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오래된 용 (18)
이런 타이밍에, 다시 한번 이런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다. 용은 의외라는 듯 대답했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강한 자의 말이 곧 법이라고, 당신은 생각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전능도 어떻게든 이겨 먹어 보려고 했던 거고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이겼어요. 우리는 당신보다 강했어요. 최소한 지금 이 자리에서는 그랬죠.”
태주의 말을 들은 용은 조금 비틀거리며 생각했다. 확실히 이 장소에서는 그렇다.
“그럼 우리에겐 이제 물어볼 자격이 있어요.”
처음에 손님이 의뢰한 대로의 질문을, 이제야 할 수 있다.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남기 위해 죽였다고 주장하는 그 많은 살해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지금도 그런 걸 묻나?”
“지금이니까 묻죠. 처음부터 목적이 그랬거든요? 말하지 않았던가요?”
용은 조금 흐릿해져 가는 시야를 다잡고는 생각했다. 이럴 때 생각하기에는 영 좋지 않은 문제다. 외상과 내상, 어느 쪽도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상처가 아니다. 용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용은 그 판단을 아주 냉정하게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건 본인에게도 의외인 일이다.
‘그런가.’
용은 한 가지 깨달았다. 마지막이 가까워지고 나서야 알았다. 자신은 어쩌면 처음부터,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 온 것이 아니다. 강해지기 위해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용 자신이 원하던 것은 싸워서 이기고, 강해지는 것뿐이었던 것이다.
사실은 강한 것과 싸우는 것은, 사실은 목숨을 연장하는 행위가 아니다. 죽음으로 향하는 길에 가깝다. 그런데도 계속했다면, 용에게 중요한 건 목숨보다도 강적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만났다. 그 끝에 자신이 졌다. 그것도 꽤 만족스럽게 졌다. 용은,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도 웃었다.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상관없다. 어쨌든 목표는 달성한 셈이니까.
“그런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겠나.”
그렇다면 이 모든 행동에 잘못은 없었다. 너무도 훌륭하게 자신은 목적을 달성해 버리고 만 것이 아닌가.
가만히 있다면, 대답을 제대로 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됐다. 이미 용은 목표를 이뤘다.
“그게 즐거워서다. 싸우는 것이 난 즐거웠던 것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군.”
보면 지금도, 이렇게 절체절명의 순간인데도 꽤나 즐겁지 않은가.
“후회는 없다.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강한 자가 세상을 지배하고,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부딪혀 깨지는 편이 맞다. 그저 이번에 깨지는 것이 내 차례였을 뿐이다.”
용은 입과 목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곧 자신은 끝난다.
“그게 마지막 대답입니까?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그저 이번이 내 차례라는 게?”
태주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용은 큰 소리로 말했다. 무너져가던 자세가 다시 올바르게 변한다.
“그래, 잘못 같은 건 없다!”
갑작스러운 고함에 태주는 흠칫했다. 다른 셋 역시도 마찬가지다. 다 죽어가는 용이라 해도, 지금까지 보여준 전적이 있다. 저건 말 그대로 괴물이다.
만약 용이, 설령 죽더라도 누구 하나를 데려가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과연 이쪽에서는 그걸 막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 때문에 용의 행동에 반응하는 것이 조금 늦고 말았다.
“당했다…!”
태주는 당황했다. 오늘 중 처음으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났는데, 그게 하필이면 지금이다.
저런 몸 상태로 날아오를 줄은 몰랐다. 독이 이미 전신에 퍼진 채일 텐데, 정상적인 몸이 아닐 텐데도 용은 움직였다.
태주는 황급히 외쳤다.
“쫓아!”
마지막 순간에 하는 것이, 도망일 리가 없다. 날아서 그리 멀리 도망칠 수도 없을 몸 상태다. 그런데도 저 방향으로 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태주가 당황해 외치는 소리를 들은 용은 작게 웃었다. 이미 살 생각이 없다면, 이 정도는 할 수 있다.
