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오래된 용 (5)
“소장은, 당신에게 원하는 게 있어요. 그리고 당신도 소장에게 원하는 게 있어요.”
소장은 용이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고 협박까지 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줬다.
이런 교환이 가능하다는 점이야말로 용이 교섭이 가능한 존재라는 뜻이다.
“게다가, 저희와 교섭할 의지도 있어요.”
삼 일이라는 시간을 줬다. 어떻게든 전원을 다 끌고 가거나 그저 끄집어내 죽일 생각이라면, 이렇게 길고 천천히 생각할 시간을 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아마 시간을 줘야 할 만한 다른 이유가 있었겠죠.”
태주의 말을 들은 용은 그저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했다. 태주는 알아서 이어 말했다.
“그럼 교섭할 수 있어요.”
태주의 말을 들은 용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했다.
“흐음, 그런가.”
용은 후- 하고 입에서 연기를 한 번 뱉어낸 뒤 물었다. 방금과 같은 협박하는 말투는 아니다.
“평소라면, 이런 말을 들어 주지는 않았을 텐데.”
용은 조금은 짜증이 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태주 입장에서는 오히려 조금 안심할만한 일이다. 저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평소같지 않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용은 물었다.
“용에 대해, 너는 얼마나 알지?”
“꽤 잘 알죠.”
태주는 당당하게 말했다.
“용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것들이 얼마나 다른지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용이라는 것을 알거든요.”
선한 용도 있을 수 있고, 악한 용도 있을 수 있다. 그저 몬스터일 수도 있고, 신 그 자체이거나 성스러운 무언가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생김새도 전부 다르다.
“그러나, 그럼에도 용이 가지는 성격적인 공통점은 분명히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공통적인 부분이죠.”
용은 욕심이 많다.
당연한 일이다. 성공을 원하는 것이, 그리고 결국 그 성공을 쟁취해내는 존재가 욕심이 없을 리가 없다.
그러니, 엄청나게 선한 용은 있을 수 있지만 욕심이 없는 용은 있을 수 없다. 욕심과, 그 욕심에 걸맞은 힘을 가진 것이 바로 용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당신에게는 분명히 원하는 것이 있어 보여요. 그래서 교섭을 할 수 있다고 말한 거예요.”
태주는 그렇게 말하며 똑바로 용을 올려다봤다.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상태의 사람이야말로 대화나 거래가 통하지 않는다.
반대로 무언가를 크게 욕심내고 있는 상태의 누군가가 있다면, 설득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당신은 용이에요. 강한 용이요. 그만큼 강한 욕심이 있겠죠.”
분명 용에게는 바라는 것이 있다. 그러니 교섭은 통한다.
그런 태주의 태도를 본 용은 눈을 조금 가늘게 뜨고는 태주를 내려다봤다.
“흐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 수 없다. 거대한 용의 머리에서 표정을 읽을 수는 없다. 완전히 처음 보는 생물의 표정을 읽는 건 아무리 태주라고 해도 불가능한 이야기다.
알 수도 없는 반응을 기다릴 수는 없다. 태주는 그저 가만히 내려다보는 용에게 계속 말했다.
“욕심, 그 말이 거슬린다면 야망이라 하면 될까요.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겠지만요. 특히나, 당신 같은 것이라면 더요.”
다만, 용이 어떤 곳에 욕심을 가졌는지를 아직 잘 모르겠다. 그것을 알기 위해 태주가 왔다. 이것만은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당신이 가진 욕심은 권력욕이 절대 아니에요.”
만약 그랬다면, 숭배받는 것이 목적이라면 인간에게 관심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인간만큼 힘과 권력에 대해 잘 이해하는 동물은 없고, 그러면서도 통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권력욕을 충족하고 싶었다면 용이 이렇게나 사람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보물일까요? 하지만 그럴 리는 없죠.”
당연한 일이다. 서양 신화 속의 악룡들처럼 재보를 쌓아두는 것을 좋아한다면, 그러면 된다. 눈앞의 용에게는 그럴 힘이 있다.
하지만, 걸치고 있는 옷은 별로 가치 있어 보이는 물건이 아니고,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강탈하는 모습이 보이지도 않았다.
“심지어 금은보화를 원하더라도 인간들에게 비교적 관심이 있을 만해요.”
