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끝없이 찾아오는 벨소리 (1)
“지친다….”
교무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월이는 한숨을 푹 쉬었다. 옆에 있는 설이도 지친 건 마찬가지다. 월이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놀다가 학교 늦은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걸 말할 수는 없잖아….”
설이의 당연한 지적에 월이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나도 알아.”
어느새 가을이다. 개학을 하고도 꽤 시간이 지났다. 월이는 눈을 찌푸렸다.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된다니, 세상은 불합리해.”
월이의 중얼거림에 어느 순간부터 옆에 있었던 보영이 물었다.
“그래? 솔직하게 말하면 무슨 이유였는데?”
“그걸 말하면 비밀로 하는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근데 넌 또 언제 나타났냐?”
갑자기 뒤에서 나타났기에 놀랄 법도 하지만, 사실 이제 와서는 새삼 놀랍지도 않다. 언제 어디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바로 이 친구다.
“나도 기다리고 있었지, 너희 나올 때까지. 아무래도 조금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너희가 단서가 될 것 같아서.”
월이는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잘 모르면서 일단 우리 찔러보는 건 슬슬 그만해도 되지 않냐?”
“일단 찔러봤는데 10퍼센트 확률로 관련이 있으면 무슨 일이 터지든 그냥 찔러볼 만하지 않을까?”
“몰라. 아홉 번 정도 억울하게 찔린다는 말이잖아.”
“진짜 아픈 것도 아니면서.”
후후, 하고 보영은 웃었다. 그 웃음을 본 월이는 조금 더 일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인지 옛날보다 행동반경이 더 넓어져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뭐의 단서를 찾으려는 건데? 또 뭐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재미있는 이야기냐 하면 그건 아니야.”
보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싶은 이야기가 하나 생겨서 말이야.”
‘재미있는’이 아니라 재미있을 ‘지도’, ‘있다’가 아니라 ‘생겼다’. 그 말의 뉘앙스 차이를 눈치챈 설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생겼다고?”
“응. 너희 말고도 학교에 안 나온 사람이 또 있거든. 이채연이라는 사람인데, 이쪽은 이제 슬슬 일주일이 다 되어 가.”
“일주일이면… 그리 안 긴 거 아냐?”
월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보영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랑은 다르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유 없이 학교를 일주일씩 안 나오지 않아. 아니, 뭐 너희도 이유 정도는 있긴 하겠지만. 그 사람은 너희랑 다르게 이전까지는 학교에 그냥 잘 다니던 사람이거든. 다른 이유도 없어. 그냥 해외여행을 갔다 왔다는 것 정도야.”
“해외여행이라고? 그럼 못 오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월이의 질문에 보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갔다가 왔다고. 이미 한국에 있을 거야. 말했잖아? 일주일이 다 되어 간다고. 돌아온 건 일주일 전이야.”
“음?”
월이는 조금 고개를 갸웃했다. 해외에 있어서 못 오는 게 아니라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일주일이나 학교에 안 오고 있다는 말이라면, 그건 조금 이상하다.
“그래. 너도 이제 알겠지? 이게 왜 이상한 이야기인지 말이야. 네가 봐도 조금 이상한 이야기일 거야.”
“왜 학교에 안 나오는 거야?”
설이의 질문에 보영은 나도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걸 몰라. 일단 이야기로 들은 건 ‘해외여행 이후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아서’가 이유라고 하더라고. 사람에 따라서는 시차 적응 과정을 엄청나게 끔찍하게 느끼기도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한데….”
그렇다면, 쉴 만한 이유가 된다. 당장 성적에 급한 부분이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억지로 좀비처럼 학교에 앉아있기만 할 바에는 그냥 푹 쉬고 오는 편이 나을 수도 있고.”
그러니 그런 사람이 무리해서 학교를 나가야 할 이유는 없다. 컨디션 난조로 인해 학교에 오지 못한다고 해도 그렇게 어색하거나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처음에 학교에 안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러려니 했지.”
시차에 조금 타격을 입었다면 오히려 집에서 쉬는 편이 더 합리적인 선택지다. 처음 며칠동안은 그리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다.