아마도 이 부근에, 다른 인원들이 있을 것이다. 낮과 밤을 바꾸고, 용을 숨겨두고 있던 녀석들이 분명히 이 안에 있다.
그리고 그 녀석들이 밑에 있는 녀석들만큼 강할 리 없다.
“마지막 솎아내기다.”
반성도 망설임도 없이 용은 그대로 날아올랐다. 숨을 곳은 한 곳뿐이다.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고 나서야 느껴지는 미세한 위화감이 느껴지는 장소가 하나 있다. 그 장소까지 가는 데는 아직 지장이 없다.
뒤따라 오는 녀석들은 조금 늦는다. 지금이라면, 자신을 막을 수 없다.
“거기 있었군.”
용은 미소를 짓고는 유일하게 멀쩡한 팔로 경계를 잡아 찢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전신에 찌릿한 통증을 느낀 용은 눈을 조금 찡그리면서도 주변을 살폈다.
전에 본 두 인간 여자와 처음 보는 남자가 하나. 막아낸다면, 그걸로 좋다. 막지 못한다면 그것도 좋다. 용은 그저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규칙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
“앗!”
설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신은 도망칠 수 있겠지만 시아가 문제다. 시아는 지금, 바깥의 자극을 차단해 놓은 상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사이, 용은 상황 파악을 마쳤다.
“늦었다.”
용은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이대로 불을 뿜으면 자신의 몸이 더 버틸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가능하다.
더 이상 말은 필요 없다. 준비 동작도 필요 없다. 그저 입을 벌리고, 뿜어내면 된다.
그러나 용은 불을 뿜지 못했다.
취이이이이익!!
불이 일어나기도 전에 꺼졌다. 입을 크게 벌린 데 새하얗게 날리는 가루들이 입안으로 가득 들어가 버렸다.
“안, 안 늦었다…!”
용은 그렇게 목이 막히고 난 뒤에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신경 쓰지 않았던 인간 남자의 손을, 용은 그제야 보게 되었다.
붉은색의 소화기. 말 그대로 비상용이다. 승현이 혹시나 싶어 챙겨 뒀던 소화기는 제 역할을 다했다. 그걸로 아주 잠깐이지만, 용은 막혔다.
그리고 그 잠시의 시간 덕분에, 용은 끌어 내려졌다. 등에 갈퀴가 박힌다. 꼬리 쪽을 다시 한번 잡아끌린다. 그리고 그 상태로 목덜미를 물린다. 아무리 용이라도, 숨이 막힌 상태에서 그걸 뿌리칠 수는 없다.
쿵— 하고,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늙은 용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떨어졌다.
용은 그렇게, 쓰러졌다.
* * *
태주는 용을 자세히 살폈다. 혹시나 싶어 꽤 오랫동안 살폈지만, 확실히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식겁했네, 진짜.”
태주는 그제야 안심하고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승현의 기지가 아니었다면 마지막 순간은 꽤 위험했을 수도 있겠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이 보인다. 어느 하나 빠짐없이 모두 다 지쳐 있다.
밑에 있던 쪽은 밑에 있던 대로, 위에 있던 쪽은 위에 있던 대로 한계까지 몰렸던지라 다들 말이 별로 없다.
“더럽게 힘드네.”
월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손에 들고 있는 쇠스랑을 땅바닥에 던지고는 주저앉았다. 먼지투성이의 바닥이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오히려 시아도, 그 옆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러게 말이다. 나도 이번만큼 힘들었던 적이 없는 것 같구나.”
“그거야 그렇겠지. 나도 잘은 모르지만. 읏차,”
월이는 그대로 뒤로 드러누우며 말했다.
“낮과 밤을 바꾸는 게 쉬울 리 없잖아?”
“그래. 꽤 힘들었다.”
이번에 가장 위험한 역할이 누구였는가 하면 당연히 월이지만, 가장 체력적으로 힘든 역할이 누구였는가 하면 사실은 시아다. 앉아만 있었으니 수수해 보였는지도 모르지만, 월이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손님까지 포함해 어느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큰일이 날 뻔했다. 정말로, 용이라는 건 이런 말도 안 되는 거구나. 태주는 급격히 피로함이 몰려오는 것 같아 잠시 눈을 감았다.
