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끝없이 찾아오는 벨소리 (12)
“규칙이라.”
시아는 한탄하듯 말했다.
“그렇다면 우연히 생긴 것도 아니고, 명백한 방향성이 있는 것이라는 말인데.”
꽤 골치가 아플 것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누군가가 의도해서 만든 규칙이라면, 이미 그건 주술의 영역에 가깝다.
“느낌이 안 좋아.”
“그러니까 깨야 한다고 말한 거 아니겠어요?”
태주의 말을 들은 시아는 끙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이런 싸움은 늘 하기 싫은데. 결국 규칙의 싸움이라는 건 아느냐 모르느냐의 싸움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는 법적 분쟁과 다를 것도 없다. 모르면 일방적으로 당한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어쩔 수 없는 걸까요?”
이쪽은 규칙을 정확히 모른다.
“아쉽긴 해도 모르는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 아닌데요.”
태주가 깔끔하게 포기하려는 찰나, 시아는 의외의 말을 했다.
“아니, 어쩔 수 없는 건 아니지.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규칙에 대해 아는 게 있으니까.”
조금 늦기는 했지만,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시아는 천천히 말했다.
“그 규칙이 만든 결과를 보면, 지금 상황은 비교적 초기 상황으로 보인다.”
“결과만 보면 그렇죠.”
“이래저래 월이 말마따나 일종의 전염성이 있는 규칙이야. 일주일이면 아주 널리 퍼졌어도 이상할 일이 아니지. 그런데도 지금까지 이 규칙에 전염된 사람은 아직 한 명, 아니 이제 세 명뿐이다.”
그 정도만 해도 꽤 고무적이라고 시아는 말했다.
“그거야 그렇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일단은 전염성인 주제에, 처음으로 영향을 끼친 건 월이와 그 보영이라는 사람 둘 뿐이니까요.”
사실 그것도 일부러 찾아갔으니 걸린 것뿐이다. 만약 아무도 찾지 않고 채연 홀로 버텼다면 마지막까지 전염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는 사람에게 전화로 이야기를 하면 전염이 된다. 그런 건 사실 가혹한 수준의 조건인데 말이지.”
이게 가능했던 건 오로지 채연이라는 사람이 지나칠 정도로 규칙을 잘 따라줘서 가능했던 일이다.
“사실 진짜 시간상으로는 꽤 지났는데도 말이지. 만약 이걸 전염병과 같은 무언가로 본다면, 엄청나게 잘 격리된 셈이다.”
그렇게 따지면 채연의 초동 조치는 아주 제대로 된 것이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채연 씨가 정말 엄청나게 잘 대처한 거네요. 본능적인 행동일까요?”
“그냥 본능이면 아는 사람에게 연락부터 하겠지. 불안하면 아는 사람에게 의존하는 게 사람 본성이니까.”
하긴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럼 알고 그랬다는 말인데.”
“그래. 그렇다면 정확한 규칙이 뭔지 아는 사람이 있는 셈이야. 백 퍼센트 정확히 아는 건 아니더라도 도움이 되겠지.”
옆에서 듣고 있던 설이가 물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빨리 전파가 되나요? 고작 일주일인데요.”
설이는 조금 궁금한 듯 물었다.
“게다가 아는 사람 사이에서만 전파가 되면 그게 그렇게 빨리 전파가 될지는 알 수 없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빠르지는 않을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무차별적인 전파가 가능한 편이 좀 더 무서운 거 아닌가. 설이의 그런 의문에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건 정말로 채연 씨가 잘 대응해 줘서 가능했던 일이야. 이게 안 퍼지기엔 요즘 환경은 너무 좋거든.”
천천히 생각해 보면 기적 같은 일이다.
“먼저 하나는 핸드폰이 필수품이라는 거야.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사실상 신분증 역할도 같이 할 정도니까 말이야.”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이젠 필수품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생각보다 이런 식으로 아는 사람 건너건너 알게 되는 것의 전파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는 거야.”
흔히 케빈 베이컨 지수라고 알려진 간단한 법칙이 있다.
“고립되어 사는 원시 부족을 제외했을 때, 모든 사람이 이어지는 데는 여섯 다리면 충분하다는 계산이야. 미국 대통령 같은 강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더 빨리 만날 수도 있고.”
중요한 사람은 많은 사람과 만나는 법이다. 결국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세 다리에서 네 다리 정도만 걸쳐도 미국 대통령과 연결될 수 있다.
“진짜 그렇게밖에 안 걸린다고요?”
설이는 조금 당황했다.
“그렇지. 특히나 발이 넓은 사람은, 또 그런 사람과 걸쳐 있을 거 아냐? 그렇게 몇 번만 하면 순식간에 모든 사람에게 전파가 되겠지.”
물론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실제로 전화 통화를 하게 되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이것보다는 훨씬 어려워지겠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전파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어, 그럼 그게 정말 그렇게 대단한 거예요? 전 세계에 퍼질 정도로?”
