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불길 속 무언가 (15)
괴담이라는 것은 근본이 이상한 이야기다. 사람 본인의 상태가 멀쩡하지 않을수록 그런 것을 경험할 확률이 높다.
그러니, 승현에게는 애초부터 있지도 않은 괴담에 홀려버리고 말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혼자가 되면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어. 그때가 바로 트라우마가 찾아오기 가장 좋은 상황이지.”
누구나 한 번쯤은 있는, 자기 전에 떠오르는 바보 같은 기억들이 있다. 흔히 다들 이불킥이라고도 부르는, 그런 경험이다.
“그것도 트라우마인가요?”
설이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태주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어넘기고, 실제로도 엄청 가벼운 경우가 많지.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PTSD라 할 수 있어. 아주 약한 거지만 말이야.”
혼자서, 가만히 침전하여 생각할 때 찾아오는 생각들. 그리 좋은 기억도 아닌, 오히려 기분이 나쁜 쪽에 가깝기도 한 그런 기억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찾아오는 방식이 거의 동일하다.
“혼자 걸으라 했던 것도, 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였지. 혼자가 된다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니까 말이야.”
시간이 꽤 걸릴 거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보통, 어느 순간 찾아오는 것이니까. 태주의 예상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그러나, 그 정도를 짐작하지는 못했다. 태주는 조금 반성하며 말했다.
“하지만 한 번에, 그것도 점심도 넘기기 전에 바로 그렇게나 드러날 정도로 심각한 상태인 줄은 전혀 몰랐어. 이무기와 만나서 더 빠르게 상태가 안 좋아진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내가 조금 단순하게 생각했던 건지도 몰라.”
명백한 실책이다. 태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설이는 그 말을 듣고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일종의 트라우마로 인한 환각 같은 거란 말씀이시죠? 그러니까 사실 손님이 말씀하셨던 건 애초에 있지도 않은 것이었다는 말이네요. 그러니 제가 볼 수 없었던 거고요.”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그래. 하지만 정말로 없었던 것이었는지는 나도 몰라.”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우리가 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게 맞아. 하지만 본인에게는?”
태주는 설이 쪽을 보며 말했다.
“보이기도 하고, 느껴지기도 해. 어쩌면 냄새 같은 것도 날지도 모르고, 소리마저 들을지도 모르지, 과연 그게 아무것도 없는 거라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그 사람이 생각하고, 보고, 듣는 것들은 실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정말로 세상에 없는 것이라 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너는 보지 못했어. 그러니까 이해할 수 없겠지. 없는 거라고 말할 수 있었을 거야.”
설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일부러, 어떻게 행동하라고 말하지 않은 이유에는 그냥 그것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라는 것도 섞여 있었으니까.
“하지만, 본인에게는 그것이 분명히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말아 버리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쿠네쿠네라는 괴담은, 승현에게 너무나도 잘 맞는 괴담이었다.
“쿠네쿠네도 그렇지. 유래조차 불분명하니, 진짜로 있는 괴담이라 하기 애매해. 하지만, 그 목격한 본인에게는 그것이 실제로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 옆에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말이야.”
그렇기에, 하필이면이라는 말을 한 것이다.
애초에 정체불명이기에, 그것은 쿠네쿠네일 수도 있다. 본인의 PTSD를 일종의 괴담 같은 것으로 만든 것이다.
“하필이면, 말 그대로 하필이면 그 사람이 본 게 이무기라서 가능했던 일이겠지. 맨 처음에 본 것이 명백히 이상한 것이니, 뒤에 본 것이 환각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거야. 이게 괴담 관련 일만 아니면 사실 전문 상담사나, 혹은 의사한테 보내는 게 맞을 텐데.”
태주는 조금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월이는 그런가? 하는 표정을 지은 뒤 물었다.
“뭐, 됐어. 어쨌든 별일 없었으니까. 근데 왜 ‘하필이면’이라는 말을 한 거야? 누구든 결국 비슷하게 힘든 거 아냐?”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이건, 이무기가 자기가 죽으면서 남긴 일종의 다잉메세지니까.”
“아, 맞다.”
