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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197화 (197/269)

19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끝없이 찾아오는 벨소리 (7)

“야야.”

월이는 앞만 보고 걷고 있는 보영을 보면서 말했다. 표정이 실실 웃는 채다. 건수를 잡았으니 웃음이 안 나올 수 없다.

“말 좀 해보시지? 자기가 악질 스토커가 아니라고?”

안 그래도 낮에 스토커 취급을 했다는 이유로 엄청 까인 참이다. 그런데 그 날 바로 복수할 만한 권한을 얻어버렸으니 유난히 통쾌하다.

지나가던 사람이 뒷모습만 보더라도 웃고 있는 걸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 월이는, 평소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사람을 놀려먹기 시작했다.

“저기, 무슨 기분? 오늘 자기가 무슨 악질 스토커냐고 나를 그렇게 갈궈놓고 나서, 본인이 정말로 악질 스토커라는 게 발각되면 대체 무슨 기분?”

문제는 저런 의기양양한 모습에 반박할 말이 전혀 없다는 거다. 보영은 잠시 입을 앙다물고 있다가 한마디 했다.

“…저쪽에서 따라오라고 판을 깔아둔 거였으니까 암튼 내 탓은 아니야.”

“와, 비겁한 변명!”

놀라울 정도로 맞는 말이다. 본전도 건지지 못한 기분이 된 보영은 다시 눈을 앞으로 돌리고는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며? 따라오라고 판을 깐 거니까 내가 따라간 건 잘못 아닐 거야. 아마.”

“‘아마’? 지도 아니라고는 말 못 하니까 말끝에 덧붙이는 거 봐?”

“너 이상하게 오늘따라 날카롭다?”

보영은 결국 반박하기를 포기했다. 월이는 계속 싱글벙글 한 채로 말했다.

“뭐, 됐어. 놀려서 어쩌겠어. 스토커한테 스토커라고 하는 건 놀리는 게 아니잖아? 그냥 나쁜 짓이지. 바보가 아닌 사람한테 바보라고 하는 건 괜찮아도 진짜 바보한테 바보라 그러면 나쁜 짓이잖아. 안 그래?”

“나쁜 짓이라 생각하는 거면 놀리지나 말던가.”

보영은 고개를 홱 돌렸다. 월이는 장난은 어쨌든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이러다가는 채연의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 이런 말만 하게 생겼다. 놀릴 때 놀리더라도, 중요한 질문은 해야 한다.

“그래서, 왜 그랬어?”

“또 놀리냐?”

“아니. 나름 진지한 질문이야. 나는 솔직히 너를 스토커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긴 한데 악질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일단은 말이야.”

최소한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의 뒤를 밟는 선택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 믿는다. 월이가 지금까지 본 보영은 그런 사람이다.

“나는. 솔직히 네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해.”

“야, 아무리 그래도 이상한 사람이라니.”

“네가 안 이상하다고?”

“쯧, 이상하긴 하지. 솔직히 그래.”

불만스럽게 말하면서도 결국 빠른 수긍을 한 보영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이어서 말하면 나는 그렇게 생각해. 만약 네가 앞으로 사람을 조사하지 않겠다고 말하면 믿지 않겠지만 그냥 완전히 재미로 사람을 미행했다는 말도 안 믿어.”

월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네가 따라오는 거 알면서도 말 안 했던 거고. 어쨌든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네가 스토커긴 해도 이유 없이 사람 뒤를 밟을 정도까지 악질은 아니니까.”

월이는 입맛을 한번 쩝 하고 다신 뒤 말했다.

“태주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지만.”

결국 굳이 보영을 눈감아 준 것은 크게 의미는 없었던 셈이다.

“나 따라오는 걸 알고 있었다고?”

“그야 알지. 내가 너 따라오는 거 하나 눈치 못 챌까 봐? 심지어 설이도 말 안 해줘도 알고 있는 것 같던데.”

월이의 설명을 들은 보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러모로 충격이다.

“미행 실력을 늘려야 하나? 이걸 근데 어디서 연습할 수도 없고.”

