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오래된 용 (7)
정말 갑자기 하늘에서 월이가 떨어졌다. 뚫려 있는 천장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 퉁 하는, 무게에 비해서 가벼운 소리와 함께 월이는 말했다.
“감자튀김의 원수!”
“왜 거기서 오냐?”
올 줄은 알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올 줄 알았다. 어쨌든 오지 않거나 늦게 오는 것보다는 훨씬 낫기에 불만은 크게 없다.
다만 먼지는 조금 많이 날렸기 때문에 태주는 기침을 한 번 했다.
옛날 건물이기도 하니 설마 석면 같은 게 섞여 있지는 않았겠지, 하고 태주는 살짝 걱정했다. 비현실적인 죽음의 위협을 벗어나고 나서, 현실적인 질병으로 고통받고 싶지는 않다.
“엣취! …뭐어, 괜찮겠지.”
태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연극에 꽤 진심인 영감님이 운영하던 장소였으니 배우들에게 문제가 생길 만한 상황은 만들지 않았을 거다.
태주는 지금 해도 별 의미는 없을 걱정은 그만두고 월이 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감자튀김의 원수라니?”
“그런 게 있어! 깜짝 놀라서 감자튀김을 떨어트렸거든. 기대하고 있었는데!”
월이는 생각하다 보니 화가 난다는 듯 눈을 잔뜩 찌푸렸다. 태주는 그냥 그런가 싶어 고개를 끄덕이다가는 물었다.
“근데 갑자기 왜 네가 놀라? 한참 멀리 있지 않았어?”
“아니, 그야 멀리 있어도 놀라지! 갑자기 건물 뚫고 용이 튀어나오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런 광경을 볼 줄은 몰랐기에, 놀라는 것도 당연하지 않냐고, 월이는 말했다.
“어쨌든 기대하던 감자튀김은 화단에 떨어졌어. 아무리 나라도 그걸 주워 먹지는 않는다고. 흙에 떨어졌거든.”
월이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흙이 아니면 먹는 거야…? 어쨌든 그렇게 먹고 싶으면 하나 더 사던가.”
“진짜? 그래도 돼?”
천진하게 말하는 월이의 말투를 들은 태주는 아무래도 좋아져서는 말했다. 솔직히, 그 정도를 못 사줄 이유가 없기도 하다. 혼자서는 나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도와주러 왔으니 그 정도는 아쉽지 않다.
“뭐, 맘대로 해. 감자튀김 정도야… 아예 그냥 몇만 원치 먹어도 돼.”
“진짜? 나 그럼 맘대로 시킨다? 좋았어! 한 사람당 하나씩 다 사야지!”
그것만으로도 이미 기분이 꽤 좋아졌는지 월이는 싱글벙글하게 웃었다.
그 정도가 뭐가 좋다고. 작은 돈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아직 어리긴 하다 싶다. 역시 자신이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 옳았다. 태주는 그런 생각을 했다.
월이는 그렇게 희희낙락하다가 갑자기 생각났는지 물었다.
“근데, 용이 천장은 왜 부숴 먹은 거야?”
“왜 부숴 먹었냐고?”
“응. 뭐 기분 나빠서 그런 거야? 아님 뭐가 잘못된 거라던가?”
월이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 그럴 리가 있나. 뭔가 기분이 나빴거나 수틀려서 그냥 돌아갈 생각이었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
쓴웃음이 나오지만, 어쩔 수 없다. 용이 그럴 마음을 먹었다면 태주가 살아있을 방법은 없다.
“근데 그럼 천장은 왜 부숴? 뭐 화났던 거 아냐?”
순진하기까지 한 질문 수준이다. 딱히 나쁜 질문인 건 아니지만, 그 질문을 하는 게 월이다 보니 태주는 조금 웃었다.
“뭐야? 왜 웃지? 내가 뭐 이상한 질문 했나?”
“아니 이상한 것까지는 아닌데.”
태주는 바로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언급했다.
“네가 늘 사무소 책상이랑 의자 부숴 먹은 게 화가 나서 그랬던 건 아니잖아. 그냥,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은 뭔가 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박살 내버리곤 하는 법이라서.”
