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불길 속 무언가 (10)
승현은 눈을 찌푸렸다.
“아뇨, 불은 어디서든 날 수 있어요. 어떤 이유로든 그렇죠. 방심이야말로 화재의 가장 큰 적이라고요.”
그것만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라는 듯 승현은 큰 소리로 말했다.
“불이라는 건 언제 어디서 날지 몰라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네, 물론 그래요. 소방관 앞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도 웃기는 상황이라는 건 당연히 저도 알죠.”
태주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하지만 제 말에는 근거가 있어요. 제가 화재 전문가는 아니지만, 해당 지역에서 산불이 났던 적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검색할 수는 있죠. 그곳에서는 이전까지 불이 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승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단 한 번도 없었다고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심지어는 조선시대부터 따져도 없어요. 그 전에는 어땠는지까지는 아무래도 모르겠지만요.”
확실한 건, 약 오백 년에서 육백 년간 화재가 일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말이다.
“우연히 그랬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손님 말대로 우연히 그랬을지도 모르죠.”
태주는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 뭔가 살고 있지 않았었다면, 저희도 비슷한 결론을 냈을 거예요.”
“뭔가 살았다니요?”
승현은 조금 동요하면서 말했다.
“그게 혹시 그 쿠네쿠네같은 거였나요?”
“아, 쿠네쿠네는 아니에요. 이번 일과 연관이 없지는 않지만요. 하지만, 이제 대충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은 가시겠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산불이 나지 않다가, 처음으로 불이 난 뒤 그곳에 어떤 것도 숨어있지 않게 된 상황이 되었다면.
“…그럴 수도 있을까요?”
“네, 뭐 그게 뭔지 모르니 어떤 성격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자기 사는 곳에 큰불이 나지 않게 했다는 추측 정도는 할 수 있겠죠. 살아있는 동안에는요.”
만약 벼락같은 게 쳐서 작은 불이 나더라도, 곧바로 끌 수 있는 무언가가 거기에는 있었다.
“그곳에 있는 뭔가가 산을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하고 나면 어느 정도 결론이 보인다.
“큰불이 날 수 있을 리가 없는데도 불이 났고, 소장은 손님이 본 것이 이미 죽은 것이라 말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싶다가도, 이것 말고는 합리적인 결론이 남지 않는다.
“손님이 불을 끄러 간 그 시점에서 이미 그것은 죽어가고 있었을 거예요.”
“죽어가고 있었다고요?”
“네. 아니면 그때 이미 죽었거나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손님이 본 건… 이게 적절한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잉 메세지인 거에요.”
“다잉 메세지요?”
“예.”
왜 승현만이 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
“죽으면서 남긴 메세지니까요. 어쩌면 유언이라 해야 할 수도 있겠죠. 정확히 뭐라 표현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네요. 확실한 건 손님이 본 게 마지막 메세지라는 말이에요.”
태주의 말을 들은 승현은 잠시 침묵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단어이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죽었고, 당신이 본 것은 그것의 마지막 메세지라는 말을 해 봐야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을 것이다.
잠시 침묵하던 승현은 숨을 후 내뱉고는 말했다.
“어제, 저도 듣긴 들었습니다. 그 소장님이라는 분이 말씀하시길, 제가 본 것은 사실은 이미 죽은 것이라는 말을 말입니다.
당시에 승현은 그게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애초에 그때까지는 시아도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잉 메세지라.”
승현은 잠시 골똘히 생각했다. 아무리 침착한 사람이라도 이런 단어는 많이 의외였던 듯,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다잉 메세지라 하시면, 보통은 살해당하면서 남기는 거라 알고 있는데, 그걸 굳이 다잉 메세지라 표현하신 이유가 있나요?”
조심스러운 말이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렇죠. 이건 일종의 살인사건이니까요.”
“살인… 이라고요?”
승현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태주는 그 표정을 보고는 아차 싶어 황급히 덧붙였다.
“아, 정정할게요.”
태주는 조금 남은 에스프레소 샷을 마저 입에 털어 넣고는 무지 쓴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가 보다.
