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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209화 (209/269)

20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끝없이 찾아오는 벨소리 (19)

“폭탄을 해체하는 가장 쉬운 방법, 그건 폭탄을 터트리는 거다.”

시아의 당당한 말에 월이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건 해체가 아니라 그냥 터트리는 거잖아. 말한 사람이 언니가 아니었으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시아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비슷하긴 마찬가지다. 그저 월이가 대표로 말하고 있을 뿐, 생각은 다 같은 것이다. 시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 하지만 그편이 합리적이거든.”

시아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사실 요즘 영화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 옛날 영화에는 흔히 나오는 장면이 있었다.”

첩보물에선 흔한 장면이다. 시한폭탄이 있고, 주인공은 간신히 시한폭탄 앞에 도달하지만, 그 폭탄을 해체하는 과정이 남았다. 만약 해제에 실패한다면 주인공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는 순서에 따라 잘 해체하지만, 마지막에 남은 하나는 천천히 알아볼 시간이 없다. 결국 확률을 믿고 전선 하나를 잘라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지.”

정확한 전선을 자르면 폭탄은 멈추지만, 반대쪽 하나를 자르면 폭탄은 즉시 터진다.

“아무래도 영화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주인공은 올바른 선택을 하고, 사람들을 구하고, 살아남는다. 실제 폭탄을 해체하는 과정이 그런지 나는 잘 모르겠다만.”

시아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런 방법도 성공하기만 하면 괜찮지. 아니, 오히려 가장 좋은 방법이 맞을 거다. 하지만 영화가 아닌 곳에서 그런 운에 의존해서는 안 되겠지.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니.”

게다가 아무리 전문가라도 실수 한 번 하면 큰일이 나는 상황이라면 냉철해지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굳이 저렇게 위험하게 폭탄을 해체해야 하는가. 시아는 그런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자, 그런데 굳이 폭탄을 해체하려는 이유는 뭐지?”

“터지니까.”

단순무식한 답변이다. 시아는 순간 말을 멈췄다. 설마 이런 답변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시아는 정신을 붙잡고는 말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아니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거기서 터지면 안 되니까다. 사람이 많은 곳이거나, 아니면 도저히 그 재산 피해를 감당할 수 없는 곳에 폭탄이 있고, 그걸 옮기는 것도 여의치 않다는 설정이 붙기 때문에 굳이 그 자리에서 해체하는 것뿐이야.”

만약, 그 폭탄을 손쉽게 옮길 수 있다면 굳이 그 자리에서 폭탄을 터트릴 필요는 없다.

“그렇네요.”

설이는 이해한 듯 말했다.

“확실히 그럴 수만 있다면 훨씬 편해지긴 할 것 같아요. 난이도가 다르겠네요.”

“여러모로 그렇지. 섣불리 전선을 자르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합리적이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통 영화 같은 곳에서 고뇌하면서 선을 자르는 장면이 나오는 이유는, 그런 터져도 괜찮은 공간을 마련할 수 없는 설정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부족하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터지는 폭탄이거나, 떼어내려는 즉시 터지는 폭탄이거나. 주인공들이 목숨 건 도박을 하는 이유는 그래서인 게지.”

하지만 가능만 하다면, 사람이 아무도 없는 안전한 쉘터나 공터 같은 곳으로 옮기고 나서 터트린다면.

“역설적이지만, 그래. 터트리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인 거다.”

터트리지 않기 위해 수를 쓰는 것보다, 터져도 괜찮은 곳에서 터트리는 것이 최고다.

“시간 문제도 있으니, 느긋하게 이 문제를 하나하나 해체할 수도 없다.”

시아의 말을 들은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는 가… 이해는 가는데.”

채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채연에게는 물어봐야만 하는 게 있다.

“그, 그런데, 하나 질문이 있는데요. 그, 터트린다는 게 비유인 거죠?”

채연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비유입니다. 괴담은 폭탄이 아니니까요.”

시아의 말을 들은 채연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하지만, 그 표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설픈 폭탄보다 더 크게 터지긴 할 겁니다.”

채연의 표정은 밝다 못해 하얗게 변했다.