물론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고, 용은 애초에 망가져도 상관없다는 마인드로 행동하고 있었을 테니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겠지만.
“…으음, 그렇지.”
월이는 조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건 필요해서 그랬던 거라고!”
“용도 본인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을걸?”
물론 용보다는 월이가 낫기는 하다. 용이 천장을 박살 내고 돌아간 이유 같은 건 없어 보이니까. 그저 정말로 일이 끝났으니 돌아간다는 태도였을 뿐이다.
“아마, 그냥 그편이 돌아가기에 빨라서 그랬던 거 아닐까?”
대답을 들은 월이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잠시 피했다. 왠지 자신이 가끔씩 하던 변명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월이는 억지로 화제를 돌리기 위해 물었다.
“큼, 근데 돌아가다니, 어디로?”
“몰라? 저번에 용산역에서 해프닝이 일어났던 거 보면 그냥 용산역 근처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추적해봐야 큰 의미가 없기도 하고, 당장 천장이 무너지는 와중에 다치지 않으려고 황급히 피하느라 용이 어디로 날아가는지는 제대로 살필 수 없었다.
아무렴 어떤가 싶어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당장 용과는 내일 다시 만난다. 그때는 꽤 준비를 하겠지만.
“그나저나, 저기 문이나 좀 열어줘라.”
태주는 그렇게 말하며 극장 입구 쪽 문을 가리켰다. 월이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문? 저게 안 열려?”
“안 열리더라. 벽이 좀 기울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뭐 다른 문제가 생긴 건지는 잘 모르겠어.”
어쩌면 반대쪽에서 뭐가 막혀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겠다.
“좀 세게 밀면?”
그래서 열렸으면 내가 여기 있었겠느냐는 눈을 한 태주는 월이를 지그시 쳐다봤다.
“알았어!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니까 그런 시선은 그만해!”
월이는 그렇게 말한 뒤, 천장을 한번 올려다봤다.
“근데 이제야 하는 말인데, 너 진짜 안 다쳐서 다행이다.”
“빨리도 말한다.”
태주 역시 따라서 천장을 올려다봤다. 용이 떠나서 그런가, 하늘은 아까보다 맑다.
“진짜 용은 용이네. 약속한 게 안 지켜지면 어쩌려고 이딴 식으로 나간 거야?”
용건이 끝나면 태주에게 별로 관심이 없을 거라는 생각 정도는 했다. 하지만 관심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용은 그냥 천장을 뚫고 나가버렸다.
“만약에 네가 다쳤으면 그 약속인지 뭔지는 안 지켜졌을 거 아냐.”
“아마 내가 다치거나 죽는다면,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던 거겠지. 아님 그만큼의 생각도 안 했거나.”
그냥 그뿐인 이야기다. 중요한 건 용이 왜 저렇게 나갔는지가 아니다.
“그래서, 멀리서 보니까 어때? 이길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태주의 질문을 들은 월이는 눈을 찌푸렸다.
“아니.”
“전혀 안 될 것 같아?”
“응, 전혀. 혼자서는 어떻게 해도 안 될 거 같아.”
용이 올라가는 모습은 말 그대로 승천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그저 일종의 회오리바람 비슷한 거로밖에는 못 봤겠지만.
“보니까 알겠더라고. 저거랑 싸우는 건 그 뭐냐, 산이나 바다 같은 거랑 싸우는 거 같은 느낌일 거 같아.”
처음 큰 동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때는 아무리 그래도 이빨 하나 안 박히겠느냐고 생각했었지만, 직접 보니 알겠다. 저런 거랑 싸우는 건 바보짓이다.
“저런 거랑 싸우려 드는 건 굉장히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용이 전능과 싸우려는 생각이 바보 같다고 느낀 것처럼, 월이 역시도 그렇게 느껴버린 것 같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런가. 네가 보면 조금 다를까 싶어서 물어봤는데.”
“그야 비슷하겠지! 너나 나나 저런 건 처음 보잖아. 물론 네가 더 오래 일하기는 했겠지만.”
월이는 태주 쪽을 보고는 물었다.
“근데 용이랑 싸우면 이길 수 있어? 계획 같은 거라던가 말이야.”
