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불길 속 무언가 (13)
“얼씨구?”
계단을 내려온 시아가 맨 처음에 한 말이다.
승현을 바깥으로 보내놓고 난 뒤 쌕쌕 잠들어있는 태주를 본 시아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손님을 빠르게 보내놓고 한다는 짓이.”
“흐어?”
시아의 목소리를 들은 태주는 정신이 확 든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 지금이 몇 시죠?”
“잘은 모르지만, 네가 푹 잤다는 건 알겠구나. 일어나자마자 시간을 물어보니?”
시아는 한심하다는 듯 말하기는 했지만, 곧바로 손목을 살피곤 말했다.
“열한 시쯤 된 것 같아. 조금만 더 지나면 점심시간이겠는데.”
“다행이네요, 그렇게 오래는 안 잤나 봐요.”
태주는 하품을 크게 하고는 말했다. 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기서 이렇게 잘 바에는 날 깨우지 그랬니? 나도 잘 못 잤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 힘든 건 나눠서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게요. 하지만, 뭐. 그때는 그런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왜, 내 피부라도 지켜주려는 기특한 생각이었나?”
시아의 장난기 섞인 말에 태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음, 제가 대신 힘들어야겠다는 뭐 그런 기특한 생각은 아니었고요.”
태주는 한 번 더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충분히 잔 셈이라고는 해도, 깬 직후는 늘 졸린 법이다.
“하암, 그냥 뭐랄까, 올라가기도 귀찮아져서요. 그런 거 있잖아요? 쭉 안 자면 차라리 버틸 만한데, 중간에 두 시간 자다 깨면 그 직후에는 더 피곤한 거. 한 발자국도 더 움직이기 싫고, 뭐 그런 느낌?”
물론, 그렇게라도 잠시나마 자 주는 편이 이래저래 피로회복에 좋기는 하지만, 당장 편한 것은 한시도 자지 않는 쪽이다.
“어쨌든 손님 보내고, 애들 슬그머니 따라 나가는 거 확인하고, 누나랑 교대하려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혹시, 생각해보니까, 여기서 그냥 자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면 서로 편할 거 같더라고요. 저도 이래저래 잠귀가 어두운 편은 아니라서, 바깥쪽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잠에서 깰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요.”
“잘도 그런 소리를 하는군. 내가 내려오는 소리는 전혀 듣지 못했으면서. 온 게 내가 아니라 손님이었으면 어쩌려고?”
시아의 지적에 태주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아하, 뭐 이번엔 제가 조금 잘못 생각했던 걸로? 그러면 되지 않을까요?”
“괜찮기는, 잘 자기만 하던 녀석이.”
“그,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무 일도 없었고.”
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는 했지만, 이내 더 지적하기를 포기하고 말했다.
“뭐, 어쨌든 지금까지는 아무 문제 없었으니까. 괜찮은 거라 치지. 그래서, 아침에 그 일은 어디까지 진행이 됐지? 아침에 진행된 거나 이야기를 좀 해 봐.”
어제 시아가 알아낸 것은, 맨 처음에 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 뒤에 본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결론을 내지 못했다.
“뭐 특별히 진행된 게 있나?”
“진행이야 뭐, 진행되었다기보다는 진행 중이죠. 그 두 명이 돌아와야 어떻게 일이 굴러간 건지 좀 확신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가?”
시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하지만, 오전부터 조금 분주하게 움직인 걸 보면 대강 어느 정도의 계산 정도는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나?”
“어, 그야 그렇죠. 제가 움직이고 나서 생각을 하면 큰일 난다구요. 이곳에서 그래도 되는 건 월이랑… 지금은 설이도 어느 정도 되려나요?”
한 사람은 정말로 압도적인 무력 때문에, 한쪽은 뭐가 좀 잘못 굴러가도 수습해줄 수 있는 둘이 곁에 있으니 그렇다.
“저는 그럴 수가 없으니, 생각해둔 건 당연히 있죠.”
“그럼 어디 그것부터 좀 말해 봐. 나도 어제 거기까지는 못 듣고 잔 거 같은데.”
