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오래된 용 (20)
“이야기, 뭐 한 게 있나요?”
태주는 물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하는 질문이다. 소장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 보다시피 이렇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하겠어?”
다들 아직 완전히 널브러져 있다. 원하는 장소에서 녹초가 된 채로 내키는 대로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모습이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이었다면 절대로 이런 모습일 리 없다. 태주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좀 하고 있지 그랬어요?”
“어떻게? 어차피 네가 없으면 이야기가 시작이 안 되는데.”
소장은 천천히 말했다.
“용이 나에게 물었던 것, 너희가 나에게 묻고 싶은 것. 사실은 전부 하나야. 이번에 왜 나는 너희들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이런 짓을 했을까. 대답을 하려고 해도 네가 없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잖아?”
소장은 웃었다.
“한 가지 말해 두자면, 나는 이번에는 너희가 질 줄 알았어.”
“엉?”
멀리서 월이가 도저히 듣고 넘길 수 없다는 듯 반응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표정이 되었다.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질 줄 알았다 말하는 것을 그리 쉽게 간단히 넘길 수는 없다.
“뭐라고요?”
“말 그대로야.”
소장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지는 게 더 말이 되잖아? 상대는 용이야. 그것도 그중에서 가장 강한 것이지. 너희에게 지금 지기는 했어도 어디까지나 방심했기 때문이지. 철저한 준비가 있었어도 그건 사실이야.”
월이는 부정하지는 않았다. 엄청나게 싫은 표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럼 왜 안 도와줬어요?”
“도와주면 의미가 별로 없어서.”
소장은 웃고 있지만, 눈만은 웃지 않았다.
“전능의 부하를 상대로, 그리고 힘만이라면 가장 강한 상대를 대상으로 해서 너희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했어. 누가 봐도 질 것 같은 대상을 상대로 해서, 너희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소장의 말을 들은 모두가 말을 잃었다. 태주와 용을 제외하고는 그랬다.
“내가 이기더라도 상관없었다는 말인가?”
힘없이, 용은 물었다.
“그래. 아예, 너와 타협하고 협력을 하는 것도, 너에게 패배해 지거나 이기는 것도. 어느 쪽이 되든 그 결말을 보고 싶었다는 말이야.”
소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놓고 물었다.
“그나저나, 그런 식으로 지고 나니까 기분이 어때? 불쾌하고 그런가?”
“나쁘긴 하다, 만 불쾌함의 종류가 좀 다른 느낌이군.”
“아마 중간에 적당히 항복했으면 그렇게는 안 됐을 텐데.”
“그럴 바엔 죽고 말지.”
용은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그럴 거라 생각했어. 예상대로라 다행이네. 상대가 너라면, 어떻게 해도 그 애한테 이야기가 가지 않았을 테니까. 내 생각대로 되든, 되지 않든 말이야.”
흡혈귀라면 이 이야기가 나온 순간 보고를 했을 것이다. 다른 한 녀석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가 용이기에, 소장은 이런 테스트를 할 수 있었다.
“자, 그럼 다들 슬슬 궁금하겠지. 내가 왜 이번 일의 결과를 몰랐는지 말이야.”
소장은 그렇게 말한 뒤, 쓰러진 용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나랑 처음 만났을 때, 하나 물어봤었지. 내가 너한테 전능을 이길 방법이 있다는 말도 하기 전에 한 질문 말이야.
용은 천천히 말했다.
“그때. 분명 도망치는 녀석이, 뭐 하러 집단을 만들었냐고. 그런 걸 물었던가.”
“그래. 참 이상한 일이지.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일부러 안 했어. 왜냐하면, 그게 굉장히 핵심적인 질문이었거든. 그 시점에는 대답해서는 안 되는 종류의 질문 말이야.”
소장은 자기 입으로 말했다.
“도망을 치려면 사실 혼자가 좋아. 쫓는 쪽은 인원이 많을수록 유리하지만, 숨고 도망치는 쪽은 수가 적을수록 좋지.”
그런데도 용의 표현을 빌리면 굳이 무리를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명백히 이상한 일이다.
“물론, 숨기는 했지. 누구 하나는 꼭 사무소에 있어야 한다는 규칙이 왜 있었겠어?”
그 규칙을 지킨다면, 사무소의 위치가 드러나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일종의 추적 방지 기능인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숨고 도망치는 것이 목적이라면 당연히 이런 일은 해서는 안 된다.
가게를 열고, 손님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숨고 도망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행동은 아니다. 언제 발각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짓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그런 짓을 했는가. 소장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걸 감수할 만큼 재미있는 걸 찾았거든. 난.”