한동안 다른 이야기만 나와서 까먹었다. 월이는 조금 벙찐 눈으로 말했다.
“그런 이야기도 했었지?”
“그래.”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무기가 일부러 손님에게만 보여줬지. 자신의 모습을 말이야.”
그런데 하필이면 그 모습이, 불타 죽는 모습처럼 보였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이걸 이무기의 잘못이라 표현할 수는 없다. 이무기는 그냥 죽어가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였을 뿐이니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 처음에 이무기를 죽인 것이 잘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전 전혀 모르겠어요. 듣고 나니까 조금 알 것 같기도 한데 그건 들었으니까 알겠을 뿐이고요. 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설이의 약간의 부러움이 섞인 말을 들은 태주는 씁쓸하게 웃었다.
“뭐, 그건 조금 있다가 너희도 듣게 될 거야. 늘 그렇듯이.”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목을 살짝 꺾었다.
“그나저나, 그분이 금방 깰까?”
월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닐걸. 본인이 받은 충격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실 끊어진 인형마냥 잠들던데?”
얼마나 걸려서 다시 깰지는 모르지만, 하고 월이는 덧붙였다.
“시간은 조금 있는 셈인가.”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완전히 끝난 상황은 아니지만, 또 거의 다 된 상황이니 그리 급할 이유도 없다.
“누나 연락까지만 받고 나서 내가 올라가 있을게. 성과는 좀 있었으려나?”
태주의 말을 들은 설이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맞다, 그러고 보니. 시아 언니는 어디로 간 거예요?”
“어디로 갔냐고? 아마 곧 올 거야.”
그거야말로 시간문제다. 태주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마 손님이 깨기 전까지는 연락을. 해 줄 수 있겠지?”
* * *
“그나저나, 몇 번을 맡아도 매캐한데.”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냄새 때문에만 눈을 찌푸린 것은 아니다. 알 만한 것들은 거의 다 알았음에도, 사실 딱히 새로운 것을 알아낸 것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게다가 여전히, 살해자와 동기를 알 수 없다.
“곤란한데.”
시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려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머리가 아플 줄은 몰랐다.
“세상에 살다살다 사람을 죽인 괴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괴물을 죽인 괴물의 이야기를 조사하게 될 줄이야.”
사람을 죽인 괴물 이야기라면, 이러니저러니 해도 참고할 만한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괴물을 죽인 괴물의 이야기라면 그리 참고할 이야기가 많지 않다.
머리가 좀 아프다. 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짚었다.
“이런 경우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런지?”
“꽤 있지 않을까? 사람이 보지 못할 뿐이지.”
뒤에서 능글맞게 하는 목소리를 들은 시아는 머리를 짚었던 손을 내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런 타이밍을 소장이 알고 말을 걸었겠지만.
“왜 또 뒤에서 갑자기… 나가신다더니 어딜 나갔다 오신 겝니까?”
“어딜 갔다 왔냐고?”
소장은 씩 웃으며 말했다.
“정답을 조금 알아보고 왔어.”
“하아.”
시아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소장님, 죄송하지만 안 그래도 머리가 좀 아픈데 자극하지 말아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뭔가 좀 알려줄 게 없으시다면 그냥 가시지요.”
“그럼, 조금 알려줄 게 있으면 그냥 있어도 되겠네?”
시아는 멈칫하고는 말했다. 확실히, 이런 건 엄밀하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 정정하지요. 알려주지 않으실 거면 그냥 가시지요.”
소장이 사무소 사람들에게 알려줄 만한 것 정도는 늘 있다. 당연한 일이다. 뭐든지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게 고민 중에 뒤에 있으면 짜증이 나는 이유다. 모든 걸 알면서 말하지 않는 사람만큼 풀리지 않는 퍼즐을 풀 때 짜증 나는 사람도 없다.
시아는 눈을 조금 찌푸렸다.
“놀러 오셨습니까?”
“아니. 너도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잖아?”
