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끝없이 찾아오는 벨소리 (14)
시간이 늦었다. 다른 사람들은 잠들어 있지만, 태주는 잠들지 않았다. 지금 자서는 안 된다. 생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나고 잠시 눈 좀 붙이긴 해야겠지만.”
하지만 오늘은 묘하게도 정신이 맑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그렇다. 보름달을 본 월이가 아마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각이 명료하다.
보영이 보내온 내용을 마지막으로 검토한 태주는 그대로 의자 등받이 뒤로 기댔다. 아무래도, 머리가 맑은 것과 별개로 기분은 좋지 않다.
해야만 하는 정답이 눈앞에 있지만, 별로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태주가 그렇게 축 늘어져 있는 사이 문이 열렸다.
딸랑—
“소장님?”
“하이?”
소장은 가볍게 인사했다. 평소와 똑같은 모습이다. 참, 이럴 때조차 소장은 비슷하구나. 태주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 웃었다.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뭐 했어? 우린 야근 수당도 없는데.”
“뭐, 알아서 챙겨주시죠.”
“나중에 알아서 챙겨 가.”
“어휴, 참.”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농담처럼 그런 말 좀 하지 마요.”
“농담처럼 들리나?”
“네. 농담처럼 들리네요. 그냥 농담으로 치죠.”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살짝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본 소장은 드물게도 씁쓸하게 웃었다.
“잘 되어 가나 보네.”
“잘 되어 가냐고 물으면, 네. 정답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별로 원하는 대답이 아니라서 그렇죠.”
태주의 대답에도 소장은 그저 똑같은 표정을 지을 뿐이다.
“그럼 한번 나한테 설명해봐.”
“설명이요?”
“지금 네가 알아낸 게 뭔지.”
의도를 잘 모르겠다. 태주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갑자기요?”
“네가 저번에 그랬잖아. 늘 잘 모르겠다고. 내가 보기에는 잘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본인은 자신이 없다니까.”
소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아예 태주의 앞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럼 한번 확인을 해 봐야지. 누가 맞는지 말이야.”
“그렇다고 갑자기 전부 설명하기는 좀….”
“당연히 전부 설명할 필요는 없지. 나는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소장의 말을 들은 태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뭘 설명하라는 거에요?”
“네가 이번에 느낀 거. 아니면, 설명하기 재미있는 부분이라던가. 뭐가 핵심인지, 너는 알고 있을까?”
태주는 피식 웃고 말았다.
“뭐, 말하는 게 어렵지는 않지만요.”
태주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는 말했다.
“이걸 만든 사람은, 뭐랄까 사람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정확히는 조금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흐음.”
소장은 작게 추임새를 넣기는 했지만, 그 이외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잘 모르거나요. 어느 쪽이든 하나는 분명해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이건 규칙 괴담이에요. 하지만, 뭔가 숨겨진 규칙이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양자택일을 걸죠. 편한 선택과, 어려운 선택요.”
그냥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현상을 겪게 하거나, 아니면 고립되거나.
“전자는 개인에게 편하고 다수에게 나쁜 방식이지만, 생각해 보면 꽤 합리화하기 좋은 방식이에요. 그래 봐야 하루에 전화 하나를 받는 정도에서 그치니까요. 죽을 정도나 일상생활에 치명적인 수준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한 달을 고립되어야 한다는 건 치명적인 페널티다. 학생은 비교적 상황이 낫지만, 만약 직장인이었다면 정말 해고를 당해야 할 수준에 가까울 것이다.
아니, 학생이라도 쉽게 감당하기 힘든 종류의 일이다.
“이런 규칙을 정한 이유가 상상이 돼요. 아마도 이렇게 하면 무조건 널리 퍼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겠죠.”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가끔씩 있단 말이죠, 그런 고집 센 사람이 말이에요.”
우연히도 채연이 그런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채연 씨는 그냥 집 안에 한 달 정도를 고립될 각오를 했다고 해요. 겁을 안 먹은 것도 아니에요. 엄청나게 불안해하면서도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런 사람을 처음 희생자로 삼았다니, 사람을 보는 눈이 없어도 단단히 없는 셈이다.
