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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185화 (185/269)

18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오래된 용 (15)

“그건 질문이 아니라 협박인데요.”

“알 게 뭐냐.”

태주의 대답을 들은 용은 무표정하게 태주를 쳐다봤다. 태주는 변명하듯 말했다.

“일단, 처음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덤벼도 좋다고 말한 건 그쪽이에요.”

“그랬다. 그리고, 덤빌 거라면 각오하라고도 말했지.”

“그랬어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덤비지 않는 쪽에는 각오가 과연 필요하지 않은 걸까요?”

용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주는 용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전능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 방법은 정말 있어요. 당신이 처음에 한 생각에는 약간의 착각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저는 정말로 방법을 하나 알긴 알아요. 규칙을 깨버릴 방법 같은 걸 알아요. 그러니 제가 이딴 목숨 거는 계약 같은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건 조금 반갑군.”

용은 웃었다. 하지만 태주는 웃지 않았다.

“네, 당신에게는 반가운 일일 거에요. 실제로 그래서 우리 중 아무도 죽지 않았어요. 지금까지는 그랬죠.”

그렇기에 처음엔 정말로 용과 협력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주 당연한 이유 하나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태주는 용이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하나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당신에게 전면적으로 협력을 하고 나면요? 패를 다 털고 나서는 어떻게 될까요?”

용의 눈앞에는 무리가 하나 남는다.

“아마 당신은 예외로 남겨뒀던 그 집단을 더 이상 예외로 둘 필요가 없어지겠죠. 전능을 이길 수 있을 지도 모르는 방법과 쓸만한 강적을 둘 다 얻을 수 있다면, 당신은 할 거에요. 그렇죠?”

용은 딱히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똑같은 표정으로 계속 웃을 뿐이다.

저런 것과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결국 그런 뜻이다. 태주는 잔뜩 찡그리고는 말했다.

“그럼, 어차피 같잖아요. 당신은 이무기를 죽였어요. 당신 입장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는 이유 한 가지 때문에요. 그렇다면, 우리는 다를 거라 생각하는 건 그냥 바보같은 생각이겠죠.”

가치가 없어진 순간, 용은 자신의 규칙을 다시 들이밀 것이다. 이미 삼천 년을 그렇게 산 용이다. 그 규칙을 별다른 이유 없이 어길 거라 생각하기는 힘들다.

그렇기에 애초부터 대화의 대상이 아니고,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협력 같은 것이 제대로 가능할 리 없다. 말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라면 싸워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지금 준비해서 당신을 쓰러트리는 편이 나아요.”

태주는 여전히 당당하게 용을 쳐다보며 말했다. 용이 이런 거로 화를 낼 리가 없다. 강자에게 도전하는 것을 일종의 미덕으로 보는 종류의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봤구나.”

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조차도, 태주의 말을 전혀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준비한 저항이라는 게 고작 이런 것들이 다라면 여전히 의미는 없다.”

전능에게 대적할 만한 재료가 되지도, 자신이 한 단계 더 성장할 만한 그런 위기에 몰아 넣지도 못했다. 여러모로 용에게는 실망 뿐이다.

“겨우 그 정도라면, 결국 너희는 어느 쪽도 되지 못한 셈이구나. 겨우 이 정도에서 그칠 것들에게 나는 무슨 기대를 했던 건지.”

용은 한탄하듯 말했다.

“겨우 그 정도? 아뇨. 당연히 아니죠.”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소장이 저에 대해 아무런 말도 안 하던가요? 제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말이에요.”

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태주를 쳐다봤다. 내심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과연, 아무리 약자라고 해도 전지한 사람이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은 무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 별말은 없었다.”

“없었나요? 그거참 이상한데요. 그런 이야기를 당신에게 숨기다니.”

“숨길 것이라. 그런 게 있었나?”

용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글쎄요. 하긴, 말하지 않는 편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네요. 그게 제 밑천인 셈이니까요. 지금 한 말은, 참고로 정말 궁금했던 거긴 한데, 동시에 별 의미는 없는 질문이에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인 뒤,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 좀 끌려고 아무 말이나 했거든요.”

태주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이다. 지금이 바로 진짜 준비했던 타이밍이다.

용에게서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렸고, 하늘이 준비됐다. 용이 온전히 이쪽에 관심을 쏟고 있으니, 지금보다 좋은 타이밍은 없다.

주의 깊게 살폈다면 알 수도 있었겠지만, 용이 눈치챌 수 있었을 리 없다. 그리고, 이제는 눈치채더라도 늦었다.

