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오래된 용 (17)
“말도 안 되네 진짜.”
이쪽에 유리한 조건을 그렇게나 모아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용은 버티고 있다.
그저 버티기만 하는 거라면 조금 여유롭게 지켜볼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대등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역린을 뜯기고, 독이 아직 전신에 돌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는 오히려 밀리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사실은 지금도 그렇다.
“우와아아?!”
월이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왔다. 큰 충격을 받은 건 아니지만,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힘에 날려 가는 것 정도는 어쩔 수 없다.
이미 몇 번이나 있었던 일이다 보니 이전처럼 벽에 처박힐 정도는 아니다. 멀리 날려온 것 치고는 사뿐하게 착지한 월이는 옆에 태주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어색한 눈으로 태주를 쳐다봤다.
"…뭘 봐?"
태주는 장난스럽게 손을 한번 흔들어 줬다.
“바보 아냐?”
월이는 그렇게 말한 뒤 곧바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월이가 재빨리 합류한 모습을 확인한 태주는 입가의 미소를 싹 지우고는 말했다.
“최강이라고 하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여유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표정이다. 태주는 조금 질린 눈으로 중얼거렸다.
처음 용이 아직 사람의 형태를 취하고 있을 때, 이대 일로 싸우는 걸 보고 충분히 놀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예 일대 삼으로 싸우고 있다. 이쯤 되면 놀라운 수준이 아니다.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정말 뭐 하나라도 없었으면 졌겠어.”
상태는 말 그대로 최악일 거다. 예상치 못한 마지막 기습을 성공시키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란 이득은 전부 챙겼다.
목에 붙어있는 역린을 뜯어버리고, 그걸 이용해서 용에게는 극독인 지네의 독을 돌게 한다. 심지어 한쪽 팔은 부상 때문에 온전하지 않다.
팔은 그렇다 쳐도, 나머지는 순간의 빈틈 때문에 입은 피해 치고는 가혹할 정도다. 태주는 시도한 모든 방법을 다 성공시켰고, 용은 그 모든 수에 당했다.
그렇기에 사실 태주는 조금 낙관하고 있었다. 이후로는 아마도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태주의 예측은 완전히 틀렸다.
“방심이라 할 수 있나 이걸?”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이걸 방심이라 하기는 좀 그렇다. 보통은, 이 정도로 약점이 제대로 찔렸다면 그대로 쓰러져야 한다. 그 상태로 싸우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제는, 늙은 용은 아직도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이전 단계에서 실행했던 계획들이 하나라도 실패했다면, 정말로 이미 져 있지 않았을까. 태주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무슨 괴물이지 이건.”
늙은 용은 여전히 만만하지 않다. 어린 용은 몸에 크고작은 생채기가 생기고 있고, 지네는 갑각에 긁힌 상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월이는 둘보다는 상처가 적지만 어쩔 수 없는 질량의 차이 때문에 곧잘 날아가 버리고 만다.
다만, 이제는 처음처럼 일방적이지는 않다. 이무기와 지네의 몸에 상처가 있는 것처럼 용의 몸에도 상처가 가득하다. 입과 코에서는 피가 조금씩 흐른다. 드디어, 용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정도로 독이 퍼진 것이다.
겨우, 간신히 승기가 잡혔다. 태주는 그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월이가 마지막으로 합류하고, 지네와 어린 용이 간신히, 몸을 빼낸다. 끊없이 물고 물리는 싸움에서 벗어나 대치상태가 되었다.
이 쪽에서는 바라는 바고, 저 쪽에서는 바라지 않는 바다. 일단 이런 대치 상태가 되면 자연스럽게 시간이 끌리고, 시간이 끌리면 이 쪽이 유리하다.
용은 갑작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린 녀석이구나. 그리고 불완전해.”
늙은 용은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말했다. 말하면 불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궁금함을 견딜 수 없는 듯 물었다.
“하지만 너도 용이다.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왜 갑자기 벼락을 맞았는지 이해가 간다. 달이 보이는 데서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야 했는데.”
그건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천둥 번개가 친다면 마땅히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해야 하는데, 구름이 없었던 것이다. 이상하다는 생각이야 잠시 했지만, 결국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싸움 도중이기에 일단은 우연이라 결론을 내렸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게 우연이었을 리는 없다.
