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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203화 (203/269)

203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끝없이 찾아오는 벨소리 (13)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지는 핸드폰 바이러스 같은 게 존재한다….”

보영은 잠시 중얼거리다가는 말했다.

“그 말을 믿으라고? 말도 안 돼. 그런 게 있으면 사실상 사이버 판데믹이잖아.”

보영은 푸념하듯 말했다.

전화 너머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잠시 들렸다. 어깨라도 으쓱하는 모양인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하지만, 정말 그렇잖아? 최소한 태주가 나한테는 그렇게 말했어.]

더 아는 것도 없어서 자세히 말할 수도 없다고, 월이는 그렇게 덧붙였다.

“마음에 안 드네.”

보영은 대놓고 쯧쯧 혀를 찼다.

“그게 거짓말 같아서가 아니라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돼서 마음에 안 들어. 왜 너희랑 엮일 때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근데 그래서 재밌어하잖아, 너.]

“…맞는 말인데 왜 짜증 나지.”

일침을 맞은 보영은 결국 곧바로 주제를 바꿨다.

“에잇, 젠장. 원리가 대체 어떤 방식으로 되어 있길래 이렇게 되는 거지? 뭘 어떻게 해야 컴퓨터 바이러스 같은 게 사람한테 그렇게 전염이 되는 건데?”

심지어 나름대로 정확하게 전염되는 규칙 같은 게 있는 걸로 보이니 더 골치가 아프다.

모르는 사이인 데다, 핸드폰을 거쳐서 연락한 게 아니었던 조수 후보에게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는 사람과, 아예 처음 보는 사람은 아닌 같은 학교 학생은 전화로 이야기를 하니까 전염이 되었다.

“조금 이상하긴 했어. 저렇게 행동하는데 이유가 있었다는 말이지?”

평소라면 절대로 믿지 않을 만한 말이지만, 정말로 그렇다는 것을 관측한 다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의미 없다.

“혹시 그 수상한 오빠가 뭐라도 알까 싶었는데… 직접 연락은 안 되기도 하고. 여러모로 억울하네.”

[어차피 걔도 우리가 겪은 것보다 더 자세히 알지는 못할걸. 그렇잖아? 뭔가 더 알아내려고 너한테 그런 요청을 더 하는 건데.]

월이의 말을 들은 보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긴 그런가. 틀린 말은 아니네.”

[그렇지. 그리고, 그래서 그 뭐냐.]

“한 문장에 ‘그’가 몇 개나 들어가는 거야?”

[알 게 뭐야? 어쨌든 이쪽은 주는 정보 바탕으로 그 전화 바이러스 같은 문제를 좀 붙잡고 있을 테니까 그쪽에서 채연이를 케어해 달라고 하던데.]

보영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문도 안 열어주는 녀석을 무슨 수로 도우라는 거야? 재미없는 일을 이쪽에 다 떠넘길 생각인 건 아니지?”

[떠넘기는 거 아냐. 그리고 태주가 그러던데. 전염성이 그렇게 강한 건데 본인이 그런 걸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 보면 조금 신기하지 않냐고.]

“음?”

보영은 눈을 찌푸렸다. 그전까지는 이상한 현상 자체에 집중하느라 인식하지 못했던 사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다.

“그러네. 우리가 걔한테 처음으로 옮은 사람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조금 흥미로운 이야기가 된다. 아니, 솔직히 말해야 한다. 이건 확실히 재미있을 것 같은 이야기다.

“그럼 본인은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가격리를 실행했다 이건가? 마냥 재미없는 이야기는 아니겠는데.”

보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케어는 어떻게 하면 되는데? 알아서 하면 돼?”

[어 맞아. 그러라던데? 어쨌든, 잘해보래. 아참, 사진도 보내 주고! 아까 내가 핸드폰 박살내 가지고 적어놓은 거 잃어버린 것도 다시 좀 보내 주고!]

“아주 사람 잘 부려먹을 줄 아는 사람이네. 아직 두 번밖에 경험이 없는데도 그래.”

보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핸드폰은 상관이 없으려나? 그걸로 전염되는 거 아냐?”