“아니, 설마.”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유행하는 괴담이라고 해도 전 세계에 그런 전화를 걸 수 있을 정도는 안 될 거다.”
게다가 유행의 최신이라는 것은 역사가 짧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자체는 전 세계에 퍼질 수 있는 로직이지만, 정말로 전 세계에 퍼져버리고 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다.
“이건 기껏해야 한 나라 범위 안에서, 그것도 그리 오래 갈 수 없는 것이야. 꽉 채워 쓰면 한 달 정도나 가능하려나.”
물론 그 정도만 해도 이런 실체 없는 괴담치고는 꽤 영향력이 큰 편이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여러모로 대단한 일인 셈이다. 태주는 감탄하듯 말했다.
“월이 말을 들으면 보영이와는 절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다는데… 그렇다면 그런 태도가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스스로 그렇게 철저하게 격리하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감탄스러운 일이다.
“그나저나, 규칙에 대한 괴담이라면 큰 문제가 하나 있는데 말이다.”
시아는 골치 아프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결국 괴담이기 이전에 규칙이라면 결국 이런 걸 만든 이유가 있다는 말 아니겠니?”
태주는 찌푸린 표정으로 말했다.
“네, 그게 문제죠.”
규칙이라는 것은 필요하기 때문에 만든다. 그렇다면, 왜 이런 걸 필요로 했는가?
“돈이나, 뭐 명예를 노리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사람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악질적인 어떤 행동도 아니고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기는 했지만, 사실 이건 그저 널리 퍼지는 걸 목적으로 해요.”
솔직히 말하면 이게 지금까지 한 일은 여학생 하나를 겁먹게 하고 괴롭힌 정도가 다다.
“그러니 문제는 왜 이런 것을 만들었느냐인데.”
태주는 거의 한숨을 쉬듯 말했다.
“조금 짐작 가는 구석은 있어요. 그리고 이 생각이 맞다면….”
“맞다면?”
“채연 씨에 대한 건 저쪽에 온전히 맡겨야 할 거예요. 사실, 이미 그렇게 해 달라고 월이한테 부탁하긴 했지만 말이죠.”
* * *
처음 흡혈귀가 사라졌을 때, 여자는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용이 사라졌을 때는 확신이 들었다.
세상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둘 뿐이고, 그중 하나는 절대로 범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해낸 건 오직 하나, 전지뿐이다. 이 주변에 분명히 있다.
“찾은 건 좋은데…. 결국 혼자뿐이네. 아휴, 이렇게 바쁜 건 오랜만인데.”
여자는 푸념하듯 말했다. 그 소리를 들은 건지, 어느새 나타난 전능이 질문했다.
“많이 바빠?”
무슨 그런 당연한 말을 하는 거지? 하는 표정이 된 여자는 말했다.
“바쁘죠. 원래는 세 사람이 할 일을 혼자 하고 있는데. 하긴, 생각해 보면 원래도 2.5명이 할 일을 혼자 하고 있기는 했네요.”
여자는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생각해 보니 화가 조금 나기 시작했다.
“있을 때는 꼴 보기 싫었지만, 없어지니 또 아쉽다니, 끔찍한 녀석들이네요. 있어도 없어도 도움이 안 된다니. 역시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은 필요 없었던 거 아니에요?”
여자는 반쯤 진심으로 말했다. 처음부터 없었다면 조금 곤란하기야 했겠지만 어쨌든 자신만큼 도움이 되던 녀석들은 아니다.
“하긴, 그래도 어떤 의미로는 자기 역할을 다 한 것 같기도 하네요. 이 부근에서 없어진 것만은 확실하니까, 전지는 이 주변에 있을 거예요. 그 정도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네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들이 둘씩이나 한 곳에서 사라졌다면 분명히 연관이 있다. 말 자체는 그럴듯한 추론이지만 말투가 적나라한 수준을 넘어 지나치게 공격적이다. 전능은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으음, 그래도 나한테는 꽤 잘 해주던 녀석들인데. 조금 아쉽단 말이야. 없어진 것 자체는 어쩔 수 없겠지만.”
전능의 말을 들은 여자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흡혈귀 녀석은 그렇다 쳐도 용은 잘 모르겠네요. 그게 잘 한 거라고요?”
“어라? 아니었어?”
전능은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었어요. 분명 어디서 뒤통수칠 생각이나 하고 있었을 거예요. 어차피 의미는 없을 거라 내버려 둔 상태였지만 말이에요.”
“아니었던 건가….”
“아니죠. 정말 몰랐던 거에요? 태도가 그렇게나 오만했는데? 어쨌든, 분명히 이번에도 방심하다 당했을 거예요. 물론 늘 방심하는데 이번에야 처음으로 골로 간 거 보면 심상치 않긴 하죠.”
여자는 그 건방진 태도가 생각만 하면 짜증이 난다는 듯 흥,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안 봐도 뻔해요.”
“용은 내가 생각해도 그렇긴 해. 나한테 뒤통수칠 생각 같은 걸 하고 있는 줄은 몰랐지만….”
