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불길 속 무언가 (11)
“어느 색인지야 뭐, 사실 몰라도 큰 상관 없죠.”
태주는 작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중요한 건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니까요.”
예상대로 승현은 그만두지 않았다. 한참을 더 고민하기는 했지만, 결국 조금 더 깊게 사건을 파헤치는 선택을 하기로 한 것이다.
“역시, 그 선택을 하셨나요.”
“네. 아무래도 저는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승현은 조금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네? 왜요?”
승현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제가 방금 전에 아직 어떤 것이, 그리고 어떤 것에게 왜 살해당했는지 모른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랬죠. 설마?”
승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는, 순간 깨닫고 태주를 쳐다봤다.
“네, 그건 거짓말이었어요. 물론, 전부 다 거짓말인 건 아니긴 하지만요.”
하지만 그것을 먼저 말하면 결국 앞서 숨기려던 것이 모두 쓸모없어지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말씀드려도 되겠네요. 사실 저희는 어떤 것이 살해당했는지 정도는 짐작하고 있어요. 왜, 누가 살해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요.”
승현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되어서는 물었다.
“제가 본 게 뭔지, 아시겠다고요?”
“네. 맨 처음에 손님이 본 건, 아마도 이무기에요.”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한 번 더 정정했다.
“아니, 계속 정정하게 되네요. 아침이라 정신이 잘 안 드나 봐요. 아마 이무기였던 것일 거예요. 최소한 그 비슷한 것 정도는 되겠죠.”
몸이 길쭉하고, 크기는 꽤 크며, 비를 내릴 수 있고, 연못 같은 곳에 산다. 사실, 단서를 이만큼 모아놓고 보면 꽤 뻔한 결론이다.
“이무기요?”
승현은 되물었다.
“그, 큰 뱀 같다는 그거요?”
“네, 손님이 아는 그거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만은 워낙 유명하다 보니 한 번쯤은 살다 보면 듣게 되는 그런 단어다.
“이무기라면 손님이 묘사한 외양과도 거의 일치해요. 그곳에서 이무기가 살아있었던 동안에는 불이 나지 않았다가, 그게 죽어가면서 불이 났고, 마지막 순간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큰비가 내렸어요.”
시아의 말마따나 단서를 여기까지 쌓아두고 나서 생각하면 다른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바보같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 모든 것이 다 가능한 것이 뭐가 있느냐 하면, 결국은 이무기겠죠.”
“그래서 이무기인가요?”
“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마지막에 비를 내려준 것도 이무기가 한 일이겠죠.”
왜 그랬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냥 본능적인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마지막까지 뭔가 이유가 있었던 걸 수도 있다.
“빚을 진 셈이네요.”
“네, 그런 셈이죠. 여전히 확실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약한 녀석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러니 잠깐 내리고 마는 소나기가 아니라, 그만한 비를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을 뿐, 이미 용이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태가 아니었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런 것이 죽을 수 있는지, 태주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이 죽었어요. 좀 더 정확히는, 살해당했죠.”
그러니 승현에게 그만둘지 그만두지 않을지를 물어본 것이다.
“약간은 위험한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에요. 그렇게 팔이 부러지는 것이 어쩌면 별 것 아닌 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죠.”
괜히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진실을 숨긴 것은 아니라고, 태주는 변명하듯 말했다.
“살해….”
승현은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그게 거의 용 같은 거라고요?”
“물론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겠죠. 사람 사이에서도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엄청나게 큰 벽이 있잖아요?”
이무기 중에서는 꽤 강한 그런 것이었다 하더라도, 용이 되지 못했다면 결국은 큰 의미는 없다.
“쉽게 죽일 수 없더라도, 용에 비교할 건 아니겠죠.”
누가 죽였을까요?”
“글쎄요. 그거야말로 지금은 알 수 없어요. 당장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고요.”
“안 중요하다고요?”
“당장은, 그렇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누가 죽였는지는 정말로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손님이 죽는 장면을 목격했거나, 죽고 난 직후의 장면을 목격했다는 것뿐이죠.”
태주의 말을 들은 승현은 조금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네요.”
“그리고, 손님 본인이 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어요.”
사실은 그것조차도,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던 거라면서 태주는 말했다.
“…뭐죠?”
“손님은 거기에 있던 그 많은 소방관 중에서 유일하게 그 이무기의 마지막을 목격하셨어요.”
태주의 말을 들은 승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연히도 그랬죠.”
“우연일까요? 정말로?”
태주의 말을 들은 승현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이무기라면, 질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왜 당신만 볼 수 있었던 건가가 아니에요. ‘왜 이무기가 당신에게만 보여주었는가’라는 의문이 되어야 해요.”
승현은 눈을 찌푸린 채 말했다.
“본 게 아니라 보여준 거라… 그게 정확히 무슨 말이죠?”
“사실상 상대가 보여줬다는 말이죠. 손님을 선택해서요. 그렇지 않고서는 말이 안 돼요.”
태주는 승현의 말을 이어받아서 말했다.
“손님이 특별히 눈이 좋으신 건 아니잖아요?”
“평범한 사람들이랑 비교하면 꽤 좋은 편이긴 한데요.”
“그래도 평범하게 좋은 수준의 시력이시잖아요? 그렇지 않은가요?”
“…그렇긴 하죠.”
아예 승현이 몽골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처럼, 시력이 10.0에 가까운 사람이었다면 승현만이 어떤 것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말이 되지만, 그 정도로 눈이 좋은 것이 아니라면 결국 간단한 결론이 나온다.
