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끝없이 찾아오는 벨소리 (15)
여자는 발뺌하지 않았다.
“와우.”
문이 닫힌 시점에서. 그리고 자리에 일단 앉은 시점부터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은 낭패한, 하지만 이쯤 되면 후련하기까지 한 그런 표정이다.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할 뿐이다.
“이걸 하루 만에?”
“그래. 하루 만에.”
“이제 조금 수상한 부분을 찾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눈앞의 여자는 조금 억울하기까지 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언제부터 알았어?”
“언제부터 알았냐고?”
태주는 조금은 피곤한 눈으로 말했다.
“처음부터.”
“거짓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여자의 말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라는 건 과장이 섞여 있다.
“맞아. 거짓말이야. 처음부터 알았던 건 아니지. 하지만, 위화감은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어.”
태주의 말을 들은 여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부터 위화감을? 그런 걸 느낄 곳이 있었나? 아무리 그래도 그건 허세 같은데?”
여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꽤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연기력의 문제도 있지만, 일단 그 부분은 연기력의 문제는 아니야. 그냥 너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어. 네가 여기에 처음 왔을 때부터 이미 이상한 걸 느꼈거든.”
“이상한 거?”
태주는 당연하다는 듯한 눈으로 말했다.
“야, 어떤 등교도 안 한 학생이 교복을 입고 다니냐? 정신이 나간 게 아니고서야.”
“뭐?”
너무 당당하게 입고 와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던 부분이었다.
“차라리 조퇴했다고 말을 하면 의심하지 않았을 텐데, 일주일이나 학교를 안 나간 사람이 대체 왜 교복을 입고 여길 찾아오냐고.”
상식적으로, 집에 옷이 교복밖에 없는 게 아니고서야 그럴 리는 없다. 꽤 이상한 일이다.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괜한 오해를 받기 싫어서라도 평범한 옷을 입을 거야.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한창 수업 중일 시간에 교복 입고 학생이 돌아다니면 굉장히 이상하게 보일 나라니까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만 있고 이득이 없다.
“혹시 그래야 될 이유가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봤지만, 전혀 없었어.”
그렇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다.
여자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고작 그걸로?”
“고작 그걸로, 라고 하고 싶지만 그게 생각보다 큰 위화감이야. 일반적인 사람은 하지 않을 일을 네가 해버렸다는 말이니까.”
어쨌든, 눈앞의 이 여자가 진짜 채연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고 나서 생각해 보면 오히려 합리적인 결론처럼 보이기는 한다.
오히려 진짜 학생이 아닌 사람이 학생 티를 내기에는 교복만큼 적당한 아이템도 없는 셈이다.
“아마 나한테 정말 근처 학교 학생이라는 티를 내고 싶었던 거겠지. 그렇지?”
“진짜, 고작 그거 하나만 가지고.”
여자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진짜 처음부터네.”
“물론, 그것만 가지고 내가 너를 채연 씨가 아니라고 판단한 건 아니야.”
태주는, 채연이 아닌 누군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연기력이라고 해야 하나, 감정을 드러내는 부분도 조금씩 이상했고.”
물론 아예 못 써먹을 연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일관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너는 겁 없는 푼수처럼 보이고 싶었을 거야. 실제로 그랬지. 네가 말하는 걸 듣고 있자면 나쁜 사람은 아닌데 엄청 답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중간에 참다못한 태주가 개입해서 해설을 붙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이야기가 헛돌도록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꽤 잘한 연기였어. 우리한테 네가 한 짓이 어떤 짓인지 착각도 시킬 수 있었고. 솔직히, 착각하기 딱 좋았어. 실제로 우리도 처음에는 그게 이런 종류의 괴담이라는 걸 몰랐으니까.”
실제로 작은 위화감이 없었다면 바로 작업에 착수했을 거다.