“그래서 사람을 잘 모른다는 건가.”
“뭐, 아마 대체로 사람이 어떻다 하는 정도는 알고 있겠지만요.”
그러나 모든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이다. 누군가는 절대로 편하기만 한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번에 이 괴담이 전혀 널리 퍼지지 못한 이유다.
“그런가.”
소장은 웃었다.
“뭐야, 잘 파악하고 있잖아.”
“글쎄요.”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그렇게 자신감이 없을 필요는 없겠는데.”
“…소장이 솔직하게 칭찬하는 일은 좀 드문 거 같은데요.”
“뭐, 그럴 때도 있어야지.”
태주는 턱을 슬쩍 긁적이고는 말했다.
“어쨌든, 거기까지는 알았어도 아직 생각 정리는 다 끝나지 않았어요. 먼저 올라가시죠.”
태주는 거기까지 말한 뒤, 한 가지 떠올렸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이 시간에 어딜 나갔다 온 거예요? 저는 틀림없이 4층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아아, 어딜 나갔다 왔냐고?”
소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참, 본인이 요청해 놓고 말이야.”
“어, 그걸 지금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 그렇지 않아?”
소장은 말했다.
“네가 찾던 것, 데리고 왔어.”
* * *
태주는 눈을 오래 붙이지는 못했다. 그래도 준비는 이래저래 끝난 상황이니, 이제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저녁 늦게, 라기보다는 새벽녘까지 고생했던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결국 잠은 별로 못 잤지만….”
게다가, 어제 새벽부터 이 묘하게 맑은 정신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일종의 하이 상태다. 이게 건강에 그리 썩 좋은 신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상관없다. 좋은 게 좋은 법이다. 어차피 최소한 지금만큼은 정신이 맑아야 한다.
“예상대로라면 아마 삼십 분 안에 올 것 같은데.”
더 빠를 수는 있지만, 더 늦을 수는 없다. 태주의 예상으로는 그렇다.
태주의 예상대로, 연락 이후 십여 분 만에 손님은 바로 나타났다.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얼마나 지났다고.”
조금 더 빠를 수 있다는 건 예상했지만 예상 시간의 반도 안 남기고 올 줄은 몰랐다.
“찾았다고요?”
인사도, 다른 말도 없다. 손님은 다짜고짜 물었다. 첫날에 본 그 얼굴. 괜히 오랜만에 본 것 같다. 태주는 일부러 느긋하게 말했다.
“빨리 오셨네요. 마치 주변에 계시기라도 했던 것처럼 빠른 속도에요. 이렇게 일찍 오실 줄은 몰랐는데요, 손님.”
“뭐, 뭐 어때요! 빨리 오면 올수록 좋죠. 게다가,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찾는 사람을 찾았다니요?”
잔뜩 흥분한 채다. 뭐 그렇게 큰 목소리로 말하나 싶긴 하지만, 또 저렇게 흥분하는 게 이해가 된다 싶기도 하다.
“아무리 그래도 하루 만에 찾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정말로 찾았나요? 찾았다면 어디에 있었나요? 솔직히 제가 생각해도 엄청 놀라운 일이라고요. 이거.”
한쪽이 잔뜩 흥분한 채 말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태주는 계속 차분한 상태를 유지했다.
“뭐, 천천히 들어주시겠어요? 어차피 당장은 그거 말씀드릴 생각이 없거든요.”
태주의 말을 들은 손님은 가만히 섰다.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어요. 손님도 잘 아시잖아요?”
“…어떤 순서요?”
“뭐, 모든 문제는 풀이 과정부터 설명하는데 도리라는 말이에요. 답부터 말하면 재미없잖아요. 여러모로.”
태주는 의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말했다.
“일단 앉으시죠. 궁금한데 많으실 텐데요.”
“궁금한 거요?”
“예를 들면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을까 같은 게 있겠네요. 궁금하지 않아요? 보통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궁금해할 텐데.”
“궁금… 하긴 한데요.”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하지만 태주의 계속되는 권유에 결국 손님은 의자에 앉았다.
