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끝없이 찾아오는 벨소리 (16)
항복하겠다. 말로만 들으면 이쪽이 웃고 저쪽이 우는 상황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둘 다 우는 상황에 가깝다.
실제로 태주의 표정은 전혀 밝지 않다. 방금 전 항복하겠다고 말한 눈앞의 이상한 여자보다 더 그렇다.
태주는 혀를 한 번 차고 생각했다.
‘붙잡기는 했어도 상황이 그리 유리하지는 않아.’
이렇게 무리해서라도 상대방이 예상치 못한 일격을 가한다면 혹시 상대가 몰라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지만, 아니다.
이 여자는 자신의 유리함을 알고 있다. 항복이라는 단어 선정부터 그렇다.
“그나저나, 멋진 넘겨짚기였어. 솔직히 추리 퍼즐이라면 좋은 점수를 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잡았으면 장땡이지. 그렇지 않아? 이것 참, 이런 식으로 붙잡힐 거라고는 전혀 예상도 못 했는데 말이야.”
“….”
태주는 일부러 무시했다. 하지만 태주가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여자는 제멋대로 말했다.
“이렇게 된 김에, 새로 통성명이나 할까? 이름이나 말해 주지 않을래? 너부터 말이야.”
태주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아무리 나라도 이름만 가지고 지금 이 상황을 역전할 수는 없는데, 겁쟁아.”
애초에 걸리지 않을 걸 알고 하는 작은 도발이다. 그냥, 말 그대로 신경을 긁는 것만이 목적인 그런 도발.
하긴, 애초부터 상대는 여러 의미로 자신과 같은 타입의 사람이다. 애초에 그런 손익계산을 할 수 없는 사람이 그런 영악한 괴담을 만들 수 있을 리 없다.
태주는 슬쩍 혀를 찼다. 확실한 것은 상대도 자신처럼 준비가 철저하고, 변수가 일어나도 상관없는 시점이 되어서야 움직일 것이라는 점뿐이다.
“역전이라고?”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아무리 봐도 불리한 쪽은 이쪽 같은데.”
“그럴 리가 있겠어?”
여자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최소한 지금 이 자리에서는 내가 더 불리해. 나가고는 싶지만, 보내 주지 않을 거잖아? 보내 줄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태주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그럴 리가.”
“거봐. 그럼 이 자리에서는 내가 불리하지?”
여자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날 딱히 밖으로 보내 줄 것 같지도 않고. 그럼 항복밖에는 없잖아? 내가 용이나 흡혈귀처럼 너를 반으로 찢은 다음에 탈출할 수도 없고. 난 그냥 사람이거든.”
여자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건 그런 태도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지금 이 장소에서 나갈 수있는지 없는지와 실제로 나갈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겠지.”
붙잡히지 않는 편이 당연히 좋다. 하지만, 붙잡히더라도 상관 없을 상황을 만들면 더 좋다. 태주가 보기에 눈 앞의 여자는 이미 그런 상황을 만들어 놨다.
“아무리 봐도 다급해 보이거나, 어떻게든 나가려는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아 보이거든. 너, 필요한 일은 이미 다 끝내 놓은 거지?”
그 부분을 지적한 태주의 말에 여자는 씩 웃었다. 태주는 표정을 확 구겼다.
태주는 이번에 이득을 좀 봤다.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붙잡고, 넘겨짚기까지 해서 정말 억지로 범인을 잡아냈다. 원래라면 할 수 없었을 일이고, 상대가 순순히 더 수를 쓰지 못하고 잡힐 만큼 예상치 못한 일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 정도까지 해도 눈 앞의 여자에 비하면 불리하다. 목표의 난이도가 다르니 그렇다.
눈앞의 여자의 목표야 뻔하다. 소장을 찾고, 전능에게 알린다. 단순한 승리조건이지만, 확실한 조건이기도 하다. 그 와중에 채연씨가 죽든 살든 상관없을 거다.
반면 이쪽의 승리조건은 복잡하고 어렵다.
