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172화 (172/269)

17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오래된 용 (2)

계속 아나운서와 앵커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뉴스 영상의 재생을 멈춘 태주는 무심코 말했다.

“최강의 적이라. 오만하네요. 그것도 엄청나게요.”

“하지만, 용이라면 그 정도 말은 할 만하지.”

시아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오히려, 그렇지 않다면 이상하다. 용보다 강한 게 세상에 몇이나 있을런지.”

“글쎄, 미사일? 핵?”

월이의 심드렁한 말에 시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그 정도라면 이기겠구나. 용이라도 말이야.”

하지만 국가 단위에서나 쓸 수 있는 무기를 이야기해도 곤란하다.

“어쨌든 그걸 그저 오만함이라 표현할 수는 없을 게다. 그건 자신감이지.”

이전, 흡혈귀 사건에서 흡혈귀가 보인 태도와 비교하면 오히려 겸손하다고 할 수도 있을 거다.

물론 그건 흡혈귀 쪽이 정말로 태도가 글러 먹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애초에 용이라 하면 흡혈귀조차도 상대가 안 되는 강함을 가진 존재니, 단순하게 ‘오만하다’고 말하고 끝낼 만한 상대는 아니야.”

“그거야 알죠.”

태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상대가 용이라면, 그건 정말로 헛소리가 아니다.

“그냥 신세 한탄 비슷한 거예요. 저런 거랑 싸워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태주의 말을 들은 시아 역시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 그 기분은 알겠구나. 나도 내 평생에 용과 만날 일이 있을 줄은 몰랐으니.”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만약에 보는 일이 있더라도, 멀리서 한번 스쳐 지나가는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그 이상으로 깊은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

하지만 이런 신화적 존재와 맞서야 한다니. 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기에 취직하지 않았거나, 연봉협상에 더 많은 돈을 불렀을 텐데. 내가 잘못했구나.”

반은 농담이지만, 반대로 반 정도는 진심이다. 시아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솔직히 이 일을 시작할 때 그런 것까지 상대해야 할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다시 하고 싶지도 않다.

“솔직히 나는 지금 용 앞에 다시 서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거야 그렇겠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철창 없이 사파리에 들어가는 경험을 다시 하고 싶을 리가 없다.

“젠장, 소장한테 항의하고 싶은데.”

시아는 투덜거렸다. 하지만, 심지어 그럴 수도 없다.

“문제는, 그 소장이 잡혀 있다는 거죠. 일단 용 본인 주장이지만요. 본인? 본룡?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겠네.”

태주는 한숨을 쉬었다. 영 납득이 안 가는 소리다. 차라리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세상에,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납치 비슷한 것을 당했다니.”

하지만 이게 보이스피싱 거짓말처럼 거짓으로 네 딸을 데리고 있다 말하는 그런 종류의 사기는 아니다. 소장은 정말로 전혀 연락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번 연락을 시도했지만, 소장은 받고 있지 않다. 태주는 갑자기 피곤한 기분이 들어 눈을 꾹 감고는 말했다.

“그게 사실 같다는 점이 최악이야.”

“진짜로, 개웃기는 소리야.”

월이는 전혀 웃지 않으며 말했다.

“솔직히, 언니가 잡혀가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들어. 하지만 소장이라니?”

“그 말은 나한테 너무한 거 아니니?”

시아는 눈을 조금 찌푸리며 말했다. 월이는 하지만 내 말이 맞는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렇잖아! 언니가 생각해도 그렇지? 그렇게 되길 원하는 건 아니지만, 그게 더 말이 되잖아!”

단순한 가능성의 문제다. 소장이 잡히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말이 된다.

시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기분 좋은 소리는 아니지만 실제로 그렇긴 하다.

“그래. 네 말대로 그게 더 말이 안 되는 일이기는 하지. 문제는 그 바보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버렸다는 건데.”

시아의 그 싫은 듯한 표정을 본 설이는 손을 들고는 말했다.

“저, 질문 있어요! 저기, 그 용이 그 전능 씨의 부하라고 했잖아요? 그러면 소장님도 모르고 잡힌 거 아니에요? 전에 전능에 관한 것은 직접 알아낼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잖아요?”

타당해 보이는 주장이지만, 사실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니겠지.”

“아니에요? 전 이것밖에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설이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물론, 그것도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소장이 만약 아무런 전조 없이 용과 만났다면, 마치 어제 시아가 용과 마주친 것처럼 만난 거라면, 아무리 소장이라도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 말이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지.”

“어떤 게요?”

“이번에 손님이 찾아온 이유가 이무기의 죽음 때문이라는 걸, 소장은 미리부터 알았다. 중간에 나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힌트를 주고는 바깥으로 나갔으니 말이다.”

시아 혼자서 있을 때 툭 던지고 간 힌트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인상이 깊게 남지는 않았지만, 소장은 분명 이번 일에 관심이 있었다.

“게다가, 나에게 새끼 이무기를 던져 주고 가기도 했지.”

그렇다면 최소한 그때까지는 소장이 자유로웠고,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범인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았을 리 없다. 생각만 해도 알 수 있는 사람이 알 수 없는 공백지점이 생겼을 때,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을 리 없다.”

소장이 알고 싶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소장 말로는 하나, 아니면 둘 정도밖에 없으니까.

“그렇다면, 간접적으로 그런 것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거야. 결코 지금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소장이 시아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봉변을 당할 이유가 없다.

월이는 조금 하품을 하며 말했다.

“으음, 아니면 소장이 바보짓 하다 실수했다는 가능성은?”

