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끝없이 찾아오는 벨소리 (20)
“배신?”
태주의 말을 들은 마녀는 다시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상대편에서 아예 그런 이야기를 이해조차 못 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배신이라는 게 무슨 의미지?”
태주의 이어지는 질문을 들은 마녀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뭐야, 그것도 못 들은 거야? 전지한테?”
아니, 아니다. 마녀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반대겠네. 그것도 모르니까 너희가 그 도망치는 일에 계속 협력을 한 거였을 거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가 정확하게 들은 건 그쪽이 전지한 힘을 원한다는 것뿐인데.”
“몇 번이나 들어도 기가 막히네. 얼마나 자기 유리한 대로 말했다는 거야? 아니, 애초에 말도 안 한 건가?”
마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했다.
“야, 일단 한 가지만 묻자.”
마녀는 태주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주 진지한 표정이다.
“너희 그 소장이라는 작자가, 너희들한테 자기가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지게 되었는지 말한 적이나 있어?”
“아니.”
“없다고?!”
어디서부터 모르는 건지, 마녀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게 하나도 없단 말이야?”
“말했잖아. 소장은 자기가 아는 걸 남한테 말하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아.”
“진짜로, 말도 안 돼.”
마녀는 짜증 난다는 듯 말했다. 자신이 이런 걸 하나하나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심각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다.
“에잇! 잘 들어, 처음부터 너희 소장과 우리 선생님은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해 그 힘을 얻어낸 거야. 알겠어? 내가 지금까지 한 말처럼 목적이 선하고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세상 모든 것을 손에 닿는 범위 안에 가질 수 있게 된다면 평화가 올 수 있을 테니까. 처음 두 사람의 목적은 같았던 거야.”
험난한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 과정이 어땠는지는 마녀조차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힘이다. 그 과정이 그렇게 순탄했을 리는 없다.
“엄청 어려웠다는 것 같아. 그때는 딱히 전지전능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든 손에 넣었지. 전지전능한 힘을 말이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실 한 사람이 둘 다 가져도 괜찮을 것이다. 오히려 더 합리적인 방안은 그쪽이다. 굳이 둘로 나뉘어서 위험 요소를 가질 이유는 없다.
감정적인 이유를 제외한다면.
“남는 쪽에 대한 연민이, 둘 모두에게 있었던 거야. 아무리 목표를 위해서는 한 사람이 모두 가지는 편이 낫다고는 해도 둘이 함께 고생했으니까.”
유대감이라 해야 할지, 애착이라고 해야 할지. 서로 배신만 하지 않는다면 둘이서 그 힘을 함께 가지고 있어도 문제는 없을 거라는 계산 하에, 두 사람은 힘을 나눠 가졌다.
“세계 평화는, 그러니까 사실 딱 한 발짝 남았던 거야. 우리 선생님 표현을 빌리자면, 이미 이루어졌었던 것과 다르지 않아.”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겠지.”
태주의 말을 들은 마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쪽이 배신을 했으니까 말이야.”
힘을 얻게 된 순간 전지 쪽이 도망치고 말았다. 이유는 모른다.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지금까지도 도망치는 걸 보면 분명히 의도적인 거겠지.”
그러니 배신이라는 표현이 맞다. 그렇게 혼자 남은 전능은, 그냥 평범하게 강하고 무적일 뿐 뭔가 섣불리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마녀는 눈을 잔뜩 찌푸리고는 말했다.
“아쉬운 일이야. 그때 한 사람이 모두 가졌다면 지금 같은 상황이 되지는 않았을 거 아냐? 하긴, 지금 상황을 보면 그쪽이 전지전능을 모두 가졌다면 최악이었을 수도 있겠네.”
배신자. 마녀는 소장을 그렇게 바라보는 모양이다. 태주는 잠자코 들었다.
“만약 그때 배신하지 않았다면, 마녀사냥은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야. 그 뒤로 일어난 전쟁은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은 전쟁이었겠지. 그 뒤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행하게 죽었는지, 넌 알아?”
“몰라.”
“사실 나도 몰라.”
마녀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걸 아는 사람은 전지뿐이겠지.”
그렇기에 마녀는 전지를 용납할 수 없다.
“그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게 죽어 나가는 걸 알면서,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왜 우리는 계속 숨어 지내야 했고, 나쁜 사람이 세상에 한가득 있는 걸까?”