“하지만 일주일은 좀 길어. 그저 ‘컨디션이 좋지 않다’라는 이유로 쉬기에는 좀, 문제가 있어 보이지?”
처음에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 기간이 길어지고 보니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네.”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선 타고 화성이라도 갔다 온 게 아니라면 일주일이나 시차 적응에 필요하다는 말은 납득하기 힘들다.
다만, 정말로 병 같은 것 때문에 몸이 안 좋을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기에 정말로 이게 이상한 일인지는 확신이 안 선다. 보영 역시 비슷한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던 듯 말했다.
“뭐, 말은 이렇게 했지만 높은 확률로 별일은 아니겠지. 너희도 완전히 처음 듣는 이야기인 걸 보면 그럴 확률이 좀 더 높아 보이네. 채연이라는 이름에도 반응이 없고.”
보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혀를 한번 찼다.
“역시, 별 일 아닌가. 으음,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영….”
“그러니까, 그만 찔러 보라니까.”
월이는 질색했다.
“그런데 해외라면 어디를 갔다 온 거래?”
설이는 눈을 깜빡이고는 물었다.
“그것도 지금은 몰라. 알아내려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일부러 알아보지 않았어. 아직까지는 말이야.”
“왜?”
설이의 질문에 보영은 당연하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뭐? 그야 방학 중에 다른 학생들이 겪은 일까지 알고 있으면 나는 그냥 질 나쁜 스토커잖아.”
월이는 미묘한 표정이 되었다. 그 표정을 본 보영은 눈을 찌푸리고는 물었다.
“뭐야 그 표정은. 내가 질 나쁜 스토커라도 된다는 말이야?”
“어? 어,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긴 한데.”
월이는 변명하듯 말했다. 사실 맞잖아, 하고 뭐라 불평하기에는 지금까지 도움을 받은 게 너무 많다.
다만, 그 태도를 숨기지는 못했다. 보영은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정도는 뻔히 보인다는 태도로 말했다.
“일단 그 이야기는 좀 자세하게 들을까? 마침 지금 시간대가 딱 좋은 것 같은데.”
망했다. 월이는 눈동자가 흔들리고, 설이는 어색하게 웃었다.
“자세하게, 한번 꼭 들어보고 싶은걸?”
* * *
“아이들은 학교로 가고… 우리는 갑자기 한가하구나.”
시아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게요. 솔직히 말하면, 갑자기 이러니까 조금 질릴 정도예요.”
태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이전 한 달 정도를 바쁘게 살아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용을 처리하고 나서 며칠 동안은 꽤 일이 많았다. 단순히 건물 붕괴에 대한 걸 적당히 넘기는 행정적인 차원의 일이나 그 장소에 제대로 된 극장을 다시 짓는 것 같은 자금 흐름 관련한 일까지도 조금은 하게 되었으니 정신이 없었다.
대부분 소장이 하기는 했지만 공식적인 서류 관련 일에는 두 사람이 조금 끼어들어야 할 필요는 있었다.
“다 알아서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대체 왜 우리 도움을 필요로 한 건지.”
시아는 조금은 불만스럽게 말했다. 태주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뭐, 돈이 아무리 많아도 건물 짓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배웠네요.”
태주는 떠올리기만 해도 싫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시아는 작게 웃었다.
“그걸 처음부터 몰랐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려울 것 정도는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어쨌든, 그 일도 이제는 대충 끝났으니까요. 나머지는 저희가 할 일이 아니죠.”
극단의 사람들과 건설업체 쪽이 나머지는 알아서 할 거다. 권리만 있고 아는 건 하나도 없는 외부자가 끼어들어 봐야 좋을 게 없다.
다만, 정작 그 바쁜 일이 끝나고 나니 또 이번엔 다른 종류의 일이 있다.
“자, 그럼 이제 우리가 처음 걱정하던 부분을 다시 이야기해야 할 차례 같은데요.”
태주는 커피를 두 잔 내리면서 말했다.
“그렇지.”
