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불길 속 무언가 (16)
마치 죽었다가 깨어난 것처럼, 승현은 눈을 뜨자마자 기계처럼 몸을 일으켰다. 일어났다는 걸 눈치채기는 참 쉬웠다.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태주는 가볍게 인사했다.
“일어나셨나요?”
“네, 제가 얼마나 잤죠?”
“글쎄요. 한 세 시간 정도일까요?”
“너무 많이 잤네요.”
여전히 무뚝뚝한 목소리다. 태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가요? 너무 많이는 아닐 텐데요.”
짧지는 않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긴 시간이라 할 수는 없다.
“손님은, 오래 잔 게 아니에요. 사실상 기절했던 거니까요. 몇 시간 만에 일어났으면 괜찮은 거죠.”
그렇게 말한 뒤, 잠시 시간을 둔 채 태주는 물었다.
“그래서, 빨간 약을 드신 기분은 어떠세요?”
“빨간 약이라.”
승현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맛이 쓰네요.”
“그야 쓰겠죠.”
태주는 조금, 피로한 눈으로 말했다.
“반쯤 불가능한 것을 하고 계셨으니까요. 그것도 혼자서 말이에요.”
트라우마, 혹은 PTSD에 익숙해진다. 승현이 하려고 했던 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런 줄 알고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전혀 하지 못하고 계셨죠?”
승현은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그게 말로 하면 쉽지만, 어려워요. 거기에 가장 익숙해지는 방법은 그냥 그게 남의 일이라고 그러려니 하는 거거든요.”
물론 다른 방법들도 있지만, 제일 쉬운 방법이 무엇인가 하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일일이 그런 ‘사소한’ 혹은 ‘남’의 일에 공감하지 않고 그냥 적당히 받아넘기는 것이야말로 익숙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후천적인 사이코패스화, 라고 해야 할까요? 진짜로 그렇게 된다기보다는, 상처가 많아서 마음을 닫게 되는 거예요. 하지만 손님은 그럴 수도 없는 사람이죠.”
태주의 말을 들은 승현은 조금 씁쓸하게 말했다.
“그런가요?”
“태도만 딱딱하게 하신다고 그게 되나요?”
승현은 그러기에는 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돕는 그 자체로 보람을 느끼고, 목숨까지 걸기도 하고.
“그게 더 합리적이라는 마음을 먹고, 거기서 버티고 계시죠.”
사람이 죽을 염려가 거의 없는데도, 거기서 버티고 서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버티고 섰다.
“그 합리적인 이유라는 게,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지킬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닿기 때문인 거구요. 사실, 진짜 합리적인 건 목숨이 위험할 거 같으면 그냥 물러나는 건데 말이에요.”
그런 사람이다 보니 정신적인 부담을 흘려보내기도 어렵다. 그저 온전히 맨정신으로 받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상태가 되어버리고 만 거예요. 손님은.”
“저도 모르는 제 상태를 어떻게 아신 거죠?”
승현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태주는 작게 웃었다.
“비슷한 질문을 방금도 들었는데.”
“방금이요?”
“아, 이쪽 이야기에요.”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천천히 대답했다.
“어떻게 알았는지부터 대답해볼까요? 맨 처음의 위화감은, 손님이 처음에 이곳에 들어왔을 때였어요.”
태주는 승현이 이곳에 처음 왔을때 느낀 감상에 대해 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태도는 비교적 딱딱해요. 그리고, 주변을 늘 살피시죠. 이곳에 오시자마자 식품영업허가가 있는지 확인을 하셨던 것만 봐도 그래요.”
그 질문은 관찰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뭔가 문제가 없는지, 주변을 세심하게 확인한 후에야 나올 수 있는 질문이라는 뜻이다.
태주가 본 바로는, 승현이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본 곳은 언제라도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입구 쪽이고, 그다음에 위험하게 관리되는 장비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 위화감을 느낀 결정적인 부분은 그다음에 저한테 곧바로 그걸 물어보신 거고요. 물론, 그게 뭔가 잘못하셨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그저 보통 사람들이 하는 질문이 확실히 아닐 뿐이다. 승현은 눈을 살짝 찌푸렸다.