* * *

“세계 평화라.”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꽤 그럴듯한 이유가 아닌가.

“왜, 개인적으로 부귀영화라도 누릴 거라고 생각했어?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목적이라도 가질 거라고?”

마녀는 비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그런 목적으로 움직일 거면 그냥 무식한 사람들 돈을 갈취하는 게 낫지. 안 그래?”

그런 말에 동의를 구하더라도 곤란할 뿐이다. 태주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글쎄다. 네가 우리한테 정중하게 어떤 목적을 위해 힘을 빌려주실 수 없겠느냐고 물어본 것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네 생각을 알겠어? 게다가 그런 목표를 말하기에는 흡혈귀나 용의 행동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말이야.”

태주는 물었다.

“설마 그 둘이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그 둘의 행동은 아무리 봐도 평화를 원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만약 그런 걸 평화라고 오해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끝이야.”

“제정신이야? 당연히 그런 게 평화일 리가 있겠어?”

태주의 말을 들은 마녀는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 없다는 듯 바로 양손을 들었다.

“변명하자면, 흡혈귀든 용이든 우리 말은 안 들어 처먹던 놈들이긴 해. 짜증 나는 녀석들이지. 특히나 용 같은 경우는 억지로 잡혀 온 느낌도 있었고.”

“안 말린 시점에서 똑같은 놈 같은데.”

“나는 말렸어. 그놈들이 안 들어 처먹었을 뿐이지.”

마녀는 진심으로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우리 최종 목표가 그런 세계 평화라는 것만은 사실이야. 아마 그쪽에서 그렇게 꽁꽁 숨고 도망가지 않았으면 선생님도 분명 저런 녀석들을 끌어들이지는 않았을 거고. 그러게 왜 그렇게 도망이나 친 거야?”

“그걸 우리 탓을 하는 거냐? 남 탓에도 정도가 있지.”

적반하장에도 정도가 있다. 태주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절대로 잡힐 듯 잡히지 않으니까 이쪽도 어쩔 수 없었다고. 어쨌든, 우리 판단에는 그 둘을 데리고 목표를 더 빨리 이루는 편이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편보다는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야.”

“흐음.”

태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목적 자체는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기는 한데.”

태도로 보나, 하는 말을 들어보나 진심인 것 같기는 하다.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세계 평화. 목적은 좋다. 조금 거창하지만 그래도 최고의 목표라고 해도 좋을 거다. 사실상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조차 세계 평화를 위해 온몸을 바치는 사람을 비웃지는 않는다.

누구나 바라는 일이기에, 더 그렇다. 결국 세계 평화라는 것은 그 자체로 전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살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목표니까 말이다.

눈앞의 여자가 자신의 목표는 세계 평화라고 밝혔을 때, 태주가 바로 부정할 수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다.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겠지. 그러니까 전지를 찾으려고 하는 거 아냐?”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야. 그냥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나타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뭔가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거든.”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애초에 네가 생각하는 세계 평화라는 게 대체 뭐야? 그걸 정확히 모르면 내가 거기다 대고 뭐라고 할 수조차 없겠는데.”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오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전쟁이 없고 가난이 없으면 평화인가? 아니면 그걸 넘어선 무언가가 세계 평화일까? 그냥 막연하게 세계 평화가 왔으면 좋겠어, 하고 빈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그런가. 하긴. 그건 말하지 않으면 모르겠네.”

마녀는 잘 걸렸다는 듯 말했다.

“잘 들어.”

천천히, 그 목표가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것처럼 마녀는 말했다.

“내가 말한 사람은, 그러니까 ‘모두’를 포함해. 나는 ‘모두’가 가능성을 얻는 세상을 원한다는 말이야.”

말투가 의미심장하다.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모두라고?”

“그래, 모두. 나는 솔직히 인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인간까지도 포함해서 모두가 가능성을 얻기를 바라고 있어.”

마녀는 자신 있게 말했다.

“네가 말하는 범위가 어디까지지?”

태주의 질문을 들은 마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모두는 모두야. 너도 분명 경험이 있을 텐데. 너, 이런 일을 얼마나 오래 했어?”