끼이익—
갑작스럽게 문이 열렸다. 이곳에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군가 왔다. 모두가 긴장했지만 목소리를 듣고 난 뒤로는 다들 긴장을 탁 풀었다.
“어라, 오니까 끝나 있네.”
“소장은 타이밍이 늘 거지 같아요. 알고 왔으면서.”
태주는 방금 전보다도 조금 더 피곤한 기분이 되어 말했다.
“그래도 좋은 타이밍에 왔네요. 조금 정도는 걱정했어요.”
“조금만 하다니, 서운한데.”
“많이 할 필요도 없잖아요, 소장님 걱정 같은 건. 조금이라도 한 게 어디에요?”
태주의 가시 돋친 말에도 소장은 능글맞은 태도로 웃을 뿐이다.
솔직히 소장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하루이틀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거의 모든 사건에서, 소장은 자기 멋대로 행동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심지어 흡혈귀 사건이 있었을 때는 소장이 중간에 나타나 제대로 된 경고라도 해 줬다.
반면 이번에는, 사실상 흡혈귀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위험한 적을 상대로 해야 했다. 경고도 받지 않고, 갑작스럽게 말이다.
“이번에는 이런 소리 들어도 할 말 없잖아요. 그죠?”
“뭐어, 하지만 나야 늘 변명거리가 있지.”
태주의 불평에도 소장은 여전히 능글맞게 말했다. 기분이야 썩 좋지 않지만, 태주는 일단은 더 공격하지 않기로 했다. 변명하겠다는 건, 어쨌든 설명 정도는 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 변명 좀 자세하게 해 줘요. 늘 하던 것처럼 막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기려 하지 말고요.”
투덜거리면서 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소장이 오니 뭔가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확실히 무언가가 일단락된 기분이다.
“그래, 자세히 할게. 조금 있다가 말이야. 어차피, 지금은 다들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엔 많이들 지친 것 같거든.”
안 그래? 하는 눈빛으로 소장은 웃었다. 짜증은 나지만, 실제로 그렇다.
이곳에 멀쩡한 사람은 소장뿐이다. 태주와 승현도 신체적인 데미지는 적지만 정신적 부담은 그리 적지 않았다.
“다들 지쳤고, 머리 아픈 이야기를 하기 좋은 타이밍은 아니야. 어쨌든 다들 잘 이겨낸 것 같으니 잘 됐지.”
“아무것도 안 도와주고 나서 잘 되긴 뭐가 잘 돼요?”
“그럼 잘못됐냐? 건물 좀 무너지고, 사람은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났어. 이 정도로 끝난 게 잘 이겨낸 게 아니면 뭔데?”
할 말이 없어진 태주는 입을 다물었다.
“뭐, 나중에 여기만 한번 제대로 수리해 주면 되겠지. 아니, 다시 지어야 하려나.”
그 외에는 큰 피해는 없다. 소장은 머리를 살짝 긁적이고는 말했다.
“일단, 손님을 좀 바래다 드리고 와.”
“...지금요?”
“우리야 할 이야기가 남았지만, 손님은 이제 없을 거 아냐. 여기서 쉬는 것보다 집에서 쉬는 편이 안 낫겠냐?”
놀라울 정도로 정론이다. 태주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장이 그런 말을 하다니, 뭔가 수상한데요.”
“수상할 것도 없지. 내 이야기도 좀 하고, 네 이야기도 좀 하고. 그럴 때가 되었을 뿐이야.”
내 이야기와 네 이야기. 그게 무슨 의미인지 태주가 모를 리가 없다.
“이제야 하나요? 그거?”
“이제는 해야지.”
태주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비웠다.
소장은 느긋하게, 용의 앞까지 걸어가서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울리지 않게도 날씨가 참 푸르다.
“솔직히, 이번엔 질 줄 알았는데 말이야.”
소장은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