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오래된 용 (1)
[오늘 오전 아홉 시, 갑작스러운 낙뢰와 강풍으로 인해 용산역 인근의 철도가 잠시 마비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이상 강풍은 경의선, 1호선 등을 이용하려는 수많은 승객의 발을 묶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와 함께 발생한 이 강풍은 기상청에서도 예상하지 못했으며, 해당 지역에서 이런 강풍이 분 것은 태풍 같은 상황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라는 분석입니다. 네티즌들은 이것이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
듣기 좋은 목소리와 함께 뉴스는 계속된다. 대량의 직장인들을 지각하게 만든 사건이다 보니, 아무래도 사람들의 관심이 좀 모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은 더 들을 필요가 없다.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과학적인 원리를 가지고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봐야 이런 걸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뒤쪽 내용은 완전히 흘려들은 태주는 멍하니 말했다.
“발음 좋네, 저 여자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바보야? 아나운서가 발음 좋은 게 당연하지!”
월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태주는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상에. 내가 너한테 바보냐는 소리를 듣는 날이 올 줄이야.”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태주 본인이 생각해도 지금 자기 자신은 아주 멍청하게 중얼거리고 있었으니까.
마음에 걸리는 것을 생각하다 보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월이는 그런 태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참, 대놓고 이런 짓을 하는 걸 보니까 오히려 신기하네.”
“그, 삼 일 준다고 했던가요? 오라고 한 날짜가?”
설이는 자기가 날짜를 잘못 셌나 싶어 달력을 쳐다봤지만, 날짜를 착각하지는 않았다.
“그래.”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찌푸린 눈이다.
“저건 그 새를 못 참고 하루 만에 저러고 있는 거다.”
“참을성 없네.”
월이는 툭 던지듯 말했다.
“글쎄, 저 정도도 어떤 의미로는 많이 참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만.”
시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쨌든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냐?”
태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강한 녀석들은 원래 대부분 막 나가는 법이야.”
“그런가? 원래 그래?”
월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주는 거울을 보라고 말해주려다가, 참았다.
하지만 참은 보람은 별로 없었다. 비슷한 내용을 설이가 말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근데 너도 막 나가잖아! 나 아직 유리창이 와장창 깨진 거 기억하거든?”
설이는 눈을 찌푸린 채 말했다.
갑자기 공범으로 엮여서 동급생에게 혼나고 벌을 선다는 기묘한 경험을 했던 설이는, 월이에게 정당한 항의를 할 수 있는 입장이다.
“아니, 뭐 그거야 뭐 어쩔 수 없는 뭔가였다 해야 하나.”
결국 할 말이 없어진 월이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 그치만 다친 사람 없었잖아! 단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고! 돈도 결국 다 갚… 아가고!”
“저기도 다친 사람은 없어 보이던데? 지각한 사람들이야 꽤 나온 거 같지만.”
설이의 말을 들은 월이는 결국 침몰하고 말았다.
“…어? 나 혹시 저거랑 똑같은 수준? 진짜?”
“그걸 이제 알았냐?”
태주는 장난스럽게 말하고는 덧붙였다.
“하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완전히 같지는 않지.”
“진짜?”
월이는 자기편을 들어주는 태주가 고마웠는지 눈을 반짝 빛냈지만, 사실 편들어 주려는 건 아니었다.
“저쪽이 더 강해서 저쪽은 더 막 나가거든.”
“…너 누구 편이야? 내 편은 아니지?”
“하하, 나는 바른말을 하는 사람의 편이란다.”
태주는 일부러 마른 웃음과 함께 말했다. 교육만화에 나오는 선생님 같은 말투다.
“저거 말투 개열받는데.”
월이는 순간 눈을 찌푸렸지만, 어쨌든 자기 업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추궁하지는 않았다. 태주는 표정을 고쳤다.
별로 진지해지고 싶지 않은 기분이기는 하지만, 계속 진지하지 않을 수는 없다.
“뭐, 어쨌든 네 말대로 막 나가고 있기는 하지. 그것도 대놓고 말이야.”
태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때와 장소도 맞지 않는 데서 비바람을 부른다. 이게 막 나가는 게 아니면 뭐겠어?”
물론, 그것이 용의 소행이라는 것을 아무도 진지하게 의심하지 않겠지만, 지금 하는 행동에 깊은 생각이 없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장난이 아니라면 더 악질이다.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용산에 용이 나타났다니, 재미도 없는 말장난이야.”
* * *
어제 두 사람이 상대방의 정체를 확신했을 때, 승현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용이라고요?”
“네. 원래는 가설이었지만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만났으니 이제는 단순한 가설은 아니게 되었네요.”
시아가 몸소 확인하지 않았다면 아마 확신할 수 없었겠지만.
“갑자기 그런 걸 만나는 것 자체는 최악의 경험이겠지만, 어쨌든 상대가 용이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에요.”
태주의 말을 들은 시아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떠올리기는 싫지만, 그래도 그 만남이 아니라면 상대가 용이라는 확신까지는 못 했을 거다.
“상대가 정말 용이라고요?”
승현은 자신도 모르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제가 아는 그 용 말인가요? 만화나 영화에도 나오는?”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무슨 만화를 생각하고 계시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용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너무 많아서.”
하지만, 다른 용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손님이 생각하는 그 용과 같은 발음의 다른 괴물 같은 건 없어요. 지금 말한 건 그냥 용 자체를 말하는 거예요.”
조금 어처구니없는 데다 스케일이 큰 이야기가 나와버렸기에, 승현은 멍하니 말했다.
“조금 뜬금없는데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뜬금없죠?”