“뭐 그딴 걸 연습하고 그래…? 어쨌든 그래도 우리는 신경 안 쓰기로 했어. 그렇게 알아낸 걸로 나쁜 짓 하진 않을 거라는 점은 믿고 있거든. 그래도 이유는 들어야겠어. 왜 그랬는지 말이야.”

나도 나름 의리를 지켰으니 너도 나름 의리를 지킬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그런 월이의 눈빛을 본 보영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이유인가….”

보영은 살짝 말하기 어려워하는 태도로 말했다.

“말하기 좀 그런데.”

“야,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그렇게 넘어갈 생각은 아니지? 말해! 괜히 빙빙 돌리지 말고, 나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게!”

보영은 조금 입을 삐죽거렸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현행범으로 잡힌 입장에서 딱히 더 할 말은 없다.

“말하는 건 뭐… 사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지만. 엄청 숨길 일도 딱히 아니고.”

그래도 말하기 싫기는 한 듯 보영은 한숨을 쉬었다.

“그냥, 느낌이 이상했어.”

“뭐? 느낌이 이상하다고 스토킹을 했단 말이야?”

월이는 눈을 찌푸리고는 물었다. 보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 줄 알아서 그랬던 건데.”

보영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는 말했다.

“그냥 느낌이 이상하다고 스토킹을 한 건 아니고… 그 뭐랄까, 직감 같은 게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평범한 느낌이 아니라 강한 확신 같은 거였는데.”

“뭔가 이상한데.”

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겠지. 내가 평소에 하던 태도가 아니니까 말이야. 너도 알겠지만 나는 어지간하면 느낌을 근거로 해서 행동하지는 않아. 저녁 메뉴 고르는 정도의 일이 아니면 즉흥적으로 느낌 따라 행동하지 않으려 하지. 나는 그런 즉흥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보영은 볼을 몇 번 긁적이다가 포기한 듯 말했다.

“이런 강한 느낌을 이전에 두 번 정도 받았단 말이야.”

“두 번?”

“정확히는 이번이 세 번째겠네. 처음으로 느낀 건 그 영화부 애들이 한창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있을 때였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한 상황이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때는 이 감각이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했어. 우연히 이런 느낌이 들었고, 다른 사건이 터진 거라고. 그런데 한 번 더 있었지. 나이 많은 조수 후보를 구하게 된 계기 말이야.”

그때도 지금과 같은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의 우연은 그래도 아직 가능한 영역이라고, 보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세 번째야.”

만약 이 기묘한 느낌이 그냥 컨디션 따라 우연히 느껴지는 게 아니라면 어떨까.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파악한 어떤 사건이 있을 때 이런 느낌을 받는 게 아닐까.

“그럼, 이 느낌 자체가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거잖아?”

보영은 그런 생각이 들고 말았다.

“이런 느낌이 들었던 때마다 그래. 그럴 때마다 너네랑 엮이고,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그러더라고.”

처음부터 괜히 떠본 건 아니었다고, 보영은 투덜거리듯 말했다.

“그렇단 말이지?”

월이는 역시, 이유가 있었다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세 번째도 맞다면 어떻게 할 거야?”

“세 번째도 맞으면?”

보영은 어깨를 으쓱한 뒤 말했다.

“그럼 혹시 나는 사건을 몰고 다니는 주인공이 아닐까?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농담이야.”

보영은 월이의 눈을 보고는 황급히 덧붙였다.

“그래도 진지하게 내 직감에는 뭔가가 있다는 정도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결국 내가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조금은 알 수 있다는 말이니까. 일종의 직감 같은 것… 이 아니라 그냥 직감이라고 해야겠네.”

다만 이걸 스스로 말하기에는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다.

“내가 이런 근본 없는 근거에 의존해야 한다니.”

보영은 마치 잘못 짠 코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지켜본 실력 없는 개발자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전히 내가 그런 거미센스같은 게 있을지는 긴가민가하긴 한데 말이야.”

보영은 눈을 찌푸렸다.

“그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수상한, 기묘한 오빠랑 만난 거 보면 진짜 내가 그런 이상한 센스가 있는 건지도 몰라.”