“으음, 바로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뭐, 제가 생각보다 말이 많은 사람이라서요.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일이 꽤 자주 있다 보니 생긴 직업병이라 해야 할까요? 원래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 것도 있지만요.”
태주는 슬쩍 웃었다.
“일단 말씀드리면 채연 씨는 억울한 피해자에게요.”
“네…?”
“그냥, 그렇다고요. 일단 못 박아놓고 시작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실제로 채연 씨가 이 이상한 전화 괴담과 만난 이유는 뭐 특별한 이유가 아니고 그저 우연히 마주쳤기 때문으로 보이거든요.”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어쩌면 그냥 한국에 돌아올 예정이라서 만난 걸지도 몰라요. 하지만 특별히 채연 씨일 필요는 없었죠.”
“무슨 소리를 하시는….”
태주는 질문을 무시했다.
“누구라도 좋았을 거예요. 한국에 돌아가서 이 나름 괜찮게 만든 규칙을 퍼트리면 될 거니까요.”
오래 걸릴 것도 아니다.
“한 달 정도 유지할 수 있는 괴담의 유효기간과 한 달 정도 열심히 버티면 그대로 괜찮아질 거라는 규칙. 재미있지 않나요?”
정확하게 수명을 알고 있는 사람이 정한 것처럼 보인다. 누가 봐도 그렇지 않은가.
“이건 철저하게 기획된 괴담이에요. 그저 널리 퍼지길 바라는 종류죠. 그 외의 기능은 다 부가적인 기능이고요.”
보영에게 괜히 바이러스라고 설명한 건 아니다. 실제로 그 작동 방식이 동일하다.
“한 달 정도, 최대한 널리 퍼지도록. 그리고 아마도 역할이 끝나고 나면 스스로 자괴하고 잊혀지도록 안배가 된 그런 괴담이요.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크게 유행을 하고 있었어야 했겠죠. 한 달 중 일주일이나 썼으니까요.”
하지만 널리 퍼지지 않았다.
“그건 순전히 채연 씨 덕이죠. 아마 그 규칙 괴담을 만든 사람이 알면 짜증이 꽤 날 거예요.”
손님은 조금 떫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런가요? 그런데 그게 제가 요청한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요?”
“상관이 있죠. 왜 상관이 있냐면, 마음이 급할 거거든요.”
한 달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일주일을 통으로 날렸다.
“그럼 마음이 안 급할 리가 없죠. 그렇다고 기존 계획을 완전히 포기하기에는 조금 아쉽기도 할 거고요.”
고작 한 사람 때문에 공들여 만든 기획 괴담을 포기하는 건 꽤 아쉬울 것이다.
“뭔가 수를 쓸 거예요. 아주 현명하고 경제학적으로 완성된 사람이라면 매몰비용이라고 생각하고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도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일단 저부터도 아무것도 더 시도해보지 않고 포기하기엔 아쉬울 거 같거든요.”
그러니 이걸 활용하기 위해 수를 쓴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이걸 찔러보도록 만들 거에요. 그 과정에서 어떻게든 말이죠. 참, 이런 말도 안 되는 오류 하나 때문에 무슨 고생인지. 만든 사람은 참 짜증 나겠다. 그쵸?”
눈앞의 손님은 더 이상 말이 없다. 태주는 피식 웃었다.
“아차, 그리고 뭐랄까. 저희가 채연 씨에 대해서도 조금 알아봤어요.”
“저를요?”
태주는 웃으면서 말했다.
“채연 씨에 대해서 마침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같은 학교 다니는 사람들도 알고 있고요. 그래서 꽤 쉽게 사진 하나를 얻었단 말이죠. 채연 씨의 사진 말이에요.”
“….”
말이 없다. 하지만 침묵은 때로는 대답이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태주는 물었다.
“누구야? 너.”
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울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이제 저 문은 쉽게 열리지 않을 거다.
“여기에 뭐하러 찾아온 거야?”
“누, 누구냐니요?”
“글쎄, 짐작은 가는데.”
태주는 말했다.
“네가 채연 씨한테 그 기획 괴담을 풀어놓은 장본인일 거야.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