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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208화 (208/269)

20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끝없이 찾아오는 벨소리 (18)

먼저 도착한 월이는 거의 광기에 찬 것처럼 보이는 보영의 모습을 보고는 조금 당황했다. 엄청나게 피곤해 보이는, 하지만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뭐, 뭐야?”

“뭐가?”

보영은 날카롭게 말했다. 아무래도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월이는 대놓고 말했다.

“아니, 너 좀 미친 것처럼 보여서.”

말해놓고도 조금 심했나 싶은 말이었지만, 보영은 그 표현이 기분이 나쁘다기보다 재미있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웃었다.

“후후, 그래? 아니, 이게 하다 보니 조금 재미있어져서.”

“…재미라고?”

의외의 답변이다. 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재미.”

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뭐랄까, 하다 보니까 재미가 있더라고.”

월이는 조금 꺼림칙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걸 재미로 하냐?”

“뭐 어때. 남을 돕는 일이 꼭 비장해야 하냐? 하는 김에 나도 좀 재미있게 놀면 좋지. 내가 뭐 못 할 짓 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한 일은 어디까지나 사정 청취의 영역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보영은 당당하게 말했다.

“꽤 어려운 일이었어. 자세한 규칙은 조금 있다가 종이째로 건네주겠지만, 어쨌든 그 망할 놈의 규칙 안에 발설 금지에 대한 조건도 같이 있더라고. 이런 걸 즐기면서 안 하면 나한테 너무 가혹하지 않아?”

월이는 뭔가 일이 어렵게 흘러갔다는 걸 직감하고는 물었다.

“뭘 어떻게 해서 들었는데?”

“아니, 듣지는 못했어.”

보영은 고개를 저었다.

“들은 게 아니라 알아냈지. 걔가 뭔가 말하는 건 금제가 있는 모양인데, 뭔가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 금지가 아니더라고?”

사실상의 이지선다. 결국 하나의 빈틈 정도는 있었던 것이다.

“그럼 일이 간단해지지. 물론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지만.”

보영은 생각나는 대로 질문을 계속 던졌고, 채연은 가능한 선에서 답했다. 그걸 몇 시간이나 하고 나니 그래도 어느 정도는 견적이 잡혔다.

“그런 걸로 알 수 있다고?”

“알 수 있었지. 초고난이도의 스무고개를 계속하는 기분이더라고.”

보영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다른 게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분명 있을 것 같지만 일단 이 정도면 충분할 거야. 규칙의 허점이라는 건 늘 이런 식이니까. 이야, 다시는 이런 일 안 해야지. 남 좋은 일만 시켜준 기분이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보영의 입가에는 미소가 보인다.

“그런 말 할 거면 입에 미소라도 지우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야, 너무 그러지 마라? 솔직히 아주 싫었냐 하면 그런 건 아니긴 한데 정말로 피곤하기는 엄청 피곤하거든. 어쨌든, 그래서 재미있었다는 말이야. 채연이가 고통받는 게 재미있다는 게 아니라. 나는 이런 골치 아픈 문제를 푸는 걸 좋아하니까. 어차피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이걸 즐길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게 제일 좋은 거 아니야?”

“그런가?”

“그렇지.”

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해. 이게 재미있는 사람이 일을 해야지 재미없어하는 사람이 일을 해봐야 뭐가 되겠어? 아니, 뭐 딱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일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지는 않겠지만. 좋아하는 사람이랑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편이 나은 거 아니야?”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보영은 당당하게 말했다. 듣다 보니 그럴듯하다.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내가 아는 선에서, 그리고 그 애가 말할 수 있는 선에서 무슨 경험이 있었는지를 정리했어. 또 규칙에 대한 것도 어느 정도 추론해 냈고. 자세한 건 나중에 거기서 확인하시고….”

보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헛기침을 한 번 했다.

“그나저나 목 아프네.”

“목이 왜?”

“몇 시간 정도 나 혼자 떠들어서. 혹시 물 없냐?”

“일단 있기는 한데.”

월이는 그렇게 말하며 페트병을 건넸다. 보영은 받아들고는 말했다.

“오, 땡큐. 살 거 같네. 어쨌든, 꽤 피곤한 일이었어. 재미야 있었지만 두 번은 못 하겠다. 한 일주일 있다가 다시 물으면 모르겠지만.”

“일주일 뒤면 되는 거야…?”

월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했잖아? 힘들긴 했지만, 재미는 있었다고. 딱 좋은 두뇌 트레이닝이야. 하여튼, 이런 복잡하게 얽힌 규칙 알아내는 건 꽤 재미있는 퍼즐 같은 느낌이라서.”

월이는 으으, 하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마 나는 평생 저런 기분은 이해 못 할 거 같아.”

“모두가 다 그러면 내 미래의 밥줄이 끊어져서 안 돼.”

반쯤만 농담인 우스갯소리를 던진 보영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어쨌든 상황을 이해할 수는 있었어. 규칙도 대부분 알아낼 수 있었지.”

물론 어기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부분까지는 아직 확실히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렇다.

“일단, 내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더라.”

보영은 순순히 말했다.

“뭐?”

“여기까지라고.”

보영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물론 그 다음 일이 엄청나게 궁금하긴 하지만…. 전에 채연이한테는 말했지만, 이건 내 사건이 아니야. 잘은 모르겠지만 엄청 비과학적인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알겠어.”

월이는 어색한 표정이 되었다. 역시, 거짓말은 잘 못한다. 보영은 씩 웃고는 말했다.

“내가 눈치 못 챘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보영은 씩 웃고는 말했다.

