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불길 속 무언가 (20)
“슬슬, 들어갈까.”
시아는 공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하지만, 시아는 돌아가지 못했다. 그저 입에 문 전자담배를 빼지도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자신의 등 뒤에, 무언가 나타났다.
동시에 갑자기 공기가 차게 느껴진다. 아주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지금 담배를 피우는 것은 그리 좋지 않은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지금이 아니면 한동안 그럴 만한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미리 좀 니코틴을 보충해 놓으려는 생각이었으나,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곤란하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난다.
시아는 이를 악물고 몸을 떠는 것을 멈췄다. 조심스럽게, 그게 누구인지도,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시아는 일단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만,”
단순한 말 한마디를 꺼내는 데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짜 금연을 할 걸 그랬다. 아니면 좀 더 서둘러서 오 분 정도 일찍 들어갔다면,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하찮은 생각을 하면서 시아는 말했다.
“분명 이무기를 살해한 것은 당신일 겁니다.”
아직 그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억측은 아니다. 그렇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강한 것과 마주한 것은 처음이다. 차마 뒤를 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을 가진 것과 만나는 것은 완벽하게 처음인 것이다.
“당신이 아직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찍어누를 수 있는 그런 압도적인 존재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동시에 납득이 가기도 한다. 이쯤은 되어야 일방적으로 이무기를 살해할 수 있을 거다.
시아는 떨리는 목소리를 막기 위해 볼을 살짝 씹었다.
방심했다, 고 표현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게 방심이라 하기는 조금 그렇다.
이런 엄청난 것이, 갑자기 자신의 등 뒤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고려를 하면서 살 수는 없다. 갑자기 하늘이 무너질 거라는 걱정을 하며 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확실히 터무니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허어, 어떻게 알았지? 일부러 조금 자극도 해 봤는데, 버티는 것도 그렇고. 확실히 네 녀석은 인간치고 꽤 성능이 좋은 것 같구나. 그 녀석이 데리고 있을 만해.”
나이가 조금 느껴지는, 평온한 목소리다. 나타나는 것만으로 시아에게 가할 수 있었던 압박과는 별개로, 목소리 자체에서는 위협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감탄하는 것 같은 목소리다.
그것이 너무나 의외여서, 시아는 조금 눈을 찌푸렸다. 목소리의 나이대나, 거기에 든 감정까지 전부 다 예상했던 대로가 아니다.
이무기를 죽이는 것은 꽤 대단한 일이고, 어떤 의미로는 업적에 가까운 일이다.
따라서 시아는 목소리에서 그만한 것을 죽인 것을 자랑스러움이나, 혹은 그 위험을 무릅쓸 정도로 싫었기에 느끼는 불쾌함이 분명히 목소리에 섞여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들리는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할 뿐이다. 그리고 그 평온한 목소리로, ‘그것’은 자신이 살해자라는 것을 긍정했다.
“그래, 네 추측대로 내가 죽였다.”
당당한 자백.
의심하는 것이 불쾌하다 여기거나 하지도 않는, 그냥 방금 전까지와 같은 목소리다.
“하긴 그 정도는 해야겠지. 단순히 감이든, 그럴듯한 추론이든 말이다.”
대체 왜 그런 태도인 것인가. 시아는 거기 의문을 가지려다가, 그 이전에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말이 들렸음을 깨달았다.
“그 녀석?”
갑자기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시아는 천천히 물었다.
“그 녀석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정말로 몰랐나? 모든 걸 다 아는 그 녀석 말이다.”
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원래는 상대를 자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볼 생각이 없었으나, 그런 말을 듣고도 평정을 유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시아가 아는 한, 세상에서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뿐이다.
“소장? 혹시 지금 소장을 말 하시는 게 맞습니까?”
“그래.”
하얀 수염의 노인은, 그렇게 말했다.
“그 전지 녀석을 말하는 게 맞다. 아마도 너는 자신을 소장이라고 부를 거라고, 그렇게 말하더군.”
노인은 차분하게, 그러나 아주 작은 빈틈도 없이 말했다.