신비의 영역까지 이야기를 확대하면 더 그렇다.
“나쁜 사람과 좋은 괴물이 만나면, 사람은 그래도 괴물을 죽여. 그게 과연 올바른 일일까? 나는 납득이 안 돼.”
마녀는 자신이 하는 말에 한 치의 의심도 없는 것처럼 말했다.
“늦었어. 많이 늦었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봤는지 난 모르겠어. 그러니 이제라도 해야 해. 더 늦기 전에 말이야.”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꽤,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인데. 소장의 배신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정말로 처음 듣는 이야기긴 하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도 이쪽을 도우라고.”
“글쎄. 하지만 의견이라는 건 늘 그렇잖아?”
태주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양쪽 의견을 다 들어야지.”
“양쪽?”
태주의 말을 들은 마녀는, 환희와 충격이 뒤섞인 표정이 되었다.
“내 눈앞에 나타나는 건가? 그게?”
태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대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어디 한 번 정말 본인의 의견이 어떨지, 물어나 보자고.”
태주는 말했다.
“거기 있죠?”
“글쎄다, 나는 처음부터 여기에 계속 있었지.”
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의 뒤 편에, 마치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모습을 숨기는 건 언제 봐도 재미있단 말이지. 내가 없는 것처럼 대화하고.”
그 씩 웃는 표정을 본 마녀는 소리쳤다.
“찾았다…! 이 배신자!”
* * *
원하는 장소를 찾는 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시아는 주변을 쭉 둘러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아파트 단지 안이라.”
이런 곳에 전화 부스가 남아 있을 줄 몰랐다.
“작동도 돼.”
어느새 들어간 월이가 전화기를 몇 번 눌러보고는 말했다.
“이거 실물은 처음 보네.”
“흠, 생각보다 빨리 찾았군.”
이런 곳에서 전화 부스를 찾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상관없다. 오히려 의도한 대로 일이 풀리는지 바로 알 수 있을 테니 더 좋다.
“그럼 이곳에서 하면 되겠군요.”
“네? 이곳에서요?”
채연은 당황한 채 말했다.
“지금 바로요?”
“예, 그렇습니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전화 부스에서 시작한 일이니, 전화 부스에서 끝내는 편이 적당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데요.”
뭘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미 이야기는 들었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는 것이 아니다. 불안하기에 망설이는 거다.
“저기, 정말 해도 될까요? 조금 뭐랄까, 불안한데요.”
정말로 규칙을 어겨도 되는가부터, 이렇게 큰 규모의 일을 한 번에 해도 되는가. 머릿속에 맴도는 의문이 많다. 채연은 다시 한 번 물었다. 괜찮을 거라 듣기는 했지만, 괜히 마음이 불안하다.
“그냥 말씀하신 번호로 전화를 하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요?”
“네, 그리고 나서 한마디만 하시면 됩니다. 그냥, 그 규칙에 대한 아무 말이나요.”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영 불안하다. 채연은 찌푸린 표정이 되었다.
“진짜 괜찮은 거죠?”
“뭐, 잘못될 일은 없을 겁니다.”
태연한 시아의 태도를 본 채연은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어쨌든, 시키는 대로 하는 거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니 조금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설이가 말했다.
“괜찮겠죠?”
“괜찮을 거다. 보면 알게 될 텐데.”
“하지만 저번에는 바로 물어보라면서요.”
맞는 말이다. 시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물론 그렇게 말했지. 바로 이렇게 말하게 되어서 조금 미안하지만, 지금 이건 아무리 그래도 보고 설명을 듣는 편이 여러모로 편할 거라서 말이다.”
시아는 채연이 전화번호를 누르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슬슬 소리가 들릴 거다.”
“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설이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과 동시에 월이가 귀를 막았다.
“윽…!”
“왜, 왜 그래?”
“몰라! 이게 무슨 소리야!”
아직도 설이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왜 그러나 싶어 월이 쪽을 바라보던 설이의 핸드폰에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늘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것만 들리는 것이 아니다.
설이의 핸드폰, 시아의 핸드폰을 넘어서 아파트 전체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전부 다른 소리지만, 또 한 번에 틀어 놓으니 나름의 규칙이 있는 것처럼도 들린다.
왼쪽 동을 넘어 오른쪽 동에서, 한 단지 전체를 넘어 옆 단지에서도, 그런 소리가 들린다.