보영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콕 집어, 뭐? 뭐가 그렇게 긴 거야? 어쨌든 태주 말하는 거지?”

월이는 그렇게 말한 뒤 어깨를 으쓱했다. 태주가 상대를 열 받게 할 때 어떻게 했더라. 월이는 말투를 최대한 따라 하며 말했다.

“어쨌든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이.”

“야!”

보영은 짜증 난 듯 말했다. 월이는 히히 웃고는 앞으로 먼저 쭉 걸어갔다.

“아무렴 어때? 그게 착각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떤데? 그런 생각은 나중에 해도 되잖아?”

월이는 단순하게 말했다.

“그게 맞는지 아닌지는 이번에 보면 알 수 있겠지. 안 그래? 그러니까 그냥 그 채연인지 뭔지 하는 친구 얼굴이나 좀 보러 가자고. 걔가 괜찮은지 잘 모르겠으니까 말이야.”

보영은 조금 멍한 눈이 되었다. 이 친구는 가끔씩 이런 핵심을 찌르는 말을 한다. 월이는 자기가 생각해도 좋은 말을 했다는 듯 엄청나게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맞는 말을 의기양양하게 한 건 좋은데 방향이 틀렸거든?”

“앗.”

월이는 자연스럽게 뒤로 빙글 돌았다. 보영은 정말로, 어쩔 수 없다는 듯한 그런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쪽으로 가야 해. 아마 한 십 분 정도 더 걸으면 될 거야.”

* * *

째깍, 째깍. 시곗바늘이 움직인다. 평소에는 들리고 있는지도 몰랐던 그런 작기만 한 소리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잘 들린다.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소음. 듣다 보면 불안해진다.

“듣고 싶지 않아.”

도저히 더는 견딜 수가 없었던 채연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서는 시계 뒤에서 건전지를 빼냈다.

손톱이 짧아서인지, 마음만 급해서인지 건전지는 잘 빠지지도 않는다. 어떻게든 낑낑대며 빼고 나니 건전지가 바닥 저 멀리로 튕겨 날아가 버렸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건전지를 주우려다가, 채연은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이미 너무 멀리 굴러갔다. 어차피 다시 끼울 생각도 없다. 절대 다시 끼우지 않을 거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이제는 조금 조용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기대는 무너졌다. 시계 소리가 나지 않아도 소리는 조금씩 들린다. 밖에서 오토바이가 경적을 울리는 소리나, 주변 학교의 종소리가 들린다. 이래서야, 시계의 건전지를 뺀 것이 의미가 있었나 싶다.

“피곤해.”

채연은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며칠 전부터 채연은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불안해서 그런지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계속 귓가에 그 주문 같은 말이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 도와준다던 그 사람의 말대로 하면 될 거다.

하지만, 언제 올지 모를 전화를 계속해서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꽤 힘든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머리가 아프고, 피곤하다.

“싫어.”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중얼거릴 정도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은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다. 결국 채연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계속해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전화가 온다. 또 다시, 전화가 오는 건가. 아직 올 때가 아닌데? 채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핸드폰 전화는 아니다. 집 전화도 아니다.

“인터폰?”

설마 이제는 이런 거로도 전화가 오나. 채연은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는 조심스럽게 바깥으로 향했다.

다행이게도, 채연은 인터폰의 화면에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걸 확인했다.

“…여보세요?”

[네! 거기 이채연 학생 집 맞나요? 저희 같은 학교 학생인데요!]

낯선 목소리, 그러나 익숙한 교복이 보인다. 딱히 용무가 있을 사람은 없는데, 누구일까.

“누구세요?”

[그, 뭐냐… 그냥 같은 학교 학생이요? 잠깐 이야길 할 수 있을까요?]

채연은 눈을 찌푸렸다.

“저희 학교 학생은 맞아요?”

이상한 사람이 찾아오면 무시하라고 했다. 채연은 진지하게 전화를 그냥 끊을까 고민했다.

[야야, 안 되겠다. 그냥 헛소리하지 말고 나와. 내가 이야기하는 게 낫겠어.]

처음 보는 여자애의 뒤에서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문이나 좀 열어. 나 알지?]

“너…”

채연은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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