“뭐?”

“지금 이런 일 말이야.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들 중간에 껴서 부대끼는 이런 일. 나보다 길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경력은 좀 있어 보이는데.”

마녀는 품평하는 눈으로 태주를 쳐다봤다.

“어쨌든 나는 모든 인생을 그렇게 썼어. 어린 시절 정도는 빼야겠지만, 어쨌든 어릴 때도 그런 걸 보면서 자라기도 했고.”

대를 이은 일이다. 어설프게 나이 먹은 사람보다 이쪽이 훨씬 경력이 길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일을 겪었지. 분명 너보다 훨씬 많은 일을.”

“그거야 그렇겠지.”

태주의 대답을 들은 마녀는 한 치의 의심 없는 눈으로 말했다.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많아. 사람을 괴롭히는 건 보통은 그냥 다른 사람이야. 사람을 괴롭히는 괴물보다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훨씬 많아.”

태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말 자체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히려 사람보다 선한 괴물도 많아. 용이나 흡혈귀가 그랬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종족이 사람이 아닐 뿐, 인간적이라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일일이 사례를 말하지는 않겠어. 너도 분명 그런 경험이 있을 테니까 말이야. 너는 그런 경험 없어? 사람보다 더 사람다운, 그런 괴물들과 만난 적이?”

마녀의 질문은 단정적이다. 분명 그런 경험이 있을 게 분명하다는. 그런 말투. 조금 거슬리는 점은, 그 단정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용이 있다면, 여우도 있었다. 흡혈귀가 있다면, 지네도 있었다. 그저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사람과 친구가 되려던 것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것이 마녀의 말이라고는 해도 막연히 부정할 수가 없다. 태주의 표정을 본 마녀는 웃으며 말했다.

“역시 너도 그런 경험이 있구나.”

마녀는 웃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지만, 사실 사람보다는 사람이 아닌 것들이 더 좋아. 너도 알잖아? 마녀라는 게 예전에 어떤 취급이었는지.”

마녀는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늘 좋지는 않았지. 서양 쪽은 특히나.”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걸 모를 리가 없다.

“그래. 너도 이 일 하면 모를 리가 없겠지. 아니, 사실 이런 일을 하지 않더라도 이건 상식이야. 마녀사냥 말이야.”

광기의 시대. 마녀로 취급되는 모든 것을 박해하고, 의심이 가면 죽이던 시기다. 태주는 말했다.

“잘은 몰라도 실제로 거기서 죽은 마술사들이 꽤 있었겠지. 물론 더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마술사들의 대부분도 무고했어.”

마녀는 중간에 끼어들었다. 어지간하면 듣고 넘기겠지만, 그 말만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선조는, 그러니까 아주 먼 옛날 내 선조는 죽을 뻔했어. 실제로 마술사였기 때문에. 특별히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마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들킨 거지. 구해준 사람에게 마녀라고 몰린 사람이 기분이 어땠을까. 나는 조금은 짐작이 가.”

마녀는 말했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누가 나쁜 거지? 난 여기서는 확실히 사람 쪽 같은데.”

“글쎄다.”

태주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꼭 착한 편에 서 있다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나도 동의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할 수 없다. 마녀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충분해.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으로 정당하게 평가받을 기회를 박탈당하는 건 불합리해.”

그렇기에, 마녀가 바라는 세상은, 그리고 전능이 바라는 세상은 정해져 있다.

“방법은 있어. 사람도 환상이 되면 돼. 그럼 세계 평화가 이루어질 거야.”

사람도 환상이 되면 된다. 여러 의미로 생각도 해 본 적 없었던 발언이다.

“사람이 환상이 되면 된다고?”

“그래.”

마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공평하게 살 수 있어.”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은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사람도 환상이 된다고?”

“그래. 너희는 괴담이라 하던가.”

“굳이 정정해 줄 필요는 없어. 무슨 소리인지는 이해했으니까.”

태주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미친 소리.”

그래도 가능성은 있다.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미친 소리가 아니야!”

마녀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너희 소장이 배신만 안 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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