[뭐, 나름대로 대비책은 있으니까. 우리는 신경 안 써도 돼. 아참, 그래도 다른 사람한테 전화하지 말고.]

“그런 말 안 해도 내가 다 알아서 하거든? 혹시 몰라서 조수 핸드폰도 뺏어놓은 상태라고.”

이런 이상한 컴퓨터 바이러스 같은 것을 세계에 퍼트릴 수는 없다. 보영은 조금 사악하게 웃었다.

“다 정리되고 이삼일 있다가 돌려주지 뭐. 내가 심심한 것도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

[너무한 거 아냐? 그리고 그쪽도 그걸 순순히 준다고?]

말도 안 된다는 목소리다. 하지만 보영이 보기에는 월이 쪽이 좀 더 말이 안 된다.

“그거 순순히 준 거 너 때문이거든? 네가 손으로 쥐어서 핸드폰 박살낸 것 때문에 그런 거 아냐.”

그 모습을 보고도 핸드폰을 내지 않겠다고 버틸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쨌든, 뭘 하라는 건지 알겠어. 보균자들끼리 이상한 짓 하지 말고 뭉쳐있고, 하는 김에 그 정확한 전염 조건 같은 것들도 알아내서 연락 주면 된다 이거지?”

[어. 아마?]

무책임한 수준의 말이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사실 애초부터 바라던 바다. 보영은 슬쩍 웃었다.

“좋았어. 그럼 알아서 한다? 정말로?”

* * *

한번 경계심을 거두면 그다음은 쉬운 법이다. 보영의 예상대로, 채연은 쉽게 문을 열었다. 이제는 열두 시가 넘어 피곤한 김에 조금 방심한 것도 있을 것이다.

“뭐…!”

물론, 보영의 얼굴을 보자마자 문을 닫으려 들기는 했지만.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악!”

그 짧은 순간, 보영이 틈새로 발을 들이밀었기 때문이었다.

“아야야! 야 이거 힘 안 빼냐? 이 정도 했으면 그냥 좀 열어 줘봐! 할 이야기가 있어!”

다급한 목소리를 들은 채연은 힘을 딱히 풀지는 않고 말했다.

“발 빼.”

냉정한 목소리다. 보영은 변명하듯 말했다.

“야야, 좀 더 열어야 빼지!”

“열면 들어올 거잖아!”

“아니, 그건 맞지만 잠깐 열어주면 안돼에에아야야!”

일부러 호들갑을 떨면서, 보영은 말했다.

“나 내일부터 절름발이 될 거 같은데! 할 이야기 있다니까!”

보영은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 소리라면 분명히 옆집에서도 들었을 것이다. 채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대로 가면 경찰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아주 곤란하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보영의 다음 말은 채연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었다.

“어차피 전화 그거 이제 나한테도 오니까 괜찮다고!”

갑작스런 말에 놀란 채연은 순간적으로 손에 힘을 탁 풀었다. 어떻게든 열어 보려고 낑낑대며 문을 잡아당기던 보영은 뒤로 확 밀려나고 말았다.

“아야!”

손도 발도 엉덩이도 안 아픈 곳이 없이 만신창이다. 보영은 울상이 되었다. 어느 정도 감수하고 하고 있던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거다.

“야, 그냥 열어 줄 거면 말 좀 해주면 어디 덧나냐?”

보영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채연은 서슬 퍼런 표정으로 내려다볼 뿐이다.

“아니, 뭐 다시 안 닫는다면 그래도 다행이긴 한데.”

꼬리를 내린 보영의 표정에도 아랑곳 않고 채연은 따지듯 물었다.

“너 뭐 했어? 뭐 했는데 그 전화가 너한테도 온다는 거야?”

“아니, 뭐 별 건 아니고 도청 비슷한 걸 조금? 방금 너한테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랑 연관이 있는데.”

보영은 당당하게 웃었다. 채연은 하얗게 질렸다.

“너 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모르지. 아니, 조금은 알지만 짐작 정도야.”

보영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알아? 말을 들은 게 없는데.”

말문을 잃은 채연은 결국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미친 거 아냐!”

결국 채연은 보영을 안쪽으로 들일 수밖에 없었다. 문을 닫은 채연은 한껏 열받은 듯 말했다.

