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11화 (211/269)

21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끝없이 찾아오는 벨소리 (21)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확실하다. 눈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 여자가 바로 전능이다. 의심의 여지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보고도 모른다면 그게 바보다.

시아는 중얼거렸다.

“전능….”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다. 그냥 일종의 신음에 가깝다 봐야 한다.

“대체….”

어떻게. 시아는 거기까지만 말한 뒤 뒷말을 삼켰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정해져 있는 사람에게 그런 의문은 전혀 의미가 없다.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는 질문은 그러니 사실상 단 하나뿐이다.

“왜 하필 지금?”

시아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전능이 조금만 더 늦게 도착했다면 최소한 채연 씨는 돌려보낼 수 있었다.

“그러게, 왜 하필 지금일까?”

시아의 표정을 본 전능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방금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말이야. 지금 이렇게 갑자기 나오느라 뒷부분의 내용을 전혀 모르게 되어버렸지 뭐야?”

“영화?”

시아는 멍하니 말했다.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전능은 약간은 억울하기까지 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주변 분위기 보니 이런 말 할 때는 아닌 것 같긴 한데, 사실인 걸 어떻게 해? 나도 지금 이곳에 오게 될 거라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래. 그런 거 같기는 해. 영화 같은 거나 볼 때는 아니었나 봐.”

여자는 씩 웃고는 말했다.

“어쨌든 나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많지만 나를 그렇게 쳐다볼 사람은, 아니 사람들은 한쪽밖에 생각이 안 나거든.”

전능은 시아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희, 그 녀석 부하들이지? 참, 그 애가 부하 같은 걸 가지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시아는 굳은 표정이 되었다. 상대방은 이쪽이 뭐 하는 사람들인지 이미 짐작하는 모양이니, 이제 와서 아니라는 발뺌도 불가능하다.

애초에 전능한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그게 과연 통할 것인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더라도 거짓말 정도는 분간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시아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시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다. 전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이런 풍경은 익숙하다는 것 같은 그런 태도다.

“그나저나, 왜 지금이냐고? 그런 걸 물었지?”

마치 잡담의 주제라도 되는 듯, 전능은 천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

“그게 무슨?”

무심코 한 대답. 시아의 말을 들은 전능은 반갑다는 듯 대답했다.

“아하, 그래도 말은 해주는구나? 다행이네. 가끔 날 보고 너무 놀란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아무 말도 못 하던데… 어쨌든 대답하자면, 반대야.”

“반대?”

“그래. 너희가 지금 그 문제를 해결하는 타이밍에 내가 나타난 게 아니야. 너희가 그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내가 나타난 거라고.”

시아는 바로 전능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했다.

“반대라.”

눈앞의 여자는 사무소의 사람들이 괴담을 깨는 타이밍에 맞춰서 나타난 게 아니다. 이 괴담을 깨 버렸기 때문에 눈앞에 나타난 거다.

영화 같은 것을 보다 왔다. 자신도 지금 이곳에 오게 될지 몰랐다. 그런 말을 듣다 보면 알 수 있어야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바로 눈치챘어야 했는데. 시아는 찌푸린 눈이 되었다.

“깨지지 않는다면, 우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 깨진다면, 깨버린 사람 앞에 당신이 바로 나타난다. 어느 쪽이든 손해는 안 보도록 만들어 뒀다, 그 말이로군.”

시아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래서야 최악의 이지선다다.

“그렇다면 정말로, 왜 하필 지금이냐는 질문도….”

시아는 말끝을 흐렸다. 그 또한 전혀 의미가 없었다.

“그래.”

전능은 웃었다.

“아무래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전면에 나서게 되면 너무 눈에 띄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반대로 필요할 때 있으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긴 하지만, 때가 되기 전까지는 도움이 안 되는 편이야.”

그러니 괜히 어딘가를 들쑤시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결국 내 일은 기다리는 거였단 말이지. 그 애가 힌트를 찾아올 때까지. 물론 이렇게 빨리 일이 진행될 거라고는 여러모로 생각 못 했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진짜 몰랐구나? 그건 정말 몰랐으니까 나올 수 있는 표정이야.”

시아의 당황한 반응을 본 전능은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정말로 네 힘만으로 알아낸 것 같은데. 이야, 정말 대단하네.”

깔깔 웃는 모습을 본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아, 미안해. 기분 나쁘라고 한 건 아니었는데.”

여자는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도 아주 환한 미소다.

“비웃는 것도 아니야.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마지막까지 이걸 못 깨거나, 아니면 깨지더라도 거의 한 달 다 되어서나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었거든. 기본적으로는 그래. 우리도 이게 이렇게 빨리 깨질 줄은 예상 못 했어. 그 애의 예측이 틀린 건 참 오랜만이거든. 우리 쪽 꼬마 말이야. 아니, 꼬마라고는 해도 아주 어린 애는 아니지만.”

시아는 눈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그게 꼬마라고?”

“그야 그렇지? 이제 막 스물인걸. 아직 내가 볼 때는 어린 애야. 물론 무시하려는 건 아니야. 그 애도 밖에 나가면 인정받는 마녀니까. 그냥 꽤 오랜만에 있는 일이라 신기한 거지.”

전능은 칭찬하듯 말했다.

“너희 정말 유능하구나?”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실제로 그렇다. 조금 천천히 문제를 해결했다면, 혹은 여유가 있었다면 지금 전능과 만나는 일은 없었을 거다.

물론 이 문제를 해결하는 시점에서 전능과 만날 거라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겠지만.

