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오래된 용 (19)
승현은 극장에서 나와서는 한번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금까지 그 많은 일이 있었는데도 하늘은 파랗다. 번개가 치고, 낮과 밤이 두 번이나 바뀌는 일이 있었는데도 그렇다.
물론 낮과 밤이 바뀌고, 번개가 치는 일은 이쪽에서만 일어났다고는 하지만 안에서 본 것과 바깥이 너무나 다르다 보니 실감이 전혀 나지 않는다.
태주는 처음부터 그걸 짐작했던 듯 슬쩍 웃으면서 물었다.
“실감이 잘 안 나시죠?”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한다. 경험상 그렇다. 승현 역시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네. 아무래도요.”
“그럴 만하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이 겪은 일들 역시 평범하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이번 손님이 겪은 일은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다음에는 아마 이런 일이 없을 거예요.”
“있으면 곤란한데요.”
승현은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기는 하지만 진심이기도 하다. 정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곤란하다.
“정말 없을 거예요. 저런 용은, 뭐랄까 세상에 둘은 없을 거라서요.”
그래야 한다.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게 세상에 많으면 안 된다.
“그만큼 이상한 일을 겪으셨어요. 여기 오시는 분들이 겪는 일은 물론 하나같이 평범한 사건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손님이 겪은 일은 특히나 이상했죠.”
보통은 한 번에 한 가지의 사건에만 엮인다. 승현처럼 두 개의 괴담에 한 번에 엮이고, 그게 또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괴담인 경우는 처음이다.
“그러니까, 편히 쉬세요. 가능한 길게 쉬는 편을 추천드려요.”
“그럴 수 있으면 그래야죠.”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쉬긴 쉴 거다. 승현은 주머니 바깥쪽에서 살짝 겉을 쓰다듬었다. 안쪽에서 살짝 뒤척이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일어난 것 같지는 않다.
애초에 지쳐서 잠들어 있을 테니 쉽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주머니가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승현은 조심해서 옷깃을 여몄다.
“이 조그만 녀석이 용이 되었다니, 놀랍네요.”
말하고 보니 조금 재미있다. 따지고 보면 이무기의 존재 자체가 이미 신기한 일일 텐데. 그래도 이 작은 것이 그 큰 용이 되었다는 것은 확실히 조금 신기한 일이다.
승현은 잠시 천천히 발이 느려지다가는, 결국 멈췄다. 생각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신가요?”
태주는 물었다. 아직 대로변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고, 시간 여유도 있다. 뭔가 의문이 남는다면 지금 해결해야 한다.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시다거나?”
태주의 질문을 들은 승현은 고개를 저으려다가, 그렇게 행동하면 거짓말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만뒀다.
“마음에 안 든달까, 조금 납득이 안 가는 건 있어서요.”
“납득이요?”
“네. 저도, 지금 상황이 꽤 잘 풀렸다는 건 알아요.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자각도 있고요. 이런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제가 봐도 그럴 정도니까요.”
도저히 쓰러트릴 수 없을 것 같았던 용을 쓰러트리고, 그의 생각을 들었다.
새끼는 이무기의 복수를 했다. 조금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용은 이쪽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대화를 시도한 마지막 순간이, 사실은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것이 어쩐지, 마음에 심하게 걸린다.
“용은, 결국은 마지막까지 별로 제대로 된 대답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마지막까지 잘못했다는 생각 자체도 없었던 것 같고요. 그게 저희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알지만, 그래도 뭔가 좀 마음에 걸려요.”
승현은 눈을 찌푸렸다.
“대답이 마음에 안 드셨나 봐요?”
“솔직히, 네.”
용이 한 대답은, 그걸 대답이라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원하는 대답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원하는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기분이 이상한 건 아니다. 승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오히려 용의 대답을 들었기 때문에 더 용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어떤 대답이라도 어차피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긴 해요.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
“그건 꽤 당연한 일이네요.”
태주는 즉답했다. 이렇게나 빨리 답변이 돌아올지 몰랐던 승현은 태주를 쳐다봤다.
“그야 완전히 만족스러울 수 없죠. 상대를 안다는 건 원래부터 어려운 일이에요.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이 대화를 하려고 하면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런 건 사실상 불가능해요.”
“정말 그런 걸까요?”
승현의 표정을 본 태주는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대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태주는 거기까지 생각한 뒤, 씩 웃었다.
“네. 정말 그럴 거예요. 왜냐하면, 그 용에게는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었을 거예요.”
아마도 용은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약자의 입장이었던 적이 없다. 항상 주변의 어떤 것보다는 강했고,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것과 싸워서는 늘 이기는 존재였을 것이다.
“계속, 계속 싸워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었겠죠.”
물론 태주도 잘은 모른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끊임없는 투쟁의 삶이었을 것이다.
“상대를 이기려고 마음먹으면, 중요한 건 상대를 이길 수 있을지와 없을지만이 남아요. 꽤 단순해지죠. 그 중간에 들어가는 수많은 전략 같은 것들이야 있겠지만요.”
과정은 복잡할 수도 있겠지만, 결과로 보면 아주 간단하다. 승, 아니면 패. 결국 용에게 세상은 한없이 단순한 이분법의 세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복잡하게 상대방을 이해하려 들 필요가 없어요. 살아남은 쪽만 남는 경우라면 더 그렇겠죠.”
태주의 말을 들은 승현은 눈에 띄게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무기는 다를 거예요. 꽤 다르겠죠. 용과는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지 않을 테니까요.”
승현은 눈을 크게 떴다.
