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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199화 (199/269)

19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끝없이 찾아오는 벨소리 (9)

“무슨 일이야?”

벽에 기대 서 있는 소장은 늘 그렇듯 웃으며 말했다. 태주는 웃지 않았다. 대신 한숨을 쉬었다.

“일단은 보고 겸 질문때문에 왔는데 그 전에 불평부터 좀 할게요.”

“오, 무슨 불평? 한번 해 봐.”

소장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어디 한 번 들어나 보겠다는 태도다.

진지하게 들을 생각은 없어 보이는 모습을 본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올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정리도 좀 하고 그래요. 아무리 혼자 쓰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라고는 해도 이건 그냥 창고잖아요.”

사무소가 처음 만들어질 때만 해도 자신이 이런 잔소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태주는 한숨을 쉬었다.

“올 때마다 생각한다면서 왜 이제야 말해?”

“지금까지는 그래도 복도에 빈 자리는 있었다면, 이제는 빈 자리가 없으니까요. 저 오다가 넘어질 뻔한 거 아세요? 모르겠죠?”

지금까지 올 때마다 복도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이전까지는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최소한 가끔 접시 하나 들고 걸어가는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태주의 그런 표정을 보고도 소장은 그저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는 이야기는 있는데, 그럼 네가 대신 청소하면?”

“우물도 뭐 팔 줄 아는 사람이 파는 거지 아무나 땅 판다고 우물이 되나요? 여기를 정리할 수 있는 건 소장뿐이잖아요.”

태주는 눈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여기를 소장 외에 다른 사람이 정리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단순히 천장에 닿을 정도로 물건이 높이 쌓여 있기 때문에, 복도에 빈공간이 많지 않을 정도로 꽉 차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 있는 것들이 뭔지 알고 만져요? 여기 있는 게 하나하나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는 건 소장 정도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잡동사니일 것이다. 그저 낙서나, 돌, 그조차 아닌 잡다한 물건으로만 보이는 물건들이다.

하지만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이 보기에, 이것들은 세상에 유일무이한 물건들이다. 세상에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 서명이나,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책. 완벽한 구형의 운석 같은 것.

몇 개 정도는 뭔지 태주도 알고 있지만, 그 밖의 것들은 짐작도 안 간다.

“뭔지도 모르는 걸 어떻게 정리를 해요? 제가 실수로 망가트리거나 하면 어떻게 하려고.”

“글쎄, 모르는 사람이 정리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 알아서 정리가 어렵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전 싫어요. 그럼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시키라고요. 괜히 부담스럽게 저한테 이런거 시킬 생각하지 마시고.”

태주는 조금 질린 눈으로 말했다.

“뭐, 생각은 해 볼게.”

“생각 안 할거죠?”

태주의 미심쩍은 말투에 소장은 변명하듯 웃으며 말했다.

“음, 뭐. 생각을 하더라도 결론이 바뀌지 않을 수 있을 뿐이야. 정리라는 건 기본적으로 물건을 쉽게 찾기 위해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물건을 쉽게 찾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고요. 여기가 무슨 도서관도 아니고. 최소한 길은 제대로 나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도서관처럼 라벨을 가지고 가나다순으로 정렬해 놓는 정도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너무 물건을 잡다하게 놓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시 말하지만 오다가 넘어질 뻔 했다니까요.”

“뭐, 그건 미안. 하지만 어차피 여기 찾아올 사람은 거의 없는걸. 어차피 이제 더 쌓일 일도 없을 것 같고.”

결국 안 하겠다는 말이다. 태주는 한마디 더 하려다 고개를 저었다. 누가 누구에게 조언을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 뭔가 굉장히 의미 없는 짓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잔소리나 하러 온 건 아니겠지.”

소장은 태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물어볼까? 무슨 일이야? 네가 이렇게 딴소리나 해야 할 정도로 물어보기 껄끄러운 게 뭘까?”

소장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하다. 태주는 쯧, 하고 혀를 살짝 찼다.

