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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201화 (201/269)

20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끝없이 찾아오는 벨소리 (11)

“처음부터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공항에는 빨간 전화부스가 없어. 그게 이번 이야기의 핵심이었는데… 그걸 내가 지적해 놓고도 전혀 눈치를 못 챘다니.”

멍청이가 된 기분이지만, 또 나름대로 정리가 되는 것이 신기하다.

“뭔가 조금씩 이상했던 부분들이 이거 하나면 정리가 돼. 처음부터 이건 규칙 괴담이었던거야.”

태주의 말을 들은 월이는 으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물었다.

“규칙 괴담? 그게 뭐야?”

“이름은 내가 적당히 붙였어. 뭐랄까, 하나로 정해진 이야기가 아니라서. 하지만 아마 이걸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부를걸? 다른 더 좋은 이름이 없을 거 같아서.”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잠시 생각하다가는 덧붙였다.

“아니, 애초에 이걸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네. 어떤 의미로는 괴담이 아니야. 최소한 우리가 말하는 괴담의 범주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어.”

사무소에서 괴담이라 하는 것은, 사실은 문자 그대로 해석한 것이다. 기이한 이야기, 혹은 괴상한 이야기. 어떻게 해석하든 가장 넓은 범위의 뜻을 가지고 쓰기 때문에 온갖 것이 포함된다.

신화, 전설, 민담 같은 것들을 전부 괴담으로 묶어버린 이유가 바로 그런 ‘이야기’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사실 이야기라 볼 수 있을지가 조금 애매해. 일단은 괴담이라 말하기는 했지만, 그 자체로 이야기인 건 아니야. 쓰여 있는 건 열 개 정도의 규칙뿐이거든.”

예를 들면, 어떤 박물관 야간 경비원의 행동 수칙이나, 어떤 호텔 직원의 행동 수칙 같은 것이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알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정확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무언가에 불과해. 엄밀히 말하자면.”

“그래도 괴담이잖아? 규칙 ‘괴담’이라고 니 입으로 말해놓고?”

월이는 눈을 찌푸렸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게 아예 괴담이 아니라고 주장할 생각은 아니야. 그냥, 엄밀히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내용 자체는 이야기라 할 수 없지만 듣거나 보는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충분히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종류거든.”

특히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이걸 절대로 괴담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어떤 의미로는 수준 높은 공포라고 할 수도 있을 거야. 직접적으로 무엇이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고, 순전히 독자의 상상력이 높을수록 무서운 무언가니까. 예를 들어 볼까? 즉석에서 만드는 거라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태주는 목을 긁적이고는 말했다.

“이름은, 그래 그냥 한 미술관의 야간경비 수칙이라고 할까.”

* * *

본 미술관의 야간경비 업무에 신규 지원한 것을 환영합니다.

업무에 들어가기에 앞서, 준비된 복장의 사이즈가 맞는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급된 개인장비의 유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장비의 정상작동 여부는 전임자가 이미 확인했으니, 따로 확인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복장과 장비를 확인하셨다면, 축하합니다. 이하의 규칙만 지킨다면, 당신은 문제없이 근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부디 이하의 규칙을 철저하게 지켜주십시오.

1. 순찰 중 인사를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근무하는 20:00부터 06:00까지는 당신 외에 살아있는 직원은 없습니다.

2. 흐르는 물소리가 화장실에서 들리고 있다면, 수도꼭지를 잠그지 마십시오. 대신 화장실의 문을 닫으십시오.

3. 만약 화장실에 가야 한다면, 꼭 숙직실 바로 앞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십시오. 당신의 성별에 상관없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야 하며, 들어가기 전에는 불을 켜지 마시고 꼭 들어가서 문을 잠근 뒤 불을 켜십시오.

4. 핸드폰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꼭 사용해야 한다면, 직원 전화를 사용하십시오.

5. 이미 마주쳤다면, 가만히 계십시오. 해가 뜰 때까지는 그렇게 계십시오.

6. 웃는 여인의 초상화가 벽에 비스듬히 걸려 있다면, 바로 세우십시오. 보는 즉시.

7. 이 박물관에 사람의 초상화는 없습니다. 만약 초상화를 발견한다면, 가장 밑층부터 순찰을 다시 돌아야 합니다.