“어쨌든, 이건 내 일이 아니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러니까 난 이만 자러 갈게. 채연이 깨워 둘 테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알았지?”

더 깊게 파고들면 서로 곤란해질 것이다. 그 점을 짐작한 보영의 태도에 월이는 조금은 미안한 눈으로 말했다.

이걸 포기하는 게 얼마나 보영이에게 큰 의미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친구 사이에 뭘.”

보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정 뭔가 해주고 싶으면 다음에 이런 문제 말고 평범한 문제를 이쪽에 넘기는 걸로 하자고.”

보영은 그렇게 말한 뒤, 자리를 떴다.

* * *

1. 본인이 아는 사람과 전화로 대화를 해서는 안 된다. 직접 대화하는 것도 지나치게 길어진다면 안 된다.

2. 전화가 온다면, 받아야 한다. 만약 받지 않으면 계속해서 다시 올 것이고, 받지 않는다는 선택은 불가능하다.

3. 내용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끝까지 들어야 한다. 만약 중간에 끊는다면 처음부터 다시 들어야 한다.

4. 언제 어느 때 올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 오더라도 전화는 받아야만 한다.

5. 만약 아는 사람과 대화를 한다면,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6. 이 규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 규칙에 대해 설명해서도 안 된다.

“이게 그 규칙인가.”

시아는 눈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들어보니 알아내기 꽤 어려웠을 텐데. 그 친구도 고생이 꽤 많았군.”

“그렇다던데. 일단 뭐가 더 있는지는 몰라도 중요한 건 그게 다일 거라던데? 물론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몇 시간은 걸렸다나 뭐라나 하긴 하는데.”

“그 와중에 이만큼 알아낼 수 있었다면 분명 보통 고생은 아니었을 거다.”

시아는 감탄하듯 말했다.

"이쪽도 상황을 아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는데.”

아무도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당사자나 마찬가지인 채연을 포함해도 그렇다. 각자가 아는 부분이 다르고, 경험한 부분이 다르다. 심지어 그 와중 거짓 증언과 다른 속셈까지 섞여 있었으니 상황은 꼬일 대로 꼬여 있다.

“물론 당장 필요한 정도는 알고 있지만….”

차라리 전부 거짓말이라거나 했다면 알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많은 부분 사실이 섞여 있고 일부 알아채기 힘든 부분에 거짓을 섞어 놔서 질이 나쁘다.

특히 한국에서 겪은 일에 대한 부분은 거의 다 사실이라는 점이 그렇다.

“입장만 다를 뿐 그 여자 역시도 당사자니까 가능한 일이었을 거야.”

“그쪽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던 거였군요.”

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많으셨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쪽이 고생한 것만 하겠습니까.”

시아의 말에 채연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주저하다가 물었다.

“저어, 그런데요.”

통성명이야 했다지만, 낯선 사람이. 그것도 세 사람이나 집에 들어왔으니 어색할 수밖에 없다. 시아는 웃으며 말했다.

“편하게 질문하시지요. 도와주러 왔다, 고 말씀 드리기야 했지만 사실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이쪽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온 것이니.”

채연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그쪽에 간 제 사칭은 어떻게 됐나요?”

사칭이라. 썩 적절한 표현이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그쪽에 있습니다. 저희 쪽 인원 하나가 잘 붙잡아 둔 상태입니다.”

“잡혔다고요?”

채연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마녀가요?”

“마녀라.”

단순히 욕설의 의미로 사용된 건 아닌 것처럼 들린다.

“그건 어떤 의미입니까?”

“어, 아뇨 무슨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자기가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하던데요?”

채연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본인이 본인을 마녀라고 밝혔어요.”

“흠, 그렇습니까.”

그건 조금 재미있다. 시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우리가 진짜로 채연 씨를 찾아낼 줄은 몰랐거나, 아니면 찾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일 거라고 생각했거나. 둘 중 하나였겠군요.”

“하지만 알아내셨잖아요? 정말 듣기만 해도 신기하네요. 어떻게 알아낸 건지.”

채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를 본 적도 없으셨잖아요?”

“그렇지요. 하지만, 저쪽에서 눈에 띄는 실수 몇 가지가 있어서 말입니다.”

시아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분명 조금 정도는 이상하더라도 티가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거겠지요.”

설마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만은 확실하지요. 다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도록 만들겠다, 고 말씀 드리기는 아직 이르지만 그래도 최소한 채연씨에게 한동안은 추가로 영향을 미칠 수는 없을 겁니다.“

채연은 듣던 중 반갑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는 물었다.

“그럼 전 이제 괜찮아진 건가요?”

“그렇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아직은 애매합니다.”

시아는 이전에 말한 폭탄에 대한 비유를 다시 했다.

“설치된 폭탄은 아직 남았습니다. 그럼 해체 작업을 해야겠지요.”

“그건….”

조금 어려운 일이다. 채연은 표정이 조금 흐려졌다.

“물론 많은 걸 대답하실 수 없다는 건 압니다. 앞서 나온 내용을 들었으니까요.”

시아는 웃으며 말했다.

“쉽지 않게 들리겠지요.”

채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상 못 한 것에 가까울 거다.

“폭탄 해체가 쉬울 리가 없잖아.”

월이가 옆에서 한소리를 했다. 물론 그렇다. 시아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사실 정답이 하나 있는데.”

안전하게 해체할 방법이 없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궁극의 수단. 시아는 별수 있겠냐며 툭 던졌다.

“어떤 의미로는 가장 무식한 방법이지만, 또 가장 스마트한 방법이기도 하다. 가능만 하다면 말이지.”

월이는 그런 방법이 있느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뭔데?”

시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폭탄을 해체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 그건 바로 그냥 터트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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