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오래된 용 (10)
그냥 남의 카드로 비싼 밥을 먹으려는 정도의 작은 속셈이 이렇게 천벌을 받을 정도로 나쁜 일인지는 몰랐다. 솔직히, 조금 억울할 정도다.
“어처구니가 없네.”
월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왜 두 사람이 가려는 가게 앞 테이블에 용이 앉아있다는 말인가.
“설마 우연히 가려는 가게가 같았기에 만났다는 건가? 그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처음 보는 모습이기에, 혹시나 저게 용이 아니지는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잠깐 품어봤지만 결국은 이전에 시아가 내렸던 것과 같은 결론이다.
저만한 괴물이 용이 아닐 리 없다.
태주나 시아가 외모에 대해 굳이 설명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저걸 보고도 상대가 용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이 사무소에 있을 리 없다.
월이는 등에 살짝, 땀이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끔찍할 정도로 차가운 땀이다. 월이는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아.’
먼저 공격을 하기에도, 자신의 비정상적인 신체 능력을 살려 도망가기에도 지금 상황은 좋지 않다.
애초에 인기 식당의 앞이다.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말려들지 않도록 할 방법은 없다. 결국 월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조용히, 설이를 자기 뒤에 두는 것뿐이었다.
“흐음?”
노인 역시, 월이의 그 시선을 눈치챈 듯 쳐다봤다. 당연히 눈이 마주쳤다. 노인은 씩 웃었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인자한 그런 웃음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나 소름 끼친다.
“이리 와 앉지.”
용은 천천히 말했다.
“드디어 만났군, 늑대인간.”
월이는 눈을 찌푸렸지만, 뭐라 더 말하지는 못했다. 하다못해 주변의 시선이라도 끌지 않는다면 그나마 상황이 나을 텐데, 노인의 모습은 너무나 이목이 끌린다. 이렇게 새하얗고 긴 머리카락과 수염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뭐지? 배우인가?”
“수염이 대단하시네. 저렇게 관리하기 어려울 텐데.”
주변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런 모습이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이 특별히 없다.
“이런 건 햄버거랑 감자튀김 같은 것을 사러 와서 만나도 될 만한 상대가 아닌데.”
월이는 이를 꽉 깨문 채 말한 뒤,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는 물었다.
“어째서 여기에?”
짧고 건방진 말투지만, 용은 그 버릇없는 말투 자체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무던하게 대답했다.
“왜 여기에? 중요한가 그게? 나도 식사 정도는 한다. 반쯤은 재미로 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용은 느긋하게 손에 남은 것을 삼킨 뒤 자기 앞의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게. 지금은 굳이 싸울 생각이 없으니.”
“…내가 뭘 믿고?”
월이는 날카로운 눈으로 물었다.
“믿지 않으면 방법이 있나? 나를 이길 방법 같은 게 너희들한테 있나?”
용은 대놓고 물었다. 그런 식으로 나오자면 할 말은 없다. 월이는 쯧 하고 혀를 찼다.
“너는 내가 어느 정도로 강한지 정도는 알 수 있을 정도로는 강하니까, 나름대로 유망한 녀석이라고 본다. 그러니, 굳이 그 이무기 녀석처럼 덤비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만.”
용의 말을 들은 월이는 물끄러미 용을 쳐다봤다. 적개심을 전혀 거두지 않는 모습을 본 용은 너털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네가 싸우길 원한다면, 그래도 좋다. 그 또한 환영이다. 나는 약자의 도전을 받아주는 것이 강자의 책임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
“도전?”
“그래. 단, 지면 죽는다. 네가 이긴다면 날 죽일 테니 그 정도는 해야 공평하겠지.”
여전히 웃고 있지만, 용의 말은 명백하다.
“앉거나, 싸우거나. 마음대로 해라. 지금은 그냥 한번 호기심에 온 것에 불과하니. 어차피 내일 다시 볼 텐데 지금 너희에게 억지로 뭔가를 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듣지 않았나? 내 목표가 뭔지.”
결국 그 중요한 문제에 비하면 너희에 대한 일은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고, 용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굳이 지금 너희를 죽일 이유는 없다. 갈 테면 가라. 나는 너를 보는 것만으로도 목적 자체는 달성했으니.”
