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불길 속 무언가 (8)
“후….”
태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속았다….”
“네?? 뭘 속아요?”
당황한 설이의 말을 들은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꽤 멀잖아, 이거.”
“안 멀잖아요!”
“그래, 뭐 거리상으로는 안 멀지도 모르겠네.”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했다.
지네 기준으로는 거짓말은 아니었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발밑이 불편한 곳에서, 경사까지 있으니 앞으로 향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너는 누가 업어줬잖아? 그리고 여기 발밑 엄청 불편하거든? 어둡기도 하고”
설이는 지네가 업어다 줬고, 태주는 제 발로 걸어야 했다. 결국 두 사람의 체감은 엄청나게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게 오빠도 타지 그랬어요? 태워 주신다는데.”
“나는 좀 그래.”
아무래도 생리적인 거부감이 있다 보니, 별로 타고 싶지 않다.
“아니면 월이가 업어주면!”
설이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자존심 문제가 조금.”
“나도 쟤 업긴 싫거든.”
한순간도 멈춰서는 안 되는 다급한 상황이라면 모를까, 조금 조심해서 걷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그러고 싶지는 않다.
“하여튼 유별나 둘 다! 금방 끝날 일을!”
“무슨!?”
설이는 기다림이 지루한지 두 사람을 디스하기 시작했다.
“월이가 데리고 가면 삼십 초면 끝날 일 아니에요?”
“나, 나도 나름 안전할 거 같은 길만 찾아서 데려가고 있으니까, 난 할 일 다 하고 있다고!”
월이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거기다 쟤도 싫을 거 아냐! 그런 건!”
“그래, 나도 별로 원치 않아.”
태주도 그런 식으로 날아가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이미 사실상 다 와 간다.
“엄청 느리잖아요! 빨리 해결하고 싶다면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돌아갈 때는 자정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설이는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래, 뭐. 내일이 되기 전에 돌아가는 걸 목표로 하긴 해야지.”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업히는 것은 싫다지만, 또 이런 일로 밤샘을 하고 싶지는 않다.
“후, 여긴가?”
“조금만 더 앞이요! 그래도 다 와 가요!”
“그래.”
거의 다 왔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그 말대로 몇 발자국을 더 앞으로 나가니 전혀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오….”
태주는 감탄했다.
“확실히 특이하긴 하네.”
지네가 발견한 곳은 확실히 뭔가 있을 법 해 보이는 장소다.
“이런 깊이의 연못이라, 내가 보기에도 확실히 뭔가 있을 것처럼 보여. 아니, 있었을 것 같다 해야 하나?”
사람의 발이 거의 전혀 닿지 않았을 법한 장소에 있는 이 연못은, 심지어 꽤 깊었을 것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월이 너는 이곳을 못 봤어?”
태주의 질문에 월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도 보긴 했지! 근데, 여기 아무것도 없잖아? 그래서 그냥 넘겼지!”
월이는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렇다. 이곳은 뭔가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을 풍길 뿐이지 지금도 뭐가 있는 공간은 아니다.
어쩔 수 없다. 생각보다 작지 않은 이 연못은 지금 바닥이 보이고 있었으니까.
이곳 역시, 다른 나무들이 있던 곳과 마찬가지로 누가 숨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닌 것이다.
“주변이 불타는 동안 이만한 크기의 연못이 마르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산이 모두 불타는데, 여기에 있는 작은 연못이 멀쩡할 리가 없다. 당연히 여기 뭐가 있었다 쳐도 지금도 있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은 조금 깊게 파여 있고, 그저 조금 휑하고 깊게 파인 땅 수준으로만 보일 뿐이다.
옛날에는 안에 물고기 같은 것이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지금은 아무것도 살아있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휑하고, 비참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게 자연스러운 형태는 아니래요! 이유는 뭐, 잘 모르겠다고 하시지만요!”
“자연스럽지는 않다?”
“네! 누가 자기 입맛대로 꾸민 느낌?”
“흐음.”
지네의 판단이 어디까지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말이 되는 것 같다. 월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 판단이야 잘 모르겠지만, 그렇네. 만약 뭐가 있었다면 여기에 있었을 것 같긴 해.”
조금 흥미가 생긴 듯, 월이는 설이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 뭐 있었어?”
“…있었던 게 확실해.”
설이는 하지만 어딘가 불확실한 태도로 말했다.
“확실하다고?”
“그, 있었던 건 확실한데…. 근데 나도 잘 모르겠어.”
태주는 설이의 반응이 조금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는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있었던 건 확실하다면서?”
“그게, 아시잖아요? 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정도만 보이는 게 아니라, 뭐가 남아 있었는지랑, 얼마나 최근인지에 따라서 보이는 정도도 다르다는 거 말이에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이가 보는 것이 어떤 반짝임이라 표현해야 할 무언가가 보이는 식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대략적인 규모 정도는 파악이 가능하다.
“그래, 당연히 알지. 그러니까 너도 데리고 온 거잖아?”
하지만, 무엇을 봤길래 당황한 건지 태주는 알 수 없었다.
“너무 희미하기라도 해? 긴가민가 싶을 정도로?”
설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정반대에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큰 흔적이 남아있어요.”
“너무 크다고? 어느 정도로 크길래?”
“그, 잘 모르겠어요. 이런 건 처음이라서. 이게 얼마나 컸던 건지를 잘 모르겠어요.”
설이는 이런 건 처음이라는 듯 눈을 엄청나게 찌푸렸다. 태주는 재차 물었다.
“짐작도 안 가?”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아주 커요. 할아버지보다 더 클지도 모르겠어요. 크기도 그렇고, 유명한 정도도 그렇고….”
“뭐?”
