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불길 속 무언가 (7)
“고생했어, 고생했어요!”
설이는 둘에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하지만 월이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태주는 그 표정을 보고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뭐 찾아낸 거 없어?”
태주의 질문에 월이는 불만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별 거 없었어. 아니, 그냥 별 게 안 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아아아아-무것도 안 나와. 열심히 찾았는데.”
싹 다 불타서 그런가, 벌레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면서 월이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아아아무것도 안 나왔다고?”
말투를 따라 하며 한 태주의 질문에 월이는 조금 변명하듯 소리쳤다.
“진짜야! 아무것도 없어, 나만 못 찾은 거 아냐! 저기 쟤도 못 찾았다고!”
“뭐? 쟤? 누굴 말하는 거야?”
설이를 말하는 것일 리는 없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가만히 있기만 했으니, 여기 월이가 쟤라고 부를 누군가는 없다.
“저거 있잖아, 저거!”
‘저거’ 가 누구인가 싶어 태주는 월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지네 말하는 건가? 야, 쟤라니, 아무리 그래도 나이가 몇인데?”
월이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지네가 몸을 쭉 뻗고 있었다. 그러다 지네는 월이의 손가락을 본 듯 ‘나?’ 하는 듯한 동작으로 몸을 기울였다.
곧 다시 흥미를 잃은 듯 설이와 뭔가 이야기를 시작하긴 했지만.
“봐봐! 별로 신경 안 쓰고 있잖아. 쟤도.”
“또 그러네.”
물론 태주가 보기에도 지네가 그리 불쾌하게 여기고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월이 말을 듣고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 혹은 아예 듣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월이 말대로 당장 별 반응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지네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이쪽이 예의를 지키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아무리 그래도 좀 너무한 거 아냐? 우리나라에는 나이 많은 쪽을 존중하기로 한 사회적인 약속이 있다고.”
“왜, 지도 뭐라 안 하는데 니가 그래?”
월이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뭐라 부르든 너랑 무슨 상관이야? 애초에 사람도 아니고.”
“아무리 상대가 사람이 아니라도 좀 그렇지. 천년 단위로 나이를 먹었는데 쟤는 좀 너무하지 않냐? 뭐, 당연히 아주 깍듯하게 대하라는 말은 안 하겠지만….”
태주는 말끝을 흐렸다. 갑자기 유교맨이 되어버린 기분이 든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이마에 짚었다.
“아니, 그래. 일단 본인이랑 합의는 된 거야? ‘쟤’ 같은 호칭으로 불러도 된다고?”
“합의? 그런 게 왜 필요해?”
“필요하지 않을까? 상식적으로 말이야.”
“응, 아니야. 난 내 맘대로 할 거야. 내가 이겼거든? 한참 전에 이겼거든?”
월이는 어딘가 자랑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전에 조금 생각을 해 봤는데, 결국 내가 이겼으니까 그 불 맞을 뻔한 건 그냥 넘어가 줘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
꽤 선심을 썼다는, 그런 나쁘지 않은 이야기지만 왜 지금 나온 이야기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태주는 조금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건 잘됐네.”
“그래, 잘했지?”
“근데 그 이야기를 왜 지금 하는 거야?”
태주의 질문에 월이는 뭐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냐니? 그렇게 되면, 내가 더 위인 거 아냐?”
“더 위?”
월이는 당당하게 가슴을 쭉 펴고 말했다.
“내가 더 쎄고! 내가 더 자비롭고! 그럼 내가 더 높은 사람인 거잖아? 예의는 내가 아니라 저쪽에서 지켜야 하는 거라고!”
“진짜 자기만의 이론이 확고하구나.”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문제는, 저 웃기지도 않는 소리가 나름 말이 되는 소리라는 점이다.
“그게 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는 점이 열받는데.”
나이나, 도덕성이나 그런 걸 다 떠나서 월이는 지네보다 강하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나이 많은 토끼에게 나이 어린 호랑이가 예의를 갖출 필요는 없다.
“그래, 네 말도 맞긴 하지. 야생에서 만났다면 말이야. 근데 방금 내가 사회적 약속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냐?”
태주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됐거든, 날 설득하려면 날 쓰러트려라!”
“무슨 악역 같은 소리야?”
태주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다 정말로 너보다 강한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서 똑같이 말하면 어쩌려고?”
“그게 그리 쉽게 나타나겠어?”
월이는 괜히 자신 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나타나면 뭐, 그래 그렇게 해 주지! 그런 사람이 어디 쉽게 나타나겠어?”
