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오래된 용 (11)
죽는 것이 싫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약한 것은 확실히 싫다. 이제 와 떠올리면 죽는 것보다도 자신이 언젠가 무리에서 가장 약해질 거라는 확실한 미래가 더 싫었던 것도 같다.
이대로도 무리에서는 가장 강하지만, 앞으로도 가장 강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강해질 방법이 무엇이 있는가. 어떻게 하면 더 강해질 수 있을까.
아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 다른 방법은 모른다. 그것이 할 수 있는 것은 계속해서 이겨나가는 것뿐이다.
무리의 다른 것과 겨룬다. 전체적인 면에서는 조금 떨어지지만, 속도만큼은 자신보다 빠른 것과 붙어 이길 때까지 경쟁한다.
자신보다 빠르던 것이 자신보다 느려질 때까지, 계속해서 승부를 본다.
힘만은 자신보다 강하던 것과도, 기술이 자신보다 강했던 것과도 한 번씩은 겨뤄 본다.
지루할 정도의 반복이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든 일이었으나, 그 이상으로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잘하기에 즐거운 것인가, 즐겁기에 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인가?”
어느 쪽이었는지는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알 수 없다. 가졌던 의문은 다른 쪽이다.
“이제 어떻게 하면, 더 강해질 수 있지?”
무리 안에서 이제 자신과 비교해 더 강한 요소를 가진 것은 없다. 더 이상, 자신의 목표가 될 상대가 이 주변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깥으로 나가면 된다.”
무리를 떠난다. 중간에 마주치는 것과 싸운다. 자신보다 어느 하나씩은 강한 상대와 끊임없이 만나 겨룬다.
지면 죽고, 이기면 사는 싸움을 계속하던 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그것은 이미 용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이 싸우는 모습을 세상에 전달한 것인지, 혹은 지금까지 해낸 업적이 감히 평범한 것들이 해낼 수 없는 대단한 일이었기 때문인지 용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용의 욕심은 그때 정해진 것이 확실하다.
더 강해지고 싶다. 더 오르고 올라서, 결코 약자가 되지 않을 자리까지 오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자와 싸워야 한다. 아는 방법은 여전히 그것뿐이다.
재미있게도,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다른 강한 것들과 만나기는 오히려 더 쉬워졌다는 점이다. 비슷한 녀석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알아서 피라미 녀석들이 위치를 알려주기도 한다.
그런 끊임없는, 그러나 돌이켜 떠올려 보면 아주 화려했던 전쟁의 나날이 즐거웠던 것도 같다.
하루하루, 강적과 싸운다. 조금씩 강해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좋은 일이다. 목숨이 위험했던 적도 있고, 실제로 거의 다 죽어가던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용은 전부 이겨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용은 깨달았다.
“오늘은, 적이 없군.”
어쩌다 하루 정도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법이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는 호적수라 할만한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루에 하나씩은 있던 것이, 이제는 열흘을 찾아도 잘 나오지 않는다.
열흘을 찾아도 잘 나오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개월 단위, 연 단위로만 나타난다. 또 그다음에는 한 세기를 꼬박 적과 만나지 못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느새 천년이 넘게 지났다. 그동안 용은 자신보다 강한 것과 마주치지 못했다.
천년이 지나고 난 시점에서 용은 인정했다. 이제 자신이 쓰러트리고자 하는 강자가 세상에는 없다.
“재미없구나.”
언젠가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이기는 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되는 것이 용이 가진 목표 중 하나였으니까.
그러나 정작 그렇게 되고 나니 즐겁지 않다. 자신보다 강한 것이 없다면, 자신은 이제 앞으로 더 강해질 수 없는 것일까.
용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은 자신보다 강한 것이 없다. 하지만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분명히 자신만큼 강한 것은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기다리기만 하기에는 너무 지루하다. 그걸 어떻게 더 빠르게 나타나게 할 방법이 없을까.
곰곰히 생각한 뒤 용은 말했다.
“방법이 있군.”
만들면 된다.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할 정도로 강한 것이 나타나도록 손을 쓴다. 용은 그렇게 지루해진 이후로는 처음 웃었다.