용은 눈을 꿈틀거리고는 물었다.
“재미있는 것?”
“그래. 우연히 찾아버리고 만 거야. 저 녀석을.”
소장은 거기까지만 말한 뒤 태주를 쳐다봤다. 다음부터는 네가 말하라는 태도다. 태주는 내키지 않는 표정이 되었다.
“저는, 아니, 나는….”
태주는 조금 버벅거리다가 말했다.
지금 이 대답은 소장에게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설명에 가깝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 태주는 조금 망설이다 말했다.
“내게 직접 뭔가를 하는 건 통하지 않아. 뭐랄까, 비과학적인 것들은 말이야. 표현이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
“통하지 않는다?”
시아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네, 갑자기 런던에서 날아온 행운의 편지를 복사하지 않아도, 저한테는 불행이 찾아오지 않을 거예요. 누나가 저한테 점을 쳐도 아무것도 알 수 없겠죠. 심지어는 소장 역시도 그래요. 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주변 상황을 알아보는 걸 통해 간접적인 추측 정도는 가능하지만요.”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려 드는 것은 어떻게 해도 안 된다. 태주는 이번에는 월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왜 보기만 하면 죽을 수도 있는 저주의 동영상을 내가 재생했겠어? 나는 여기서 가장 평범한 그냥 사람인데 말이야.”
“어라?”
월이는 지금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 직접 저주의 대상이 되거나, 혹은 최면의 대상이 되어야 할 때 태주는 늘 앞에 나섰다. 태주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내가 딱히 용감해서 그런 건 아니야. 내가 받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 그래. 왜 내가 그런 목숨 거는 미친 계약 같은 것도 그냥 해버리겠어?”
간단하다. 그게 태주에게는 미친 계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어길 생각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어겨 버리게 된다고 해도 죽지는 않아. 리스크가 아주 낮은 거지.”
“묘하게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것처럼 굴더니.”
시아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제야 몇몇 이해가 가지 않던 행동들이 조금씩 이해가 간다.
“왜 그렇게 되는 거지?”
시아는 물었다. 태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소장이 답했다.
“나도 몰라. 그냥 일종의 돌연변이 같은 것 아닐까? 하는 정도의 결론밖에는 못 내렸어. 그러니, 아무도 모르겠지.”
말 그대로,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 저런 걸 알아낸 것도 이런저런 테스트를 하면서 알아낸 거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게 아니야. 저건, 뭐랄까. 그리 대단하기만 한 건 아냐. 무시하는 건 본인 말마따나 직접적인 것뿐이니까.”
아마 용이 뿜은 불에는 죽는다. 월이가 물리적으로 패면, 아마 별다른 힘도 없이 맞아야만 할 것이다. 아예 호르몬에 작용하는 향정신성 약물에도 그대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소장의 말을 들은 용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런가. 그렇다면….”
“그래. 네가 찾던 것과 비슷하지?”
소장은 웃었다.
“나는 네 말대로 규칙이야. 동격의 무언가를 제외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어. 다른 사람이 별로 밝히고 싶지 않은 것이나, 내가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던 것까지 조금이라도 의식하면 머릿속에 죄다 흘러들어와.”
그런데도 태주에 대한 것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전능이 뭔가를 하는 것도 무시할 수 있을 거야. 그것도 한두 번뿐이긴 하겠지만.”
소장이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이번 일이 어떻게 될지 몰랐어. 그건 너 때문이기도 하지만 태주 때문이기도 해.”
어떻게 끝날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태주가 관련되어 버리면, 사건의 전개와 결과가 예상과는 달라진다.
“왜 도망을 치다 멈추고 난 뒤 이 짓을 하고 있는지 알겠어?”
소장은, 용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신이 직접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결말이 나올 때도 있다. 더 나쁜 결말이 나올 때도 있다.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했어. 그래서, 너를 이용해서 테스트했다. 거의 0에 가까운 가능성을, 이 녀석은 해낼 수 있을까? 너희들은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그냥 그런 실험이었지.”
소장은 웃었다.
“그런데, 해내 버리더라고.”
태주는 찡그린 표정이 되었다. 고작 테스트 하나 때문에 이번에는 너무 큰 고생을 했다.
“그런 테스트 때문에 사람 잡을 뻔했어요.”
태주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만약 누가 크게 다치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글쎄, 그럼 나는 포기했겠지. 한없이 0에 가까운 가능성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해냈다. 필요 최저한의 재료만을 가지고 용을 쓰러트렸다.
“너희는,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어. 내가 뭘 하던 사람이었는지. 내가 대체 뭔지.”