시아는 뒤늦게 노인의 외양을 살폈다. 백발의 머리에 백발의 수염. 차분한 모습이지만, 정확히 어느 나라의 옛 복식인지 정확히는 잘 알 수 없는 그런 복장이다.
그저 확실한 것은 아주 오래전의 복장이라는 것뿐이다.
겉모습만 노인인 것이 아니라, 정말로 오래된 것이겠구나.
시아는 빠르게 그런 판단을 내린 뒤 물었다.
“소장과 만난 적이 있습니까?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당황했구나. 정말로 아무 조언도 주지 않은 모양이야. 그렇다면, 그 녀석은 어느 정도 정직했다는 말인데.”
노인은 조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그 녀석은 내가 데리고 있다.”
“데리고 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흐음, 생각해보니 데리고 있다는 말로는 전해지지 않겠군. 아무래도, 이런 행동을 해본 건 놀랍게도 이 나이 먹고 처음으로 하는 짓이라 말이다.”
노인은 허허 웃더니, 말했다.
“네놈들의 수장을 인질로 잡고 있다, 는 편이 더 적당하겠구나.”
시아는 자기도 모르게 들고 있던 전자담배를 떨어트렸다. 노인은 그 떨어져 깨진 전자담배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시아는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문장을 말했다.
“…소장을, 인질로 잡았다?”
“그래.”
“대체 어떻게?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을 대체 무슨 수로 붙잡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경악한 시아의 표정을 본 노인은 그저 웃었다.
“말해주는 게 어렵지는 않지. 허나…“
노인은 그렇게 말한 뒤, 망연하게 서 있는 시아를 쳐다봤다.
“그렇군, 지금은 말하지 않도록 하지. 그것도 약속 중 하나였으니. 그러니, 어떻게 잡았는지가 아니라 내가 어째서 전지를 붙잡았는지를 질문해야 할 게다.”
느긋한 말투. 하지만, 충분히 정보가 담긴 말이다. 시아는 아주 잠깐의 생각 끝에 정답을 알아냈다.
“…설마?”
소장을 붙잡을 이유가 있는 세력은, 사실상 단 하나뿐이다.
“전능?”
“오호? 거기까지는 말을 했는가?”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재차 말했다.
“그렇다면 이것도 아나? 내가 왜 그것을 가지고 너희를 협박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시아는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상황은 긴박하고, 생각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시아의 반응은 조금 늦었다.
“거기까지는 모르나? 어허, 그리 긴장하지 마라. 그것을 알고 모르고를 가지고 너를 죽이고 살릴 생각은 없다. 어차피, 네게는 별로 관심이 없으니.”
“관심… 말입니까?”
“그래.”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너는 꽤 유능한 편이겠지.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내가 바라는 것을 할 수 있을 리 없으니 말이다.”
지금까지는 무던한 태도였던 노인에게서, 갑자기 기묘한 압박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이건, 무슨?”
딱히 위협을 하려 하는 태도도 아니다. 그냥, 조금 호승심을 드러내고, 아주 조금 적대감을 내비쳤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온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시아는 지금 이 상황이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뭔가 자신이 말을 잘해서가 아니다. 특별히 무언가 잘나서 지금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상대가, 그럴 마음을 품지 않았기에 살아있을 뿐이다.
대놓고, 노인은 말했다.
“내가 관심 있는 건 단 하나뿐이야.”
“…무엇입니까?”
시아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나는 흡혈귀를 잡은 녀석을 찾는 중이다.”
“흡혈귀?”
시아는 되물었다.
“흡혈귀를 잡은 녀석 말입니까?”
“그래. 흡혈귀를 잡은 건, 물론 네놈들이 다 같이 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역할을 한 녀석이 있다고 들었다.”
시아는 딱딱하게 굳었다.
“그걸 어떻게?”
“어떻게? 그냥 전부 들었지. 일종의 기브 앤 테이크로 말이다. 내겐 그다지 의미 없는 질문들을 몇 번 하고 나서는, 등가 교환이라면서 이야기를 마구 들려주더군.”