“약한 것을 솎아낸다.”
무리가 강해지는 속도를 자신이 스스로 올린다. 약한 것이 죽고, 강한 것이 남는 그 과정, 그 과정을 조금 더 빠르게 하면 언젠가 분명 자신만큼 강한 것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 논리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방법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용은 그렇게, 만나는 것들의 무리 중 최소 하나를 죽이는 행위를 반복했다.
개미 무리를 만나더라도, 하나를 밟는다. 야생마 무리를 만나면, 대충 도망치는 것 중 뒤에 있는 것 하나나 둘 정도를 죽인다.
혼자 살고 있는 것은 죽이지 않는다. 전부 죽여서는 자신만 한 강자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 남을 테니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젊었던 용은 어느새 나이가 가장 많은 용이 되었다. 농사에 가까운, 그저 끝없이 잡초를 뽑아내는 단순반복의 과정이 질려가던 와중, 용은 소문을 들었다.
“전능이라는 것이 나타났다.”
용은 오랜만에 몸을 풀고는, 곧바로 소문을 따라갔다. 전능이라, 그건 참으로 강해 보이는 이름이 아닌가.
하지만, 그곳에는 용이 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 평범한 인간 여자. 심지어는 하는 말 역시 상당히 바보 같다.
“와, 용이다. 실물은 처음이야.”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찾았건만, 나타난 것은 그저 백치처럼 보이는 여자 하나다. 용은 실망한 채 물었다.
“그냥 인간인가?”
“인간이야. 아닌가? 몰라? 정확히 내가 뭔지는 나도 모르겠네. 알 법한 녀석이 지금 어디 가버려서.”
상상 이상으로 이상한 답변이다. 크게 실망한 용은 여자가 정신이상자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대충 손짓했다.
“가라.”
돌풍이 인다. 사람 하나는 아마 산 너머로 넘길 수 있을 만한 그런 강한 바람. 생사를 고려하지 않은 강한 바람이기에 용은 여자가 눈앞에서 사라질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여자는 치워지지 않았다. 용은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물었다.
“뭐지?”
“뭐가?”
“방금, 왜 날아가지 않았지?”
자신이 실수할 리는 없다. 손대중이 있거나 하지도 않았다. 정말로 저 멀리,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날아가 죽으라는 의미로 한 행동인데 눈앞의 여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
“네년, 인간이 아닌가?”
“인간이라니까… 아마도? 사실 나도 잘 모르겠네.”
여자는 그렇게 말한 뒤 자신을 소개했다.
“요즘 사람들은 나를 전능이라고 부르나 봐. 내 이름은 아무도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여자는 그렇게 말한 뒤, 웃으며 용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나 좀 도와줘라.”
“뭐?”
용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필요한 게 있는데 혼자서는 못 찾겠어.”
“알아서 할 일 아닌가 그거야.”
갑자기 찾아온 용에게 그게 할 소리인가 싶어서, 용은 말했다.
“뭘 찾는지는 몰라도 나는 사소한 것을 찾는 데는 관심 없다.“
여자는 용이 거절하자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그런가. 하긴, 그 녀석도 맨날 공짜는 없다고 말했지. 뭐 필요한 걸 준다는 조건이면?”
여자의 말을 들은 용은 눈을 찌푸렸다. 용에게 필요한 것은 딱히 많지 않다.
“내게 필요한 건 강적뿐이다. 너는 그걸 구해 줄 수 있나?”
용은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다면, 네가 그 강적이 되어줄 수 있나?”
“으음, 그거야 원한다면 해 줄 수도 있긴 한데, 아마 네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를걸?”
전능은 그렇게 말하고는 웃었다
“그래도, 그거라도 좋다면 맘대로 해. 언제든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면 날 공격해도 괜찮아. 하는 김에 그 녀석도 좀 찾아 주고.”
* * *
용의 설명은 끝났다. 월이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진짜 이상한 짓을.”
짧은 평이다.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듯 잔뜩 찌푸린 눈이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사연 중 제일 이상해.”
