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불길 속 무언가 (19)
“어, 저기, 제 주머니에 뭐가 들어간 건가요?”
승현은 긴장한 채 물었다. 차마 주머니 안에 손을 넣지도 못하고 멈춰 서 있다. 그저 주머니가 겉으로 조금 불룩해진 모양새와 아주 약간의 무게감만을 느낄 뿐이다.
“이게, 이게 뭔가요?”
아무리 침착한 사람이라도, 이 난장판 직후에 영문도 모를 것이 자기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면 그야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솔직히 조금은 겁먹은 승현과는 대조적으로, 월이는 어딘가 분통 터지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딘가 억울하기까지 해 보이는 표정이다.
“저게! 나한테는 계속 도망치던 게!”
“…저한테도 안 오던데요.”
월이 뿐만이 아니다. 두 사람은 어딘가 서운한 듯 말했다.
“도마뱀 주제에!”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승현은 더 긴장하고 말았다.
“제 주머니에 도마뱀이 들어온 건가요? 물리면 위험할까요?”
상황이 이렇게 되면 말 그대로 혼돈의 도가니다. 정신이 조금 아찔해진 태주는 또다시 머리에 손을 짚었다.
“도마뱀 아니에요. 자, 그리고 두 사람은 잠깐 좀 조용히 좀 해봐. 손님이 혼란스러워하시잖아.”
이제야 조금 조용해졌다. 태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긴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경계할 필요도 없으시고요.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길조라고 생각할 거에요.”
이게 꿈이라면 아주 길몽이거나, 태몽에 가까울 수도 있다. 이건 그 정도로 안전하고, 특별한 경험이다.
“경계할 필요가 없다고요?”
“네. 거기에 그 녀석이 들어간 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냥 저기 저 친구한테 겁먹어서거든요. 잔뜩 쫄아 있는 와중에 안전할 것 같은 곳이 생기자마자 바로 들어간 거라 하면 될까요?”
태주의 말을 들은 승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느새 침착함을 되찾은 채다.
“그럼, 혹시 열어봐도 될까요?”
“어휴, 네. 당연하죠.”
태주는 작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 주머니에 있는 게 바로 이무기가 손님에게만 모습을 드러낸 이유에요. 그리고 죽어가면서 불을 끈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무기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주머니에서 움직임이 느껴진다. 승현은 그 움직임을 느끼면서 물었다.
“이게, 그 이유라고요?”
“듣고 나서, 그리고 보고 나서 생각하시면 당연한 이유일 거예요.”
“당연하다고요?”
“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새끼가 하나 있었던 거에요.”
* * *
“왜 또 내가!”
부서진 책상과 의자 쪼가리들을 정리하면서, 월이는 투덜거렸다.
“내가 잘못한 건 아니라며! 그냥, 언니 말대로 쟤가 밖으로 못 나가게 하려던 게 다였단 말이야! 위험하니까!”
“판단을 잘못하지 않았다는 말이지. 놓치지 않겠다는 판단은 올바른 거였으니까.”
만약 바깥으로 뛰쳐나간다면, 붙잡을 수 없지는 않겠지만 그 새 위험해질 수는 있다. 그러니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는다는 판단 자체는 아주 정확한 판단이다.
태주는 월이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목적은 정확하게 잡았는데 방법이 조금 틀렸잖아. 그렇게 사냥감을 보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붙잡으려 들면 저게 뭐든 간에 도망칠걸?”
심지어는 최근에 보호자를 잃어 아주 예민하고 민감한 상태일 새끼다.
아주 상태가 멀쩡한 이무기와 싸워도 아마 이길 수 있을 만한 그런 어마어마한 것이 눈앞에 있으면, 그것도 어떻게든 붙잡겠다는 호기심이 가득한 태도인 괴물이 눈앞에 있다면 그야 도망치는 것이 당연하다.
"그, 그건!”
월이도 짚이는 데가 있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고양이 같다고? 그 길고양이들이 왜 매번 너한테서 도망치는데?”
태주의 일침을 들은 월이는 변명하듯 말했다.
“그렇지만 나도 그걸 막 잡아서 어떻게 해보려는 그런 건 아니었다고!”
“그래, 그냥 서로 오해해서 일어난 불의의 사고 같은 거라 치는 게 맞을 거야. 그래도 이 정도는 네가 치우는 게 맞지 않을까?”
태주는 원래는 의자와 책상이 있었던, 그런 휑하니 비어버린 공간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리 싸구려 의자와 책상이라고는 해도 합치면 가격이 꽤 된다.
“대신 이건 월급에서 안 깔 테니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꼭이다? 이건 빼 주기로 한 거다?”
월이는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알아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설이는 이미 이전부터 알아서 돕겠다고 합류해 있다.
“이쪽은 뭐, 됐고.”
태주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기 시작한 모습을 살핀 뒤, 승현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저쪽도 괜찮네.”
저쪽이야말로 잔잔하고 조용하다. 승현은 주머니에 있던 이무기의 새끼를 손등 위에 올려놓은 채로 구경하고 있었다.
새끼도 조용히 승현의 얼굴을 관찰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관찰하는 모양새다. 태주는 그 모습을 보고는 미소 지으며 물었다.
“어떠신가요?’
“생각보다 귀엽네요. 파충류도.”
솔직히, 이 정도라면 인정해야 한다. 승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새끼들은 다 귀엽죠. 대부분의 동물이요. 으음, 아닌 것도 있긴 한가? 곤충류는 좀 애매하네요.”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지금 그건 정말로 아무래도 좋은 생각이다.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아마 이야기를 미리 듣지 못했으면 그냥 도마뱀이라고 알았을 것 같네요.”