8. 지급 받은 화기를 미술품에 겨냥하는 것은 금지합니다. 애초에 그리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그 외의 곳에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9. 이 규칙은 지금 이 항목을 포함하여 총 여덟 개입니다. 만약 하나 이상 더 적혀 있다면, 즉시 이 종이를 불태우고 새로 지급을 요청하십시오. 그리고, 절대로 이전 항목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 * *

여기까지 이야기한 태주는 이만하면 됐겠지 하고 적당히 끊었다.

“대충 이런 게 규칙 괴담이야. 즉석에서 만든 거라 잘 만든 거라 하기는 어렵겠지만.”

금방 만들 수 있다. 잘 만드는 건 어렵지만, 대충 따라 하기는 아주 쉽다. 이렇게 즉석에서 만들 수 있을 정도다.

“전부 여덟 개라고? 그럼 뭐가 가짜 규칙이야? 경비원은 뭐랑 싸우는 거고?”

월이는 눈을 찌푸리고는 물었다. 태주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건 비밀. 어쨌든 이제 왜 일반적인 괴담이 아니라고 했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괴담이라고 했는지 알겠지?”

짧은 인사와 소개, 그리고 십여 개의 규칙뿐이지만, 그것만 가지고도 들은 사람은 알아서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만든다.

“심지어 너도 그렇게 물었잖아? 경비원은 뭐랑 싸우냐고. 싸운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했는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그랬네?”

월이는 신기했는지 눈을 조금 반짝였다.

“근데 나 이런 거 어디서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아니, 들었다고 해야 하나? 이건 아닌데, 비슷한 걸 본 적 있는 것 같아.”

“이거야, 뭐 내가 즉석에서 만든 거니까. 이걸 들어봤을 리야 없지. 하지만 내가 즉석에서 만든 걸 보면 알겠지만, 이거 꽤 쉽게 만들 수 있는 거야. 만들기 쉽다 보니 많이 만들어지고, 유행도 하고. 네가 본 것도 그러니까 그런 것 중 하나겠지.”

일단 짧고, 정형화된 규격이 있는 만큼 양산이 쉽다. 그러면서도 간단하게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으니 유행하기 적절한 소재다.

“지금 예로 든 건 미술관이지만, 병원이나 박물관이 배경인 이런 규칙 괴담이 나타나지 못할 이유가 없으니까 말이야. 아예 너희 학교 대상으로도 만들 수 있을걸?”

“어? 진짜?”

월이는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나중에 심심하면 밖에 유출하지 않는 선에서 만들어 보던가. 해 보면 잘 만들기는 꽤 어려울걸. 어쨌든, 이런 괴담들의 공통점은 추측까지는 가능하지만 여전히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다는 거야. 그런 부분에서는 쿠네쿠네 같은 것과도 비슷하네.”

시간이 갈수록 추상적인 괴담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그냥 자연물을 빗댄 이야기에서, 평범하게 실존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다음에는 그게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가, 마침내 이제는 이야기의 형태가 아닌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의미로는 미술의 발전과 비슷하다.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려주지 않는 것을 넘어, 이제는 이야기조차 아닌 괴담이라. 이거야말로 현대 괴담이 아닐까. 태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생각하고 난 다음에 처음 손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꽤 느껴지는 게 있단 말이지.”

태주는 손님이 말한 빨간 전화부스를 생각하면서 말했다.

“사실, 처음에 전화 괴담에 대해 이야기하긴 했지만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었어. 단순 전화 괴담에는 빨간 전화부스가 필요 없거든. 그게 사건의 시작인데도 말이야.”

전화 괴담의 핵심은 낯선 무언가와 연결된다는 것이지, 있는지 없는지 확신할 수 없는 전화기가 핵심이 아니다.

“요즘 시대에, 누가 공중전화를 써? 그런 시대가 아닌데 말이야.”

거기서 중요한 건 전화지 전화기가 아니다. 그러니 빨간 전화부스는 사건의 시작인데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불필요하다. 빨간 전화부스는 일종의 맥거핀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맥거핀은 이런 규칙 괴담에서는 꽤 쓸모가 있지. 아니,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런 규칙 괴담이 맥거핀 그 자체기도 하고.”

당연히 없어야 할 것이 있거나, 모순되는 태도의 규칙의 충돌 같은 것들이야말로 규칙 괴담의 핵심이다. 분명히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상호 모순과 어색하고 수상한 점이 바로 규칙 괴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일은 규칙 괴담이어야 좀 더 잘 맞아떨어져.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화에 대한 규칙 괴담이 되겠지.”

“뭔가 조잡한 느낌인데.”