“그냥 흔한 직업병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물론, 그 말이 맞아요.”
사실 겨우 그 정도라면, 본인의 생각대로 흔한 직업병 수준이라고 보는 편이 더 올바르긴 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제가 할 말은 아니기도 하고요. 애초에 저도 그런 비슷한 버릇이 있으니까 말이죠.”
태주 역시 사람을 살피는 버릇이 있다. 결국 살피는 것의 종류만 다를 뿐 서로 비슷한 직업병이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주가 그걸 문제 삼은 이유는 따로 있다.
“하지만 그걸 그저 살피는 것과 거기서 느낀 의문을 바로 입 바깥으로 꺼내는 건 다른 이야기거든요.”
보통은 그런 걸 보더라도 쉽게 말로 하지는 않는다. 남에게 지적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귀찮은 일인 데다가, 심지어는 무례한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신고할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도 조용히 신고할 생각을 하고 말지 그 질문을 그대로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손님은 그걸 곧바로, 전혀 망설임 없이 의아한 점을 바로 말했어요.”
마치 그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처럼, 그보다 우선해서 고려해야 할 일은 세상에 절대 없다는 듯 단호한 태도로.
조심스럽지도 않게, 마치 그것보다 더 우선해서 고려해야 할 것은 없는 것처럼.
“그런 반면에, 자기 자신에 대한 것들은, 그리고 안전에 관련 없는 비교적 손님의 관심 범위 바깥의 것에는 정말로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인 게 보이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있었지만, 당장 또 언급할 만한 것들은 아니다.
“하나씩 보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반대로 이런 사소한 것들을 합치다 보면 점점 이상한 부분들이 보이거든요.”
하나쯤은 있을 수도 있는 이상한 부분이, 이렇게나 많다면 과연 그건 우연일까?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그렇게나 이상한 상태인가요?”
승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요.”
태주의 말을 들은 승현은 눈을 크게 떴다. 물론, 당연히 이건 거짓말이다.
“아마 일주일 전까지는 그렇게 대답했겠죠.”
태주는 조금 씁쓸하게 대답했다.
“손님이 원래부터 망가져 있었는가, 하고 질문을 던지면 사실 그렇지는 않았을 거예요. 위험한 요소는 물론 수도 없이 많았지만요.”
하지만 소방관이라는 직업의 특성을 생각하면, 사실 앞서 보인 특징들 정도면 무난한 편이다.
안전에 대해서 조금 강박적으로 굴고, 스스로를 약간 덜 챙기는 정도에서 그치는 비교적 정상적인 범위 내에 있었다는 말이다.
“안에 어떤 상처가 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게 생활할 수는 있었을 거라는 말이에요. 정신적으로 튼튼하다고 표현할 수 있겠죠.”
차라리 그렇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태주는 이걸 안 좋은 일이라 할 수 있는지, 조금 고민하며 말했다.
“완전히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만약 손님이 이번 일을 겪기 이전에, 처음부터 멀쩡하지 않았다면 이번 일은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이미 그 일을 그만두거나, 다른 종류의 직렬로 넘어가던가. 그런 종류의 선택을 했을 테니까 말이에요.”
말 그대로 결과론이지만, 아쉬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분명히 손님 주변에도 그런 분이 있을 거예요.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고 마는 사람들. 맞죠?”
“네.”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를 직접 겪어서, 혹은 그냥 그 모습을 눈앞에서 봤기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만두는 사람은, 소방관들 사이에서 꾸준히 있다.
“그 와중에 손님은 버텼으니까요.”
그러니 승현은 정신적으로 비교적 튼튼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어쩌면, 이번 일이 없었다면 정말 본인의 생각대로 계속해서 견딜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최소한 은퇴하거나, 현장직을 계속 뛰지는 않는 시점까지는 견딜 수 있다는 판단을 손님 스스로도 어느 정도 본능적으로 하고 있었던 거로 보이고요.”