일단 진짜 피해를 본 사람을 도와야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하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확실히 알려주고 난 뒤 돌려보내야 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눈앞의 여자가 자기 상관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범인을 잡아놓는 것은, 둘 모두에게 약간 도움이 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어느 쪽도 결정적인 도움이 되어 주지는 못한다. 물론 잡지 못한 것보다는 확실히 좋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목표 자체가 차이가 나니, 이 정도 해낸 걸 가지고 상황이 역전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태주가 지적한 앞선 실수들은 따지고 보면 치명적인 실수가 아니다. 비교적 사소한 부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태주의 굳은 표정을 본 여자는 싱긋 웃었다.
“틀리진 않아. 아니, 실제로 대단하다고 생각해. 아무리 그래도 이걸로 걸릴 줄은 몰랐거든. 역시 전지한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들키는 건가?”
“소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태주는 눈을 찌푸린 채 말했다.
“최소한 너를 잡는 데는 그래. 이건 내가 한 거야.”
“그래? 정말?”
별로 믿는 것 같은 표정은 아니다. 하지만 태주가 알 바는 아니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잡혔어. 아쉽긴 하지만 항복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 당장 내가 뭘 더 할 생각은 없거든.”
여자는 놀리듯 웃었다.
“그게 싫으면 항복을 받아주지 않으면 돼. 용이나 흡혈귀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를 죽이든가 찾을 수 없게 어디 이상한 곳에 가둬 버리든가. 알아서 하라고. 물론 그 두 녀석은 분명 자업자득이 아닐까 싶긴 하지만.”
“동료한테도 신랄한데.”
“너는 그런 것들이랑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냉정하다면 냉정한, 그러나 정확한 평가다. 여자는 비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머리가 좀 맛이 간 게 분명해 보이는데.”
“…아니. 어려울 것 같네.”
“어쨌든 나한테도 그런 짓을 한다면 어쩔 수 없지. 저항은 하지 않을 거야. 어차피 의미 없을 테니까. 그렇지?”
여자는 웃었다.
“그런 짓은 안 해.”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여자는 태주의 표정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흐응, 안 한다고? 사람이 좋아서는 아닌 것 같은데. 아니, 나쁜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여자의 말대로다. 단순히 도의적인 차원에서 사람을 상대로 그럴 수는 없다는 것도 있다. 어쨌든 용이나 흡혈귀와는 다르게 상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눈앞의 이 여자가 자신이 잘못되었을 때에 대한 대비책이 정말로 단 하나도 없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여러모로, 태주는 눈앞의 여자의 목적을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
“대체 너는 뭘 원하는 거야?”
“뭘 원하냐고?”
여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분명 너에게는 뭔가 대책이 있을 거야. 설령 네가 죽어도, 너 자신의 위치를 알릴 수 있다거나 뭐 그런 거 말이야.”
얼마나 강한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건 죽고 나서 반격할 수 있는 트리거에 불과하다.
“다른 둘은 달랐어. 흡혈귀는, 설마 자신이 끝날 줄 모르고 당했다. 용은 끝날 수도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정말 마지막이 되기 전까지는 죽어도 좋다는 느낌으로 행동하지는 않았지.”
듣기로는, 마지막 순간이 되자 어떻게든 벗어나려 애썼다 들었다. 눈 앞의 여자는 다르다.
“너는 그 둘과 달라. 너는 지금 죽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이러고 있는 거야.”
죽거나, 죽는 것에 준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눈앞의 여자는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체 너는 뭐가 목적이야?”
여자는 웃었다.
“목표? 뭐 별 게 있겠어? 당연히 우리 선생님의 목표를 따르는 거야.”
“그게 목표라고?”
태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태주가 아는 바로는 전능의 목표는 전지, 그러니까 소장을 찾는 것이다.
“우리 소장을 찾는 게 그렇게 목숨까지 걸 가치가 있는 일인가?”