“진짜 미친 거 아냐? 내가 뭐 때문에 널 쫓아냈는데! 네가 제일 위험해!”

“괜찮아. 전염성이 있는 뭔가라는 건 이해했으니까. 다른 사람한테 추가로 옮길 일은 없어.”

보영이 대놓고 말하자 채연은 오히려 당황했다.

“뭐 그렇게 놀라? 내가 그 정도 알아낼 수도 있지.”

“기가 막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이번엔 또 뭐 하자고 이런 짓을 한 거야?”

“솔직히 말하면 이번에는 내가 뭘 하려고 해서 한 건 아닌데.”

보영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채연은 전혀 믿지 않는 눈으로 보영을 쳐다봤다. 별로 신뢰를 주지 못하는 모양이다. 보영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하지만 진짜야. 물론 내가 동의하지도 않은 일에 억지로 끼어든 거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긴 한데.”

채연은 미심쩍은 눈으로 보영을 쳐다봤다.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는 모습이다.

“내가 그 말을 믿으라고? 나는 너를 아는데?”

“그래. 내가 보통 쉽게 포기하진 않지. 하지만 보류 정도는 하기로 했어. 최소한 이번엔.”

“네가 궁금한 걸 보류한다고?”

“그래. 왜냐하면, 이건 내 사건이 아니니까.”

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의뢰가 들어온 것도 아니고, 자신이 미행해서 억지로 끼어들었다는 자각은 있다.

“하지만 그래도 신경은 쓰이거든.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보영은 냉정한 성격이 못 된다.

“그냥 넘어가지.”

채연은 짜증이 난다는 태도로 말했다.

“지금까지 한 명한테도 옮기지 않았는데, 이게 뭐야.”

“맞아, 나 그게 좀 궁금하던데.”

보영은 질문했다.

“왜 굳이 혼자 그렇게 고생한 거야? 어차피 이게 죽을 정도로 뭔가 잘못되는 건 아니라며?”

어차피 전화만 올 뿐이다.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긴 하지만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다.

“어차피 그냥 여기저기 도움 요청하다 보면 결국 누군가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거 아냐?”

“됐어, 너는 모를 거 아냐.”

채연은 조금 적대적인 태도로 말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한 달 정도를 이러고 있으려고 했는지도 모르면서.”

“제대로 말한 적이 없으면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안 그래?”

보영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하지만 아는 건 있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도 내치는 건 바보짓이라는 거. 애초에 이럴 때 참견 안 할 거면 내가 왜 여기까지 왔겠어?”

보영은 진지한 눈으로 채연을 쳐다봤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뭔가 잘못되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돕는 게 맞아.”

“그럴 능력은 되고?”

채연은 조금 침울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냥 피해자가 둘이 될 뿐이야.”

“아닐걸?”

보영은 자신 있게 말했다.

“자, 네가 어디까지 믿을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머리 들이밀고 본 게 아니야. 나름대로 다 계산이 있었어.

“계산?”

“그래. 아까도 말했지? 이게 전염성이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보영의 말을 들은 채연은 그러고 보면 그랬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나는 이게 뭔지 알아. 하지만 정확히 모를 뿐이야. 그리고, 나랑 같이 일하는 그 사람들도 비슷한 상황일 거야.”

“하지만 자세히 말할 수….”

“있어. 다른 사람한테는 좀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한테는 괜찮잖아?”

채연은 말문이 막혔다.

“너, 설마 그것 때문에?”

사실은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보영은 상대가 오해하기 딱 좋도록 적당히 웃었다.

“그래. 그러니까 나한테는 다 말해도 돼.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채연은 안심한 듯 풀썩 주저앉았다. 바닥인데도,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처럼 그랬다.

“아아, 맞다.”

보영은 참고삼아 질문을 하나 던졌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기회가 되면 물어봐 달라던데.”

“뭔데?”

“붉은색 전화박스를, 어디서 봤어?”

채연은 조금 놀란 눈이 되었다.

“너는 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어?”

“글쎄. 다 아는 수가 있다, 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저쪽에서 알려준 거라서. 어쨌든 자세한 이야기를 좀, 들려주라.”

보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은 일단 말할 수 있는 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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