태주는 그리 밝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다가 쿠네쿠네같은 걸 본 줄 알았던 사건에서 용까지 나오게 되었는지, 태주 역시 조금 질릴 것 같은 기분이다.
“문제는, 용이라고 하면 납득이 가는 구석들이 많다는 점이에요. 아마 방금 누나가 돌아와서 용과 만났다고 하지 않더라도, 저는 최소한 가설 중 하나로 용을 이야기했을 거예요. 그만큼 상대가 용이라고 하면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거든요.”
“설명요?”
“네. 조금 이야기를 드려볼까요? 이해하기 쉽게요.”
태주는 조금 돌려서 설명하기로 했다.
아마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승현이 이해도 납득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저희 사무소에서는, 이런 걸 잘 보는 아이가 하나 있어요.”
조사를 유난히 잘 하는 사람이 있다고, 태주는 말했다.
“무언가가 있으면 남는 흔적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을 잘 찾아내고 잘 보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에요.”
“어, 네.”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런 거 찾으려고 밤에 산도 가시고 그랬었죠.”
“그런데 거기서 발견했던 그 흔적이 좀 이상했어요.”
“이상해요?”
“흔적은 있는데, 그 흔적이 좀 기묘하다는 말이에요. 이걸 남긴 것이 하나인가, 아니면 둘인가. 알 수 없었던 거죠.”
당시 설이는 울상이었다. 자기 역할이 있는데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본인의 실수인가 싶어 자책한 것이리라.
“그런데 그건 절대로 실수 같은 것이 아니에요. 더군다나, 단순 숙련도 부족은 더더욱 아니고요.”
이제는 어느 정도 훈련까지 되어 더 정밀하게 볼 수 있게 된 상황이니 그렇게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는 것은 설이 쪽이 아니죠.”
승현이 어디까지 따라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태주는 일단 말했다.
“그 흔적들은 정말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애매했던 거에요. 하나라기엔 너무 크고, 둘 이상이 남겼다고 하려면, 그 둘은 유사한 것이어야 할 테니까요.”
물론 설이가 보는 것은 일종의 반짝임 같은 것이다 보니, 이런 설명이 적당하지는 않을 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크게 다를 건 없다.
“이무기와 용은 충분히 비슷해요. 잘 모르고 외양만 보면 순간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로요. 심지어는 하나가 세월이 흐르면 다른 하나로 변하는 것이다 보니, 그 유사성은 더 크죠.”
그러니 착각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어떤 의미로는, 같은 것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니까요.”
“용이라면 말이 된다는 거군요.”
승현은 어쨌든 말은 된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건 두 번째 이유이기도 해요.”
태주는 승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시죠? 이무기라 하면 꽤 크고 강한 녀석이라는 걸 말이에요”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뒤에서 듣던 월이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실제로 그렇다. 승현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름 정도는, 그리고 어떤 것인지 대충은 안다.
“네, 저도 알아요.”
“그리고 유명한 만큼 강하기도 해요.”
평균적인 이무기 정도만 되어도 일반적인 사람이 대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살해당한 건, 그중에서도 강한 녀석이었을 거에요. 일단 크기부터 꽤 크니까요.”
크기가 나무와 착각할 수준이었다는 말은, 두께도 길이도 어마어마하게 컸다는 말이다.
그런 것이 죽었다. 심지어는 제대로 된 전투 흔적도 없었다.
“처음에는 그런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어요. 산 전체가 불타버렸으니, 싸운 흔적 같은 것이 없어도 이상하지 않다고요.”
그렇게 생각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흔적이 아예 없는 건 이상한 점이에요. 이무기라는 결론이 나왔다면, 더 이상해요”
월이도, 심지어는 지네조차도 그런 싸움의 흔적 같은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분명 호랑이 같은 것보다는 강해요. 맞먹는 걸 가져오려면 생물 수준이 아니라 중장비 수준이 되어야겠죠.”
만약 산에서 포크레인 두 대가, 최소한 둘 중 하나는 완전히 망가질 정도로 서로 싸운다면 주변에 커다란 상흔이 남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도 주변에 전투의 흔적이 없다. 유의미한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나요?”
“그건….”
승현은 잠시 눈을 찌푸린 채 생각하다가 말했다.
“글쎄요, 일방적이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요. 저항을 아예 하지 못했거나, 만약 했더라도 의미가 없는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저항의 흔적이 없다는 것은 그런 말이다.
“물론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치명상을 입혔을 가능성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렇다 쳐도 동급 이상이어야 하겠죠.”
태주는 승현의 손에서 떨고 있는 이무기의 새끼를 슬쩍 보고는 말했다.
기습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거로 보이는 저 조그만 것 앞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나온 가능성이 용이라는 건가요?”
태주가 잠시 생각하던 사이 승현은 질문했다. 질문을 들은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용이라면 그만큼 강할 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설명되는 부분이 많거든요. 불이 갑작스럽게 난 이유도 말이 되고,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음에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 역시 말이 되고요.”
처음에는 태주도 말도 안 되는 결론이라 생각했다.
한국에 용이 어디 있느냐는 의문 때문에 했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한 가지 의문만 해결된다면 결국 용이 가장 적절한 해답이다.
“용이라.”
승현은 손에 있는, 용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덜덜 떨고 있는 작은 새끼를 보고는 말했다.
“잠시 혼자 생각을 좀 해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저희도 정신이 조금 없거든요.”
그래 보인다.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이 정리되면 연락 주세요. 될 수 있다면, 앞으로 이틀 정도 안에 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태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물론 연락 없이 찾아오셔도 괜찮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