용은 그러나 그런 말에도 전혀 화가 나지 않은 듯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매번 느끼지만, 참 당돌하구나. 하지만 나도 안다. 너희가 쉽게 납득할 수 없음은 안다. 너희들에게는 그렇게 보이겠지.”
“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이야 그래도 좀 알겠지만….”
월이는 눈을 찌푸렸다.
“이무기를 죽인 이유가 도저히 납득이 안 가.”
별 이유 없이, 그저 거기서 무리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이무기는 죽었다.
“정말 그것 하나 때문에 죽인 거야? 거기에 무리가 있어서?”
“그래. 원래는 새끼를 죽이려 했지만, 부모가 저항하길래 그냥 부모를 죽였다. 그 이상의 이야기는 없다. 내 목적은 무리 중 하나를 죽이는 것뿐이니까.”
결국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이론 때문에 이무기가 죽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용에게는 그거면 충분한 이유다.
“그 녀석의 추측은, 그래서 틀렸지만 반쯤 맞기도 했다. 그 이무기는 자세히 볼 정도로는 가치가 있었고, 자세히 보지 않았으면 그냥 하나만 있는 줄 알았을 테니.”
게다가 어찌 되었든, 용이 가지고 있는 욕심 자체는 정확하게 꿰뚫어 본 상황이다.
“고작 그런 이유로 죽이는 건 너무한데요.”
설이 역시 대놓고 말했다. 어차피 그 정도 말로 해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이유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기 때문에 나는 용이다.”
용은 잘라 말했다.
“이렇게 내가 나이를 먹는 동안, 나는 단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 살았다. 그러니 타협은 없다.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이상해 보이더라도 나는 한다.”
용은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혀 의미가 없는 목표 같은 것을 목표랍시고 떠드는 전능이나, 그게 정말로 될 거라 생각하고 따르는 흡혈귀와는 다르다. 내 목표는 아주 확실하고, 정확한 것이니 말이다.”
용은 아직 앉아있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금은 필요하기에 규칙에 잠시 예외를 뒀지만, 필요 없어진다면 내버려 둘 필요도 없다.
“그러니, 혹시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너희들 중 최소한 하나는 무조건 죽는다. 그리고, 그러니 묻겠다. 너희는 자신보다 한참 강한 것과 싸워 이길 자신이 있나? 전능에게도 덤빌 수 있나?”
용이 나타난 이상,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 전능과 싸우거나, 용과 싸우거나. 어느 쪽도 말도 안 되는 싸움이다. 아무리 용이라도 그게 불합리하게 받아들여질 싸움이라는 자각은 있다. 용은 월이에게 물었다.
“자신 있나?”
“몰라 그딴 거.”
월이는 눈을 찌푸렸다.
“그게 맞다면 그렇게 할 거야. 흡혈귀는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잡으려 든 줄 알아?”
“흐음, 자신은 없어도 한다 이건가.”
숨거나 도망칠 것 같지는 않다. 용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내일 보자꾸나.”
용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떴다. 두 사람은 잠시 앉아서 그대로 멈춰 있었다. 꽤 지쳤기 때문이었다. 이야기하는 게, 심지어 중간부터는 듣기만 하는데도 꽤나 힘들다.
“혹시 녹음했어?”
“…응.”
“대단하네.”
“나도 까먹을 뻔했어. 언니가 맨날 습관처럼 알려주는 거 아니면 분명 그랬을걸.”
설이는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흡혈귀 때보다는 난이도는 낮고, 대신 심리적인 압박감은 이번이 더 높았다. 설이는 손에 땀이 흥건한 모습을 내려다보고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월이 역시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일단 우리 원래 하려던 거부터 하자.”
“하려던 거?”
“주문 말이야, 주문.”
기분은 이미 많이 잡쳤지만, 그래도 저녁밥을 사갈 필요는 있다.
“밥이라도 먹어야지.”
월이는 그렇게 말하고 카운터로 갔지만, 원하는 대답은 듣지 못했다.
“아, 저희 주문 마감입니다. 방금 분이 다 사가셨어요.”
점원의 말을 들은 월이는 눈을 한껏 찌푸리고는 말했다.
“진짜 좀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