 짚은 채 나타났다. 태주는 뭐, 이제 와 어쩌겠냐는 듯 물었다.
“그래서, 당신이 전능이겠네요.”
“그래.”
긴 금발의 여자는 웃었다.
“내가 전능이야. 흐음, 이런 곳에 있었구나?”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정말로 눈 깜짝할 새, 라고 하기에는 눈을 감았다 뜨기도 전에 이동이 끝나 있다.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멀미가 나거나 그렇지는 않지? 가끔 그런 애들도 있던데.”
“…아니, 괜찮습니다.”
시아는 눈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말도 없이 강제로 이곳에 침입하고 나서 한다는 말이 그런 말이다. 배려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잘 모르겠다.
시아의 그런 반응을 본 전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호기심이 이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꽤 깔끔하네. 그 녀석이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를 할 리가 없는데. 하긴, 다른 사람이 많으니 청소는 본인이 안 하겠지.”
전능은 어딘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녀는 말했다.
“딱 좋을 때 오셨네요, 그것도 엄청 빨리요.”
정말로 반갑다는 듯, 마녀는 말했다.
“그래. 뭐, 네가 연락이 안 되니까 확인도 할 겸 해서. 무사했구나?”
전능은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네, 저야 멀쩡하죠.”
“그렇구나, 고생했네.”
“고생은요.”
마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태주 쪽을 조금 노려봤다.
“저 녀석 때문에 조금 하긴 했네요. 아, 그래도 이제는 괜찮아요. 정말 끝났으니까요. 저기에 전지가 있어요.”
“저기? 어디?”
“저기, 저기 있어요. 선생님.”
마녀는 손가락으로 저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신 있다는 듯한 미소다.
“으음? 아하, 준비했다는 게 저거구나.”
전능은, 그제야 소장 쪽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저건 또 누구야?”
* * *
“뭐야?”
월이는 허망하게 말했다. 뭔가 제대로 막아 볼 틈도 없었다. 그냥 어? 하는 사이에 두 사람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지금 둘이 사라진 거야?”
“…그런 거 같지?”
설이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는 거 들어 보면 아마 사무소로 간 거 같은데.”
다만 그 이상은 모르겠다. 월이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뭐? 손이라고?”
한창 긴장된 타이밍에, 전능은 갑자기 물었다. ‘여기서 미성년자, 손?’ 하고.
두 사람은 순진하게 손을 들었고, 고개를 끄덕인 전능은 두 사람은 놓고 시아만 데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지금 우리를 애들 취급한 거 맞지?”
“…아마 맞는 거 같은데.”
“돌겠네 진짜.”
월이는 태주가 가끔 하는 말버릇을 따라했다. 솔직히 지금 이것보다 더 잘 맞는 표현이 생각이 안 난다.
“아오, 진짜. 그럼 우린 어쩌지? 돌아가야 하나?”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 이 장소가 사무소에서 그리 멀지는 않다는 정도지만, 그 거리가 짧다는 것이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긴 한데, 그렇다고 당장 돌아간다 쳐도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에이! 대체 저런 걸 어떻게 해?”
월이가 푸념하는 것을 들은 설이는 눈을 찌푸린 채 물었다.
“으음, 그래도 일단 돌아갈까?”
“돌아는 가야 하긴 하는데….”
월이는 눈을 찌푸렸다.
“그냥 돌아가야 하나? 이걸? 어떻게든 한번 엿먹이고 싶은데. 뭔가 방법이 없을까?”
월이는 말했다.
“그것도 아주 큰 빅엿을 말이야. 뭐 방법이 없을까?”
“글쎄.”
설이는 으음, 하면서 고개를 갸웃하다가는 말했다.
“근데, 이번엔 나도 같은 생각이야.”
“뭐가?”
“빅엿 말이야.”
설이는 짜증나는 말투로 말했다.
“이렇게 방치되는 거, 기분이 좀 나쁘네.”
“기분 나빠?”
뒤에서, 익숙하고도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아잇, 깜짝이야!”
월이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말 좀 하고 와요! 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