승현은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럽게 새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처음에는 긴장했고, 서로 경계했지만 지금 이렇게 찬찬히 보다 보니 별로 겁낼 일도 아니다.
“이렇게 보면 그리 대단한 생물처럼 보이지도 않고요. 말을 알아듣긴 하나?”
사람을 알아보는 걸 보니 그럴 것 같기는 한데, 말을 하지는 않으니 이래저래 알 수가 없다. 승현은 조금 더 이무기를 자세히 살폈다.
“날개인가?”
아주 자세히 보면, 날개인지 아닌지 모를 이상한 기관 같은 것이 있다. 아주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파악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게 다다. 평범한 동물 같아 보이지 않는 점은 고작 그것뿐이다.
“이래서는, 음. 이게 이 녀석한테 실례스러운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무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승현의 말에 태주는 마주 웃으며 말했다.
“뭐, 그렇죠. 원래 이무기의 외양적 특징이라고 할 만한 건 별로 없어요. 애초에 이무기라는 건 기본이 용이 못 된, 그 중간단계의 무언가니까요. 조금 많이 크기는 한데, 그건 성체 이야기고 이건 새끼나 마찬가지니까요.”
특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용과 비교해서 조금 모자란 것 이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니까 그 새끼는 정말로 도마뱀과 크게 다르게 생길 이유가 없는 거죠.”
태주의 말을 들은 승현은 잠자코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쨌든 이 애가 이유라는 거죠? 이무기가 제게 모습을 보인?”
“네, 그리고 불을 끈 이유기도 하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왜 이무기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나, 승현에게는 모습을 보였는가. 그리고 왜 어떻게든 불을 끄려고 했던 건가.
“결국 그 모든 행위가 다 그 애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던 거에요.”
“이 녀석을요.”
“손님을 굳이 선택한 것도, 아마도 그것 때문일 거고요.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그 자리에서 손님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던 거겠네요.”
“제가요?”
승현은 잠시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왜 하필 저였을까요?”
“왜 하필이라.”
태주는 아주 잠시, 기묘한 감상에 빠졌다. 다들 결국 비슷한 생각을 가지는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조금 들었다.
“글쎄요, 여러 의미로 손님이 제일 적당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최소한 당시 이무기의 판단은 그랬을 거예요.”
마지막 순간, 그 긴박한 상황에서 이무기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구석들은 분명 있다.
물론 문제가 없는 행동이기만 한 건 아니다.
이무기 행동의 문제는 손님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행동이라는 데 있다.
하지만 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해야 할지, 그러는 편이 오히려 더 당연하다 해야 할지.
태주는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말씀드리자면, 나쁜 의도의 행동은 아니었어요. 손님 손 위에 있는 그걸 지키고 싶었을 뿐이겠죠.”
그저 이무기는 그러기 위해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를 골랐을 뿐이다.
“누구라면 이것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을까. 그리고 보호하려는 시늉이라도 제대로 할까. 가능한 선택지가 애초에 많지 않았을 거예요.”
태주는 승현을 똑바로 봤다.
“그리고, 손님이 거기에 있었어요.”
승현에게는 조금 피해를 끼치는 일이지만, 아마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마침 손님은, 성실한 사람인 데다 이전에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조금 있어요.”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승현 손 위에 있는 이무기의 새끼를 보며 말했다. 새끼는 곧바로, 태주의 시선을 피해 도망갔다. 여전히 승현의 몸에는 붙어있는 채지만.
“그리고 저건 불길 속에서, 죽은 것의 자식이에요. 그리고, 당신에게 일종의 은혜를 베푼 것이기도 해요.”
사람을 위해 불을 끈 것은 아니지만, 불을 끈 것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손님이 만약 이 사실을 모두 안다면, 과연 어떤 행동을 할까요?”
절대로 승현이 모른 척할 리 없다. 그런 계산이 깔려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최소한 무시할 수는 없었겠죠.”
“네, 저도 손님을 오래 본 건 아니지만 그러실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걸 말로 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죠.”
본인은 이미 죽어가는 상황인 데다, 주변은 불로 가득하다. 정상적인 수단으로는 메세지를 전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당신의 트라우마를 자극했어요. 일부러요.”
도저히 승현이 잊을 수 없도록. 오직 그 하얀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절대로 잊어버리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누군가, 이 모든 것을 전달할 수 있는 전문가에게 오도록 말이에요.”
“그건….”
승현은 눈을 찌푸렸다.
“알고 보면 단순하죠? 이무기가 한 일은 손님을 이용해 먹으려는, 마지막 순간의 지혜였던 거에요.”
그것밖에는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한 강요인 셈이라고 태주는 설명했다. 태주는 천천히, 그러나 승현이 뭔가 더 질문하기 전 타이밍에 쭉 말을 이어가며 물었다.
“그럼 한 가지 질문을 드릴 필요가 있겠네요. 일단 그 전에, 이무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 볼까요. 사실, 이제부터가 조금 위험한 이야기인데요.”
처음에는 하지 않으려 했던 이야기지만, 이미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이미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이야기다.
“이무기는 살해당했어요. 그런 이야기를 저희는 꽤 초반에 했었죠.”
“그렇게 이야기했죠.”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이야기의 대전제다. 뭘 새삼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하냐는 질문을 하려던 찰나, 다시 한번 태주가 질문했다.
“그런데 말이에요.”
태주는 입맛을 한번 다시고는 말했다.
“어떤 게 이무기를 살해할 수 있었을까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