마치 파도처럼, 마치 여름의 매미 소리처럼, 전 아파트에서 소리가 울려 퍼진다. 거대한 소음 공해다.
“이거 대체, 어디서부터 나는 소리야?”
월이는 귀를 막은 채로 시아에게 물었다.
“엄청나게 말도 안 되는데…!”
“어디서부터라?”
시아는 작게 웃었다.
“전 세계.”
갑작스럽게 모든 전화가 멈췄다.
“방금 전화는 전 세계에 걸렸던 거다.”
“뭐?”
월이는 아직도 귀에서 찡-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귀를 부여잡고는 말했다.
“그런 짓을 했다고?”
“정확히는, 전 세계 단위로 작동 중인 자동 응답 서비스 쪽에 말을 걸었지. 말했잖느냐. 그냥 터트리는 게 가장 현명하다고.”
시아는 말했다.
“한국 전체를 한 달 정도 커버할 용량의 힘이 담겨 있던 종류의 괴담이다. 사실상 주술로서 작동하는 중이고. 그렇다면 그 정도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시키면 알아서 뻗는 법이야. 이 나라에서 고작 한 달 정도의 유통기한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었다면, 그게 전세계로 확장되었을 때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인구수를 아주 단순하게 계산한다 쳐도 순간적으로 원래 상정했던 범위의 140배의 자원이 필요하다는 말이 되니.”
상대는 그 정도로 많은 자원을 할당해 놓지 않았다. 당연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서 파괴될 수밖에 없다. 한 나라에서 충분할 정도의 자원이라도, 전 세계를 기준으로 하면 순식간에 끝나고 만다.
“잠시라도 그런 걸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두 배나 세 배도 꽤 큰 과부하가 걸리는 마당에 140배라면 그게 망가지지 않을 리가 없다.”
시아의 말을 들은 월이는 경악하며 말했다.
“진짜 터트리는 거네.”
처음부터 폭탄에 비교한 이유가 있었다. 시아는 처음부터 이것의 정체를 안 순간부터 터트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진짜, 말도 안 돼.”
월이는 혀를 내둘렀다. 시아는 씩 웃고는 말했다.
“나에게, 너에게. 그리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전화기에 잠깐 정도 전화가 갔을 거다. 솔직히 사람마다 시간은 조금씩 다를 게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 딱 떨어지게 나눌 수는 없었거든.”
그런 건 컴퓨터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어쨌든,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경험이라는 것이 오히려 또 괜찮은 점이기도 하다.
“아마 누군가는 전화가 온 줄도 몰랐을 거다. 울리자마자 끊어졌을 거거든. 또 누군가는 전화벨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받기도 전에 끊어졌을 거다. 뭐, 우연히 조금 길게 전화가 온 사람은 앞에 몇 마디 정도는 들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어차피 상관없다. 이 정도의 사건은, 단순히 재미있는 일에 불과할 거야.”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온 수수께끼의 짧은 전화. 엄청난 일이지만, 동시에 제대로 된 영향은 주지 못했다. 이런 걸로 겁먹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에만 영향을 미쳤다.
“다시는 이걸 재활용할 수 없을 거다. 터트리는 게 안전한 이유가 바로 이런 거지. 신관만 끊은 폭탄은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다시 터트릴 위력이 남거든.”
여러 가지 의미로 합리적이다. 설이는 어처구니없지만, 말이 된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심지어 덮어씌운 셈도 되겠네요. 이건 규칙 괴담이 아니라, 전 세계에 온 수수께끼의 전화 같은 내용이 될 테니까요.”
아마도 일요일 오전에 하는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사건이 되지 않을까. 설이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규칙 괴담은 완전히 힘을 잃어버리겠어요.”
“아마 태양풍 어쩌고 하는 음모론이나 나오겠지.”
시아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생각대로 됐다.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정말 그렇겠네.”
처음 듣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언제…?”
시아는 경악했다. 아니, 시아만 그런 게 아니다. 설이와 월이까지 모두 지금 이 순간 놀라고 말았다. 차라리 뒤에서 들렸다면 언제 온 것인지 궁금해라도 할 텐데, 여자는 앞에서 나타났다.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월이조차 이 등장 과정을 알 수 없었다. 눈 앞의 여자는 정말 한순간에 나타난 것이다.
시아는 직감했다.
“전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