하지만 소장은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돌아가서 할까? 나머진?”
“어? 바로 다 이야기할 것처럼 해 놓고요?”
설이는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소장은 조금 웃었다.
“그래. 앞선 이야기는 용이 들을 필요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없으니까.”
소장은 용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가 찾던 건, 그러니까 대놓고 네 앞에 나타났던 거야.”
“그런가.”
저 녀석이 정말로 그런 것이라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은 든다. 용은 그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그건 조금 아쉽군. 눈앞에 두고도 못 알아본 건가.”
“아쉬워할 거 없어. 어차피 너는 평생 못 알아봤을 테니까.”
“그래. 그렇겠지.”
용은 조용히 수긍했다.
“그럼 거기까지야. 네가 협력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아마, 다음 이야기에도 낄 수 있었을 텐데, 이젠 늦었지 뭘.”
소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용은 마지막으로 궁금했는지, 한 가지를 물었다.
“다음은 어떻게 되지?”
“다음?”
소장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확실한 건, 내일 너는 없다는 거야.”
* * *
푸른 바닷물과 새하얀 자갈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해안가다. 주변에 사람은 없다. 그곳에 한 여자가 서 있다.
조금은 긴 금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여자는 먼바다를 쳐다본다. 발목까지 잠기는 잔잔한 파도를 느끼면서, 여자는 말했다.
“바다가 예뻐.”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도, 여자는 마치 말을 걸듯 말했다.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읊조리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다.
“이런 바다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니까.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별로 관심 없습니다, 전.]
마찬가지로 여자의 목소리지만, 조금은 걸걸한 듯한 그런 탁한 목소리다.
[저는 아무리 봐도 그게 어디가 예쁜지 잘 모르겠거든요. 그나저나, 보고드릴 게 있는데요. ]
여자는 어울리지 않게도 입을 삐죽 내밀었다.
“으응, 방금 내가 느낀 거에 대한 이야기라면 사실 나도 이미 느끼긴 했는데. 뭔가 다른 일일까? 아니면 다른 종류의 말하기 힘든 일?”
여자의 말에 목소리는 잠시 침묵했다.
[용의 소식이 끊겼습니다.]
“뭐야,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거였잖아.”
이번이 벌써 두 번째다. 처음 느꼈을 때는 아무래도 잠에서 갓 깨었을 때라 혼란스러운 상태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두 번이나 느끼다 보면 금방 눈치를 채는 법이다.
“다른 건?”
[이번에는 위치가 특정이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어디서 일어났는지는 알 수 있었어요.]
“어라, 진짜?”
전능은 웃었다. 목소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잘은 몰라도,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네요.]
흡혈귀도, 용도 사라지고 말았다. 자신은 그 둘에 비하면 한참이나 약한 존재다.
[전 자신 없어요.]
“자신이 없어? 그래도, 궁금하지 않아?”
[궁금이야 하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목숨 걸고 싶지 않아서요.]
“그래? 그럼 같이 가지 뭐. 으음, 그게 어느 나라라고 했지?”
마침 잘 됐다.
“드디어, 아주아주 오랜만에 볼 수 있겠네. 그 벽창호 녀석을 말이야. 그때 잘도 튀었겠다.”
전능은 꽤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기대가 크게 섞인, 그런 미소다.
“이번엔, 찾을 수 있겠지?”
* 다음 이야기 *
꽤 긴 시간의 비행이 끝났다. 착륙하고 난 뒤 처음으로 땅을 밟은 여학생은, 오랜만에 밟은 땅이 반가웠다.
“으음, 내리니까 좋네!”
기지개를 켜면서, 여학생은 말했다.
“역시 사람은 땅에 있어야 한다니까!”
이래저래, 비행기를 타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땅이 좋다.
공항의 수속을 마치고, 이제는 버스를 탈 때가 되었다. 공항의 바깥쪽에서 트렁크 하나만을 질질 끌던 여학생은 갑자기 멈춰섰다.
주변에는 한 사람도 없다.
“…이상한데.”
그래도 방금까진, 공항에 사람들이 꽤 있었다. 갑자기 한순간에 이곳에만 한 사람도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우연히 그런 때가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던 그 순간, 벨 소리가 들렸다.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릉
“전화? 어디서 나는 소리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낡은 전화벨 소리다.
혹시 조금 나이 드신 분의 벨소리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지만, 사람은 없다. 그저 빨간색의 전화 부스만 하나 보인다.
“공중전화?”
소리는 아직도 계속 울리고 있고, 주변에는 자신뿐이다. 받아도 될까? 호기심이 든 여학생은 살짝,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