“눈 앞에 적이 있다고 해서 이상한 것을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거였는데 말이다.”
용은 억울해하지는 않았다. 나름대로의 공평함인걸까, 태주는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대답했다.
“그렇죠. 날씨를 조종하는 것이 용의 권능 중 하나니까요. 처음에 번개를 맞고 달을 봤을 때, 그리고 지네가 갑자기 나타났던 때에 용이 하나 더 숨어 있을 거라는 의심을 했다면 우리가 졌을지도 몰라요.”
“그랬겠지.”
태주의 말을 들은 용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은 날씨를 다룰 수 있다. 특별한 방법 없이도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폭풍우를 잠재우거나, 불러일으킨다. 번개를 치게 하거나, 치지 못하도록 한다.
폭풍우라면 모를까 저만큼 어린 용이라도 번개 정도를 치게 하는 것이 어려웠을 리 없다.
“하지만 저런 녀석이 어디에 있었지?”
늙은 용은 작은 용을 쳐다보며 말했다. 도저히 묻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용은 번개를 맞고도 서 있을 수 있었다. 월이가 갑작스럽게 강해지고, 지네가 갑자기 나타난 상황에서도 오히려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면서 버틸 수 있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련한 강자가 바로 용이다.
하지만, 갑자기 용이 하나 더 나타난다는 건 아무리 늙은 용이라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용이 주변에 있었을 리 없다. 이미 내가 다 살폈다. 이 주변에 용은 확실히 없었다.”
자신과 맞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상대를 찾는 것은 용에게 있어 당연하다 못해 습관이 된 행위다. 그렇게 샅샅이 주변을 다 뒤져 봤으니 용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주변에 용은 없었다.
그러니, 어떤 의미로는 이 용의 등장보다는 차라리 우연히 번개를 맞은 것이 더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용은 망연하게 말했다.
“이런 것이 어디에 있었지?”
“여기에는 처음부터 있었죠. 누군가를 숨기는 건 경계 활용의 기초 중의 기초면서도 자연스럽게만 한다면 정말 눈치채기 어렵거든요.”
태주는 일부러 웃으면서 딴소리를 했다. 물론, 아예 상관없는 말은 아니다. 설이가 제대로 이 기술을 쓸 수 없었다면 용을 숨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네 녀석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참 짜증 난다고 생각한다.”
용은 차분하게 다시 물었다.
“내가 그런 의미로 하는 질문이 아닌 걸 알고 있을 텐데, 네 녀석. 그런 용은 이 땅에 없었다. 확실히 없었다. 대체 너희들은 어디서 그런 어린 용을 구한 게냐.”
“짐작이 가는 구석이 전혀 없나요?”
“없다.”
늙은 용의 말을 들은 어린 용은 이빨을 드러냈다. 하지만 달려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단은 대화를 듣고자 하긴 하는 것이다.
“없다, 라.”
태주는 조금 한탄하듯 말했다.
“저희가 처음에 질문드렸던 걸 기억하고 있나요?”
태주는 물었다.
“이무기에 대해 물었었는데.”
“별로 관심은 없다.”
이무기는 별로 기억에 남는 대상은 아니었다고, 용은 여전히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젠 좀 가져야 할 텐데요.”
“뭐?”
용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 말했다. 태주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조금 풀어서 설명했다.
“용 자체는 당연히 없었죠. 하지만, 용이 될 수 있는 건 이 땅에 널려 있거든요. 이무기가 특히나 대표적이기는 하지만요.”
“이무기라고?”
용은 마치 잊고 있었던 걸 떠올렸다는 듯 말했다. 실제로 그렇다. 거기까지는 전혀 생각이 닿지 않았다.
“네가 처음에 말한 이무기?”
“이제야 좀 대화가 되네요. 원래 이무기는, 용이 되기 위해 있는 것이니까요.”
태주는 조금 위에서 용을 노려보는, 작은 이무기였던 것을 쳐다봤다. 나름대로 늠름한 포즈다.
“이무기는, 용이 될 수 있어요. 애초에 일종의 중간단계의 무언가니까요.”
“그래, 그랬지. 새끼가 도망쳤었다.”
용은 그제야 떠올린 듯, 그때 도망친 새끼를 떠올렸다.
