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불길 속 무언가 (17)
승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십 년이 되었던가 안되었던가? 겨울에 산기슭이라 할만한 그런 곳에서 불이 났던 적이 있었어요.”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니, 잊었던 적은 없지만, 기억 한켠에 밀어두고 있었다. 그랬던 사고가 분명히 승현의 기억에 있었다.
“불법 개농장…이라고 들어보셨죠? 그런 곳에 불이 났어요. 작은 불이었죠. 그냥, 동네 어느 건물에나 있는 스프링클러 같은 거 하나라도 있었다면, 별것도 아닌 작은 불로 넘어갈 수 있었을 만한 그런 불이요.”
사람이 놓치더라도, 소방 시설이라는 것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불은 조기진화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개 농장이라는 것은 허가받은 시설이 아니죠.”
당연히 안전점검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 갑작스러운 불에 대응할 소방 시설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작은 소화기조차 없었다.
“그래서 불이 번진 건가 보네요.”
태주의 말을 들은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승현은 기억을 되짚어가며 말했다.
“아마도, 석유 난로였을 거에요. 저녁에, 추우니까 그런 걸 켰다가 난 사고였죠.”
추정으로는 그랬다. 기름이 샌 건지, 아니면 불똥이 주변에 있던 담요 같은 것에 튄 건지. 승현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원인도 뭐, 나중에나 알았죠. 그때는 아직 저도 신입이었거든요.”
당시의 승현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소방 시설이 하나도 없던 것 치고 큰불은 아니었나 보네요.”
“네, 그랬어요. 규모가 큰 불은 아니었죠. 그 시설을 만들기 위해 주변의 나무를 싹 다 베어놔서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았기도 하고, 시기가 시기다 보니 산불에 대해서 크게 주의를 하고 있었거든요.”
늘 이 시즌에는 주변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때문에, 작은 연기만 봐도 바로 출동할 수 있도록 상황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사고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전혀 모르고 있나 보네요. 전혀 기사 같은 것은 찾을 수가 없던데.”
아무리 태주가 기사들을 잘 찾는다 해도, 그런 것까지 찾을 수는 없다.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실만하죠, 아무래도. 네, 그 사건은 지역 뉴스에나 잠깐 나오고 말 정도였어요. 불은 말 그대로 불법 건축물 하나를 전소시키고 끝이었으니까요.”
사소한, 어떻게 보면 범법자의 시설만이 불에 탔을 뿐이니 그리 눈여겨볼 사고가 아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사고냐 하면 그건 아니었겠죠.”
그게 그냥 작은 사고였다면 승현이 이렇게나 정신적으로 고통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태주는 작게 한숨을 쉰 뒤 말했다. 이미 내용은 짐작이 간다.
“그게, 식용으로 쓸 개를 키우는 곳이었나요?”
태주의 질문에 승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사람이 뭘 했는지는 저도 잘은 몰라요. 의혹은 있었다는데 거기까지는 잘… 일단은 브리더 같은 걸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목적이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걸 구분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괜히 승현이 농장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게 뭘 하던 곳이었는지는, 사실 크게 의미가 없어요. 그건 정말 제대로 된 시설이 아니었거든요. 그냥, 개들은 자기 몸 한 바퀴 간신히 돌 수 있는 작은 우리에 갇혀서 살아요. 아니, 살았겠죠.”
승현은 말을 과거형으로 고쳤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런 장소에요. 닭장처럼요.”
“흐음….”
태주는 신음을 흘렸다.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계시죠? 개는, 재산이에요. 분류상으로는 확실히 그래요.”
“네 알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이 키우는 것은, 아무리 애완동물이니 반려동물이니 하는 이야기를 해도 결국은 재산으로 취급된다.
‘재산피해’가 단순한 재산피해가 아니라는 것을 승현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승현은 씁쓸하게 말했다.
“그래서.”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산피해, 라 말씀하셨을 때 거기까지 생각을 하셨던 거군요.”
“제가 구해야 하는 건 사람이에요. 동물은 아무래도 뒷전이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건 꽤나 끔찍한 일이다.
“인명은, 재산보다 앞서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재산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지 말아라. 그런 말을 선배들이 했죠.”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그때가 되니 알겠더라고요.”
수많은 개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자신의 맡은 역할을 잠시 미루고 저곳으로 가야 하는가. 그 고민은 길게 하지도 못했다.
“화재는 맹렬했어요. 마침 바람이 없어서 불이 바깥으로 퍼져나가지는 않았지만,”
불은 크게 번지지 않았을 뿐 화력은 좋았다.
잠깐의 망설임, 그리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미 승현은 다른 지시를 받았다.
“당시 제가 해야 하는 건 뒤를 보는 일이었어요. 당연하죠, 엄청나게 급한 게 아니라면 신입에게 위험한 일을 시키지는 않아요.“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렇기에 승현은 주의 깊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있다 보면,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개가 짖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어딘가 소름이 끼치는 사람이 지르는 것 같은 비명소리.
그리고, 그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타닥거리는 무기질적인 불 소리. 이 정도 거리에서는 뜨거운 것조차 아닌, 그저 따듯할 뿐인 불.
“비명이라는 건, 사실 그리 다를 것도 없더라고요.”
사람이 지르는 것과 개가 지르는 것. 분명히 다르지만, 그 자리에 있던 승현에게는 같게 느껴졌다.
“고민했어요. 지금이라도 가서, 저 문만 어떻게 열면 안 될까?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예요. 제 일은, 그 자리에서 상황을 전달하는 거였으니까.”
