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불길 속 무언가 (12)
예전에 자신이 이 근처에 살 때 있었던 가게는 거의 다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가게도 있기는 하다. 승현은 그래도 가물가물한 기억 중에서 그나마 기억에 남아있는 가게를 골라 식사를 했다.
맛이야 뭐, 그냥저냥 평범하다.
“잘 먹었습니다.”
조금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도, 여전히 시간은 꽤 이르다.
확실히 아침 일찍 오기는 했구나 싶어 승현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가 아직 중천에도 뜨지 않았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시간대다.
“시간이, 잘 안 가는데.”
꽤 오래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이후로도 꽤 오랜 시간을 걸은 것 같은데도 아직도 점심시간이 되지 않았다.
일부러 평소보다 느린 아침 식사를 아주 느긋하게 먹고, 그리고 나서도 시간이 많이 빈다.
물론 이 시간부터 출근해서 대기하고 있거나 하는 경우는 자주 있다. 아예 이 시간부터 출동해서 거리를 돌아다닐 일도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이렇게 산책하듯 바깥을 걸어 다닌 것은 꽤 오랜만의 일이다.
“흐음….”
결국 다시 할 일은 걷는 것뿐이다. 조금은 낯선 감각으로, 승현은 혼자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대로변 쪽을 걷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이쪽을 걸으면, 아무리 그래도 누구 하나와는 결국 마주치고 만다. 이래서는 조건을 만족할 수가 없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앉아 있을 것이라….”
사실은 굳이 이런 행동이 필요한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별수 없다. 태주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볼 수 있는 건가?”
조금은 단호했던 그 눈빛을 떠올리면서, 승현은 걸었다.
* * *
“저 혼자서,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라고요?”
혼자서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라. 태주의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승현은 선뜻 납득할 수 없었다.
“왜죠?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누군가 보는 앞에서 재현을 하려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아닌가요?”
“그랬었죠.”
태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건, 제 안전을 위해서였을 거고요. 맞죠?”
“네, 그것도 맞아요.”
“그런데 왜 지금은 같이 가지 않나요?”
이제 와서 그 현상이 겁이 나는 건 아니지만, 갑작스럽게 안전장치라 할 만한 것이 제거되면 당황이야 한다.
“어제와 갑자기 판단이 달라질 만한 이유가, 따로 더 있나요?”
조금 눈을 찌푸린 채 하는 그 질문에, 태주는 그저 씁쓸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지금 이곳에는 저 말고는 여기 있을 사람이 없거든요.”
“…그게 이유인가요?”
조금은 황당한 이유지만, 태주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네. 이곳은 한순간도 완전히 자리가 비어선 안 되거든요. 누구 하나는 있어야 해요. 여기도 일종의 응급 센터 비슷한 역할인데, 사람이 부족할 수는 있더라도 완전히 비면 안 되겠죠?”
일종의 안전장치 겸 규칙 같은 거라 어쩔 수 없다고, 태주는 말했다.
“게다가 어차피,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결국 그 정체불명의 현상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손님이 혼자 있어야 할 것 같더라고요.”
“재현이요?”
“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손님이 혼자 계실 때만 지금까지 계속 그 현상이 일어났어요.”
“혼자라고요? 하지만 맨 처음 한 번은…!”
승현은 그렇게 말하고 난 뒤 스스로 깨달았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맨 처음을 제외하곤 그래요. 그리고 그 한번은,”
“그러고 보니 처음은, 다른 거였군요. 그 하나는 다른 거였다고 말씀하셨어요.”
승현은 납득하고는 말했다.
“네. 그랬죠. 처음엔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그 처음 한 번도 같은 현상이라고 말이에요.”
그래서 그때는 도저히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다. 여러 생각을 해 봤지만 결국 그 모든 공통분모를 만족할 만한 조건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처음 한 번을 분리하고 나서는 나름대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죠.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대놓고 보이는 게 바로 그거였고요.”
혼자 있을 때, 그때가 바로 무언가가 나타나는 시점이다.
“아니면, 그보다 더 우선해서 실험해봐야 할 만한 다른 요소가 더 있을까요?”
태주의 질문에, 승현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없겠네요.”
태주의 지적대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보다 더 깔끔하고 명확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는다. 때문에 승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납득이 가는 이유다.
게다가 어제, 몇 시간 정도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와중에도 결국 그것은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혼자 가야 한다고요?”
“네.”
태주 역시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전혀 위험하지 않을 거예요. 처음 한 번을 별개의 사건으로 분리하지 않았을 때는 혹시나 위험하지 않을까 싶어서 누구 한 명은 꼭 붙어있으려고 했지만요.”
분리하고 나면, 그 위험성 역시도 근거 없는 것이 된다. 지금 이것은 불길 속에서, 정신을 놓게 하는 그런 종류의 상황을 만든 것이 아니다.
그저 홀로 있을 때, 승현의 정신을 조금 붙잡을 뿐이다.
“언제부터 가면 되나요?”
승현의 질문에, 태주는 곧바로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나가시면 돼요.”
묘한, 피곤하지만 확신이 있는 그런 말투를 들은 승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깥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 데나, 하지만 혼자 있을 수 있을 것 같으면 그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세요. 그게 보일 때까지 말이에요.”
* * *
결국 그렇게, 승현은 혼자 길을 걷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장소라는 것은 생각보다 찾기 어렵다.
“그나마, 길이라도 알아서 다행인 건가?”
