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불길 속 무언가 (9)
“자, 그러면 머리 아픈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태주는 조금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시아 역시 귀찮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하긴 해야지. 사실은 내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만.”
졸리고 피곤하지만, 미룰 수는 없다. 태주는 하품을 살짝 하며 말했다.
“어쩌겠어요. 지금 해야지.”
“그 둘이 부러운데.”
시아는 조금 피로한 눈으로 말했다. 아직 학생인 두 사람은 자러 갔다.
“아직 성장기인 애들… 성장기가 맞나? 어쨌든 저 둘은 재우는 편이 낫겠죠. 여기 있어 봐야 당장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태주는 팔짱을 끼고 말했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골치 아픈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말이야.”
시아는 떫은 표정으로 말했다. 태주는 짧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두 배 이벤트가 머리가 두 배로 아픈 이벤트였다니.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충분히 머리가 아픈데 말이에요.”
물론 소장이 말하는 것이 분명히 힌트고, 그게 큰 도움이 되는 말이라는 것 자체는 알지만 그런 식으로 한마디만 툭 던져놓고 가는 걸 보면 속이 터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말을 할 거면 좀 더 자세히 해 주면 좋을 텐데.”
“어쩔 수 없지. 자기만의 원칙이나, 이유 같은 게 있다고 하니까.”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아 역시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그 말을 들은 뒤로는 손님은 일단 돌려보냈다. 여기에 더 있을 이유도 없고, 어쨌든 이점이 없어 보여서 말이지.”
“그게 잘 했네요. 뭐, 어쨌든 위험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시간은 많이 늦었고, 어쨌든 내일도 있다. 게다가 시아 역시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선문답에 가깝다 보니 나도 잠시 생각을 좀 할 필요가 있었고.”
시아는 그렇게 말한 뒤 태주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쪽 이야기는 더 할 말이 없으니 네 쪽 이야기나 해 볼까. 그게 그렇게나 크다고? 그 지네보다 클 만큼?”
“그렇다고 하던데요?”
태주는 천장 쪽을 보고는 말했다. 천장을 봤다기보다는 대강 설이가 있을 것 같은 방향을 바라본 것이다.
“엄청나게 거대한 하나, 혹은 어쩌면 그보다는 작지만, 여전히 꽤 커다란 것 여러 개. 어느 쪽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설이가 보기에는 하나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확신까지는 없어 보여요.”
아마도 그런 것 같긴 한데, 여러 번 다시 봐도 점점 더 잘 모르게 될 뿐이었다고 설이는 울상을 지었다.
“어쩌면 알아내는 것부터가 꽤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상대가 정체불명이니까요.”
“그럴까? 사실 결론은 어느 정도 나왔는데.”
시아의 말에 태주는 눈을 조금 찌푸렸다.
“결론이 어느 정도 나왔다고요?”
“그래. 결론이 어느 정도 나왔지.”
시아의 말을 들은 태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알겠어요? 뭔지? 짐작이 가는 게 있어요?”
“짐작이라 해야 하나. 조건에 맞지 않는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다 보면 조금 뻔해. 너도 아마 혼자서 천천히 생각하다 보면 나와 같은 결론이 나올걸?”
태주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지만, 시아의 여전히 찌푸린 표정을 보고는 다시 표정을 구겼다.
“뭔가 알아낸 거 치고는 표정이 좀 안 좋은데. 표정이 왜 그래요?”
“아니, 짐작이 가는 구석은 조금 있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더 많은 의문이 생기는 셈이라서 말이다.”
한 발짝 전진하고 나니 가야 할 다섯 걸음이 새로 보이는 느낌이다.
“어쨌든, 우리 할 일은 오히려 늘어난 기분이라는 말이야.”
“오히려 늘었다…. 골치가 아프긴 하네요. 어쨌든, 정체를 대충 알아냈다 쳐도 할 일이 산더미라는 말이죠?”
“그래,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다.”
시아의 말대로다. 이런 건 늘 있었던 일이다. 일일이 의기소침해지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어쨌든 그럼 할 일은 변하지 않겠네요.”
태주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늘 하던 대로, 한번 머리나 좀 굴려보죠?”
* * *
딸랑-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승현이 찾아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전 시간대보다 몇 시간 더 앞서 있어, 오전이 아니라 사실상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다.
“안녕하세요.”
승현은 담담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태주 역시 마주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예상보다도 조금 더 일찍 오셨네요.”