어쨌든 세상에서 보물들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것들은 인간이다. 사람의 손에 들어있지 않은 물건이라도, 사람들을 부려서 찾는 것이 용이 직접 찾는 것보다는 편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그런 것을 원했다면 저희 앞에 이렇게 나타날 필요도 없어요. 소장 본인에게 물어보는 편이 낫겠죠.”
그러니 이것도 용이 욕심내는 것이 아니다.
권력도 아니고, 금전도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용은 분명히 그 욕심을 이쪽에서 충족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아직은 말이죠.”
태주는 용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당장 그것이 무엇인지를 맞추는 것은 정말로 그저 찍기에 불과하다.
“흥, 아는 척은 엄청나게 하는군.”
말하는 것과는 달리 조금 재미있어하는 것 같은 태도다.
처음으로, 태주는 용의 표정을 읽었다. 용은 분명 비웃고 있다. 절대로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없는 작은 것이, 재롱을 부리는 것처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지만, 정확하게 그걸 의도하고 있다. 태주는 용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는 척하는 김에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건 있습니다. 왜 죽인 건가요? 이유가 있었나요?”
“죽여? 무엇을?”
용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태주는 일부러 표정관리를 하며 말했다.
“이무기 말입니다.”
“이무기? 아아, 그래 뭐 그런 것이 있기는 했지.”
용은 그렇게 말하고는 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그게 궁금한가?”
그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오는지, 용은 이해하지 못한 듯 물었다.
“굳이 이무기를 죽일 이유는 없었어요. 좀 더 정확히는, 죽여서 얻을 이득이 없었어요. 물론 저희 입장에서 이무기는 충분히 강했지만, 당신에게는 크게 거슬리는 수준도 아니었을 거예요.”
용이 대체 무엇을 위해 이무기를 죽였는가. 그것만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유가 있었나요?”
“이유라.”
태주의 질문에 용은 눈을 감았다.
“너희가 납득할 만한 이유는 없다.”
용은 그렇게 단언했다.
“그저, 거기에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 나만의 규칙 같은 것 때문이지.”
그저 거기에 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새끼가 없었다면 괜찮았을 텐데.”
용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했다.
“그렇군요, 방금 그걸로 확실해졌어요.”
혼자 와서 다행이다. 태주는 그런 생각을 했다.
* * *
“너 진짜 목숨이 다섯 개쯤 되는 거야?”
어처구니없다는 듯 월이는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볼 때마다 기가 막히기는 하지만.
“좋아, 이번엔 가지 말라는 말은 안 할게. 또 뭐 이유가 있겠지. 짜증은 나지만.”
이미 여러 번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결국 설득당하는 결말이었다. 아마도 이번에도 그렇겠지 싶어 월이는 짜증을 냈다.
늘 합리적인 이유가 있지만, 그래도 늘 걱정은 된다.
“이번엔 또 왜 혼자 가야 해?”
“그야 싸우면 지니까. 정말로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무조건 질 거야. 아무리 너라도 이길 수 없겠지.”
태주는 주변을 보며 말했다. 시아가 있어도, 설이와 지네가 있어도 상대를 이길 수 없다. 그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함정에 빠트린 채로도 장담이 안 된다.
“그러니 절대로 싸우면 안 돼. 최소한 유의미한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그래.”
상대는 용이다. 애초에 체급이 다른 데다 일대 다수의 싸움 따위는 여러 번 해 봤을 것이다. 확실한 약점을 제대로 찌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용과 어설프게 싸우려 드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태주는 조금은 막막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이번 문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난이도의 문제다.
“애초에 저쪽이 더 강한데, 경험도 저쪽이 더 많아. 물론 너도 경험이 적지는 않지. 나름대로 너랑 비슷한 것과도 싸워본 적 있을 거고.”
가끔씩 간단한 이슈는 혼자서도 해결을 할 수 있었던 적이 있었다. 이제 복잡하게 꼬여있지 않은 사건은 알아서 맡겨도 될 정도는 된다.
“하지만 너는 아직 너보다 강한 것과 싸워본 적은 없어.”
어쩔 수 없다. 세상에 월이보다 강한 것은 거의 없다. 당연히 그런 것을 찾아서 훈련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지만, 이 상황에서는 치명적인 문제지. 너는 너보다 강한 것과 싸워본 적이 없어. 그래서 넌 지금 싸우면 안 돼.”