역시, 관심이 없었나. 태주는 조금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작은 새끼가 하나 있었습니다. 당신이 굳이 잡으려 들지 않은, 하지만 내버려 두었다면 그대로 죽어버렸을 그런 작은 새끼가요.”
소장이 잠시 나타나, 새끼를 시아에게 넘기고, 승현이 상처와 마주하고, 본인이 굳이 챙길 필요 없는 책임을 챙기는 것으로 어떻게든 살아날 수 있게 된 작은 한 마리의 새끼다.
“그게 용이 되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용은 저 말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눈앞에 불완전하고 어린, 그러나 확실한 용이 갑자기 나타났다면, 방법은 저것뿐인 것이다.
“어떻게 했나. 그 작은 녀석이 어떻게 용이 되었지?”
말도 안 된다. 그 짧은 시간에, 그 연약한 녀석이 곧바로 용이 될 수 있을 리가 없다. 용은 자신의 상태가 조금씩 더 악화되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질문했다.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어떻게? 그거야 저희가 도와서죠.”
태주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다른 경우라면, 예를 들어 이 작은 새끼가 이무기가 아니었다거나, 혹은 다른 것이었다면 이런 방법은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무기는 원래, 재미있을 정도로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그건 그런 이야기거든요.”
이무기는 때로 인간으로 인해 용이 되지 못하지만, 동시에 인간으로 인해서 용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조건만 맞으면, 이무기가 용이 되는 건 어렵지 않다.
“이무기가 용이 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 해야 할까요. 유명한 방법이라 해야 할까요. 이무기는 여의주 하나만 있으면 용이 될 수 있다고 전해지기도 하죠. 반대로 그 구슬이 없으면 용이 될 수 없다고도 하고요.”
그렇다면, 여의주를 주면 된다. 간단한 결론이다.
“여의주라고? 그런 게 갑작스럽게 나타날 리가.”
용의 어처구니없어하는 말투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렇기는 하다.
“네, 저희도 진짜 여의주는 없죠. 쉽게 대체할 만한 물건을 구하기도 어려워요. 하지만, 최근에 저희가 한 여우를 좀 도왔거든요.”
“여우?”
용은 의외의 이야기를 들은 듯 되물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갑자기 들으면 당황스러운 이야기이긴 할 거다.
“네. 여우요. 그 여우는 당신만큼 오래 산 건 아니어도 꽤 오래 살았죠. 그런데 최근에 그 여우의 구슬을 좀 빌릴 일이 있었거든요.”
사실은 일종의 압류에 가깝지만. 굳이 지금 그 속사정까지 말할 이유는 없다. 태주는 용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그 여우의 구슬을 이용했어요. 간단하지는 않았지만, 이무기를 용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 줄 수는 있었죠.”
용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이유로, 여우는 구슬을 이 쪽에 넘겼다. 조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사람을 위하는 여우가 남긴 물건으로, 다시 사람이 다른 괴담 속 존재를 돕다니.
“말도 안 된다. 대체 어디서 그따위 물건을?”
“그러게요. 하지만, 마침 저희가 가지고 있었던 걸 어째요?”
태주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혈압이 오르면 혹시라도 피가 빨리 돌지 않을까 싶어 한 행동이었지만, 용은 어디까지나 냉정했다.
“그렇게 용이 되었다는 말인가.”
용은 입에서 서서히 피를 흘렸다. 흐르는 피의 양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의외네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강한 자가 법이다. 힘을 손에 넣었다면 그것도 맞는 방법이겠지.”
용은 눈을 감았다. 이전처럼, 기분이 나빠서 감는 눈이 아니다. 정말로, 지쳐서 눈을 감은 것이다.
“그저 약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모여서, 여기까지 해냈는가.”
이길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이길 방법은 더는 없다. 이렇게 역전의 여지 없이 몰아 붙여진 것은 처음 있었던 일이다.
오래지 않아서, 용은 다시 눈을 떴다. 용이 눈을 뜬 것을 본 태주는 곧바로 질문했다.
“자, 지금은 우리가 당신보다 강해요.”
“그렇겠구나.”
“그러니, 다시 한 번 질문을 할까요.”
태주의 말을 들은 어린 용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당신은, 지금까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