졸린 눈을 뜬 채, 태주는 손님을 맞이했다. 미리 전화를 주지 않았다면, 아무도 맞이할 수 없었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이른 시간이다.
“예, 집에 가서 자고 난 뒤 바로 왔습니다.”
“그런가요. 부지런하시네요.”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자신도 모르게 하품을 했다. 사실, 이미 많이 무리해서 깨어 있는 중이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커피를 조금 마시면서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조금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니 밤을 샜거든요.”
“예. 상관없습니다.”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는 고개를 한번 꾸벅 숙인 뒤, 커피를 두 잔 내렸다. 일단은 샷 하나씩만 미리 뽑은 것이다.
“손님은 어떻게 드릴까요?”
“그냥, 드시는 것과 똑같이 주시죠.”
“어어, 저 에스프레소로 먹을 생각인데 괜찮으신가요?”
태주는 조금 당황해서는 말했다.
“억지로 같은 걸 드실 필요는 없어요. 여기에 뭘 더 추가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거든요.”
“괜찮습니다. 저도 에스프레소는 몇 번 먹어본 적이 있거든요.”
태주의 말에도 승현은 괜찮다고 말할 뿐이었다.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러시다면… 뭐.”
태주는 구석에 처박혀 있던 조그마한 잔 두 개를 꺼냈다. 평소에는 잘 먹는 사람이 없다 보니, 이런 일이 아니라면 꺼낼 일 자체가 없다.
이걸 쓰는 날이 오긴 오는구나. 태주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잔을 넘겼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신 직후에 그걸 또 보셨다고요?”
승현이 에스프레소를 살짝 홀짝인 뒤에도 그리 눈을 찌푸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태주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물었다.
“예.”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그게 나타나더군요.”
나타나는 것은 늘 갑자기이다 보니, 그리 새로울 건 없는 상황이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이번에는 또 처음 있는 일입니다. 자려고 누웠더니, 그게 제 눈앞에 있었으니까요.”
여전히 그리 크지만은 않은 사이즈의 무언가 꿈틀거리는 형상.
“그렇게 되니, 몸이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뭐라 말씀드리기는 좀 어렵지만, 가위눌림 같은 거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주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테지만 그 말을 하는 본인은 엄청나게 담담해 보일 뿐이다. 태주는 말했다.
“굉장히 담담하시네요.”
“예, 어제 그게 그리 위험하지 않은 거라는 이야기도 듣기도 했고요. 그렇지 않은가요?”
“위험하지야 않죠. 그것만은 확실해요.”
당연히, 조금이라도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면 시아가 승현에게 돌아가도 된다는 이야기를 해도 될 리가 없다.
“어쨌든 저 혼자 있을 때 보니까 차라리 안심이 되기도 하고요.”
“흐음.”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무던하다 못해 밋밋한 반응이다.
“어쨌든 그래서 밤에 나타난 그게 뭘 하던가요?”
“이전과 같습니다. 제 눈앞에서 조금 더 그렇게 흔들리고 나서는,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고요?”
“예, 아무것도 하지 않고요. 그래서 그때는 그냥 잤습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이야기를 전해도 될 테니까요.”
태주는 졸린 와중에도 이게 뭔가 싶어 눈을 찌푸렸다. 강심장이라면 강심장인 것 같고, 아니면 그냥 말도 안 되는 무심한 사람 같기도 하다.
“어쨌든, 자기 직전에 가위에 눌렸다… 그렇게 봐도 되는 걸까요?”
“네. 그렇게 보시면 되겠죠.”
“아니 대체 왜 바로 연락을 안 하시는 거예요?”
“괜찮을 것 같아서요?”
승현의 태연한 말에 태주는 후-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요, 이번에는 그래도 괜찮겠네요. 누나가 괜찮다는 확인은 하고 보냈을 테니.”
하지만 여전히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사람이다.
“네. 별 일은 아니었어요.”
“별 일이 아니라….”
아무리 정말로 그렇다 해도 실제로 본인이 그렇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텐데도, 승현은 정말로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을까요?”
“도움이 되긴 하네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것도 포함해서 지금부터 이야기를 조금 드리죠.”
“뭐 알아내신 게 있으십니까?”
“꽤 있죠. 어제저녁, 저희가 나갔다가 돌아온 뒤로 새로 알아낸 사실이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를 조합해서 가능한 경우의 수를 조금 따져봤어요. 가능성을 많이 추린 거죠.”