“있지. 그런데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니야? 단순히 찾는 게 목표가 아니거든? 우리 최종 목표는 전혀 다른 거야.”
“그렇겠지. 원하는 건 전지전능일 테니까.”
“아니야 그것도 틀렸어. 최종 목표라니까? 전지전능은 그 자체로 목표 같은 게 아니야.”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목표를 위해 필요한 수단일 뿐이야. 전지전능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거든. 그런데, 이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자는 그렇게 말한 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깐만, 정말로 몰라? 그러면 너는 우리가 뭘 하려는지도 모르면서 막고 있었던 거야?”
태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는 지금까지 본 중 가장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기가 막혀, 바보 아냐? 우리가 뭘 하려는지도 모르면서 우리를 막고 있었다고? 뭔가 대단한 이유라도 있는 건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단 말이야? 우리 목적을 알지도 못하면서, 막고 있었다고?”
여자는 처음으로 화가 난 듯 말했다.
태주에게 속아서 붙잡혔다는 데도 놀라고 당황하기만 했다. 죽거나 죽는 것보다 못한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그저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지금은 일그러진 표정을 숨기지도 않는다.
“우리 선생님의 목표를 정말로 알지도 못하면서 막고 있었단 말이야? 차라리 속았다거나,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도 아닌데?”
여자는 톡 쏘아 말했다.
“애초에, 그쪽은 왜 도망을 다닌다는 거야? 나야말로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던데.”
“도망치는 쪽에 이유가 필요하냐? 쫓긴다고 하던데. 반으로 나눠 가진 힘을 그쪽이 욕심을 내고 있다고.”
“웃기는 소리를. 우리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한다고?”
여자는 짜증을 냈다.
“내가 보기에는 그쪽이야말로 왜 도망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우리가 하려는 일이 뭔지 분명 알 텐데.”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태주는 판단할 수 없었다. 소장이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건, 이유가 있을 텐데 하는 생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태주는 결정했다.
“뭐야? 그 전능의 목표라는 게.”
“정말로 말해 준 적이 없는 거야? 진심으로?”
여자는 짜증이 난 듯 말했다. 태주는 어깨만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글쎄, 우리 소장은 지식에 있어서 굉장히 짠돌이라서, 절대로 직접 알려주는 법이 없거든. 하지만 지금까지 들은 바로는 정말로 전지전능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가 본데.”
“당연하지. 신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니까 말이야. 우리 선생님은 그래서 신이 되려는 거지, 그냥 되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고. 그건 무엇보다 중요해.”
여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 나머지는 부차적인 문제야. 결과적으로 신이 되는 것도. 바보 같은 녀석들 데리고 일하는 것도 말이야.”
“대체 그 목표가 뭔데? 용이나 흡혈귀 같은 것을 사용하고, 네가 설령 죽더라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그 목표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건가?”
“맞아.”
여자는 당당하게도 말했다. 실제로 이게 그런 가치 있는 목표라는 것을 전혀 믿어 의심치 않는 그런 표정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가능성과 행복을 원해.”
“사람의 가능성과 행복?”
태주는 조금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갑자기 나온 말이 너무 거창하다. 하지만, 천천히 생각해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이루려면 전지전능한 힘이 필요할 정도라면 그야 거창한 목표가 될 만도 하다.
“그래. 아니, 오해의 소지가 있었네. 정확히 말하면 그걸 가져간다는 게 아니라 전 세계에 퍼트린다는 거야.”
여자는 친절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사람이 아닌 것들까지도 모두 포함해서. 조금 지적으로 말하면 범세계적이고 영구적인 평화가 되려나.”
“그런 게 가능할 리가.”
태주는 뒷말을 삼켰다.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니, 가능하겠지. 그러니까 필요한 거야. 전지전능한 힘이.”
여자는 말했다.
“너, 정말로 아무것도 못 들었구나?”
태주는 잠자코 있었다. 상대가 그런 걸 목표로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조금 이야기를 할까.”
여자는 웃었다.
“세계 평화를 위한 이야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