“사람이 아닌 것 둘이서니까 음, 이걸 뭐라 해야 하나. 살해사건? 미리 말씀드리는 거지만, 저희는 무엇이 죽였고, 무엇이 죽었는지를 몰라요. 왜 죽었는지도 모르죠. 최소한 아직은 그래요.”
그것이 일방적인 살해였는지, 결투 같은 종류의 명예로운 것이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확실하게 추측하고 있는 것은, 승현이 본 것은 그 죽은 것의 마지막 모습, 혹은 단말마 비슷한 것이라는 점뿐이다.
“어쨌든 더 강한 것이, 더 약한 것을 죽였어요. 불은, 그 결과고요.”
“결과라고요?”
승현은 처음으로 크게 감정적인 동요를 나타내며 말했다.
“그 큰불이, 그 무언가가 죽으면서 일어난 현상이라는 말인가요?”
“예, 불을 질러서 살해한 건지, 살해하고 불을 지른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당장은 구분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 되죠. 조선시대 기록까지 포함해서 지난 몇백 년간 산불이 나지 않던 곳이에요. 별다른 이유도 없이 말이에요.”
십 년, 이십 년 만의 산불이라면, 그냥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근처에서 몇백 년 동안이나 산불이 나지 않던 곳에서, 그것이 사라짐과 동시에 불이 났다는 것은 너무나도 의미심장하다.
“그것이 왜 불이 나지 않도록 막았는지는, 물론 저도 잘 몰라요. 그게 그냥 선의였던 것인지, 혹은 그저 불을 싫어하는 본능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그만큼 큰불이 나면 그냥 위험하다는 이유 때문인지는 아마 그것의 정체가 뭔지 정확히 알기 전까지는 알아낼 수 없겠죠.”
그걸 미리 말할 수 있는 건 소장뿐이지만, 소장은 힌트 하나만 던져주고는 덜렁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불이 나지 않던 것과 이것이 있었다는 사실이 연관이 있을 거라 보기엔 너무 충분한 근거가 아닐까요?”
“그래서 추측이라 표현하신 건가요.”
승현은 어딘가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제가 본 것은 확실히 쿠네쿠네가 아니었다는 말씀도 되겠네요.”
“아, 사실은 거기에도 조금 문제가 있죠.”
태주는 한숨을 조금 쉬고는 말했다. 그렇게나 쓴 커피를 마셨는데도 아직도 많이 피곤하고 머리가 아프다.
“저번에 말씀드렸죠? 쿠네쿠네라는 것은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그냥 정체불명으로 두는 것으로 괴담으로 만든 것이라고요.”
“대충 그런 이야기였던 기억은 나네요.”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또 어떤 면에서, 손님이 본 것을 여전히 쿠네쿠네라 해도 괜찮아요.”
“괜찮다고요?”
승현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지금까지 하던 일은 분명히 그것의 정체를 정확히 밝히려고 하던 일이 아니었던가.
그런 의문을 태주에게 전하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까지는 그랬죠. 하지만, 이번 사건은 생각보다 꽤 복잡한 사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복잡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승현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단순히 어렵다는 이유로 그런 말씀을 하신 건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요.”
승현의 말을 들은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씀대로예요. 발을 뺄 거라면 지금이 기회라는 말이거든요.”
태주는 경고하듯 말했다.
“이전에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손님이 그것을 처음에 쿠네쿠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종의 꼼수죠. 그런 식으로 그것을 그냥 쿠네쿠네라 여기고, 사건을 종결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깔끔한 완결이에요. 하나의 선택이죠. 사실, 현명한 선택이기도 하고요.”
무엇이든 쿠네쿠네가 될 수 있기에 그렇다. 굳이 더 파헤치지 않고, 정체불명인 상태 그대로 두는 것으로 귀찮은 일을 회피할 수 있다.
“저희가 조금 해야 할 일이 있지만, 어쨌든 다른 쪽 선택지보다는 저희에게도 쉬운 일이에요. 손님께는 말할 것도 없이 간편하고요. 거기에 안전하기까지 하죠.”
태주는 별로 기대는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승현이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승현은 예상대로 다른 선택지를 물었다.