태주는 일부러 에스프레소를 혀에 잠시 머금었다. 어마어마하게 쓰지만, 지금은 이만한 자극이 아니라면 뇌를 깨울 수 없다.
“후, 정신이 좀 드네. 어쨌든 그리고 어느 정도 결론에 가까운 추측도 나왔고요. 전체에 대한 결론은 아니고, 그냥 그 정체에 대한 것뿐이지만요.”
“추측이요? 확실하진 않은 건가 보네요.”
“네. 확실하지는 않죠. 아직 여전히 잘 모르겠어서 빈칸으로 남겨놓은 부분도 분명히 있고요. 하지만, 마냥 추측이라고 무시할 만한 내용은 아닐 거에요.”
소장의 말과 어제 산에 가서 알아낸 정보. 그 여러 가지를 조합한 결과로 조금 확신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있다.
“추측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에, 몇 가지 질문을 좀 드려도 괜찮을까요?”
“질문이요?”
승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아는 건 다 설명 드렸는데요?”
“아, 네. 거의 다 들었었죠. 하지만, 저희 정작 화재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안 했었잖아요?”
“화재 말인가요?”
“네, 생각하다 보니까 꽤 중요한 요소인 것 같더라고요. 사실, 그 장소가 산이라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거니까요. 어쨌든, 불에 대해서 질문을 드릴 건데 괜찮으신가요?”
태주의 질문에 승현은 조금 찌푸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불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잘 알긴 합니다.”
“그럼 질문 드려도 문제가 없겠네요.”
태주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알기로 산불이 지금 나는 건 조금 드문 일이에요. 그렇죠?”
태주의 질문을 들은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기적으로는 그렇죠, 조금 이르네요. 아무래도 이제 막 여름이 끝난 느낌이니까요.”
보통 한국의 산불은 추워지기 시작할 때 많이 난다. 건조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물론 한창 더운 시절은 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습도는 그리 낮지 않다.
“하지만 있을 수 없는 것도 아니죠. 절대라는 건 없거든요. 산불이라는 건 어떻게든 날 때는 나니까요. 누가 담뱃불 안 꺼서 그럴 때도 있고. 아니면 무슨 사고였을 수도 있고.”
“아, 그래요. 그게 다음에 드릴 질문이었는데요.”
태주의 말을 들은 승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음에 드릴 질문이요?”
“정확한 화재 원인이 조금 의문이었거든요. 자연 발생한 산불이라는 기사를 보기는 했는데, 그 이상으로 자세한 말은 쓰여있지 않아서요.”
승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대답하는 데 무리는 없었기 때문에 일단 입을 열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모릅니다.”
“모른다고요? 전혀?”
태주는 눈가를 조금 손으로 비비고는 다시 물었다.
“그럼 정확할 필요 없이 그냥 남아 있는 가능성은요? 혹시 사람 때문에 혹시 불이 났을 수도 있을까요?
“사람이 일부러 불을 질렀거나, 담배꽁초 같은 것 때문에 불이 시작했을 리는 없습니다. 그건 확인이 됐어요. 어떤 전선 같은 것을 야생동물이 건드려서 불이 나는 경우도 있긴 한데, 이번에는 상관없는 이야기고요. 사람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난 불이에요.”
그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면서 승현은 말했다.
“물론 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사람 때문은 아니에요.”
가능성은 낮지만 감지하지 못한 낙뢰일 수도 있겠고, 또 어쩌면 그냥 말 그대로 우연히 났을 뿐일 거라고 승현은 말했다.
“그렇다면 결국 제가 아는 것과도 크게 다르지는 않네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에서 보고, 확인할 수 있었던 것과 승현의 말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정말로 원인 불명의 불이라. 혹시 몇 가지 더 여쭤봐도 될까요?”
“네, 뭐.”
“만약 이게 자연 발생한 불이라면 처음엔 분명 꽤 작은 불이었겠죠?”
“잘은 모르지만, 아마 그랬겠죠.”
“만약 그런 불을 초기에 발견했다면 무조건 끌 수 있었을 거예요. 그것도 맞나요?”
“…그렇겠죠. 산속에서 난 불을 어떤 방법으로 조기에 찾아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야 있겠지만요.”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그렇군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뭐를요?”
“그곳은 원래 화재가 날 수 없는 곳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