평범한 전화 괴담이고, 그저 전화가 올 뿐 그 뒤에 뭔가 이어지는 위험이 낮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조심스럽게 행동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조금 더 조심성이 없었다면, 높은 확률로 이 바이러스성 괴담에 전염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아니, 태주는 전염되지 않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대책 없이 옮아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
태주는 덤덤하게 말했다.
“말도 안 돼. 그런 사소한 거 하나 가지고.”
“그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누가 말하던데.”
태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소한 실수들이 몇 가지 더 있었지. 무섭다, 긴장된다는 말은 했지만 정말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어.”
처음에 찾아왔을 때부터, 지나치게 당당하다면 당당했다.
“이것도, 말하자면 그 자체로 이상한 건 아니야. 머릿속이 꽃밭이어서 겁을 안 먹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며칠씩이나 오는 전화라면 이제 와서는 그렇게 무섭다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인 태도로 긴장감 없는 태도를 유지했다면 그것도 나름 괜찮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부분에서 실수를 했지. 너는 내가 붉은색의 전화부스에 주목했을 때 유난히 긴장했어. 이전과 다르게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띌 정도였으니까. 방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말이야.”
당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붉은 전화부스가 의외의 존재라서 그러나? 아니면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이상해서? 하긴, 그런 이상한 경험을 한 빨간색의 전화부스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저런 태도도 이상한 건 아닐지도 몰라.
“당시에는 확신이 안 서더라고.”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보류한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밖에 나가서 뭐 좀 알아보다가 재미있는 소리를 한 번 들었어. 채연 씨는 해외에 여러 번 나갔다 온 사람이라고 했어. 같은 공항으로, 같은 나라에 여러 번 가 본 사람이라고 했지.”
거기서부터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채연 씨는 빨간색 전화부스가 처음부터 없는 거라고 알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되지 않아?”
이미 몇 번이나 가 본 곳이다. 없던 것이 생겨났을 가능성이야 그렇다고 치겠지만, 그렇다 쳐도 태주의 지적에 놀라고 당황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이, 새삼스럽게 내가 ‘거기에는 빨간 전화부스가 없다.’고 하는 말에 당황하고 놀랐다는 건 이상한 일이야. 평소에 없다 생긴 게 신기하다는 반응이 아니라 그런 것이 평소에는 없었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야. 그럴 리가 없잖아.”
자체적인 증언과 본인에게 직접 들은 경험에 모순이 있다.
그리고 모순이 일어난다면 어느 한쪽이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잘못인가. 결론은 금방 나왔다.
“처음에 나는 네가 진짜고, 학교에 있는 그 사람이 가짜인가 하는 생각까지 했어. 하지만 그건 아니더라고. 중학교 사진까지 조작할 수 있을 리는 없잖아? 아니, 가능이야 하겠지만 하루 만에 졸업앨범을 조작해서 가져오는 건 좀 무리가 있겠지.”
태주는 당연하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럼 네가 가짜잖아.”
결론을 내리고 나서 생각해 보면 많은 것이 설명된다.
“그리고 네가 채연 씨가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 이 이상한 규칙 역시도 말이 되고. 내가 아까 바이러스성이라 했지? 그저 널리 퍼지고, 한 달 정도의 유통기한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라고.”
상식적으로 이런 걸 목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어디 신기록 달성 같은 걸 목표로 하지 않으면, 이렇게 널리 퍼트리는 것 자체를 가지고 목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널리 퍼트려서, 그것도 한 달 정도 기간으로 뭘 하고 싶었던 걸까.”
여기서부터는, 아무리 태주라도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형태를 보면 짐작이 가는 것이 있다.
“어떤 의미로는 네가 첨단을 공부했다는 건 알겠어. 생각하고 나서는 이게 맞는지 잠시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맞는 것 같더라고.”
태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사람에서 사람에게 이어지는 줄은 계속 널리 퍼질 거야. 이게 널리널리 퍼지고 나면, 흔히 말하는 거미줄 모양이 되겠지.”
그리고 거미줄이라는 표현을 쓰는 단어는 하나가 더 있다.
“그걸 웹이라는 단어로 치환하면, 목적을 알겠더라. 좀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인터넷 말이야. 세계의 그물.”