그건 태주에게도 아주 의외인 말이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 할아버지… 그러니까 지네보다 크다고?”
“네! 확실해요!”
이젠 어느 정도 규모에 대한 확신이 생긴 듯,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 더 보니까 알겠네요. 확실히 더 커요.”
쉽게 믿기 어려운 말이다. 혹시나 싶어 태주는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혹시, 하나가 아닐 가능성은? 그럴 가능성이 없나?”
“그, 그럴 가능성도 있긴 해요. 확실히 하나라고 하기엔 조금 다른 것 같은 흔적도 보여서…. 그런데 또 하나가 아니라고 하기에도 뭔가 좀 이상해요.”
마냥 하나라 보기엔 너무 큰 데다,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점들이 있는데, 또 하나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크게 다른 흔적들이 아니라면서 설이는 헷갈려 했다.
“굳이 따지면, 저는 하나 쪽에 더 가까워 보이는 것 같기는 해요.”
“…일단은 하나이거나, 구분할 필요 없는 둘이라 생각해야 하는 건가? 어느 쪽이건 네가 그렇게 헷갈릴 정도면 이유가 확실히 있는 걸 텐데.”
그 흔적만 보고도 이렇게나 조금 당황할 정도라. 태주는 뭔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심각해졌다.
“문제가 있는데.”
어딘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면, 이상한 무언가가 없는 편이 더 설득력이 없다. 그렇기에 태주는 승현이 도저히 그런 것을 믿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나도 예상 밖의 일이다.
“그냥 조금 큰 수준이 아니라, 너무 말도 안 되게 큰 것이 있었던 것 같다고? 진짜 왜지?”
“그게 큰 문제야?”
월이는 궁금한 듯 물었다.
“네 말대로라면 크든 작든 뭔가 있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아냐. 작은 건 상관없지만, 큰 건 상관이 있어.”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 큰 정도라면 그래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 크기가 확실히 지네보다 크다면 그건 태주의 가설과는 맞지 않는다.
“네 말대로야. 아무것도 없는 쪽보다는 뭔가 있을 확률이 높을 거라는 생각은 했어. 하지만, 있고 없고 만이 중요한 게 아냐. 처음부터 사이즈를 어느 정도 염두에 뒀었거든.”
“사이즈?”
“그러니까, 단순한 물리적 크기에 대한 게 아니고 이야기의 유명세나 규모 같은 거 말이야.”
모든 이야기는, 세상 어딘가든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괴담도 역시 일종의 이야기고, 비슷한 이야기는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있다. 유명하지 않은 거라면 특히나 더 그렇다.
“그러니, 손님이 본 특징과 비슷한 특징을 가진 어떤 괴물은 분명히 있을 수 있어. 착각할 수 있었다는 말이지.”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잘 모르면 헷갈릴 수밖에 없는 어떤 비슷한 것과 만나 착각했을 수 있다. 그게 처음 가설이라면서 태주는 한숨을 쉬었다.
“어, 그래서? 뭐가 있었다잖아? 지네도 그렇고, 설이가 보기에도 뭔가 있었다고 하는 거면 된 거 아냐?”
“아니지. 있는 것까지는 괜찮아. 하지만, 너무 엄청난 게 있었다고 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
“전혀 다르다고?”
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설이 역시 궁금한 듯 조용히 들었다.
“만약의 이야기지만, 여기 있던 게 흡혈귀였다고 해보자.”
“…갑자기?”
월이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예시가 왜 그따위야?”
“뭐, 엄청나게 큰 거라고 했으니까 말이야. 그만한 거물이 나와줘야 하잖아? 그게 정 싫으면, 방금 우리가 본 그 지네 같은 것도 괜찮아. 뭐든 좋으니, 그냥 지네로 할까.”
태주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지금 만약 우리가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지 않았다고 치고, 또 마침 멀리서 우연히 지네를 본 사람이 있다 치자.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기적적으로 그런 사람이 나타났다 치자고.”
태주는 두 사람을 보고는 물었다.
“그 사람은 지네를 보고서 그걸 쿠네쿠네와 헷갈릴 수 있을까?”
“아뇨!”
설이가 대답했다. 월이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안 헷갈리겠지.”
“그래, 맞아. 헷갈릴 수 있을 리가 없지.”
사람들이 잘 모르고 헷갈리는 것이라면 뭐든지 쿠네쿠네 같은 것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너무나 유명하거나 특징적인 것은 절대로 헷갈릴 여지가 없다. 그런 건 어떻게 해도 쿠네쿠네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무슨 말 하려는지 알 것 같아요!”
설이가 말했다.
“제가 지금 본 것처럼 너무 큰 것이 남아있었다면, 그걸 쿠네쿠네와 헷갈렸을 리는 없다는 말씀이신 거네요!”
“정확해.”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쿠네쿠네가 아무리 어설픈 것들은 다 자기 범주 안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느슨한 괴담이라고는 해도, 본인보다 큰 것을 담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나는 뭔가 작은 어떤 것이 있었을 거라 생각했던 거란 말이야. 그런데 큰 거라고?”
그래서 이해할 수가 없다. 태주는 혹시나 싶어 은근히 물어봤다.
“설이 네가 잘못 본 건 아니지?”
“절대 아니에요! 진짜, 조금 크기를 착각하는 정도면 모를까, 그만한 크기를 제가 잘못 볼 리가 없잖아요!”
대체 얼마나 크길래 저런 소리를 하는 걸까. 태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만큼 네가 보는 걸 볼 수 없다는 게 짜증 나는 순간도 없었는데…. 아무래도 전제를 다시 짜야 할지도 모르겠어.”
뭔가 이상하다. 태주는 이번 일이 생각보다 더 꼬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뒤 인상을 크게 구겼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처음부터 다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