소장은 느긋하게 말했다. 맞다. 사소한 일이라면 진짜 재미 삼아 와 보기도 한다. 태주나 시아가 가끔씩 바보짓을 할 때, 그 꼴은 직관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아까운 일이라는 듯 슬쩍 와서 구경하고 가곤 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진지한 일 중간에는 오히려 오지 않는다. 여러모로 방해가 되는 걸 스스로 알고 있는 것 때문이 아닐까, 하고 시아가 생각하긴 하지만 짐작일 뿐이다.
“네 생각이 맞아.”
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면서도, 이럴 때마다 조금씩 질린다.
“그럼 한번 구태여 물어보지요. 소장님은 어째서 또 이곳에 오셨습니까? 굳이 저 혼자 있는 이곳에 오신 이유가 대체 무엇입니까?”
“내가 왜 여기로 왔냐고? 그야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말이야.”
소장은 늘 그렇듯 느물느물하게 웃었다.
“한동안 나는 돌아가서는 안 되거든.”
돌아가서는 안 된다. 소장의 말을 들은 시아는 잠시 생각하다가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아까 정답을 ‘알아봤다’라고 하신 게?”
소장이 ‘알아봐야’할 것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시아는 당혹했다.
“그래. 연관이 있지. 그렇다고 해야 하나. 그냥 사실 이번에는 꼬리가 잡혔달까, 물론 지금 당장은 잡혀도 괜찮은 녀석이기는 한데.”
소장은 또 그 안 좋은 버릇 때문인지 정확히 말을 하지 않았다. 조금 짜증 섞인 표정을 지은 시아의 얼굴을 본 소장은 그래서 뭐 어쩔 거냐는 듯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니, 진짜야. 하지만 이번에는 이래저래 정정당당한 녀석이라서, 난 안전해. 일단은 말이야. 이 녀석은 아무래도 프로텍트 같은 게 걸려 있어도 뻔하거든. 굳이 이 녀석한테 이런 금제를 걸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기도 한데. 나이 많은 바보거든, 이거.”
소장은 그렇게 말한 뒤, 시아를 보며 말했다.
“물론, 쉬운 녀석이라는 뜻은 아니지. 너도 알잖아? 머리를 쓸 필요가 없는 강함이라는 게 어떤 건지?”
“알지요.”
시아는 그렇게 말한 뒤 이를 꽉 깨물었다.
“너무 잘 알지요.”
“그래, 참고로 우리 애들보다 쎄다? 아무리 잘 쳐줘도, 합친 것보다 강해.”
“그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시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뭘 하면 그런 것을 적으로 돌린다는 말입니까?”
“난 그 녀석을 적으로 돌린 적이 없어. 그 녀석의 위쪽에 있는 걸 적으로 돌렸지.”
소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본인은 나한테 별생각이 없어. 그러니까 만나고도 사지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거 아냐.”
“상대를 읽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잘도 그런 미친 소리를 하시는군요.”
“결국 진짜로 뻔하거든, 특히나 이상하게 배배 꼬이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더 그렇지. 너나 태주도 다른 사람은 모를까, 월이가 무슨 생각 하는지는 늘 대충 알고 있잖아?”
소장은 그렇게 말한 뒤, 한 마디를 더했다.
“그리고 내가 왜 네 앞에 나타났느냐 하면, 뭘 하나 주워왔거든.”
“주워 와? 어떤 걸 말입니까?”
“이무기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이유.”
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유라는 것을 주워올 수가 있습니까?”
“있더라고, 이번엔?”
소장은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이거야 이거.”
“우와앗?!”
그게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소장은 시아에게 손에 있던 것을 던졌다.
아무리 받기 좋은 포물선을 그렸다고는 해도 갑작스럽게 던진 것이다보니 반쯤 놓칠뻔한 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무슨 짓입니까 대체!”
하지만 대답은 없다. 시아는 반쯤 체념한 채 고개를 들었다.
“역시, 없나.”
예상대로 소장은 그 자리에 없었다.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시아는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꺼냈다.
“나다. 급히 할 말이 있어.”
[뭔가요?]
“지금 소장에게 이상한 소리를 조금 들어서 말이다.”
시아는 말했다.
“그리고, 이상한 것도 하나 받았다.”
[이상한 거요?]
“그래.”
시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게 뭔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너도 보면 분명 놀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