“그럼 다른 선택지는 뭔가요?”
“다른 선택지요?”
태주는 피곤한 듯 미소지으며 말했다.
“원래 하던 대로, 그것이 뭔지, 파헤치는 거죠.”
그것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누구에게 왜 살해당했는지. 그 모든 것을 알아낸다.
“어려운 선택이에요. 저희한테도 그렇고, 손님께도 그렇죠. 바보 같다 말하지는 않겠지만 현명한 방법은 아니죠. 쉬운 길을 두고 돌아가는 셈이니까요.”
“그럼 왜 그런 선택을 제게 물어보시죠?”
승현은 태주를 똑바로 보고는 물었다.
“좋은 방법이 정해져 있으면 그대로 하시면 되는 거잖아요?”
“하지만, 그 좋은 방법을 사용한다면 뭔가 풀리지 않는 의문이 가슴에 남겠죠.”
쿠네쿠네라는 것이 그렇다. 편리하지만, 마지막까지 방치되는 것일 뿐이다.
“결국 그건 이야기를 해결하지 않은 채로, 영원히 두겠다는 말이니까요.”
쿠네쿠네 이야기에서 동생이 형이 본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평생 궁금해하는 것처럼, 승현 역시 그것이 무엇인지는 평생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알 수 없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계속해서 궁금해하게 될 것이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손님이 그걸 원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왜죠?”
“왜냐하면, 손님은 이미 보셨잖아요?”
승현이 태주를 바라봤듯, 태주 역시 승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승현은 호흡을 멈췄다. 처음으로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눈빛이 되었다.
“빗속에서, 불길 속에 있는 그 뭔가를 보셨어요. 그리고 그때 이야기를 하실 때만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져요.”
“그런가요? 저랑 별로 오래 보지 않으셔서 그런 건 아니고요?”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손님을 그리 오랫동안 봐 온 건 당연히 아니에요. 하지만 사람을 파악하는데 생각보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죠. 8에서 9할 정도는 금방 파악이 돼요.”
물론 그 1에서 2할이 인간관계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어쨌든 뒤집어서 말하자면 깊은 사이가 될 필요가 전혀 없이도 그 정도는 금방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특히나, 이 정도로 알기 쉬운 성격이라면 더 그렇다.
“손님은 냉정해요. 성격이 차갑다는 게 아니라, 늘 침착하세요. 최소한, 겉으로는 그래 보여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보통은 그렇게 쉽게 무언가에 홀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승현은 그것에 홀리고 말았다.
그건 분명히, 평범한 호기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단순한 호기심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강렬한 감정이다.
“그런 분이, 그것을 보고는 궁금해서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었어요. 그리고, 그게 뭔지 잘 모르는데도 홀린 듯 가서 결국 팔까지 다치셨어요. 어떤 의미로는 적당한 상처일지도 몰라요. 손님이 말했던 대로요.”
“적당하다고요?”
“팔까지 다치셨어요. 그만두기에는 적당한 신호죠.”
궁금하더라도, 궁금한 것을 해결하지 않고 넘기기에는 적당한 명분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그만두실 거라면 지금이에요.”
“더 다치고 싶지 않다면 여기서 그만둘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 반대쪽을 고르지 말아 달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그저 손님 본인께서 조금 더 안전하고 편하실 선택지를 권하는 거죠.”
태주의 말을 들은 승현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고민을 한다 해도 그리 명쾌한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결국 정보가 제한적이기에, 어떻게 해도 합리적인 결론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한 가지만, 질문드리겠습니다.”
“뭐죠?”
“제가 이번에 그만두지 않는다면, 저는 정말로 평생 이게 뭐였는지 알 수 없는 걸까요?”
“글쎄요, 저희 소장님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그건 모를 일이죠.”
“소장님이요?”
“뭐든지 알고 있는 사람이거든요.”
태주는 그냥 농담처럼 넘기며 말했다.
“자, 그렇다면 빨간약을 드시겠어요? 파란 약을 드시겠어요?”
승현은 잠시 생각하다가는 물었다.
“…그런데 진실을 아는 쪽 약이 어느 색이었죠?”
“어라, 그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