“아아, 맞아. 잠깐만, 너희랑 대화하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오래 걸릴 거 같으니까.”

전능이 한 손을 들었다. 시아는 말을 멈췄다.

기묘한 감각이다.

말을 할 수 없다. 움직일 수도 없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자신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인 것인가?

시아는 구분할 수 없었다. 애초에, 움직이고 싶다는 기분 자체가 들지 않는다.

움직일 수 없는데 움직이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애초에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것인가. 시아는 구분할 수 없었다.

“잠시만 기다려. 여기에 제삼자가 하나 있잖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시아는 전능이 채연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미안, 너부터 돌려보내 줘야 했는데.”

전능은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를 두고 너무 우리 이야기만 했지?”

갑작스럽게 굳은 세 사람을 본 채연은 겁에 질렸다.

“여러모로 미안해. 아무래도 우리 애가 이런 방법밖에는 떠올리지 못해서. 너도 꽤 힘들었을 텐데.”

전능은 채연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고생했어. 그리고 고마워. 네 덕분이야. 집에서 한숨 자.”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채연은 그 자리에 없기 때문이다. 전능은 몸을 빙글 돌리고는 말했다.

“자, 그럼 이제 하려던 이야기를….”

전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월이가 외쳤다.

“야!”

“어라, 기운도 좋네. 풀자마자 이걸.”

전능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슨 걱정하는 건 알지만 집에 돌려보내 줬어. 지금까지 남의 일에 끼어들게 한 것도 미안하기도 하고 앞으로 할 이야기는 중요한 이야기기도 하니까.”

“만약 거짓말이면…!”

월이가 으르렁거렸지만, 전능은 그저 작게 미소를 지을 뿐이다.

“기특하네. 하지만 거짓말이 아니야. 애초에 그 애를 괴롭힐 이유가 전혀 없는걸? 저 애도 그냥 어린애고.”

“괴롭힐 이유가 없다고?”

월이는 전능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럴 거면 애초에 그런 방법을 쓰지를 말았어야지!”

정론이다. 전능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래. 하지만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어. 더 좋은 방법이 없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걸 알려면 전지한 그 녀석이 있어야겠지.”

전능은 처음으로 날카로운 눈으로 월이를 내려다봤다.

“하루라도 빨리 너희를 찾는 게 내 목표였으니까.”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행동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가 조금 피해를 보는 것을 감수할 생각은 있다.

“하루 더 빠르면, 그만큼 더 이익인 일이라서.”

무엇이 더 이득인가. 그런 건 물어볼 필요도 없다. 시아는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만약.”

시아가 말했다.

“만약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면 어떻게 하려고 이런 짓을?”

이런 거대한 거미줄이다. 걸려든 순간 막을 방법 없는 기술에 걸려든 셈이지만, 만약 다른 사람이 걸렸다면 이만한 손해가 또 없을 거다.

“어떻게 하긴?”

전능은 웃었다. 반면 시아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랬더라도 상관없어. 내가 이런 이론적인 일에서 손을 뗀 지는 꽤 오래됐지만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걸 아무나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꽤 복잡하게 얽힌 일이다. 심지어는 여기에 호출된 전능조차도 사건을 전부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냥 확률적으로 기대볼 만한 일이라고 판단했지. 대충 그래, 정확한 계산은 아니지만 반 정도는 넘지 않을까 생각했어.”

“겨우 그런 확률을 믿고?”

시아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질문했다.

“물론 우리만큼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자화자찬 같지만, 자신들 만큼 이번 일을 빠르게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들은 국내에 거의 없을 것이다. 한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한 손에 꼽을 수 있었던 그 몇 명의 사람들은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걸로는 부족할 텐데. 대체 뭘 근거로?”

시아는, 이런 질문을 하면서 기시감을 느꼈다. 이런 대화를 아주 최근에 했던 것 같다.

전능은 웃었다.

“근거라… 근거 같은 건 없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면 아무래도 좋았을 뿐이야.”

전능은 말했다.

“어차피 이걸 어떻게든 무난하게 없앨 수 있을 정도로 요령이 있는 녀석들이라면, 둘 중 하나일 테니까. 아주 능력이 있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그 녀석의 밑에 있는 녀석들이거나.”

확실하지 않아도 괜찮다. 어느 쪽이든 찾으면 이득이다.

“만약 요령이 좋을 뿐인,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었다면 그건 그거대로 상관없어. 그 녀석을 데리고 다시 조사를 시작해도 되겠지. 아니라면 더 좋은 일이고. 바로 찾는 거잖아?”

전능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본인의 생각인가?”

“아니.”

전능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내 밑에서 일하는 그 애의 생각이야. 내 허가 정도야 있었지만.”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그런가.”

확실히 알았다. 마녀와 제대로 이야기를 해 본 적은 없지만, 그 사람은 태주와 닮은꼴일 거다. 그렇지 않을 리가 없다.

“서로 같은 성격이라는 말이로군.”

“같은 성격?”

전능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쪽은 이쪽대로, 생각하던 게 있었다는 말입니다.”

시아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존댓말로 말했다.

“어디, 원하는 대로 해 보시지요. 이쪽도 할 일은 다 해놨으니.”

전능은 시아의 말을 듣고는 재미있다는 듯 쳐다봤다.

“흐음?”

“준비를 한 것은, 글쎄요. 그쪽만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시아는 당당하게 말했다. 물론 자기가 해 놓은 준비는 아니지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