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오래된 용 (6)
“알겠다고?”
용의 물음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짐작이지만요. 당신이 이무기를 죽인 이유가, 혹시 그게 눈에 띌 정도로는 강해서였다면 말이에요.”
재산도, 권력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나 강하다. 강해져서 얻어낸 것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람에게 무언가를 따로 빼앗는 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몸에 걸친 것도 그리 값어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강해질 필요가 없는데도, 이렇게 강해졌다.
“당신만 한 것이 무엇을 바라는지, 저는 잘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천천히 생각하다 보니 조금 알 것 같기도 했거든요.”
용은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했는가.
“당신은 말했어요. 최강의 적이 나타났다고 말이에요. 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보통 그렇게 말하지 않거든요?”
월이가 자기소개를 할 때, ‘사무소 최강의 직원’ 같은 소리는 하지 않는다. 강한 것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딱히 자랑거리로 여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씩 내가 세니까 내 맘대로 한다는 이야기 정도야 하지만, 강하다는 것 자체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편이 편해서, 그리고 강하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었던 일이 자랑스러웠던 것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월이에게 있어서 스스로의 강함은 편리함의 도구일 뿐이지 그 자체로 귀중한 대상이 아닌 것이다.
대부분은 그렇다. 강함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강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강한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있는 용이라면 어떨까.
금은보화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강해지는데 욕심이 있는 용이라면 어떨까.
“그 말에서 두 가지를 알 수 있었어요.”
태주는 말했다.
“하나는, 강함이에요. 조금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세계 최강이 되고 싶은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죠.”
이미 일종의 수단과 목적의 역전이 일어난 셈이다. 그저 강해지고 싶기에 강해진다. 강해져서 무언가를 할 생각은 없다. 다만, 강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
“강한 힘으로 무언가를 할 생각이 없다는 말이니 어떤 의미로는 아주 순수하기도 하지만요.”
반대의 경우만큼 끔찍한 것도 별로 없을 테지만. 태주는 뒷말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굳이 상대가 기분 나빠할 만한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다.
“어쨌든 그래야 이유가 되니까요.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데, 이무기는 죽일 만한 그런 이유요.”
단순한 이유다. 사람은 약하고, 이무기는 강하다.
사람 한 명이 아무리 강해져 봐야 용이 관심을 가질 정도로 강해지지는 않는다. 사람의 강함은 집단에서 나오는 것이지 개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훈련해도 순수한 맨몸으로는 소 한 마리도 이기기 힘들다. 가끔 소 정도는 이기는 사람이 나오더라도, 그게 늑대나 대형견이 된다면, 또 표범이나 호랑이 같은 것이 나오기 시작하면 결국은 이길 수 없다.
사람의 순수한 피지컬은 한계가 너무나도 명확하니까.
“하지만 이무기는 달라요. 싸워볼 만한 가치가 있었을 거예요.”
어쨌든 크기부터가 꽤 큰 데다, 잘 하면 자신과 같은 용이 될 수도 있는 존재다. 용의 입장에서도 상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마도 그런 딱 좋은 상대였을 것이다.
“저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에요. 하지만, 글쎄요. 당신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한 이유였겠죠.”
태주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강해지기 위해 강해지고 있는 당신에게는 그런 싸움이 의미가 있을 테니까요.”
“재미있구나!”
용은 처음으로 유쾌하다는 듯 소리쳤다. 어딘가, 그 표현이 마음에 드는 것 같은 느낌이다.
“고작 그런 걸로 그만큼이나 알아내다니.”
천장이 울린다. 온몸이 떨린다. 당연하다, 감정이나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냥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이다.
“많이 알아냈다. 그 녀석이 칭찬할 만큼 말이다. 하지만, 그게 정답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용은 웃었다. 속이 조금 울렁거리는 기분마저 느끼면서,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겁이 나거나 하는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지금 그 목소리는 너무나 컸다.
“네 성과를 비웃는 건 아니다. 그저 그걸로 나를 납득시킬 수 없을 뿐이다.”
