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끝없이 찾아오는 벨소리 (22)
누나가 가 있는 쪽은 대체 어떤 상황이려나. 그쪽에서 일어나는 일은 꿈에도 모르는 채, 태주는 말했다.
“다짜고짜 배신자라. 좀 너무한데. 아무리 그래도 대화를 좀 해야 하지 않겠어?”
태주는 쓴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마녀의 표정은 꽤 다채롭다. 당황, 경악, 그리고 분노와 만족까지.
“너만 아니었다면…!”
마녀는 큰 소리로 말했다. 태주 쪽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다. 소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나만 아니었다면, 뭐?”
“이렇게 오래 걸릴 이유가 없었는데!”
마녀의 말을 들은 태주는 슬쩍 웃었다.
“전혀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데. 최소한 방금 전까지는 냉정한 척이라도 하더니.”
태주는 마녀의 시선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너무 저쪽만 보지 마. 아직 우리끼리 하던 대화가 끝이 안 났잖아? 진정하라고.”
“지금 장난해?”
마녀는 거의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아니. 그건 아니지.”
태주는 담담하게 말했다.
쉽게 진정할 수 있을 리 없다. 그토록 찾아다니던 대상이 눈앞에 나타나다니. 당황하지 않을 리가 없다.
실제로 그렇다. 표정관리가 안 되는 것을 넘어 스스로의 감정 관리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놀라고 당황했겠지. 설마 네 앞에 본인이 직접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마녀는 태주를 죽일 듯 노려봤다.
“처음부터 저기 있었던 거야? 맨 처음부터? 우리가 대화를 하는 내내?”
“그래. 처음부터. 내가 하는 말에 거짓은… 글쎄, 항상 진실만 말하는 건 아니니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별로 없어. 소장은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 처음부터 끝까지.”
태주는 가볍게 긍정했다.
“너도 알 거야. 지금이 너한테 엄청난 위기라는 걸. 적진의 한복판에서 마주쳐서는 안 되는 사람과 만났으니까.”
그리고, 최고의 기회이기도 하다.
“동시에 지금 이 상황은 너에게 어마어마한 기회겠지. 눈앞에 찾던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야.”
위기이자 기회. 태주는 일부러 마녀에게 말을 걸었다.
“어쨌든, 너도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게 그만큼 중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주는 씩 웃었다.
“진짜 미친놈.”
“그래, 뭐 가끔 듣는 소리야.”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이어 말했다.
“자, 그럼 다시 아까부터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자고. 한번 말해 봐. 소장은 잠시 조용히 해 주시고요.”
“어라, 너 혼자 말하는 거냐?”
“그렇죠. 하던 사람이 하던 이야기는 마무리 짓고 나와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태주는 소장 쪽을 쳐다도 보지 않고 말했다. 태주는 단 한 번도 마녀 쪽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흐음, 그건 그렇지. 그럼 잠시 기다리도록 할까?”
소장은 그렇게 말한 뒤 팔짱을 꼈다. 끼어들지 않겠다는 표시다.
“…대체 뭘 하려는 거야? 나를 돌려보낼 생각이 없다는 건 알겠는데.”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 마녀는 물었다. 당연한 태도다. 보통은 알아서는 안 되는 정보를 붙잡힌 사람에게 알려주는 건 돌려보낼 생각이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다.
“글쎄. 그건 너 하기 나름일걸? 우리는 딱히 납치범 같은 게 아니라서.”
태주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거짓말이라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진심이야.”
“글쎄. 그럼 대체 왜 이 사람을 내 앞에 데리고 온 건데? 이 배신자를?”
“필요하거든.”
태주는 마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게다가 그건 네 일방적인 주장이야. 아직까진.”
마녀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태주를 바라봤다.
“만약 네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이 모두 당사자가 없으니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들을 가치가 없는 이야기일 뿐이지. 일방적이기도 하고.”
그러니, 본인을 데리고 왔다.
“네가 아무 말이나 하지 못하도록, 소장을 미리 보여주는 거야.”
“나는 거짓말 같은 거 안 해.”
마녀는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아무리 봐도 협박이잖아. 날 아무리 위협해도 내가 그렇게 쉽게 너한테 굴복할 거 같아?”
“아니, 이쪽을 대체 뭘로 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너야말로 이쪽을 테러리스트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냐? 분명 상황은 반대일 텐데.”
태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먼저 이쪽을 찌른 거잖아.”
마녀는 반박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적대적인 표정을 지었다. 이제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필요했다는 생각이겠지. 그래, 어느 정도는 동의할 수도 있을 거야.”
태주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솔직히 말해 볼까? 나는 마지막까지 소장의 위치를 숨기려고 했어.”
하지만, 몇 가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은 딱히 악당은 아니다. 흡혈귀나 용 수준으로 말이 안 통할 상대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냥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상대방을 오로지 방해만 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네 말이 어느 정도는 맞을지도 몰라. 실제로 내가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소장에게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어.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내가 가장 오래 일했고, 또 조금은 특별한 사이인데도 말이야.”
지금 들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다. 마녀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네가 맞고 내가 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이야. 네가 하는 말은 솔직히 말해서 훌륭한 목표라고 생각해. 여러모로, 나보다 나은 점도 있고. 솔직히 나는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 데 급급하거든.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지, 하는 명확한 비전 같은 것도 없고.”