모르는 동네라면 이것만으로도 꽤 곤란한 일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곳이라면 그래도 괜찮다.
“그래도 아는 동네니까.”
천천히, 승현은 길을 걸었다. 아주 익숙한 장소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무난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장소다.
가게들이 변했고, 간판이 변했다. 십 년이 지났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길은 같다. 어디에서 어디를 가면 역이 나오는지, 버스는 어디에서 타고, 어디로 가면 학교나 유치원이 나오는지. 승현은 알고 있다.
승현은 고개를 탈탈 털었다. 지금은 그런 곳을 떠올릴 때가 아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라고 했었지.”
분명히 태주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라고 했다. 지금은 사람이 많은 그런 장소로 가서는 안 된다.
무심코 슬쩍, 한번 주먹을 쥐었다가 펴 본다. 별로 아프지 않기에 주먹을 꽉 쥐어본다. 여전히 아프지 않다.
“다 낫긴 했나.”
잘된 일이다. 승현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앞으로 걸었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산책하듯 걸으면 될 것 같다.
적당해 보이는 자리를 하나 찾았다. 승현은 자리에 앉았다. 특별한 장소는 아니다. 그냥 평일 오전에는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을 만한 역 뒤편의 벤치다.
지금이라면, 정말로 아무도 만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승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먼 곳을 바라봤다.
그늘이 있는 곳이라 조금 서늘하다. 바람이 분다.
그리고 저 멀리서 무언가 보인다. 정말로, 혼자가 되자마자 승현은 만나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승현은 조금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사실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승현은 스스로 알 수 없었다. 그저 온 신경을 그쪽에 쏟아부을 뿐이었으니까.
저런 것을 준비한다고 해서 대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해서 신경을 안 쓸 수 없을 리가 없다.
여전히 시선을 뗄 수가 없다. 뭔가 흔들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저건 대체 뭘까. 이무기도 아니라면, 정말로 쿠네쿠네도 아니라면 저건 뭘까. 이해할 수 없다. 알고 싶지 않다. 하지만 사실 조금은 궁금기도 하다.
손인가? 아니면 그냥 흔들리는 무언가인가? 어쩌면 그냥 연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아….”
스스로의 눈이 풀리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저항하고 싶지 않다. 그런 마음 자체가 들지 않는다.
어제 자기 전에 겪었던 현상과 같다. 가위눌림처럼, 앞을 볼 수 있을 뿐,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얼마나 시간이 더 지나야, 자신은 저게 뭐였는지 알 수 있을까. 승현은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정신 차리세요!”
“어?”
갑작스러운 소리에 승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느새, 자신의 곁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승현도 아는 얼굴이다.
멍하니, 잠시 그 얼굴을 쳐다보던 승현은 흠칫 놀라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자신이 보던 것은 어디로 갔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새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괘, 괜찮으신가요?”
“아아, 음, 네, 괜찮습니다….”
조금씩 더듬거리는, 그런 전혀 괜찮지 않은 말투로 승현은 대답했다. 머리가 멍하니 어쩔 수 없다.
“음, 죄송합니다. 정확한 이름이 기억이 잘 나지를 않는데… 이름이 분명, 설이 씨? 맞나요?”
승현은 간신히 떠올려냈다. 분명 그곳 사람들이 설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승현은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확한 이름은 한설이에요. 설이는 별명이고요.”
“아하.”
여전히 조금 얼떨떨한 채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계시죠?”
“으음, 그게….”
조금 우물쭈물하는 설이의 태도를 본 승혀현은 눈을 살짝 찌푸리고는 말했다.
“혹시, 저를 따라다니신 건가요?”
“네.”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혼자는 아니지만, 네. 그래요.”
승현은 태주의 표정을 떠올렸다. 홀로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더니, 사실은 전혀 홀로 보낼 생각이 아니었던 건가.
어처구니가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말로 혼자 보내봐야 뭐가 될 리가 없다.
왜 당시의 자신은 깨닫지 못했던 걸까. 승현은 조금은 씁쓸하게 웃었다.
“뭐, 제때 오셨으니 다행이네요.”
승현은 그렇게 말한 뒤, 설이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보셨나요?”
“어어, 네, 본 걸까요? 저?”
조금은 어벙해 보이는 말투다. 그러고 보니 아직 학생이라고 했던 걸 들었던 것 같다. 조금의 못 미더운 마음을 넣어둔 채로, 승현은 다시 한번 물었다.
“방금 전까지 말이에요. 보셨나요?”
설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네. 손님이 뭔가, 홀린 듯한 모습이 되신 걸 봤어요.”
“아뇨, 저 말고요.”
“네?”
설이는 당황해서 물었다.
“방금 전까지, 그게 있었잖아요? 그 정체불명의, 꿈틀거리는 무언가 말이에요.”
“꿈틀…이요?”
설이는 당황한 말투로 말했다.
“네. 보셨나요?”
승현의 질문에, 설이는 조금 우물쭈물하다가는, 결국 흐린 표정으로 말했다.
“아뇨.”
“아니라고요? 저기에 분명 있었는데요. 저쪽을 한 번도 안 보셨던 건가요?”
승현이 손가락으로 자신이 그것을 본 방향을 가리켰다. 하지만, 설이는 고개를 저었다.
“저, 저 손님이 바라보던 곳을 열심히 봤어요. 하지만 아니에요. 정말로 아니에요. 거기엔, 거기엔 말이에요….”
울상이 된 표정으로, 설이는 말했다.
“거기엔, 아, 아무것도 없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