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오래된 용 (14)
“이야기를 들으려면 이겨야 한다고요?”
손님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그리고 실제로 급발진으로만 보이는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정말 방법은 이것뿐이다.
“네. 용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당신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 그럴 리가 없거든요.”
태주는 눈을 조금 찡그린 채 말했다. 이야기를 해 보고, 또 듣다 보니 용에 대해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용은 나이가 많아요. 아마도 현존하는 그 어떤 것보다 나이가 많겠죠. 제가 아는 한도 내의 이야기지만요.”
잘은 모르지만 아마 이천 살은 넘은 것 같다. 삼천 살도 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능성은 있다. 용이라는 건 그만큼 살았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생긴 게 노인이라 했으니 당연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승현은 갑자기 뭐 그런 당연한 말을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게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다.
“그게, 사실은 당연하지 않아요. 사실 어지간하면 괴담 속의 존재들은 늙지 않거든요.”
대부분의 괴담 속의 것들은 늙지 않는다. 애초에 대부분 수명에 대한 이야기는 누락되곤 하니, 그런 것이 아닌 이상에야 수명이 있지 않다.
“애초에 대부분이 생명체가 아니게 된 것들이니 늙을 이유가 없죠. 잊혀 사라지는 것이 굳이 따지자면 자연사일 수는 있겠지만요.”
그러나,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라 쳐도 늙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방금 안에서 보신 여자분, 옥분 씨라는 이름을 가졌어요. 그리고 오백년은 더 넘게 세상에 있었죠.”
“네? 오백년이요?”
승현은 조금 놀랐다.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렇게 오래 살았는지는 몰랐다.
“이름에서 좀 느껴지지 않나요? 지금이야 조금 어색할 정도로 낡은 이름이지만 아마 당시에는 엄청 세련된 이름이었을 거에요.”
태도와 표정, 그리고 복장이 아주 오래되었을 뿐 본인의 모습만 떼어놓고 보면 시아와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어쩌면 오히려 더 어려 보이는 모습이다.
“보셨다시피, 오백년을 살아도 나이를 먹지 않아요. 그런데도 용은 노인의 모습이에요. 용에게 수명은 없는데도 말이에요.”
간혹 수명이 있는 괴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용과는 상관이 없다.
“용은 그냥 오래 살수록 강해질 뿐이에요. 딱히 아주 늙는 생명체가 아닌 거죠. 그러니 용의 모습이 노인인 이유는 신체가 늙었기 때문이 아니에요.”
그러니 용의 모습이 노인인 이유는 몸이 아니라 정신 때문이다. 정신이 많이 늙어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당연한 일이에요. 용은 그렇게나 길게 살아가는 동안 생각의 변화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저 한 가지 규칙에 따라서 계속해서 살아왔을 뿐이에요.”
용은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것은 사실상 규칙이기 때문에 싸울 수가 없었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미 본인 역시 그냥 규칙에 불과하다.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 모든 무리는 그렇게 천천히 강해지고, 그것이 진화다. 용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파악은 쉬웠다. 용은 이런 인식을 숨기지도 않고 있다. 애초에 겉치레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강하니, 숨길 이유도 없을 거다.
“그러니, 그냥은 묻는다고 해도 의미가 없고 대답도 없을 거에요.”
그리고 그렇기에 일단 한 번은 이겨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그렇다.
강한 자의 말이 곧 법이라면, 그 사람에게 말을 듣게 하는 방법은 더 강해지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알겠어요, 무슨 말을 하시는지는.”
승현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겨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말 자체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길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런데 그 용을 이길 수는 있는 건가요?”
“글쎄요. 준비 자체는 어느 정도 되어 있어요. 손님과 이무기의 손도 빌려야 하긴 하겠지만, 용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는 건 가능한 일이에요. 두 가지 약점을 찌르면, 충분히 이길 수 있죠. 어렵지만요.”
지네의 독과 역린. 그 두 가지의 승리 조건을 달성할 수만 있다면 용을 이기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무기가 없으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르지만. 태주는 일단은 그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승현은 부담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물론 별로 안전한 선택은 아니에요. 지금 하는 일은, 어쩌면 자연재해 같은 것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말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두 분이 저희를 돕는다면 가능해요. 확실히 가능해지죠.”
이대로는 힘들지만, 저 둘이 돕는다면 가능성이 확실히 있다.