노인은, 처음으로 조금 날카로운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다. 그리고 그 녀석은 이렇게 하면 만날 수 있을 거라 하더구나. 그러니, 가서 말을 전하거라.”
“…무슨 말을?”
시아의 질문에 노인은 천천히 말했다.
“사흘을 줄 테니 만반의 준비를 하거라. 비겁하다고 말하지 않을 테니 준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해라. 무기도 좋고, 독도 좋고, 어쨌든 가능한 모든 것을 다 해 보거라. 그렇지 않으면, 혹은 그렇다 할지라도 모두 죽을 테니.”
시아가 말을 잃자, 노인은 엄숙한 눈으로 덧붙였다.
“그게 너무 길다면, 그냥 너희들이 상대할 최강의 적이 왔다고 전하거라.”
* * *
-콰광!!
“으악!”
설이가 깜짝 놀라서 귀를 막고, 월이도 화들짝 놀라서 소리가 난 방향에 공격적인 반응을 보일 정도로, 문을 크게 박차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문을 여는 소리로 들리지도 않았다. 어디서 뭔가 터지는 소리처럼 들렸을 뿐이다.
“미치겠네.”
태주는 작게 말했다. 언젠가 한 번 가구들을 싹 다 바꾸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설마 그게 오늘일 줄이야.
“만났다! 만나고 왔다!”
시아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 언니! 깜짝 놀랐잖아!”
소리만 들은 월이가 몸을 움찔할 정도다. 게다가 내용도 영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뜬금없다.
“아니, 누나. 저 지금 중요한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요. 그것도 엄청나게 중요한 거요.”
태주는 조금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시아를 보며 말했다.
“최악의 타이밍이에요. 봐요, 손님도 지금 당황하셨잖아요. 지금 여기서 뭘 하는지 다 알고 있는 사람이 대체 왜 그래요?”
태주는 승현을 힐끗 살피며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하긴 했지만 사실, 승현은 옆에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별로 놀란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놀라고 당황한 쪽은 승현의 손에 있는 작은 새끼 쪽이다.
하지만 시아는 태주의 말을 듣고도 전혀 개의치도, 반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아니, 단언하지. 무슨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지금 이것보다 중요한 이야기는 없다!”
시아는 거의 외치듯 말했다. 확실히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건 알 것 같다. 태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말요? 저 지금 손님이랑 이무기를 죽인 용의자가 될 만한 게 뭐가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보다 중요해요?”
“이런, 눈치 없는 녀석!”
시아는 드물게도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방금 한 게 그 이야기 아니냐! 만났다고!”
태주는 말문이 막혔다.
“만났다고요?”
“그래!”
시아는 거의 소리치듯 말했다. 자세히 보니, 온몸에 땀이 절어있다. 이전에 시아가 이렇게 화가 난 적이 없었던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이렇게 순수한 놀람과 당황은 처음으로 보는 것 같다.
대충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정도는 짐작했는데, 그냥 심상치 않은 정도가 아닌가 보다. 태주는 잠시 손님께 양해를 구하고는 시아 쪽으로 완전히 몸을 돌렸다.
“어쩌다가 만났어요?”
“그냥!”
시아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사실, 자초지종이라 할 만한 것도 없다. 담배를 피우던 중, 갑자기 뒤에서 나타났다는데 무슨 자초지종이라 할 만한 것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도, 그 정도 말이라도 하는 동안 태주는 따듯하고 달달한 커피 한 잔 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태주는 그걸 시아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냥 갑자기, 누나 앞에 나타났다고요? 어떤 전조도 없이?”
시아는 조금 억울하기까지 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말 그대로 갑자기 나타난 거다.”
태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많이 흥분했네요, 누나.”
“안 하게 생겼냐!”
“이해는 하지만요.”
하지만 아무리 사람이 지금 혼란에 빠진 상태라도, 이건 들어야겠다. 태주는 질문했다.
“그래서, 누나는 알겠어요?”
“뭐를?”
“상대의 정체를 말이에요.”
“알겠다.”
시아는 흥분한 와중에도, 그것만은 확실하다며 말했다.
“상대의 정체는 —이다.”
“그런가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이랑 그렇게 다르지는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