이 괴담은 단순히 전염되는 것을 넘어서, 1번에서 2번 사람으로, 2번에서 3번 사람으로 넘어가는 감염을 통해 넓게 그물을 칠 수 있다.
“정말로, 만약 채연 씨가 부주의하게 전파를 시작했다면 이미 그물이 완성되었을 거야.”
그물을 가지고는 뭘 할까. 한 달 정도라면 충분한 목적이 뭐가 있을까.
“여기서부터는 억측에 가깝지만 말이야.”
태주는 그렇게 운을 띄우고는 말했다.
“너는 뭔가를 찾으려고 하고 있어. 이 나라 안에 한정해서, 앞으로 한 달 정도 기한을 목표로 말이야. 아마도 평범한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을 찾으려는 시도겠지. 이건.”
그렇게까지 해서, 고작 하려는 게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단순한 목표지만, 그저 스케일이 크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방법이 아니면 찾을 수 없다는 판단인 거겠지.”
그리고 마침, 여기에는 숨어 사는 사람이 하나 있다. 아니, 실제로 태도는 그리 숨어 사는 사람 같지 않지만.
이게 우연일 수 있을까. 태주는 천천히 말했다.
“너는 전능의 부하야. 그리고 전지를 찾고 있겠지.”
“어거지야.”
상대방은 찌푸린 눈으로 말했다.
“겨우 그런 거로 확신할 수 있을 리 없어. 근거가 부족한데도 100% 확신 같은 걸 하는 거라면 머리가 이상한 게 분명해. 뭘 가지고 그따위 확신을 하는 거야?”
“뭘 가지고, 라.”
태주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사실 뒷부분에 대해서는 확신 같은 건 안 했어.”
“뭐?”
상대는 벙찐 표정으로 말했다.
“뭐라고?”
이해하지 못한 듯 더듬거렸다. 태주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렇잖아? 네 말대로야. 그것만 가지고 너를 결정적인 용의자라고 생각하는 건 이상한 일이야. 의심은 할 수 있어도, 확신할 수는 없지.”
태주가 지금 이렇게 의심을 품게 된 계기들에 대해 하나하나 나열한다 해도 사실 그 자체로 증거가 될 수는 없다. 결국은 그냥 그 정도의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확실한 근거가 아니라, 심증만 계속 강해지는 정도에 불과한 이야기.
“하지만, 그렇잖아? 내가 의심한 게 진짜라면?”
확신할 수 없다는 이야기 같은 것이나 하면서 상대방을 놓아줄 수는 없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지. 안되고말고. 차라리 내가 과민하게 반응한 거라면 괜찮아. 만약 아니라면 그냥 조금 이상한 녀석 취급받으면 끝나는 일이야. 뭐 어때? 여기 사람들이 내가 실수 하나 했다고 나를 버리기라도 하겠어?”
태주는 조용히 말했다.
“그럼 내가 할 일은 틀려도 괜찮으니까, 행동하는 거야.”
늘 맞지 않아도 좋다. 항상 맞을 수는 없는 법이다. 잘은 몰라도 소장도 그럴 수는 없을 거다.
“내 생각이 옳지 않을지도 몰라. 그럼 어때? 바보짓 조금 했다 치면 되는 거 아냐.”
지금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그렇게 한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너에게 의혹을 제기하는 거야. 혹시 모르니까 말이야.”
그리고 이제는 태주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리고 반응을 보니 맞은 것 같네.”
여자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겨우 이런 이유로 잡히다니.”
“뭐, 더 할 말은 없나?”
태주는 물었다.
“혹시 도망칠 생각을 해도, 이미 늦었어. 어차피 갈 길은 막혀 있거든.”
“그래 보이네. 나는 뭐, 평범한 사람이니까 너를 완력으로 밀고 나갈 수도 없을 것처럼 보이고.”
여자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럼 항복하지 뭐.”
“뭐?”
여자는 찌푸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항복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