“안 싸우면 되잖아! 나라고 무조건 싸움박질만 하고 다니는 줄 알아!”
월이는 소리쳤다.
“그래도 내가 있어야 너 데리고 도망 정도는 갈 수 있을 거 아냐!”
“글쎄, 그게 확실히 되는 거라면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긴 할 텐데.”
하지만 상대가 얼마나 더 강한지 알 수 없는 시점에서 확실히 도망갈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은 섣부르다.
“결국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 하나를 잃는가, 둘을 잃는가의 문제가 된단 말이지.”
태주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게다가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지. 이무기는 왜 죽었을까?”
“뭐? 용이 죽였지! 무슨 말이야!”
월이는 태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위험하다는 거 아냐!”
“물론 용이 죽였지. 하려던 질문은 그게 아니야.”
태주는 월이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왜 용이 이무기를 죽였느냐는 의미야.”
왜 죽였는가. 아직도 태주는 동기를 모른다. 용은 이무기를 죽였다. 반면 시아는 죽이지 않았다.
사람에 대해 호의적이라서 그랬다고 한다면 말이 될 수 있겠지만, 이미 용은 사람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 기본 전제다.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용은 누나를 살려둘 필요가 없었어.”
굳이 죽일 필요도 없기야 했겠지만, 그렇다면 이무기가 죽을 이유 역시 없었다.
“죽일 마음이 들었다. 아마 유일한 차이는 그것뿐이겠지.”
그렇다면 다음 의문이 생긴다. 왜 죽일 마음이 들었는가.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야. 용이 이무기를 죽인데 이유 같은 건 없을 거야.”
이무기가 무언가를 도발하거나, 호승심이 있어서 덤빈 거라면 태주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새끼가 있는 이무기가 그랬을 리는 없다.
처음부터 짐작은 했다.
다잉 메세지 비슷한 것을 남길 수 있었던 시점에서, 마지막 발버둥으로 불을 끄는 비를 내릴 수 있었던 시점에서 사실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확실하게 죽이고 싶었던 거라면, 죽여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거라면 그렇게 천천히 죽어가도록 내버려 둘 리가 없지.”
다만, 그것은 승현이 있던 장소에서, 그리고 그 새끼가 있는 장소에서 말하기에는 너무 부적절한 문장이었다.
살해당한 것의 자식과, 그 광경을 보고 너무나 충격을 받았던 사람에게 그 이무기는 별 이유도 없이 죽어버렸다는 말을 하기에는 아무리 그래도 조금 꺼려진다.
하지만, 다른 동기는 보이지 않는다.
“확실하게 죽이고 싶었던 것도 아니야. 용이 죽여서 얻을 것도 특별히 없어. 그러니까, 사실상 그냥 감정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는 거야.”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보였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서 그랬다, 혹은 그냥 재미로 그랬다. 또 다른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렇다면 꽤 곤란한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으니 다행이지만 말이야.”
용 정도의 존재가 되면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시아의 앞에 나타난 것도, 분명 소장과 연관된 일이 아니었다면 애초부터 나타나지도 않았을 거다.
어떤 의미로는 다행이고, 어떤 의미로는 꽤 기분 나쁜 일이다.
“하지만 넌 달라.”
그러나 월이는, 아무리 용이라도 별 것 아닌 것처럼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최소한 이무기와 비기거나, 그보다 조금 더 우위다.
“너는 용이라도 관심을 가질 정도가 돼. 용의 입장에서도 그냥 무시할 정도는 아니겠지. 어쨌든, 재미있어 보이는 타이틀도 있고.”
다들 잘 신경은 쓰지 않지만 어쨌든 월이는 마지막 늑대인간이라는 타이틀도 있다.
용이 바라는 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정말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면 뜬금없이 싸움이 걸려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까, 네가 눈앞에 보이면 안 된다는 말이야.”
“…이유는 알겠지만 여전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월이는 눈을 찌푸렸다.
“그래서, 만약에 용이 그렇게 호전적이면 어떻게 해? 큰일 난 거 아냐? 그런 거랑 싸우라는 말이잖아?”
“그러면 네 말대로 복잡해지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얻어가는 것도 있다.
“그래도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용이 왜 지금 이렇게 행동하는지 동기를 좀 알 수 있기도 해.”
태주는 말했다.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일 게 분명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