“그건 손님이 눈이 좋아서 발견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런데도 그곳에서 유일하게 손님만이 볼 수 있었어요.”
그래도 다른 상황이라면 승현만이 그 현상에 주의를 기울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곳은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되는 화재 현장이었다.
“손님 말대로, 손님은 집중력이 좋을 거예요. 그런 분이 발견할 수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고 봐야겠죠.”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아예 보지도 못했다.
“그 자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을 거예요. 정확히 몇 사람이었는지는 저도 모르지만, 한두 명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심지어 승현이 본 것은 크기도 작지 않았다. 승현이 잠시 착각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정말로 멀리에 있는 나무 하나 크기라면 그런 것을 다른 사람들이 놓칠 이유가 없다.
그러니, 그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승현이 유난히 눈이 좋거나 주의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러니까, 저쪽에서 굳이 손님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에요.”
“저를요? 대체 왜요?”
승현은 강한 동요를 드러내면서 되물었다.
“굳이 저를 선택했다는 말인가요?”
“조금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손님 개인을 지정했다기보다는 손님이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는 거겠죠.”
손님이 이무기와 아는 사이였다는 가정을 하는 건 너무 말도 안 되는 가정이다.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명확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것만은 확실해요. 그렇지 않고서는 말이 되지 않거든요.”
일부러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을 승현에게 보여준 것이든, 그게 아니면 승현에게 그것을 볼 수 있어야만 이유가 있었던 것이든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다잉 메세지라고 표현했던 거에요.”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특정 인물에게 특정한 메세지를 전달한 것이니, 그건 다잉 메세지다.
태주의 말을 들은 승현은 잠시 침묵했다. 눈까지 감고 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다만, 어떤 생각을 깊게 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아니요, 그냥 잠시 떠오르던 것들이 있어서요.”
승현은 그렇게 말한 뒤 고개를 젓고는 일어났다.
“어쨌든 제가 그때 본 것은 쿠네쿠네 같은 게 아니었다는 말이죠?”
“일단은, 네. 그때 보신 건 그런 정체불명이 아니었어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라도 이런 식으로 정체를 추측할 수 있었다는 데서, 그런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아니라는 사실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렇군요. 제가 본 것은 이무기였던 거에요. 쿠네쿠네 같은 게 아니라 말이에요.”
승현이 그렇게 말하자,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 그건 아니에요.”
“네? 제가 본 게 이무기라면서요?”
“아뇨, 말씀드렸잖아요. ‘그때’ 본 것은 이무기라고요.”
맨 처음에 목격한 그것은 확실히 이무기다. 그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건 죽었어요. 죽고 난 모습을 본 것인지, 죽기 직전의 마지막 모습을 보신 것인지는 몰라도, 네. 그건 이미 죽었죠. 소장이 확실히 보장했으니까요.”
태주의 말을 들은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들었죠.”
“네. 생각해 보세요.”
태주는 천천히 말했다.
“손님은 사실, 여기에 맨 처음 본 것이 뭔지 궁금해서 오셨던 게 아니에요.”
잠시, 승현은 생각을 멈췄다. 머리가 조금 어질어질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랬었죠.”
맨 처음에, 승현은 처음에 본 것에 집중하지 않았었다. 몇 번이고 자신이 본 것이 반복되기에 왔을 뿐이엇다.
“…그랬었죠.”
승현은 다시 되뇌었다. 분명히, 맨 처음에 승현은 자신 앞에 계속해서 보이는 ‘이것’이 뭔지 알고 싶어서 이곳에 왔던 거였다.
“하지만, 처음에 본 것과 나중에 본 것이 다른 거라니요?”
“다르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태주도 승현과 마찬가지로 생각했었지만, 결국 그렇게 해서는 답을 낼 수 없었다.
“이무기에게, 그런 식으로 아무 데나 나타나는 성질은 없어요. 손님이야 당연히 이무기에 대해 별 관심이 없으시겠지만, 꽤 관심이 있는 저조차도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사실, 맨 처음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이무기와 손님이 목격한 것은 전혀 겹치지 않죠. 심지어 죽은 이무기가 그렇게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는 더 들어본 적이 없죠.”
사실 처음에 본 것과 나중에 본 것은 하얗고 길고 꿈틀거린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겹치는 것은 없다시피 하다.
“하지만 처음에 본 것과 나머지를 구분한다면 놀랄 만큼 명확해지죠.”
그러니, 승현이 본 것 중 ‘처음에 본 것이 아닌 것들’은 절대로 이무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오네요. 손님이 그다음에 여러 번 본 그것들은 대체 뭘까요?”
승현은 조금 황망한 표정이 되어서는 말했다.
“…정체불명….”
“네, 손님이 쿠네쿠네라 말씀하신 이유가 있기는 있었다는 말이에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꿈틀꿈틀이라, 이렇게 되고 나서 보니 진짜 잘 지은 이름이네요.”
처음에는 대충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보다 더 특징을 정확하게 잡아낸 단어는 없다.
“그럼 어떻게 하죠?”
승현의 질문을 들은 태주는 조금 졸린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요. 일단, 점심 때쯤까지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 주세요. 집 안은 말고요, 적당히 인적이 없을 것 같은 공터나, 뭐 그런 곳이요.”
“인적이 없는 곳이요?”
“네. 지금부터는 손님이 잠시 혼자서 돌아다니셔야 하거든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로 홀로,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