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끝없이 찾아오는 벨소리 (4)
하교하기 직전의 학교는 늘 시끌시끌하다. 하지만, 오늘은 유난히 좀 더 시끄럽다. 월이는 무심코 말했다.
“정문 쪽이 묘하게 시끄럽네.”
“정문?”
“또 뭐 학원 수강생 모집 행사 같은 거라도 하는 거겠지. 별 거 아닐 거야.”
월이는 별로 관심 없다는 듯 말했다. 설이는 뭔가 흥미로워하는 눈빛이 되어서는 물었다.
“학교 정문에 뭐가 있다고?”
“으응, 아니 아직 뭐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몰라. 그냥 조금 시끄러운 느낌인데.”
“이유 없이 시끄러울 리가 없잖아!”
설이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월이를 재촉했다.
“가보자, 빨리. 궁금하단 말이야.”
설이는 눈을 빛냈다. 은근히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은 친구다. 그래 봐야 분명 별 거 아닐 게 분명한데. 월이는 귀찮은 표정으로 설이를 따라갔다.
복도를 거쳐, 계단을 따라 내려가고, 신발장 앞을 순식간에 흘러간 설이는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기묘한 표정이 되어서는 뒤를 돌아본 설이는 물었다.
“…저거 오빠 아냐?”
“오빠? 태주 말하는 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지만 진짜야. 아무리 봐도 오빠처럼 생긴 사람이 저기 있어. 저게 오빠가 아니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인걸.”
설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정문 바깥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걔가 왜 우리 학교 앞에 있어? 그냥 비슷한 사람 아냐?”
월이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말하고는 설이가 가리킨 방향을 쳐다봤다.
“뭐야?”
진짜 있다. 그것도 눈에 띄게 긴 코트를 입고 앞에 서 있다. 주변 사람들이 슥 한번 훑어보고 난 뒤 웅성거리면서 흩어질 정도로, 태주는 대놓고 교문 앞에 서 있다.
월이는 마치 만화 속의 고양이처럼 놀랐다. 똑같은 말을 더 크게 하면서, 월이는 펄쩍 뛰었다.
“뭐어야!!”
꽤나 큰 목소리다. 하교 중이던 주변 학생들이 깜짝 놀랐지만, 월이는 개의치도 않고 빠르게 앞으로 달려가서는 말했다.
“…왜 네가 여기 있어? 여긴 우리 학교라고!”
“그렇겠지. 너희 기다리는데 너희 학교가 아닌 데서 기다리면 이상하잖아?”
당당한 태주의 말에 월이는 수긍하고 말았다.
“그건 그래.”
“내가 어쩌다 한 번 마중 나올 수도 있는 거 아냐? 나라고 늘 사무소 안에만 있어야 해?”
“평소에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으면서.”
월이는 입술을 삐죽거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와서는 안 될 이유는 없다. 그저 말도 없이 와서 놀랐을 뿐이다.
뒤따라온 설이가 와서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사무소는 어쩌고요?”
“거긴 지금 누나가 있으니까 상관없어.”
“어, 시아 언니 혼자 있는 거예요?”
“그래. 아니, 혼자가 아니지. 아직은 손님이랑 있을 거야.”
태주는 말을 살짝 정정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잠시 알아보고 싶은 게 생겨서 말이야.”
“알아보고 싶은 것이요?”
“응.”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알아내기가 조금 어려울 것 같더라고.”
설이는 표정이 조금 흐려졌다. 태주가 직접 나설 때마다 조금 복잡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을 하려고 마중까지 나오신 거예요?”
“한 번쯤 올 수도 있지 뭘? 그나저나, 그대로 출발하면 될까? 아니면 뭐 준비가 필요해?”
태주의 질문에 월이가 손을 들었다.
“가방 놓고 갈래.”
“…멀리 가는 건 아닌데. 하긴, 그래도 불편한 것보다는 그게 낫나? 그럼 가방 놓고 돌아와.”