사실은, 그런 걱정을 했었다. 언제 전능이 찾아올지 모른다. 소장을 찾으러 이곳으로 올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 소장 말대로 되는 게 좀 열 받네요.”
태주는 커피를 홀짝이면서 말했다.
“위치가 대충 들키긴 했을 테지만 그렇게 급하게 준비할 필요는 없다고 했던가요?”
언젠가 분명히 올 것이지만, 그래도 급하게 오지는 않을 거라고, 어차피 몇백 년씩 살아가는 녀석들은 시간 감각이 이상하기 마련이니 한 달 뒤에 오더라도 엄청나게 서두른 거라고 소장은 말했다.
“정말 그랬죠.”
“그랬지.”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한 달 동안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일이 아예 없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지만, 월이 혼자 가서 몇 번 때려주고 눌러주면 끝나는 일들 정도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누가 봐도 전능과는 상관이 없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하게 이상한 정도의 이야기 몇 개만 흘러들어왔을 뿐이다.
“하긴 용도 여기 찾아오는 데 몇 달은 걸렸죠. 말은 흡혈귀가 없어지자마자 바로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태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동안 전능은 머리털 하나 보이지 않았다. 곤란한 일이다. 아니, 실제로 나타나면 더 곤란하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잘 됐지. 간만에 찬찬히 생각할 시간이 있으니 말이다.”
시아의 말을 들은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은 동감이다.
“마지막 하나가 남았죠?”
용도 흡혈귀도 이제는 없다. 소장의 말대로라면 마지막 하나만이 남은 셈인데. 그게 무엇인지 소장은 이미 말했다.
시아는 한마디를 툭 던졌다.
“사람이라 했던가.”
“사람이라고는 해도 분명히 평범한 사람은 아니겠죠.”
“그렇겠지.”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일까. 뭘 하는 사람일까. 당장은 모른다. 소장은 그것만은 자신도 잘은 모른다면서, 입을 열지 않았다.
“정말 모르는 건지, 아직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확실한 건, 그것이 무엇이든 준비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전까지 해야 할 일은 똑같다. 하던 대로, 자기들이 잘 하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를 갈고 닦는다.
“뭐, 말은 쉽지만요.”
태주가 그런 말을 한 직후, 문이 열렸다.
딸랑—
“안녕하세…요?”
조금은 긴장한 모습으로 손님이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태주는 인사와 동시에 손님의 모습을 살폈다. 익숙한 복장이다. 익숙하지 않을 리가 없다.
“어라.”
월이와 설이가 평소에 입고 다니는 것과 같은 교복을 입고 있다. 누군지는, 왜 왔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미 그 복장만 봐도 조금 반가운 마음이 든다.
태주는 조금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다만, 반가운 것과 이상한 것은 다른 문제다. 태주는 시계를 한번 슬쩍 본 뒤 물었다.
“아직 학생이 여길 올 시간대는 아닌데요.”
낮 두 시. 다른 사람들이 왔다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지만 하필이면 이곳에 온 사람이 아주 평범해 보이는 학생이다.
심지어 오늘은 주말도 아닌, 평일 오후다. 그것도 점심시간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일 그런 시간대.
“그만큼 급한 일이 있으셨던 걸까요? 아니면 급하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일이 있으셨던 걸까요?”
“으음, 급하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긴 한데요.”
여학생은 조금 우물쭈물하는 태도로 말했다.
“찾는 사람이 있어요.”
“찾는 거요?”
태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뭘 찾으시죠?”
“으음, 일단은… 사람일까요?”
“사람이요?”
시아는 뒤에서 조금 눈을 찌푸렸다. 태주 역시, 비슷하게 경계하는 마음이 조금 들었다. 태주는 조금은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는 원래 사람 찾는 곳이 아닌데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여기가 아니면 못 찾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태주는 잠시 생각했다. 지금 상황이 여유롭지는 않지만, 굳이 힘든 사람을 내칠 정도도 아니다.
“음, 일단 들어오세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제 이름은….”
여학생은 조금 우물쭈물하다 대답했다.
“채연, 이채연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