시아의 말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뭐, 어렵지 않죠. 어디 보자, 새벽에 있었던 일부터 이야기하면 되려나요?”
“적당히 요약해서 말해 봐.”
시아의 말을 들은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몇 시더라, 한 여섯 시쯤이었나요?”
* * *
새벽에 온 전화를 받은 태주는 전화를 끊은 뒤 작게 한숨을 쉬었다.
“벌써 연락이 온다고?”
혹시 또 나타난다면 시간 상관없이 연락을 달라고 말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다.
어느 정도 이른 시간에 손님이 연락할지도 모른다는 것 정도는 계산에 뒀지만, 아예 이렇게 새벽같이 전화가 올 줄이야.
“끙, 부지런도 하시지.”
하긴, 소방관이 게으르다면 큰일이 나긴 할 거다. 태주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분들이 있으니 비교적 안심이다.
“여러모로 이편이 차라리 낫나 싶기도 하고.”
게다가, 이렇게 바로 연락이 왔다는 건 태주의 가설에 어느 정도 힘이 실리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그것이 다른 조건이 아니라, 승현이 홀로 있을 때 나타나는 것이라면, 사실은 꽤 단순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정말 혼자가 되면 나타나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홀로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나타나는 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것만 구분할 수 있으면 꽤 쉽게 결판이 난다는 말이다.
“꽤,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한데.”
태주는 작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지금 자신이 온전히 혼자 있다고 느끼도록, 하지만 실제로는 혼자가 아니도록 만들면 된다.
결국은 그 둘을 보내야겠다. 태주는 한숨을 쉬면서 두 사람을 깨웠다.
“네에? 누구세요?”
“나야.”
“어어, 조금 있다 나갈게요! 잠시만요!”
설이야 문만 두드려도 알아서 잘 일어나지만, 문제는 월이 쪽이다.
“안 나오네, 이거.”
문을 여러 번 두드렸는데도, 월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집중하면 개미 기어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늘 호언장담하는 것 치고는 너무 깊게 잠들어있다.
“돌겠네.”
너무 큰 소리를 낼 수도 없다.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아도 깰 수 있을 만한 큰 소리를 내는 건 별로 내키지 않는다.
“일어나, 좀 있으면 지각이야.”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로, 태주는 말했다. 단순한 소리를 차단했다면, 잠결이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내용을 말하면 된다.
“효과 좋네.”
태주가 무심코 그렇게 말할 만큼 안에서는 크게 우당탕하는 소리가 났다.
“어어? 지각이라고? 학교? 아닌데? 나 내일… 이 아니라 오늘 학교 안 가는데? 아닌가? 나 혹시 하루 꼬박 잔 거야?”
월이는 문을 열고는 그렇게 물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챙길 정신도 없었는지 반쯤 감긴 눈 그대로의 모습이다. 월이의 얼빠진 소리에 태주는 작게 웃었다.
“좋은 소식이 있어. 사실 넌 지각 안 했어.”
“어어? 그래?”
월이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자면 돼?”
“아니, 지금 자면 안 돼. 그게 나쁜 소식이야. 일이 하나 있거든.”
태주의 말을 들은 월이는 끔찍하다는 듯 소리를 냈다.
“게엑?! 어제 그렇게 하고 나면 일 안 하는 거 아니었어?!”
“학교를 안 가는 거지 무슨 소리야?”
태주는 그게 무슨 말인가 하다가, 곧 한 가지를 깨달았다.
“너, 혹시 머릿속에서 학교 = 일이라고 정해져 있는 거야?”
“…그런가? 몰라. 그런가 봐.”
월이는 알쏭달쏭한 표정이 되더니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네 머릿속을 네가 모르면 어떻게 해? 어쨌든 학교는 갈 필요 없고, 대신 오늘은 한 가지 일을 좀 해줘야겠어.”
“으으… 어려운 일이야?”
“아마 아닐걸.”
태주의 대답을 들은 월이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안에서 좋아! 하는 소리가 났다.
“대신 좀 지루할 수는 있어.”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게 조금 재미있다. 태주는 피곤한 와중에도 살짝 웃었다.