월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이 가방까지 챙겨서는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야.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된다니까.”
저렇게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나. 하지만, 저리 뛰어가는 건 할 마음이 있다는 것이니 나쁘지 않다. 태주는 조금 웃었다.
“오빠.”
“왜?”
설이는 태주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굳이 저희 학교 앞까지 찾아와서 기다리시는 이유가 뭐예요? 저희가 사무소 안에서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가 있는 건가요? 아니면 만나면 안 되는 사람이 있거나?”
조금 놀랍다. 태주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설이를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꽤 눈치가 빠른데.”
“당연하죠! 평소 같으면 그냥 저희가 올 때까지 기다렸을 거 아니에요? 아니면 그냥 급한 일이 있었던 거라면 그냥 혼자 움직이셨을 거고요.”
설이는 조금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 정도 사실로 여기까지 알아낸 게 자랑스러웠던 걸까. 태주는 조금 미소지었다.
“정확하네. 둘 다 맞아. 하지만 일단은 후자 쪽에 가까워. 지금 만나면 별로 좋을 게 없달까.”
괜히 이쪽까지 온 이유는, 물론 한 가지 정도는 더 있다. 하지만 그건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니다.
설이는 그 외에 의문은 아직 없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으음, 신기하네요. 만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건 처음 들은 거 같은데… 혹시 만나면 안 되는 사람이 혹시 손님인가요?”
설이는 고개를 기우뚱하고는 물었다.
“그래. 이채연이라는 사람인데, 너희 학교 학생 같아. 유명한 사람이야?”
태주는 으레 하는 질문을 던졌다. 설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데 그 이름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잠깐만요?”
“뭐? 들어 본 것 같다고?”
“네!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아요. 오늘 들은 것 같은데. 언제 들었더라?”
태주는 다시 한번 손님의 이름을 말하면서 물었다.
“정확히 이채연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게 맞아?”
“기억에 남아있어요. 으음….”
설이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기웃하다가는 말했다.
“아! 생각났다!”
설이가 그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월이가 돌아와서는 물었다.
“뭐가 생각나?”
정말로 엄청나게 빨랐다. 혹시 날아서 갔다 왔나 싶은 속도다. 설이는 그런 월이를 보고 태연하게 말했다. 평소에 월이는 저런 속도로 학교를 뛰어다니는 건가. 태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그 우리 점심에 그 이야기 했었잖아? 갑자기 뒤에서 보영이가 나타나서 했던 이야기.”
“아아, 그거?”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해외여행 갔다가 학교 안 나오는 애 이야기였던가? 그냥 대충 넘긴 이야기였는데.”
이름만 들어본 수준이 아니다. 태주는 깜짝 놀라 물었다.
“그 이야기를 오늘 했다고? 다른 날도 아니고, 오늘?”
“어어, 네. 다른 것도 들었어요. 아마 해외에서 돌아온 지가 일주일 정도 되었다던가? 그랬을 거예요.”
“그것도 정확하네.”
태주는 잠시 생각하다가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것도 보영이라는 친구가 알려준 거야?”
설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가 소근소근 말하자 분위기를 읽은 것이다. 태주는 마주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잠깐, 근처 카페로 좀 가볼까? 이야기를 좀 하자.”
원래 가려던 곳은 다른 곳이지만, 상관은 없다. 어차피 급한 일은 아니다. 지금은 일단 이 이야기가 먼저다.
“천천히, 남의 커피나 좀 마셔 보자고.”
* * *
역시 남의 가게가 널찍하니 좋다. 태주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대부분 본인이 말한 것과 일치하네. 하지만, 너희도 그 이상은 모르는 거지?”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영이에게 들은 건 결국 그 정도가 다였다.
“네. 애초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자세히 들을 걸 그랬어요.”
아쉽다는 듯 말하는 설이를 본 태주는 말했다.