월이는 무심코 말했다. 태주는 자기가 말하고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나도 그렇게 생각해. 조금 되는대로 이어붙인 느낌이 있지? 하지만 아까도 말했잖아. 규칙괴담이라는 건 어디에나 붙을 수 있는 거라고.”

조금은 이상해 보이더라도, 그게 그런 규칙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면 결국 이해가 된다.

“아는 사람에게는 연락하면 안 되고,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부분도 그런 규칙으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면 나름 말이 되지.”

다만, 이 추측에는 한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월이도 그걸 느낀 듯 물었다.

“근데, 그런 규칙이 유명해?”

“아니.”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모르는 것만 봐도 알만하잖아? 규칙 괴담은, 솔직히 말해서 이 포맷이 유명한 거지 특정한 규칙 하나가 유명한 건 아니야. 그러니까 이게 규칙 괴담이라면 반쯤 확신할 수 있는 게 있어.”

“확신할 수 있는 거?”

“그래.”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것이 절대로 우연히 생긴 것일 리가 없다.

“누군가가 이걸 써먹은 거야. 응용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응용?”

“그래 응용. 대뜸 말도 안 되는 규칙이 들이밀어 지면 당연히 정상적인 사람은 믿지 않아.”

하지만 실제로 이상한 일을 계속 겪은 뒤, 그다음에 규칙을 들이밀면 어떨까.

“손님은 외국에서 이상한 일을 하나 겪었지. 그것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걸로.”

그게 우연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준비과정이라면 어떨까.

“내 말을 들으면 괜찮아질 거야. 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 일어날 거야. 말로만 그런 소리를 들은 게 아냐. 채연 씨는 그런 일을 실제로 겪어버렸지.”

그렇다면 그 사람이 한 말은, 이미 일종의 규칙이 된다.

“겪어보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라면 무시할 만한 말을 손님은 무시할 수 없어.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밖에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 조잡한 수준의 이야기지만, 어차피 바깥에서 보는 걸 고려할 필요는 없다.

“안에서 보기에 그럴듯하면 충분해. 아마도 조잡한 건, 그래서야.”

태주는 조금 떫은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이게, 이렇게 말하기는 싫은데. 내가 하는 짓이랑 좀 비슷하다 해야 하나.”

목적은 다르지만, 수단이 조금 비슷한 결이 있다.

“확신할 수 있어. 상대도 전문가야. 그냥 자연발생한 뭔가가 아니야.”

월이는 눈을 찌푸렸다.

“그러면 뭐야. 이 전화가 전염되고, 사람이 덜덜 떨고 하는 게 다 그 누군가 때문이라는 거야?”

“그래.”

아마도 아는 사람에게는 전염이 되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전염이 되지 않도록 설정한 이유도 그런 것일 거다.

“아는 사람이라면, 높은 확률로 설득의 과정이 필요 없어. 너도 내 말은 설명이 없더라도 믿잖아? 질문하는 이유는 그저 궁금하니까 물어볼 뿐이지.”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내가 아무 말을 한다고 믿지는 않을 거야. 이건 그런 사람의 심리까지 좀 이해하고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규칙이란 말인데, 아주 악질이지.”

“그럼 뭐야, 이럴 필요 없었나? 핸드폰 아까운데.”

괜히 막 이것저것 해 볼 필요 없이 바로 오는 게 제일 나았으려나. 월이는 윽,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실제로 전염이 되긴 되니까. 잘 판단한 거야. 근데 내일까지 해야 할 게 좀 많아지겠네.”

태주는 눈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아, 혹시 지금 그 사람한테 연락해 줄 수 있을까? 보영씨, 아니 보영이라 해야 하려나.”

“보영이? 아마 될 걸? 어, 근데 지금 나 전화를 못 해. 핸드폰이 지금 없어서.”

월이는 난처한 듯 말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내 핸드폰 빌려줄 테니까 말 좀 대신 전해줘.”

태주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채연 씨는 그쪽에 맡긴다고 말이야.”

일단은, 지금은 우리보다 그들이 맡아주는 편이 낫겠다.

“지금까지 한 거 보면 알겠어. 절대로 뭔가 잘못 굴리지는 않을 것 같아.”

“그래. 전하면서 사진도 뭐, 같이 받아 놓을게. 그런데 뭘 하려고?”

태주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규칙을 깨야지. 역사가 짧은 녀석은, 그만큼 깨부수기 쉬워. 너도 알잖아?”

누가 만든 거라면, 누가 깨줘야 한다. 태주는 그런 흉흉한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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