“…어쨌든 머리 아픈 일은 아닌 거지?”
월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렇게 전원이 있는 상황에서 월이에게 복잡한 일을 시킬 이유는 없다.
“그래. 일단, 천천히 씻고 나와. 자세한 건 설이한테 이야기를 해 둘 테니까.”
사실 이번에 월이가 할 일은 별로 없다. 월이는 하품을 한 번 더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닫았다.
월이가 들어가고 나니 설이가 나왔다. 완전히 깔끔한 상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남들 앞에 설 수 있을 정도로는 깨끗한 상태다.
“잘 잤어?”
“어, 네. 덕분에요.”
설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저어, 그런데 뭘 하면 되는 건가요? 뭔가 일이 있어서 깨우신 거 맞죠?”
설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태주는 작게 웃었다. 정답이다.
“뭘 하면 되는 거냐고?”
“네.”
“보면 돼.”
“보다뇨?”
“이번에 온 손님 있잖아. 몰래, 따라가서는 보는 거야.”
설이는 조금 갸웃하더니 말했다.
“그, 스토킹 같은 거예요?”
“그렇게까지 자세히 볼 필요는 없고.”
태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차마 부정은 못 하겠다. 태주는 이게 스토킹인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잠시 후 손님이 올 거야. 그리고 나랑 하는 이야기가 끝나면, 아마 손님은 한참 밖을 돌아다닐 거야.”
“돌아다녀요?”
“그래. 그분은 잠시 후에 혼자 있으셔야 하거든.”
물론 두 사람이 몰래 뒤를 따라갈 거니 실제로 혼자가 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그 뒤를 따라가면서, 보는 거야. 중요한 건 들키면 안 된다는 거고, 그래서 거리를 좀 유지해야 해.”
그러니 월이의 이번 역할은 멀리서 대신 추적을 좀 해 주는 거다. 그 이상으로 뭔가 할 필요는 없다.
“안 들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중요한 건 네가 승현 씨가 본 걸 봐야 한다는 거야.”
“그게 뭔지 보라는 말씀이시죠?”
“아니, 뭔지는 몰라도 돼. 그냥, 그게 있는지 없는지부터 잘 지켜보면 돼.”
“있는지 없는지부터요?”
설이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죠 뭐. 근데 그게 얼마나 걸릴까요?”
“생각보다 오래 돌아다니지는 않을 것 같긴 한데, 늦으면 점심시간 이후까지 걸릴지도 모르겠네. 이르면 정말 바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말로 전혀 짐작 가는 구석이 없다.
“한가지 말해 두자면, 이번엔 네가 조금 놀랄 일이 있을 수도 있어.”
“놀랄 일이요?”
“세상에는 네 눈으로도 볼 수 없는 게 있거든. 아, 물론 볼 수 있을 수도 있고.”
아직 태주는 어느 쪽인지 모른다.
“보고 알려줘.”
* * *
“나올지 안 나올지에 따라 결론이 꽤 바뀐다는 말이구나.”
시아는 흠흠,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알겠는데. 그럼 어느 쪽이 더 나은 상황이지?”
“어느 쪽이 특별히 낫고 안 낫고 한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태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설이도 볼 수 없다면 결론은 꽤 간단해져요. 과정은 전혀 간단하지 않겠지만.”
“무슨 말이지?”
아무리 시아라도, 이 정도 설명으로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다.
“설이도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꽤 복잡한 일이 아닌가?”
“아뇨, 반대죠.”
태주는 자기가 어떤 설명을 안 했는지 깨달았다.
“설이도 볼 수 없었다면 말이에요, 거기엔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단 말이에요. 뭐가 없었다는 말이죠.”
“음….”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그럼 너는 혹시….”
“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맨 처음에 본 그 한번을 제외하고, 손님은 진짜로 그 ‘꿈틀거리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런 것은 없었고, 그냥 본인이 그런 것이 있었다는 상상을 했을 뿐이라는 말이에요.”
“네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구나.”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만약 정말로 그런 것이라면, 설이라 해도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시아는 떫은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정말 그렇다 한다면… 설이가 조금 당황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