“뭐, 그건 당연한 거지. 그런 상황이었으면 나도 더 자세히는 안 물었을걸? 게다가, 그것만 가지고도 꽤 도움 되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렇게 낙담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이래저래 얻은 게 꽤 많다. 태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틈을 타 월이가 물었다
“중요한 이야기는 다 한 거야? 생각보다 오래 안 걸렸네?”
월이는 지루하다는 표정을 숨기지도 않고 말했다.
“생각보다 오래 안 걸렸는데 표정이 그래?”
“오래 안 걸렸어도 지루한 건 지루한 거야. 오래 걸려도 안 지루한 것도 있잖아? 그거의 반대 버전이지 뭐.”
월이는 크게 하품을 한 번 하고는 물었다.
“그럼 나머지 이야기는 돌아가서 하는 거야? 애초에 이렇게 이야기만 할 거면 돌아가서 하는 게 좋았을 것 같은데. 왜 굳이 여기까지 온 거야?”
월이는 태주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뭐, 별 것 아닌 이야기지만 이 과정이 중요하거든. 밖에서 할 필요가 있었어.”
태주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뭐가 남았단 말인 거지?”
“그래.”
생각하고 정리하는 것 외에 다른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태주의 대답을 들은 월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럼 한참 더 앉아 있어야 하는 건가… 그럼 나 그럼 뭐 하나 더 시켜도 돼?”
월이의 질문을 들은 태주는 뭐, 아무렴 어떤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월이가 옆으로 쪼르르 걸어왔다.
“갑자기 뭐야?”
“여기서 만들기 제일 귀찮은 게 뭐야?”
월이는 태주에게 소곤소곤 물었다. 태주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걸 기준으로 시키는 거야?”
“안 먹어본 거 먹고 싶은데 네가 요즘 안 만들어 주니까. 귀찮다고 말야.”
월이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태주 입장에서도 변명할 거리는 있다.
“네가 바쁠 때만 오잖아. 이번 달 내내 고통받은 거 너도 봤으면서.”
태주의 불만 섞인 말에 월이는 똑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그러니까 이번에는 너한테 부탁 안 하고 여기서 시키려는 거 아냐.”
의외로 맞는 말이다. 태주는 알바생에게 속으로 사과한 뒤 대충 말했다.
“그럼… 블렌더를 쓰는 음료수를 고른 다음에, 거기에 초코칩을 추가해. 초코칩도 함께 갈아달라고 부탁하고.”
태주는 속으로 알바생에게 사과했다. 아마 하루종일 이런 주문만 들어온다면 사장은 웃고 알바생은 울 거다.
“블렌더를 쓰는 음료수에, 초코칩을 넣고 갈라 그거지? 오케이!”
월이가 내려가려는 찰나, 태주는 잠시 월이를 멈춰 세웠다.
“아참, 그리고 네가 뭘 시키든 간에 그거 두 잔 시켜. 알겠지?”
“응? 그래!”
태주의 말을 들은 월이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주문을 하러 갔다. 태주는 슬쩍 웃었다.
“그런데, 오빠.”
설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주 작은, 그런 소곤소곤하는 목소리로 한 질문이다.
“지금 일부러 내버려 두고 계신 거죠?”
일부러 내버려 뒀다. 뭘 뜻하는지는 너무 잘 안다. 태주는 마찬가지로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럼, 슬슬 해야 할 일을 해야지. 태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보면, 이 층에 다른 테이블에는 사람이 앉아 있지 않다. 그럼 정답은 사실상 하나뿐이다.
태주는 천천히 걸었다. 태연하려고 애쓰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혼자만 있다면 너무 눈에 띈다.
태주는 근처 구석 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한 여학생 앞에 멈춰 서서는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놀라고 당황한 표정에, 낭패가 섞여 있다. 태주는 씩 웃고는 말했다.
“보영 씨 맞죠? 잠깐 이쪽으로 오실래요? 제가 궁금한 게 조금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