“사실상 제대로 이야기를 하려면 유일한 방법이나 다름 없어요.”
“유일한 방법이라.”
원래라면 하지 않을 것이다. 승현의 원래 성향과는 꽤 다른 일이다.
그러나, 왠지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이것도 이무기가 자신에게 남긴 변화일까. 그런 생각이 조금 들었다.
“한번 해 보실 생각, 있으신가요?”
자신감 있어 보이는 태주의 표정을 본 승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 *
“내가 지금까지 한 행동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용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수준의 그런 질문이다.
“네. 지금 저희가 여기 온 건, 그것 때문이거든요. 잘못했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당연한 거라 생각하나요? 그런 생각 자체가 없었던 걸까요?”
다만 애초부터 답을 바라고 했던 말은 아니다. 태주는 용을 살피며 말했다.
“대답할 생각은 없으시죠?”
“없다.”
용은 단언하듯 말했다.
“그런 건 없다.”
“그럴 줄 알았어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이 태주에게 집중한 바로 그 순간, 월이가 달려들었다. 말도 필요 없다. 신호를 받을 필요도 없다. 그냥, 대화의 타이밍을 보고 알아서 공격한다. 미리 정해둔 것은 오직 그것뿐인 약속이었다.
퍽, 키기긱—!
충돌음과 마찰음의 중간 정도 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칠판을 긁는 소리와도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금속성이 섞여 있는 소리다.
천장은 뚫려 있지만, 그래도 극장이다. 소리를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이 공간은 이 소름 돋는 소리마저 증폭시켰다.
태주가 무심코 몇 걸음 물러날 정도의 어마어마한 소리지만, 정작 그 굉음을 만들어낸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서 있다.
다만 표정은 대조적이다. 월이는 조금 일그러진 표정으로 서 있고, 반대편에 서 있는 용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서 있다.
“설마, 이런 걸 기습이라고 한 건 아니겠지?”
용은 그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물었다.
지금 상황을 말로 하면 간단하다. 월이의 공격은 용에게 막혔다.
월이는 손에 들고 있었던 꽤 자주 써먹은 갈퀴를 빼도 박도 못하고 있고, 용은 그걸 한 손으로 붙잡은 채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부분을 쥔 채로 용은 느긋하게 말했다.
분명 지금도 월이가 힘을 주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도, 용은 계속해서 한 손만을 가지고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습관적으로 막긴 했지만, 이 정도라면 막지 않았어도 다치지는 않았을 것 같구나. 어린 늑대야.”
용은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실제로 용의 손에는 아무런 상처도 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옷깃 하나 찢지 못했다.
“고작 이런 공격을 하려고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한 게냐?”
“거, 튼튼한 건 알았지만 조금 너무한데.”
월이는 조금 이를 악물고는 말했다. 별 피해를 못 입힐 거라는 예상 정도는 어느 정도 했지만, 아예 피해를 못 입힐 줄은 몰랐다.
월이가 뭔가 실수를 한 것은 아니다. 그냥, 상대가 너무 강했다.
실망한 듯한 용의 태도를 본 월이는 혀를 한번 차고는 곧바로 갈퀴를 버리고 뒤로 빠졌다. 힘겨루기가 통할 상대가 아니라면, 거기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자연스럽게, 갈퀴는 용의 손에 들어갔다. 용은 조금 신기한 물건을 본다는 듯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을 살폈다.
“이것도 그럭저럭 괜찮은 도구구나. 내구성이 꽤 좋아. 하지만, 이거 하나 믿고 내게 덤빈 거라면 그야말로 착각이다.”
용은 준비한 건 이게 다냐는 눈빛으로 월이를 쳐다봤다.
“그 정도의 공격으로는 이 몸에 흠집조차 나지 않아.”
“건물 그 높이에서 떨어지는 걸 보고 짐작은 했지만.”
월이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살짝 찼다.
상대가 튼튼하다는 건 알았다.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할 거라는 정도도 알고 있었다. 맨 처음, 용이 천장 쪽에서 그렇게 떨어지는 모습을 봤을 때 이미 월이는 느끼고 있었다.