문제는, 이번에 한 경험이 조금 강렬하고도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 일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선 충격을 줄 수 있는 일이다.
“아무래도 이번에 손님이 경험한 일에는 두 가지 큰 문제가 있었어요.”
“두 개? 어떤 두 가지요?”
“이번에 본 것은, 그 본인의 트라우마를 지나치게 자극할 만한 그런 사건이었다는 점이 하나죠.”
사실, 상상만 해도 꽤 끔찍한 모습이기는 하다. 나무와 비견될 만한 어떤 거대한 크기의 무언가가, 고통스럽게 꿈틀거린다.
죽어가면서, 혹은 이미 죽은 후 동작만이 남아서.
“물론 그게 어떤 기억을 자극했는지는 저도 몰라요. 하지만, 뭔가가 죽어가는 모습이 어떤 끔찍한 종류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는 정도는 짐작이 가거든요.”
만약 그 꿈틀거림에서 어떤 것을 연상했다면. 그런 유사한 움직임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면.
“일종의 정신적인 상처를 헤집는 것과 마찬가지의 행동이었겠죠.”
그것이 화재였는지, 아니면 다른 종류의 사고였을지. 어느 쪽이든 그 현장에서 그리 좋은 꼴은 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은 확실히 든다.
“이걸 보여준 쪽한테 물어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상대가 충격을 받을 줄 알고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고르고 보니 그런 사람이었다는 그런 우연인지.”
“그럼 다른 이유는 뭐죠?”
승현은 눈을 조금 찌푸린 채 물었다.
“하필이면 그걸 본 게 불 속이었다는 점이에요. 그것도 아주 큰 불.”
태주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불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사람을 어느 정도 트랜스 상태에 빠트리거든요. 개인차라는 건 당연히 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괜히 제사를 지낼 때 큰 불을 피우는 것이 아니고,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청소년 캠프의 마지막에 캠프파이어를 하면 갑자기 감동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걸 좋은 의미로 극대화한 게 불멍이죠.”
괜히 화면에 모닥불 따위나 띄워두고 있는 영상이 인기를 끄는 것이 아니다. 바라보다 보면, 조금씩 의식이 흐릿해진다. 집중력이 아득히 높아지면서 그 높아진 집중력으로 불을 쳐다본다. 동시에 다른 것에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렇게 불을 보면서 있다 보면 현실감이 조금씩 사라져요. 그게 비현실적인 크기라면, 그리고 도망도 가지 않고 그저 그 앞에서 버티고 서 있어야 한다면 그야 조금쯤은 정신이 혼란해질 수밖에 없겠죠. 여긴 아무래도 제 짐작이지만요.”
본능에 의한 공포를 이겨내고 그곳에 서 있다 보면, 문득 그곳에서 꿈틀거리고 흔들거리는 무언가가 보인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정말로 불에 타 죽었는지, 그냥 죽어가는 거였는지, 뭐든 간에 그런 멍해진 정신에서 그런 것을 본다면, 그야 최악의 콤비네이션이죠. 그렇지 않겠어요?”
알 수 없으니 불안해진다. 하지만 알고 싶다 해도 자신이 본 것이 어떤 것인지 도저히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니, 쿠네쿠네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실제로 나타난 괴담은 아니지만, 손님 본인에게는 그만한 정도로도 충분했죠.”
그것이 하필이면 쿠네쿠네라는 종류의 괴담이었기에 의미가 있는 오해였다.
“차라리 정말로 산 채로 죽어가는 무언가를 봤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본 것이 쿠네쿠네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거겠죠. 차라리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거기에 있었다고 한다면, 무언가가 고통스럽게 죽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는 말이니까요.”
그게 딱히 승현이 잘못한 일은 아니다. 사람이라면 으레 자신이 봤던 것이 정말로 생물이 아니라는 쪽에 기대를 걸어버리고 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미 짐작은 하고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