용은 태주를 내려다봤다.
“겨우 그런 정답맞추기를 하러 왔다면, 설령 그게 완벽한 정답이라도 이야기를 더 들을 필요가 없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냐고, 용은 시선으로 물었다
“당연히 아니죠.”
태주는 잠시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솔직히, 정신적인 소모가 조금 크다.
“그냥 전제를 한번 확인한 거예요. 말했잖아요? 저는 교섭을 하러 왔다고.”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잠시, 용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한 이야기가 길어졌을 뿐이다.
태주는 말했다.
“까놓고 말할게요. 반역을 도와드릴 테니 소장을 다시 좀 이쪽으로 넘겨 주시죠.”
“반역?”
용은 되물었다.
“아, 당신에게는 그게 반역이라는 자각이 없나요? 아니면 표현을 달리하고 싶다거나?”
자존심 때문인지, 혹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용이 보이는 욕망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확실하다.
“하지만 그래요. 저는 그런 이유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전능에게 전혀 충성하지 않는 부하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을 붙잡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원래대로라면, 소장은 용에게만은 절대로 잡혀서는 안 된다. 용의 약점은 공략이 어렵고, 그러니 잡히고 나면 도저히 벗어날 방법이 없다.
“그리고 그건 본인도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그렇다면 소장은 최소한 용에게는 절대로 잡혀줄 리가 없다.
만약 용처럼 대단한 것이 움직인다면 필연적으로 어떤 흔적 정도는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용이 몰랐을 리도 없다.
“자신이 붙잡으려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는 당신도 알고 있을 테니… 사실상 서로 알겠죠. 붙잡을 수 없고, 붙잡히면 안 된다는 걸 말이에요.”
그런데도 용은 왔다. 자신이 이곳에 왔다는 것을 전혀 숨길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그런데도 소장은 잡혔다. 절대로 잡히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셈이다. 그렇다면 전제를 다시 짜야 한다.
“하지만 서로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다면? 당신이 애초부터 전혀 다른 목적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조금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지만, 그러면 오히려 소장이 붙잡혀 줄 만한 이유가 돼요. 아니, 오히려 제 발로 앞에 나섰을지도 모르겠네요. 성격이 그 모양이니.”
태주는 용에게 말했다.
소장을 붙잡아서 넘길 생각이 아니라면 만나도 상관없다.
“그럼 이건 사실상 항명이잖아요? 결국 반역 비슷한 거죠.”
단순한 이유다.
“그런가, 거의 정확하구나.
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금 다르다.”
“다르다고요?”
“그래. 내가 원하는 건, 반역 비슷한 게 아니라, 반역 그 자체다. 애초부터 그 여자와는 목적이 다르니 말이다.”
용은 조금은 흉포하게 웃었다.
“전능이라는 건 사실상 규칙이다. 나는 강해지기를 원하지만, 규칙과 싸울 수는 없는 법이다.”
해가 동쪽에서 뜨거나, 혹은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중력과 싸우거나, 태양과 싸워서 자기 의지를 관철하려 드는 것은 사실상 바보짓이다.
“그러니, 직접 싸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련 명목으로 흡혈귀를 몇 번 정도 죽여서 확인해 봤거든.”
그걸 정말로 죽여 본 건가. 태주는 잠시 말을 잃었다.
“하지만 죽지 않았지. 꽤 철저하게 숨통을 끊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그건 이미 규칙이다. 죽이면 이긴다. 죽으면 진다는 것이 용에게 당연한 규칙이었다.
죽고 나서도 되살아나는 것이 있다면, 그런 것과 싸워서 의미는 없다. 애초부터 규칙 바깥에서 승패를 의미없게 만들어 버린 것이 전능이 한 일이다.
그러니 엄청나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따를 수밖에 없다. 용이 아무리 강해도, 룰을 고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흡혈귀가 연락이 끊겼다. 나라도 죽일 수 없는 것이 죽어버렸다. 이래저래, 아쉽기도 하지만 그 전에 강한 호기심이 들더군.”