섬광탄이 터진 듯, 주변이 밝아진다. 번개가 떨어진 것이다.

아주 잠깐의 시간 차이로, 태주는 타이밍 맞게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눈을 감자마자 앞이 새빨갛게 물든다. 엄청난 양의 빛이 눈앞에서 터졌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빛은 소리보다 빠르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 주변은 이미 환한 빛으로 가득 차고 만다.

그리고 그다음에야 소리가 들린다.

콰광—!!

거대한 파열음. 방금 전 불쾌하게 들리던 수준의 소리가 아니다. 공기를 잡아 찢는, 그런 거대한 소리다.

천둥소리는 이제야 따라왔다.

삐이이-

이명이 들린다. 태주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아직 정신이 드는 걸 보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그냥 지나치게 큰 소리로 인한 이명일 뿐이다.

“끙.”

태주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주변의 모습은 여전히 난장판이긴 하지만 여전히 잘 보인다. 다행히도, 눈을 다치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악! 내 눈!”

다만, 월이는 눈을 감는 타이밍이 조금 늦은 것처럼 보인다. 다만 역시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저 눈을 조금 부비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저게 문제의 전부라면 정말 별 문제 아니다. 태주는 후 하고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리 최대한 상황을 만들어서 했다지만, 번개가 확률적으로 이쪽으로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눈아파!”

월이가 소리쳤다. 월이 역시 번개가 떨어지는 걸 눈앞에서 본 건 처음이다.

“참아. 그러게 타이밍을 잘 잡았어야지.”

태주의 약간은 장난기가 섞인 말을 들은 월이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너 혼자 눈 감고! 제때 눈을 감을 거였으면 타이밍을 알려달란 말야!”

월이는 작게 소리쳤다. 태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걸 알려주면 기습이 안 되잖아.”

태주는 그렇게 말하며 눈앞의 용을 쳐다봤다. 피부가 약간 거무스름하게 그을리고, 머리카락 대부분이 타서 쪼그라들었다. 확실하게 충격을 받은 듯, 용은 잠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태주가 지금 이렇게 느긋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눈앞의 용이 번개에 맞았기 때문이었다.

“하긴, 그걸 말했다 쳐도 애초에 보고 피하는 건 불가능하긴 했겠지만.”

태주는 월이가 괜찮은 것을 확인한 이후로는 계속해서 용을 관찰했다. 용은 명백히 큰 충격을 받았다. 몸 이곳저곳이 그을려있고 눈은 아직도 질끈 감고 있다. 옷은 구석구석이 불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용은 제 발로 서 있다. 지금 당장 이겨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면 순수하게 감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번개 한 번 가지고 안 죽을 줄은 알았지만 제 발로 서 있을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되어 먹은 내구도인지. 태주는 혀를 한번 찼다.

“어떻게 한 거냐?”

용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간신히 입을 연 모양새에 가깝지만, 그래도 어쨌든 말을 할 수 있다.

“거, 참 그걸 쳐맞고 말을 하네.”

월이 역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용은 실제로 꽤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내가 왜 그걸 넘겨줬겠어? 그것도 엄청나게 멍청해 보이는 공격을 하면서 말야.”

월이가 자기 무기를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공격을 그렇게 바보같이 할 리가 없다. 처음부터 중요한 것은, 자연스럽게 그 갈퀴를 용의 손에 넘기는 것뿐이었다.

“귀중한 물건을 그냥 넘겨줄 이유가 없지. 금속성의 길쭉한 무기는 딱 봐도 벼락 맞기에는 최적화된 물건 아닐까?”

월이는 일부러 이죽거리며 말했다. 바보취급하는 사람을 바보취급하는 건, 생각보다 좀 즐거운 일이다.

“그러게 누가 건물 천장을 이렇게 뚫으래?”

“그런 질문이 아니다. 어떻게 벼락을 이 타이밍에—!”

용은 소리쳤다. 아무리 용이라도 번개에 맞은 정도의 충격은 그리 간단히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걸로 갑작스럽게 상황이 변했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번개.

아무리 날씨가 좋지 않다지만, 그런 우연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뭔가 이상하다.

“이런 일이…!”

용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용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월이가 곧바로 턱에 주먹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월이는 아직도 용의 손에 들려 있던 쇠스랑을 빼앗았다.

“헛소리 말고 그거나 돌려줘.”

용은 저 멀리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퍽 하고, 묵직한, 그러나 지금까지 들린 소리들에 비하면 아주 가벼운 타격음과 함께 용은 저 멀리 날아갔다.