“그걸 걱정하신 거잖아요? 용과는 말을 할 수 있었는데도 결국 마지막까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과연 이무기와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의문을 가지셨겠죠.”
태주의 말을 들은 승현은 잠시 우두커니 서 있다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금은 불안한 표정이다. 태주는 작게 웃었다.
“괜찮을 거예요.”
“괜찮다고요?”
“네. 일단, 손님 쪽에는 문제가 없어요. 그런 걱정과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하는 고민이거든요.”
그렇다면 문제는 이무기 쪽에 달려 있다.
“저는 그 이무기를 잘 몰라요. 잠깐 본 게 다니까요. 하지만, 고작 그 정도만 가지고도 이 정도는 판단할 수 있어요. 그 조금만 보더라도 확실히 이무기는 용과 달라요.”
아직은 보호를 필요로 한다. 사람을 따른다. 말을 하지 못할 뿐, 의사소통하는 데는 거부감이 없고 잘 따르기도 한다.
게다가, 별로 용이 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구슬을 돌려줄 때도 이무기는 오히려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하지는 않았다. 이무기는 어디까지나 필요하기 때문에 힘을 빌렸을 뿐, 딱히 강해지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니, 이무기는 용과는 달라요. 뭐, 솔직히 저도 잘은 모르지만 이해할 의지야 있어 보여요. 그건 손님이 더 잘 아시겠죠.”
그렇다면 가능하다.
“말이 통하냐보다 중요한 건, 서로 이해할 의지가 있는 지에요. 이쪽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거든요. 보셨잖아요?”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네의 이야기는 승현도 들었다. 태주는 조금 웃었다.
“이제 마음이 좀 편해지셨나요?”
“조금은요. 아, 그러고 보니까 그 구슬말인데요.”
승현은 갑자기 떠오른 듯 물었다.
“상태가 괜찮은가요?”
“상태요?”
태주는 돌려받은 구슬을 주머니에서 다시 꺼냈다. 그리고 이리저리 돌려보고 난 뒤 말했다.
“그리 나쁘지는 않아 보여요. 많이 소모되기는 했지만요. 으음, 확실히 색이 꽤 어두워졌네요.”
“아니, 그… 혹시 그 구슬이 좀 비싼 건가요?”
“비싸다면 비싸긴 한데요. 그도 그럴 게, 구할래야 구할 수는 없는 물건이거든요. 이거.”
사실은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자기 여우구슬을 남한테 넘기고 태평하게 살아가는 조금은 얼빵한 여우가 세상에 둘이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잘 안 든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나요?”
“꽤 비싼 물건을 사용하셨다면, 손해가 조금 크실 것 같아서요. 곤란하시겠네요.”
“곤란이요?”
태주는 승현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깨닫고는 웃었다.
“하하, 그럴 리가요. 별로 곤란하지는 않아요. 일회용이 아니거든요, 이거. 비유가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원을 빌고 난 드래X볼이라고 생각하시면 괜찮을 거예요.”
물론 아마 몇십 년은 걸려야 원래대로 회복되겠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쓰겠는가. 쓸 수 있는 걸 제때 안 쓰는 것이야말로 낭비다.
“저희도 이거 어차피 빌린 거라, 신경 안 쓰셔도 괜찮아요.”
태주는 웃으며 말했다. 정말 망가진다면 곤란하겠지만, 이 정도라면 괜찮다.
“저기, 그런데 이번 일은….”
“아아, 보수 관련해서 궁금하셨나 보네요.”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별로 필요 없어요. 이번에는요.”
“필요 없다고요?”
“애초에, 이번 일에서 보수를 받을 수도 없죠. 따지고 보면 이쪽이 도움받은 일이 더 많은 걸요.”
만약 마지막 순간에 승현이 몇 초 정도를 벌지 않았다면, 그대로 용이 원하는 대로 되었을지도 모른다.
“도움을 이렇게나 받았으니, 사실상 거스름을 드려야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아요. 용을 잡은 것도 그렇고, 이무기를 잘 데리고 있는 것도 그렇고요.”
태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그러니까, 연락처를 드릴게요. 일종의 애프터 서비스가 되겠네요.”
“연락처요? 지금도 있지 않나요?”
승현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지만,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 달라요. 원래 대부분의 손님은 저희랑 다시 연락하실 수 없어요. 임시 번호만을 드리거든요.”
이런 일에 자주 엮여서 좋을 리 없다. 그렇기에 일부러 다시는 연락할 수 없을 임시 번호만 준다.
“하지만 손님은 경우가 달라요.”
이무기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이런 일과는 계속해서 만날 수밖에 없다.
“어차피 궁금하신 것들이 분명 생길 거 아니에요? 이무기에 대해서 말이에요. 지금은 없더라도, 살다 보면 갑자기 의문이 생기는 것들이 분명 있을 거예요.”
서로 이해할 의지가 있다면 어떻게든 된다는 식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당연히 중간에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더 좋다.
“저도, 그 녀석이 나중에 어떤 것이 될지는 조금 궁금하네요. 이무기로 남아도 좋겠죠. 이번에 본 용과는 다른 종류의 용이 되어도 괜찮을 거예요.”
언젠가 말을 하게 된다면, 그 이무기와 한번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 해도 꽤 즐거운 일이 되지 않을까. 태주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니까, 가끔 연락 주세요. 부담 없이 말이에요.”
“네, 그럼 다음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태주는 손을 흔들고는, 미소를 지운 채로 말했다.
“자, 그럼 돌아가 볼까.”
별로 즐겁지 않은 이야기를 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