용은 그렇게 말한 뒤 쳐다봤다. 마음대로 하라는 태도다. 평소에 자신이 보이던, 그런 어떻게 해도 나를 다치게 하지는 못할 거라는 그런 자신감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태도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래서 알 것 같다.
“진심이네.”
“기만과 거짓은 약한 녀석에게나 필요하니까.”
용은 그렇게 말한 뒤, 느긋하게 몸을 뒤로 젖혔다.
“내가 당장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면, 정말로 그럴 생각이 없는 거다. 물론, 싸움을 걸어 온다면 이야기는 다르지.”
용은 아주 잠시, 웃으며 월이를 노려봤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약한 오한을 느끼는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힘을 조절하기는 했지만, 명백한 위협이다.
“그리고, 어쨌든 세 번 묻지는 않을 거다.”
더 이상의 권유는 없다는 듯 용은 말했다.
“이미 목적은 달성하기도 했고.”
“목적?”
“아직 못 본 녀석들이 어떤 녀석들인지 궁금했다. 특히 네가 궁금했지. 혹시나 옛날에 본 늑대 녀석보다 강할까 싶었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구나.”
용은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애매한 정도야.”
“그래도, 저희 중 분명 가장 강해요.”
설이의 말을 들은 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느긋한 말투다.
“그렇겠지. 저 정도만 해도 현대에는 아주 드문 것이니. 그래도 장래성은 있구나. 한 오십 년 정도만 되어도 이전 것보다 강해질 수도 있겠어.”
“오십 년?”
호평인지 악평인지 모를 말이다. 월이는 표정을 구겼지만, 뭐라 말해도 결국은 썩 좋은 기분이 아닐 것 같아 입을 삐죽였다.
“어쨌든, 좋아요.”
설이가 앞으로 나서 자리에 앉았다.
“앉았어요. 다음은 뭐에요?”
“야!”
채 말리기도 전에 앞으로 빠르게 나가 버렸다. 월이가 순간 발끈했지만, 설이는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네가 진심이라며? 그럼 이야기해볼 만하잖아?”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이는 앉았다.
“여기 앉으라 말했다는 건, 이야기를 하자는 의미니까 괜찮을 거야. 어차피 작정하고 상대가 잡으려 든다면 도망칠 수도 없는걸.”
“흐음.”
용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약한 주제에 당당하다. 강한 녀석이 오히려 조심스럽다. 내가 봐 온 것과는 조금 다른 녀석들이긴 하구나.”
“쎈 사람이 조심해야지. 물론 나도 맨날 까먹긴 하지만 안 까먹으려 한단 말야.”
월이는 결국 설이 옆에 앉으며 말했다.
“글쎄다, 동의하지 않는다. 약한 녀석이 조심해야지.”
딱히 이런 걸로 서로 논쟁할 생각은 없다. 두 사람 다 서로 설득할 생각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앉았다면 이야기를 할 생각 정도는 있는 거겠지. 흡혈귀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한다.”
용은 대뜸 말했다.
“…그 녀석은 왜?”
월이는 조금 불편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래도, 본인 손을 거쳐 끝장난 상대의 동료가 물어보는 지금 이 상황은 꺼림칙하기 그지없다.
“아끼는 친구였어?”
“친구? 그럴 리가. 굳이 따지자면 스승과 제자겠지만 나는 스스로를 스승이라 여기지 않고, 그 녀석도 스스로를 제자라 여기지 않았다.”
그저 용은 정말로 안 죽는지 실험을 계속해서 해 봤고, 흡혈귀는 기본적인 체술을 정말로 맞아가며 배웠을 뿐이다.
“다만, 재미있는 녀석이라는 생각 정도는 지금도 든다.”
용의 말을 들은 월이는 조금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한데, 그건.”
쓰러트린 것에 후회는 없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아는 사람을 망가트리는 것이 꺼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용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런 걸 책망하려는 건 처음부터 아니다만. 애초에 강한 쪽이 약한 쪽을 잡아먹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
“그럼 왜 그 이야기를 꺼내신 건가요?”
설이의 질문에, 용은 길게 설명하기도 귀찮다는 듯 바로 말했다.