용은 이번에 반응하지 못했다. 벼락에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감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것도 있지만, 월이의 신체능력 자체가 방금 전에 느꼈던 것과는 다르다. 전체적으로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좋아져 있다.

“무슨…!”

그리고 그렇게 맞았기에, 용은 그제야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보고 싶어서 본 것은 아니었지만, 턱을 맞고 날아가면 당연히 천장 쪽을 보게 될 수밖에 없다.

“달?”

달이다. 지금 하늘 위에 있어서 될 것이 아니다. 방금까지는 분명, 낮이었는데도 지금은 달이 떠 있다. 그것도, 보름달이다.

“언제부터지?”

밤과 낮을 바꾸는 기술 자체는,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이 아니다. 용 정도로 오래 살다 보면 그런 이상한 기술 정도는 몇 번이나 본다.

문제는, 이 이상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이다. 어째서, 낮이 아니라 밤으로 변하는 이 순간까지 자신은 눈치채지 못했는가.

모르겠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변했다. 확실한 건, 상대방이 안일하게 이곳에 온 것은 아니라는 점뿐이다.

부숴진 잔해들 사이에서 용은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정말로, 이만큼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은 건 아마 이백 년도 더 넘은 것 같다.

“나보다 약하지만, 만만하지는 않군. 네놈들이 어디까지 준비해 둔 상태인지 모르겠구나.”

생각보다, 지금 상황은 위기일지도 모른다. 용은 씩 웃었다. 조금은 기대 섞인 말투다. 월이는 순간 욱해서 달려들었다.

“모르면 맞아야지!”

“흥.”

하지만 용은 월이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살폈다. 확실히 이제는 아까 같은 느릿한 공격이 아니다. 이제는 그래도 어느 정도 피해 주고 막아 줘야만 하는 공격이 되었다.

한 손에는 주먹, 한 손에는 갈퀴. 공격이 조금 위협적이 되었고, 용의 상태는 많이 안 좋아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월이보다는 용이 더 빠르고 강하다. 용은 확실히 결론을 내렸다.

“여기까지 했어도, 아직 내가 유리하다.”

용은 작게 중얼거렸다. 이것이 전부라면 아직 이겨낼 수 있다.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전력 분석이다. 번개에 맞은 채라도, 상대가 가장 강한 시간대인 보름달이 뜬 밤이 되었어도 아직은 이 쪽이 더 강하다.

그럼에도 월이는 저돌적으로 공격해온다. 조금 리스크가 있는 동작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어느 정도는 경험 부족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본인이 다른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뭔가 숨기고 있다.’

용은 이제는 상대를 믿는다. 분명 뭔가 더 숨겨놨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렇게 몇 합 정도를 넘기던 도중 소리가 들렸다. 키릭— 하고 손상된 청각으로도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들렸다.

“그거냐!”

달각거리는 그 작은 소리 하나만으로도 용은 사각에서의 공격을 피했다. 무언가 더 숨겨놓았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다면, 대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확인할 필요도 없다. 용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곧바로 피했다. 경험상 이런 건 확인하고 피하려 들면 이미 많이 늦는다.

결국 그 일격은 옷깃만을 조금 스치고 말았다.

“그걸 피하네.”

태주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솔직히, 스치기라도 할 줄 알았다.

아직 충격을 받은 청각이 온전하지 않을 것임에도, 사각에서 온 공격을 어떻게든 피해냈다. 신체능력과 경험이 말도 안 되게 높다면 이런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건 또 어디에 있었지? 거대한 지네라.”

용은 갑자기 나타난 지네를 주의 깊게 살피며 말했다. 이 지네를 이기지 못할 리는 없지만, 독은 확실히 꺼려진다. 잘도 이런 것들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고, 용은 웃었다. 마음에 든다.

이 정도 크기의 지네라면, 이백 년 수준이 아니라 천년도 더 전에나 있었던 경험이다.

“지네의 독이라면 확실히, 내 약점이라 할 수 있겠지.”

상황은 좋지 않다. 함정에 빠지고, 자신의 컨디션은 좋지 않은데 강적은 앞뒤로 자신을 포위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정말로 질 가능성이 있겠다. 지금이라면 자신이 질 확률이 절반 살짝 이하 정도는 될 것 같다.

앞에는 늑대, 뒤에는 지네라.

“꽤 좋은 싸움이 되겠구나.”

용은 여전히 대담하게도 웃었다. 달각, 하고 지네의 이빨이 서로 맞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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