도대체 그 절대적인 규칙 같은 것과는 어떻게 싸운 걸까. 용의 입장에서는 호기심이 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든다. 혹시 방법만 안다면, 전능을 이기는 것도 가능한 것 아닐까.
“전능이라는 게 태양이나 중력과 같은 싸울 수 없는 대상이 아니라면, 한번 싸워볼 만하다. 그런 생각이었지. 그래서 그 녀석과 만나서, 물었다. 혹시 네가 그렇게 한 거냐고.”
하지만 소장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자신이 밑에 데리고 있는 녀석들이 알아서 처리했다고, 그렇게 설명했다.
“그렇다면, 아마도 너희들이 연관이 있겠지. 어쨌든 그것 밑에서 일하는 녀석들이니.”
태주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는 말했다.
“그러니 흡혈귀를 죽인 사람을 찾은 거군요.”
태주는 용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흡혈귀를 잡았다는 건 당신이 봤을 때 규칙 그 자체를 깨버린 셈이니까요.”
“그래. 교섭이니 뭐니 하지만, 그녀석을 데리고 오거나, 혹은 그 방법을 알아서 오는 것이 아니면 나와 교섭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협상도 불가능하다.”
용은 다른 것을 원치 않는다. 다른 것을 먼저 주는 것으로 시간을 끌 수도 없다.
“너는 그 방법을 알고 있나? 아니,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되지. 할 수 있나? 그럴 수 없다면 필요 없으니 죽일 건데.”
아주 담담하게, 용은 물었다.
“물론이죠. 약속 하나 할까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어기면 죽는 약속, 아시죠?”
* * *
옥상은 조금 서늘하다. 여름은 지났고, 저 멀리에 있는 용 때문에 날이 조금 흐리기까지 했다. 꽤 허름한 건물 위에서, 월이는 대충 극장이 있을 방향을 쳐다봤다.
“알기는 쉽네.”
저 방향만 공기가 다르다. 잘도 저런 곳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구나 싶어서, 월이는 난간 앞쪽으로 몸을 완전히 기대섰다.
관리가 부실해서 조금 삐걱대는 소리가 나기는 하지만, 사실 떨어진다고 크게 다치는 건 아니라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두 시간, 길면 세 시간도 본다고 했나?"
식사는 하되 언제라도 달려나갈 수 있어야 하다 보니, 결국 햄버거나 샌드위치만 한 게 없다. 월이는 포장해 온 햄버거 하나를 꺼내서는 크게 베어 물었다.
약 세입 정도 만에 패티를 추가한 햄버거 하나가 사라졌다. 가격은 늘 먹던 것의 세 배 정도 했지만, 사실 맛이 세배인지는 잘 모르겠다.
월이는 뭔가 아쉬움을 느끼며 말했다.
“맛있긴 하네. 그래도 내 돈 주고는 안 먹어야지.”
어차피 태주 카드로 긁은 거니까. 월이는 입맛을 한번 쩝 다신 뒤, 월이는 종이봉투에서 감자튀김을 꺼냈다. 일회용품치고는 고급스러운 종이로 된 상자에, 소스가 잔뜩 뿌려져 있어 꽤 맛있어 보이는 감자튀김이다.
사실, 이쪽이 더 기대된다. 여기는 감자튀김과 밀크쉐이크가 진짜라는 평가다. 유X브에서 그랬다.
그러나, 그 감자튀김을 입에 넣기도 전에 월이는 뭔가가 크게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어?”
이 근처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다. 태주가 있는 방향이다.
“….”
월이는 조금 경악스러운 눈으로 극장이 있는 방향을 쳐다봤다.
일어난 일에 비해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렇게 되도록 어떤 장치 정도는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월이에게는 들린다, 그리고 보인다.
용이 극장의 천장을 뚫고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건물 하나를 뚫고 용이 승천하는 모습은 거리가 멀다고 충격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미친….”
월이는 자기도 모르게 사실은 버거보다 기대했던 감자튀김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앗! 내 감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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