“한번 짐작을 해 본 거다. 어떻게 불사의 녀석을 죽였을까.”
만약 혼자 할 수 있다면, 이 녀석들과 협력을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용은 굳이 그 말을 밖으로 꺼내지는 않고 말했다.
“그리고 너희들을 보니, 분명 흡혈귀를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너희들일 것처럼 보였거든.”
용은 조용히 말했다.
다만, 어떻게 죽일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용은 그것이 궁금했다.
“뭐, 그건 내일 듣기로 했으니 당장 너희에게 묻지는 않겠다. 너희에게 묻고 싶은 건 조금 다른 것이다.”
용의 말을 들은 설이는 적당한 타이밍을 잡아 물었다.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도 될까요?”
“흐음? 뭐 상관없지. 대답할지 말지는 내 마음이지만.”
“이무기를 왜 죽인 건가요?”
“그 이무기의 죽음에 너희는 정말 큰 의미를 두고 있나 보군? 아는 사이도 아니었을 텐데.”
용은 눈을 감았다. 대답하지 못할 것도 없는 내용이다. 아니, 오히려 자신과 관계를 맺겠다면 알려줘야만 하는 내용이다.
용은 입을 열었다.
“내가 싸움을 거는 건 딱 두 가지뿐이다. 나보다 강한 녀석, 그리고 무리를 만들고 있는 녀석.”
“무리?”
월이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무리?”
“말 그대로 무리다. 여럿이 뭉쳐 있는 그런 것 말이다. 내가 죽이는 것은 그런 녀석 중 하나 이상이다.”
하나가 될 수도 있고, 더 많을 수도 있다.
“뭐하러 그런 짓을 하죠?”
“왜 그런 짓을 하냐고? 필요하니까.”
용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다.”
* * *
강함에 대해 왜 집착하게 되었는가. 이제 와서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당시의 기억은 잘 나지도 않는 걸 보면 그리 대단한 사연 같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자신은 처음부터 그럭저럭 강했다는 것과 그렇기에 생각할 여유가 있었다는 점이다.
자신보다 강한 것에게 도망치면서 생각할 여유가 있었고, 자신보다 약한 것을 사냥하면서도 관찰할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관찰한 결과, 그것은 단언할 수 있었다.
“다르다.”
지금까지 살면서 본 녀석들은 모두 다르다. 같은 종족끼리도 개체의 차이는 명백하게 있다.
자기가 잡아먹는 입장에 있는 것들 중에서도, 크기 차이가 있다. 잡기 쉬웠던 놈이 있고 잡기 어려웠던 놈이 있다.
자기를 잡아먹으려 들던 놈 중에서도 실력의 차이가 난다. 도망치기 쉬웠던 것이 있고, 도망치기 비교적 어려웠던 것이 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대체 어디서 차이가 나는 건가.
문득 그것이 궁금해진 용은 생각했다. 그리고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가, 약하다는 것은, 죽을 순서다.”
어떤 녀석은 약하다. 그러니, 먹이를 챙기지 못하거나, 천적에게서 도망치지 못한다. 그러니 죽는다.
반대로 어떤 녀석은 강하다. 하다못해 식물 중에서도 벌레 같은 것들을 역으로 잡아먹는 강한 녀석이 있다.
그리고 약한 녀석부터 죽어가면서, 조금씩 강한 것이 살아남는다. 어느샌가 무리에서 가장 강했던 것도 결국은 가장 약한 것이 되어 죽고 만다.
중간은 가던 녀석도, 꽤 높은 서열의 녀석도 시간이 가면 점점 약해진다. 새로운 강자들이 계속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약한 것이 된 순간 죽는다.
“약한 녀석은, 계속 사라진다. 강한 녀석이 계속 남는다.”
무리에서 가장 약한 종류의 녀석들은 죽는 것을 반복하더라도, 무리는 남는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무리는 강해진다.
가끔씩 예외 같은 건 있지만 그래도 그리 엄청난 차이는 아니다. 그것은 그런 결론을 내린 뒤 다시 한번 생각했다.
“나는 지금은 무리에서 가장 강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나는 가장 강할 것인가?”
대답은 알고 있다.
“그럴 리가.”
방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