태주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뜻도 괜찮지. 목적도 괜찮아. 내가 당장 네 편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마녀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그쪽을 배신하겠다는 말이야?”
“아니. 그냥 그편이 맞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말이야. 이전에 소장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거든.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라고.”
태주는 딱히 표정을 바꾸지도 않고 그런 말을 했다. 물론 마녀 역시 그랬다.
“그런 말을 하는 것 치고는 이쪽 편을 들어줄 것 같은 상황은 아닌데. 어쨌든, 내 편을 들어줄 생각도 아닌 것처럼 보이고.”
“네 편이 될 생각은 없어. 그냥 네 이야기를 좀 들어보려는 생각인 거지.”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나타나 세상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면 정말 가능할지도 모른다. 조금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네 말대로 전쟁이 없어지고, 가난이 없어지고, 병과 고통이 없는 세상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태주의 말을 들은 마녀는 얼굴의 확 밝아졌다.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포함해서 그런 행복한 세상이 될지도 몰라.”
새로운 세계로 바꾼다. 완벽한 정답을 알고 있는 누군가를 통해서 세상을 한층 더 나은 곳으로 바꾼다.
“만들려고 하는 건 일종의 새로운 생태계라고 생각하면 되겠네. 누구도 슬픈 이유로 죽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은 꽤 매력적으로 들리는 건 솔직히 부정할 수 없어.”
모든 사람이 괴담에 대해 알고 있고, 사람 역시 그 일부가 되는 세상. 누구나 사람을 초월할 수 있고, 원한다면 그대로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세상을 바라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태주는 말하고 싶지 않다. 누구나 그런 영원한 평화를 지향하기도 하고, 바라기도 한다.
“어쩌면 아주 스마트한 해결책일지도 모르겠어. 사람도 일종의 신비가 되어버리는 건 말이야.”
완벽하게 구현된다면, 이라는 전제가 붙기는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세상 속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꽤 온화하게 말하는 태주의 모습을 본 마녀는 조금은 표정이 밝아졌다.
“다른 사람에게 그런 평가를 제대로 받아 본 건 처음인데.”
“그래. 이건 내 솔직한 생각이야. 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럼, 내 편을 들겠다는 거야?”
“아니.”
태주는 계속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은 아니지. 대체 내가 왜?”
“뭐?”
지금까지는 자신의 편이 되어 줄 것처럼 말하더니, 갑작스럽게 전혀 다른 말을 한다. 마녀는 도저히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 되물었다.
“너, 내 말에 동의한 거 아냐?”
“아냐. 네 행동의 이유를 이해했다는 말이지.”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너도 말했잖아! 세계 평화가 좋다고! 스마트한 생각이라며?”
“그렇지. 그런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태주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 웃음을 본 마녀는 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
“대체 왜? 너는 지금 그걸 다 알면서도 거절하는 거야?”
“그럼 왜 설득을 하지 않았냐?”
“뭐?”
태주는 마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 설득하지 않았냐고. 너는 소장에게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잖아? 지금 나한테 하는 것처럼.”
그저 배신자라고 몰아붙였을 뿐이다. 제대로 된 대화를 하려 들지도 않았다.
“소장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거야. 당연하지, 세상 모든 일을 다 알 수 있는 사람에게 어떤 사실을 전달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 리 없잖아?”
“처음부터 도망친 사람이야. 무슨 대화를 해?”
마녀는 찌푸린 눈으로 말했다.
“그래. 나도 들었어. 방금 한 이야기 아냐.”
태주는 멀쩡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서 소장을 네 눈앞에 보여줬지.”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전혀 설득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저 네가 배신했기 때문에 지금 세상이 이 꼴이라고 한소리를 했을 뿐이다.
“꽤 재미있는 이야기였어. 우리 소장님은 너희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피해서 도망 다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겁쟁이고. 너희 선생님은 힘은 있으나 방법을 몰라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럴듯해. 그런데 그렇다면 행동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지금 한 번 물어보자.”
“뭘?”
“너, 애초에 다시 우리 소장을 설득할 생각이 있었어?”
태주가 보기에는 그렇다. 상대를 붙잡아서 어떻게든 힘을 강탈하려 드는 것이 그리 정상적인 판단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어쨌든 다른 방법이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치더라도 눈앞에 소장이 나타난 다음에도 태도의 변화가 없다.
“설득을 하려고 해 본 적은 있어? 말을 걸어 본 적은? 대화를 시도한 적은 있어? 물론 처음의 두 사람에게는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 네가 그렇게 하려고 해 본 적은 있어?”
그랬을 리가 없다. 마녀의 표정을 본 태주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봐, 사람을 설득할 생각도 전혀 없어 보이는데, 내가 어떻게 네 말을 들어 줄 수 있겠어?”
“…설득?”
마녀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모든 걸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을 나한테 설득하라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 내가 말한 걸 이미 다 알면서 행동하지 않은 사람한테?”
“글쎄.”
태주는 부정하지는 않았다.
“별로 의미는 없을지도 몰라. 네 말대로. 다 알고서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런 설득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세계 평화보다는 그쪽이 더 쉬운 일처럼 보인다.
“그것도 못 하면서 세계 평화 어쩌고를 말할 생각은 아니지?”
마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주 불확실한 표정이다.
“나는….”
그때, 전화가 울렸다.
따르르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