최소한 용의 방심 자체는 전능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도 없으니 아쉽네. 이런 상황에서는 도움이 꽤 될 것 같았는데.”
근처에 전지가 있다는 것이 확실해진 상황에서는, 하나의 전력도 너무나 아쉽다. 전능은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지금은 없죠.”
여자는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필요할 때 없으면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이잖아요. 결국 쓸모없었어요. 흡혈귀 녀석이야, 그래도 처음 당한 거니 그렇다 치지만.”
여러모로 용은 최악 아니냐고, 여자는 말했다. 여전히 분이 안 풀리는 표정이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기에 전능은 어색하게 웃었다.
“어쨌든, 이걸로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긴장감 넘치는 삶은, 이번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어요. 정말, 올해 들어 갑자기 진전되는 건 뭔지.”
여자는 푸념하듯 말했다.
“작년이 좋았는데.”
“작년이 딱 좋긴 했지. 여러모로.”
전능은 장난처럼 물었다.
“그나저나, 작년이 좋았으면 시간을 작년으로 돌려줄까?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으아악! 아뇨!”
여자는 기겁하며 말했다.
“저번에 뭐 하나 고치다가 지진 일으켰잖아요! 이번에는 화산이라도 터트리려고요?”
끔찍한 일이다. 여자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고는 말했다.
“안돼요. 절대. 뒷일을 생각해야죠!”
전능은 우울하게 말했다.
“농담이었어 농담.”
“정말로, 그런 가슴 떨어질 것 같은 농담은 자제해 주세요.”
“하지만 뭔가 하고 싶은 건 사실이야.”
“엑.”
여자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갑자기 왜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진 건가요?”
여자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몇백 년 동안 그런 기분 안 드셨다면서요?”
“그랬지. 하지만 그래도 그런 거 있잖아. 계속 참았더라도 가장 참기 힘든 순간은 화장실 안에 들어간 바로 그 순간이라고.”
여자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비유가 왜 그런 식이에요? 더럽잖아요!”
“하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
“네, 뭐 목표가 가까이에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 오히려 평소보다 더 마음이 들뜨고 긴장된 건 알겠는데요. 그렇게 오랜 시간 찾아 헤매던 게 눈앞에 있으면 그야 눈이 돌아갈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것도 알겠고요.”
그런 의미에서 더럽긴 하지만, 정확한 비유다.
“그리고 그 말대로라면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봐도 되겠고요.”
여자는 달래듯 말했다.
“얼마 안 남았어요. 정말로 그럴 거예요.”
여자의 표정을 본 전능은 생각에 잠겼다.
“뭐 해놓은 거라도 있는 거야?”
“당연하죠. 제가 하나 수를 써 놨어요. 거미줄 치듯이, 뭔가 찾기에는 최적화된 그런 걸 말이에요.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유난히 특이한 반응이 돌아오거나, 어느 한 곳만 그 거미줄이 뻗지 않는다면 바로 그곳을 살피면 된다.
“전 세계 단위로는 이 짓을 할 수 없지만, 이 정도 규모 국가면 할 수 있죠. 처음 전염이 터지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있지만요.”
하지만 이제 슬슬 퍼지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시간문제다.
“요즘 유행하는 거 공부하느라 고생 좀 했다고요, 저.”
“잘했다 잘했다.”
“영혼 없는 칭찬 하지 마세요.”
여자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럼에도 조금 웃었다.
“어쨌든, 이제 곧이에요. 목표에 가까워졌어요. 정말, 제 대에서 끝날 줄이야.”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성급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전능 역시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게. 어떻게 되든 곧 끝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전능은 감상에 잠긴 표정이 되었다.
“그런데 너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뭐야?”
“에, 이제 와서 묻는 거예요?”
“그렇지. 지금 아니면 물어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너는 딱히 다른 애들처럼 나를 따를 이유가 없었잖아.”
여자는 잠시 생각하다가는 말했다.
“사실 제 입장에서는 그냥 이어져 온 꿈에 불과하긴 한데요.”
할머니가 엄마에게, 엄마가 나에게 넘겨준 자리다.
“지금까지 있었던 다른 분들은 정말 당신을 신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저는 뭐, 사실은 잘 모르겠지만요.”
“그런 거 같더라.”
“하지만, 그래도 당신의 목표가 의미 있는 목표처럼 느껴지거든요, 전. 성격 나쁜 조상들이 자신들이 본 걸 가끔 후손들 꿈에 보여주곤 하는데요.”
직접 겪은 일들이 아닌데도 식은땀이 날 정도다.
“저는 더는 두 번 다시 그런 풍경을 보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
전능은 웃었다.
“혹시라도 위험해지면 알아서 그만둬. 다른 애들은, 뭐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 살던 녀석들이지만 너는 아니잖아?”
“그렇죠.”
여자는 말했다.
“저는 오래 살고 싶다고요. 되도록이면 사람 없는 곳에서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