“가능성이야 어떻게든 있긴 한데.”
가능, 불가능이냐 하면 가능이다. 아주 어렵겠지만.
“근데 그거 우리가 써먹기에는 재료가 좀 모자라.”
“재료?”
계획이 있다 해서 늘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구하면 되잖아! 늘 그랬던 거 아냐?”
“그냥 발품 팔아서 구할 수 있는 종류의 재료면, 나도 물론 그렇게 했겠는데 말이지.”
태주는 조금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손님이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방법이 결정된단 말이지.”
태주는 말했다.
“아마도 지금은 네가 잊어버렸을 우리 손님분 있잖아.”
“그, 그렇게 말하지 마! 까먹긴 했었지만!”
* * *
딸랑—
설마 이 와중에 누구 다른 사람이 온 건 아니겠지 싶어 시아는 조금 불안한 얼굴로 문 쪽을 바라봤지만, 그래도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그나마 다행인 셈이라, 시아는 웃었다.
“이틀만이네요.”
승현은 문을 열고는 인사했다. 주머니에는 작은 새끼 이무기가 있다.
승현은 주변을 살짝 둘러보고 나서, 설이를 보고는 미소지으며 목례했다.
“그때는 실례했어요.”
하루에서 이틀 정도 생각을 하다 보니 많이 상태가 좋아진 듯 보인다.
설이 역시 마주 보며 웃었다.
“아니에요! 저도 그때는 너무 당황했네요, 지금은 괜찮으시죠?”
“덕분에요, 그리고 이 녀석 덕분이기도 하고요.”
이무기는 승현을 잘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당장 별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으니 다행이다.
“의도치 않게 애니멀 테라피 같은 꼴이 되었지만, 다행이군요.”
어쨌든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인 일이다.
시아는 승현을 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전화로 하실 줄 알았습니다.”
“물론 저도 전화로 해도 된다는 말은 들었지만요.”
승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해야 할 이야기는 길고 자세하다. 통화로 하기에는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오셨다고요?”
“네. 생각도 이제는 조금 정리됐고요.”
정리되었다. 그 말을 들은 시아는 표정을 진지하게 고쳤다.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도 물론 좋지만, 늘 모든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의뢰는 어떻게 할 거냐고 질문하셨었죠?”
승현도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재미있게도, 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다들 그 생각을 못 했었다고 해야 할지, 승현은 제대로 된 의뢰를 했던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그런 의뢰를 받으려고 했던 타이밍에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갑자기 용이 나타나고, 갑자기 소장은 잡혀갔다. 그렇게 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승현의 선택을 듣는 것은 뒤로 밀리고 말았다.
그렇다 보니 결국 이번 일에서 제대로 된 의뢰는 없었다. 그저 필요한 것을 그때그때 진행했을 뿐이지, 정식으로 의뢰를 넣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도 않았다.
시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그랬습니다. 제가 드린 질문은 아니었지만, 결국 제가 거기에 있었어도 같은 질문을 드렸겠지요.”
물론 그 전까지 승현이 판단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진실을 들을 것인지, 그냥 적당하게 부작용 없이 낫는 것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승현에게 주어졌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승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환자인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건 당사자의 의뢰가 아니라, 그냥 적절한 처방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들을 수 있다. 오히려 들어야만 하는 상황이 다시 왔다.
“손님이 지금 바라고 있는 건 무엇입니까?”
시아는 질문했다.
지금 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질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들어야 한다.
“원한다면, 우리는 용과 싸울 수도 있습니다. 승리를 장담하지는 못합니다만.”
“정말요?”
“필요하다면, 저희는 합니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싸우지 않고 도망치기를 원한다면, 저희는 그것 역시도 도울 겁니다.”
그 선택은 승현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제가 바라는 것….”
승현은 바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생각이야 있지만 입 바깥으로 꺼내는 건 조금 어려웠던 듯, 조금 생각에 잠기고 만 것이다.
“전….”
승현이 대답하려는 찰나, 다시 한번 종이 울렸다.
“어라, 계셨네요?”
태주는 조금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아무래도 제가 완전히 먼지투성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