“그럴 리가. 소장이 너도 아니고. 매일 그렇게 늘 능글맞게 웃고 다니고, 별생각 안 하는 것처럼 굴고 다니지만, 사실 머리가 좋아.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괜히 전지한 것은 아니다. 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왜 잡힌 거야?”

“잡힐 이유가 없는데 잡혔다면, 다른 이유일 리 없지. 일부러 잡혔다. 내가 보기엔 그렇지. 태주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고민하고 있는 걸 테고.”

“진짜?”

“일부러 잡혔다고요?”

두 사람은 동시에 의문을 던졌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전히 왜 일부러 잡혔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모르고 잡혔다는 쪽은 가능성이 사실상 없으니, 일부러 잡혔다는 가능성밖에 남지 않는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잡힐 의도는 아니더라도 잡혀도 상관없다는 마음이었을 수는 있겠다만.”

그렇다 쳐도 잡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행동했다는 말이니 그것도 별로 의미 있는 구분은 아니다.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던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짜증 나네.”

“갑자기 뭐가요?”

설이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태주는 조금 질린 눈으로 말했다. 분명히 방금 한 건 상상일 텐데, 너무나 현실감 있다.

“웃으면서 제 발로 용 앞에 나서는 소장의 모습이 엄청나게 상상이 가서.”

“하하 잘있어?' 하고 손드는 소장의 모습을 떠올린 태주는 곧바로 조금 두통을 느꼈다.”

설이는 엄청나게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떡하지, 저도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설마 그렇게까지 했으려고? 라고 말하고 싶지만….”

시아는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

월이도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표정이다.

“강할수록 막 나간다.”

월이는 잠시 후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말했다.

“사실 소장이 가장 강한 거 아닐까?”

“글쎄, 맞는 말이지. 아는 게 힘이라고도 하니까.”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소장은 세상에서 정말로 가장 강하다. 태주는 머리 뒤편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태주는 정말로 싫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좀 알 것 같아.”

“엉?”

월이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뭘 알아?”

“소장이 지금 대체 뭘 하고 싶은 건지.”

태주의 말을 들은 시아는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까부터 멍때리고 있던 게 그걸 생각하고 있던 거였나 보구나.”

“네. 저도 뭐,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소장이 무슨 생각하는 지 이 중에 가장 잘 아는 건 저일 거예요.”

“그렇겠지, 네가 제일 오래 봤으니까.”

아직 ‘사무소’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을 때부터 태주는 소장을 알았다.

“그래서, 그 생각의 결과가 뭐지?”

태주는 조금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거의 분명해요. 소장은 저를 테스트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너를?”

시아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네. 아마도 이번 기회에 저를 한번 극한까지 테스트해 보려는 거겠죠.”

미리 말도 없이 갑자기 대뜸 큰 과제를 안기는 방식은 태주에게는 익숙하다.

“이 정도 규모는 저도 처음이지만요. 진짜, 미리 좀 말하면 어디가 덧나는 걸까요?”

“글쎄다.”

시아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그나저나, 너를 테스트할 게 있나?”

“있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도, 제가 별다른 특별한 기술은 없다고 알고 계시죠?”

“그렇지.”

소장을 제외하면 가장 태주를 오래 본 시아도 모른다.

상황 판단능력이나, 머리 굴려서 이것저것 해결해내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그게 다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다라면 이런 질문을 할 이유가 없다.

설이가 뭔가 의아함을 느꼈는지 물었다.

“어…. 아니에요?”

“아니지.”

“진짜요?”

“진짜.”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대단한 건 아니지만, 하나 있기는 해.”

태주는 조금 불쾌한 눈으로 말했다.

“딱히 지금까지 써먹을 구석은 거의 없긴 했는데 말이야.”

* * *

다만, 소장의 목표는 부차적인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누가 뭐래도 용에 대한 것이다.

“용을 어떻게 잡으면 될까?”

태주가 흘린 말에 월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요정 타입 공격으로 때리면 된다? 아님 얼음?”

태주는 양옆을 힐끗 살폈다. 예상대로 나머지 두 사람은 이해하지 못해서 갸웃거린다.

태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건 현실의 상성이 아니잖아. 이 포덕아.”

“내가 그랬잖아! 포X몬도 다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거라구! 나름 열심히 생각했더니!!”

월이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태주는 황당해서 되물었다.

“너 그거 혹시 진지하게 대답한 거였냐?”

“그런데?”

물론 진지한 답변을 받으려는 목적은 아니었지만, 저 답변은 조금 너무하다. 태주는 살짝 한숨을 쉬며 잔을 들었다가, 컵이 너무 가볍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느새 커피잔이 비어있다. 태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진짜 별 답이 없네.”

태주는 조금 씁쓸하게 말했다. 사실 이렇게 말하기는 싫지만, 이 표현만이 정확하다.

“누나, 정말 용케 살아 돌아왔네요?”

“그래”

시아 역시 씁쓸하게 대답했다.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게 날 해칠 의지가 없기 때문이었으니까.”

그 말을 들은 설이는 조금의 희망을 담아 물었다.

“혹시, 용은 사람을 해치는 데 별 관심이 없었던 걸까요? 오늘 아침 사건도 그렇고요.”

“글쎄.”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말 자체는 아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그리 정확하지는 않다.

“사람을 해치는 데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사람에게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게 더 적당하겠지.”

“어쨌든! 그나마 나은 거 아닐까요?”

적극적으로 사람을 해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태주는 하지만 영 찝찝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