“그게 그렇게 눈에 보여요?”

“보이지. 너에 대한 걸 다른 사람들처럼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네 표정이나 행동을 보고도 모를 정도로 우리가 짧게 보진 않았잖아?”

소장은 은근하게 물었다.

“네가 그런 표정을 지은 게 얼마 만이더라? 우리가 처음 만난 게 언제지?”

“앞은 모르겠지만 뒤는 대충 이 년 정도는 됐죠. 처음 본 날부터 하면.”

태주는 이제야 조금 웃었다. 물론, 유쾌하고 밝은 종류의 웃음이 아니라 쓴웃음이었지만.

“그래, 벌써 이 년인가?”

소장은 잠시 먼 곳을 바라보다가는 말했다.

“시간 참 빨라. 물론 알고 있지만.”

“그런 건 소장도 똑같이 느끼나 보네요.”

“당연하지. 남들이 느끼는 걸 내가 못 느낄 리가 없잖아? 그냥 좀 무뎌질 뿐이지.”

소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볼을 긁적였다. 잠깐의 침묵 이후, 소장은 질문을 던졌다.

“너는 익숙해졌냐?”

갑작스러운 질문. 태주는 당황해서는 되물었다.

“갑자기요? 그게 무슨 질문이에요?”

“너만 물어볼 게 있는 게 아냐. 나도 물어보고 싶은 건 있다고. 특히, 상대가 너라면 더 그렇지.”

소장의 표정은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다. 태주는 머리를 한번 긁적이고는 질문했다.

“그게 익숙해졌냐는 질문이에요? 어떤 게 익숙하냐는 말인데요?”

“이런 일. 다른 사람을 멋대로 판단하고, 조사하고, 가끔은 원하는 일을 해 주고, 가끔은 원하는 일을 안 해주면서 돕는 것.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도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일.”

태주가 아주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할 때 들었던 말이다.

“이 년 전에 들은 말이네요. 처음 제가 직접 뭔가 해냈던 그때 말이에요.”

“그래, 그때 했던 질문이지. 대답이 변했나 그게 궁금해서. 그래도 이제는 처음처럼 혼자 죄다 하려는 버릇은 많이 준 것 같으니 말이야.”

소장은 여전히 웃고 있지만, 태주는 알고 있다. 저건 평소의 웃음과는 다른 웃음이다.

소장이 제 얼굴만 보고 무슨 생각 하는지 아는 것 가지고 놀랄 게 아니다. 태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싫어도 익숙해진다, 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매번 다른 사람이 오고, 매번 다른 일을 겪다 보니 적응이 안 돼요. 괜찮은 척 정도는 할 수 있지만요. 그 사람에게 제가 하는 일은 과연 도움이 되는 걸까. 그런 의문은 늘 생기더라고요.”

내가 잘못 판단한다면 어떻게 될까. 걱정은 늘 되지만 그래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태주는 늘 그런 마음으로 일했다.

“너도 참, 어렵게 산다.”

소장은 그 이상으로 뭔가 말하지는 않았다. 그저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리고는 이어 말했다.

“네 질문은 뭐야? 이제는 내가 대답할 차례 같은데.”

생각 정리는 끝났다. 태주는 말했다.

“이번 일, 제가 분명 놓치고 있는 게 있어요.”

“그래서? 그걸 알려달라는 말이야?”

“뭐, 알려주면 좋죠. 하지만 그럴 생각 없죠?”

태주의 말을 들은 소장은 어깨만을 한번 으쓱한 뒤 말했다.

“글쎄다.”

소장은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미 했어. 사실은 처음부터 말이야. 하여튼 알려달라는 게 아니면 뭐지?”

“잘 모르겠으니까, 보험이에요. 연락하고 싶은 친구가 하나 있어요.”

“친구라.”

소장은 작게 웃었다.

“좋지.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어. 앞선 질문은 내가 대답할 수 없는 거니까, 이 정도는 해줘야지.”