물론 높은 곳에서 안전장치 없이 뛰어내리는 짓은 당연히 월이도 가끔 하는 짓이다. 그러나 저렇게 무식하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주변에 있는 벽을 이용해서 속도를 낮추거나, 최소한 낙법 정도는 취한다. 죽지는 않더라도 통증은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의 용은 그 정도조차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그게 별 느낌이 없거나 있더라도 살짝 따끔한 정도에 불과하니 할 수 있는 짓이다.
그래도 조금은, 그래도 조금은 피해를 입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아예 피해를 못 줄 지는 몰랐다.
‘뭐어, 변명하자면 할 건 있지만.’
늑대인간인 월이는 낮에는 약하다. 물론, 낮이라고 해도 평범한 사람보다는 훨씬 강하고 튼튼하지만, 달이 뜬 밤과 비교한다면 그건 연약하기 그지없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도 설마 이렇게까지 안 통하나.’
월이는 그런 생각을 한 뒤 한마디를 툭 던졌다.
“용이라는 건 이런 거구나.”
자신들이 무엇과 싸우고 있는가. 이제 좀 더 확실하게 실감이 난다.
그 말을 들은 용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말했다.
“이런 거구나, 라고?”
용은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화를 냈다.
“상대방을 모르고, 정확한 시기도 맞추지 못했다. 이걸 기습이라고 했다면, 아주 실망이구나.”
용은 기분이 나빠진 듯 짜증을 냈다. 천천히, 하늘이 어두워진다. 그러나 용은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나는 너희들이 둘 중 하나는 하기를 바랐다. 전능에게 대항할 카드가 되어주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내가 더 강해질 만한 도전을 하는 적이 될 거라는 기대를 했다. 그 정도의 기대는 품고 있었기 때문에 내 규칙마저 잠시 접어두고 있었지. 만약 이게 너희가 준비한 기습이라면 너희들은 둘 중 어느 쪽도 하지 못한 것이다. 실망이군.”
용이 그렇게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주는 역으로 웃었다. 지금 하늘이 어두워졌기에 오히려 대담하게 태주는 웃을 수 있다.
“기습이요? 이게요? 아뇨, 그럴 리가 없죠. 기습을 할 거라면 조금 더 좋은 타이밍이 있었어요. 이렇게 눈앞에서 할 이유가 없잖아요.”
용의 말대로, 방금 그건 기습이라 하기에는 여러 의미로 수준 미달이다.
“기습의 목적은 간단해요. 상대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틈을 타서 확실하게 이득을 챙기는 거예요.”
따라서 상대방이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이 아니거나, 혹은 목적을 이루기에 충분한 수준의 공격이 아니라면 그건 기습의 의미가 없다.
“이번에는, 어느 조건도 만족하지 못했죠.”
“그래. 기습을 할 거였다면, 애초부터 나에게 이런 식으로 대해서는 안 되었다. 대화의 맥락이 이미 나에게 방법을 말해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니.”
용은 자신만의 규칙이 있을 뿐이지 바보는 아니다. 그러니, 용에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던 시점에서 기습의 타이밍을 잡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피해를 주지 못한 건 그렇다 쳐도 ‘예상치 못한 타이밍’을 정하는 데도 완벽하게 실패한 셈이다.
“이미 말한 적이 있지만, 나는 너희와 싸우는 데는 불만이 없다. 원래 강한 자는 약한 자의 도전을 받아줘야 하는 것이 일종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용은 손에 든, 어쩌다 보니 빼앗은 셈이 된 쇠스랑을 보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준비와 이런 정도의 힘으로 나에게 도전한다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
“뭐어, 나름 필요한 일이었어요.”
태주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이 정도를 하지 않으면 손님한테 면이 서지 않잖아요? 나름 의리는 지켜야죠.”
“헛소리.”
용은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한다며 태주를 쳐다봤다.
“헛소리는 아니에요. 어쨌든,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할 이야기를 할 수 없었거든요.”
태주는 곧바로 이어 말했다.
“뭘 하고 싶었냐 하면, 저는 그냥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당신이 제 이야기를 좀 더 진지하게 듣도록 만들 방법은 사실상 이것뿐이었으니까요.”
간단하다면 간단한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어볼게요.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저희 쪽 손님이 가진 의문을 대답해 줄 생각이 있나요?”
“없다.”
용은 단언했다.
“내가 반대로 묻지.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지금 네가 방법을 말하지 않는다면, 너를 죽일 테다.”
용은 태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굳이 너를 예외로 둘 필요가 없는 것 같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