결국, 승현은 그저 볼 수밖에 없었다. 선배들이 건물의 불을 끄는 것을 포기하고, 주변에 불이 번지지 않도록 막을 뿐인 상황을.
“그건, 올바른 결정이었어요.”
승현은 전혀, 그것이 자랑스럽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라도 산불이 되어 버리면, 그거야말로 큰일이니까요.”
그때도 알았고, 지금도 안다. 저 수십 마리의 개들이 불쌍하다고 자신이 자리를 비우는 것은, 어떻게 봐도 올바르지 않다.
더 많은 피해를 막기 위해서, 승현은 그 개들이 산채로 도망가지도 못하고 타죽는 것을 봐야 했다.
아니, 보지도 못했다. 그저, 소리만 들었다.
승현은 불쑥 말했다.
“며칠 전까지는, 네. 이 일을 기억하지도 않고 있었어요. 떠올릴 일이 전혀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아마 뇌가 알아서 지운 거겠죠. 손님이 그렇게나 착각할 만한 이유가 있었네요.”
태주는 조금 씁쓸하게 말했다.
“강렬한 소리와 그에 대비되는 그저 보이기만 할 뿐인 무언가가 합쳐져 버린 거네요. 그것도 똑같이 강렬한 불길 속에서 나타났다는 공통점을 가진.”
그렇기에 그렇게나 건실한 이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그걸 쿠네쿠네라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단은,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희는 손님이 보는 걸 없앨 수는 없어요. 손님께서 보시는 것이 진짜로 존재하는 쿠네쿠네가 아니라서요.”
무책임한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은, 잘못 오신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손님이 정말로 고통을 겪고 있었던 건, 두 번째 이후의 것들이고 여기에 오실 수 있었던 이유는 맨 처음의 그 한 번 때문이고… 이래저래 곤란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할 방법이 하나 있기는 했었다.
“방법이 있었다고요?”
승현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 게 있었나요?”
“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파란 약을 선택하셨다면 써먹었을 방법이에요. 이제는 못 쓰는 방법이지만 말이에요. 예를 들면 이런 방법이겠죠.”
태주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더미, 혹은 허수아비를 만들어서 없앤 뒤 ‘그건 없어졌습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더미요?”
“손님이 존재하지도 않는 쿠네쿠네 때문에 고통받는다면, 진짜 쿠네쿠네처럼 보이는 것을 하나 만들어서 없애는 것만으로도 문제는 해결이 되었을 거예요.”
승현이 겪고 있는 것이 일종의 환상통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것도 방법이다. 환상통을 치료하는 방법은, 환상 약을 먹이는 것이다.
일종의 플라시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애초에 없는 것을, 마치 없앤 것처럼 행동하고 알려준다면 사실 그것만으로도 손님을 원래 상태로 돌려놓을 수도 있었을 확률이 아주 높았죠.”
자신이 그런 것을 봤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상태가 저렇게 되었으니, 자신이 나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로 낫는 법이다.
“절 속이려 하셨던 거네요.”
“그렇죠. 한다면 철저하게 해요. 아마 정말로 마지막 순간까지 그걸 아실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손님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진상을 아는 쪽을 선택했잖아요?”
본인의 상태와 마주하고, 그것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도울 가치는 충분히 있다.
“그렇다면 저를 속이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이 뭐가 있나요?”
승현의 질문을 들은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해결해야죠.”
“정말로 해결한다고요?”
“손님이 처음에 했던 그 강렬한 경험. 아니, 그걸 강렬하다고 하면 안 되려나요.”
태주는 조금, 눈을 찌푸린 뒤 말했다.
“그 개농장에서 손님은 구할 수 있었던 것이 없었어요.”
실제로 그것이 가능했을지 아닐지는 태주는 모른다. 출동하자마자 불이 빠르게 번지기 전에 그 철창의 문들을 모두 연다거나 했다면 어떻게든 몇 마리 정도는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무기 역시도 구할 수 없었어요.”
오히려 개보다도 더 확실하게 구할 방법이 없었다.
“반대로 이무기가 당신들을 구했죠. 아, 뭐 물론 당신들은 겸사겸사 구원받은 셈이겠지만요.”
승현은 말했다. 일기예보에도 없었던 그 비가 아니었다면, 그 불은 고작 산 하나를 불태우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거라고.
“그 비 있잖아요?”
태주는 말했다.
“그게 우연히 내릴 리는 없어요. 죽어가는 와중에, 그 살해당한 이무기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내린 거겠죠.”
아마 그 비만 있었다면 모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있었다.
사람만 힘을 썼다 해도 모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무기가 비를 내렸다.
둘의 힘을 합쳐서 불을 끌 수 있었다고 한다면 듣기에 좋지만, 그건 이무기가 살았을 때나 듣기 좋은 이야기다.
“결국 일방적으로 도움받은 쪽은 사람이죠. 하지만 사람을 예뻐해서 불을 끄는 데 도움을 줬다 생각하기는 어렵죠. 일부러 더 빨리 죽기 위해서 비를 내렸다는 생각도 그리 그럴듯하지는 않고요. 그럼 왜 그런 짓을 했을까요?”
태주는 물었다.
“모르겠네요.”
승현은 고개를 저었다.
“불을 꺼야 해서요? 그럴 이유가 있어서?”
“네. 맞아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무기에게는 불을 꺼야 했던 이유가 있었던 거에요. 그것도 자신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그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중요한 이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