소장은 그렇게 말한 뒤, 태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하나 쓰는 거지?”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 치죠.”

* * *

“생각보다 일찍 내려왔구나.”

시아의 말을 들은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의외로 소장이랑 대화하는 건 길게 끌지 않으니까요. 핵심만 이야기하는 게 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런가? 나는 소장이랑 그렇게 많이 이야기해 본 적이 없어서 말이다. 어째서인지 이야기 할 때마다 뭔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느낌이던데… .하긴, 그 앞에 서면 시간이 천천히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겠구나.”

“그것도 그렇긴 하겠네요.”

알아서 납득하는 시아를 본 태주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고는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슬슬 있을 거라 생각한 사람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어라? 월이 아직도 안 돌아왔어?”

내려온 태주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설이는 하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 왔어요.”

“이상하게 늦네. 아무리 그래도 슬슬 돌아올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늦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오늘 안에는 들어올 거라고 말해 둔 거였다. 월이가 정말로 이 늦은 시간이 될 때까지 들어오지 않을 줄은 몰랐다.

태주는 눈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연락은요? 뭐 전화라도 온 게 있어요?”

태주의 질문에 대신 대답한 건 설이 쪽이다.

“아뇨. 전화는 안 왔어요. 오히려 이쪽에서 해봤죠.”

“뭐라고 했는데?”

태주의 질문을 들은 설이는 조금 흐릿한 눈으로 말했다.

“안 받았어요.”

“음?”

태주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전화를 안 받아?”

생각도 못 해본 일이다.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네. 여러 번 해 봤는데 다 똑같았어요.”

“내가 해도 안 받더군.”

“진짜요?”

두 사람의 말을 들은 태주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전화를 걸었다. 두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바뀌면 연결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도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네, 전화기가 꺼져있다고?”

여러모로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태주는 혹시나 싶어 물었다.

“혹시 월이가 충전을 안 하고 갔나?”

“아닐걸요? 보조배터리 늘 들고 다니거든요.”

“그런 데서는 또 꼼꼼하네.”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영화관에 간 것이라면 모를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일부러 꺼뒀을 확률도 낮을 거다. 태주의 반응을 본 시아는 흠, 하고 소리를 내고는 물었다.

“지금 월이가 하고 있는 일이 시간이 조금 걸릴 종류의 일이었나? 저녁 늦게 돌아와야 할?”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럴 리가요?”

이건 되면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별 상관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시도하는 것이지 성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게 절대로 실패하면 안 되는 일이라면 애초에 다른 사람한테 맡기지 않았겠죠. 안 그래요?”

물론 될 수 있다면 알아보라는 투로 말하기는 했지만, 불법이 아닌 선에서 멈추라는 말도 했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늦을 이유가 없는데 늦고 있고, 전화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는 말이로군?”

시아가 정리한 말을 들은 설이는 잠이 확 깬 것처럼 말했다.

“어… 그럼 이거 큰일 난 거 아니에요? 이거 월이가 실종된 거예요? 진짜요?”

“설마. 몇 시간 늦는 정도로 벌써 실종 생각을 하기에는 아직 조금 일러.”

사람이 사람이다 보니 큰 걱정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이상한 일이기는 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태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조금 이상하긴 한데. 한번 찾아보러 가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제가 나갔다 올까요?”

“글쎄. 오늘까지는 기다려보자. 어차피 어디로 찾으러 가야 할지도 모르니까.”

태주의 말을 들은 설이는 졸음기 하나 없는 눈으로 물었다.

“근데 진짜 실종이면 어떻게 하죠?”

“그럼 좀 곤란하지. 같이 찾으러 가는 수밖에. 일단은 오늘 안에 돌아오길 기다려보자. 어차피 한 시간도 안 남았으니까.”

다행히도, 다 같이 정처 없이 바깥을 돌아다닐 필요는 없게 되었다.

쾅!

호랑이, 아니 늑대도 제 말 하면 온다는 듯 월이가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야! X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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