“그래 뭐, 나도 그런 사람은 소장 말고는 없었으면 좋겠는데.”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뭐 그 말투야 그렇다 쳐도 최소한 ‘쟤’만은 좀 어떻게 해봐. 어쨌든 설이는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거 같던데.”
“싫거든? 난 지네 본인이 직접 항의하기 전까지는 안 고칠 거야!”
월이는 흥, 하고 콧김을 뿜으며 말했다. 지네는 입이 없으니, 결국은 고치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래, 뭐 그렇게까지 싫다면야 알아서 하던가.”
할 말이야 더 있지만, 여기서 그 이야기를 더 할 수는 없다.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휴, 이야기가 너무 샜네. 어쨌든, 찾은 게 없었다는 이야기로 돌아가야지.”
할 일이 있는 상황에서 계속 그 이야기만 할 수는 없다.
“하여튼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좀 하자면, 처음부터 네가 있는데도 뭔가 놓쳤을 거라는 생각을 했거나, 아니면 네가 대충 훑어봐서 뭔가 봐야 할 것을 못 봤다는 생각은 안 했어. 신발만 봐도 알지.”
처음 월이가 돌아왔을 때, 태주는 신발의 상태를 힐끗 봤다. 월이가 농땡이를 피웠을 거라고 의심했다기 보다는, 그저 그게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신발의 상태가 더러웠다.
“네 발에 묻은 게 그렇게 더러운데 내가 무슨 의심을 하겠어? 그 정도로 열심히 살폈으면 네가 실수를 했을 확률도 아주 낮을 테고. 물론, 아무리 너라도 지금 이게 평소 같은 산이라면 뭔가 놓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만한 대형 화재였다. 게다가 지금은 아직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다. 나뭇잎도 잔가지도 없는 지금, 월이가 뭔가를 멀리 보는데 방해할 만한 것은 전혀 없다.
“지금 이 산에는 아마 네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숨을 곳은 없을 거야. 이걸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지, 혹은 애초에 불이 안 났다면 이번에 찾아온 손님이 그런 것과 만날 일이 없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느 쪽이 정확한지는 태주도 모른다.
“어쨌든 확실한 건, 산이 이 모양이라면 뭔가 숨어있는데 네가 뭔가 놓칠 리가 없다는 거야. 심지어 둘이서 찾았는데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면 그야 그냥 아무것도 없는 거겠지.”
사실 설이한테는 처음부터 했던 이야기다. 월이는 조금 벙찐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괜히 변명한 거야?”
“그래. 괜히 변명한 거야. 아니, 원래대로라면 한 삼십 초도 안 걸릴 이야기가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암튼 내 탓을 아닐 거라는 말을 한 태주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어쨌든, 나나 누나나 처음부터 이 장소에, 쿠네쿠네가 없을 가능성을 염두에 뒀어. 그러니까, 네가 아무것도 못 찾았다고 해도 뭐가 막 잘못되고 그런 게 아니라고.”
“뭐어야, 그럼 또 오히려 좀 실망인데.”
“실망?”
월이는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럼 나 아무것도 안 한 거랑 뭐가 달라? 아무것도 안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 찾아서 결국 못 찾은 거면.”
“아무것도 안 한 거랑 뭐가 다르냐고?”
태주는 설이 쪽을 보고 말했다.
“많이 다르지.”
월이는 뚱한 눈으로 태주를 쳐다봤다.
“안 나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며. 별 기대 안 한 거 아냐?”
“그건 맞는데, 기대를 안 한 건 아냐.”
월이는 한층 더 의심스러운 눈으로 태주를 쳐다봤다.
“그런 의심스러운 눈으로 봐도 진짜야. 애초에, 이번에 우리가 찾으려고 하는 게 뭔지, 우리는 정확히 모르잖아?”
“쿠네쿠네라며?”
월이는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야. 쿠네쿠네일 확률이 조금 높아 보인다고 했지.”
“그게 그거 아냐?”
“전혀 달라.”
태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우린 그게 뭔지 파악하지 못했어. 알 수 있는 건 그게 정체불명이라는 점뿐이고.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야. 쿠네쿠네같은 것과 비교된 이유는 그저 그게 정체불명인 것 중 가장 그럴듯하게 정체를 추론해 볼 수 있는 거라서 그럴 뿐이라고.”
쿠네쿠네라는 말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은, 그래서 결국은 크게 의미 없는 말이다.
“몇 가지 특징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그게 다야.”
그렇기에 이런 확인이 중요하다.
“네가 여기를 확인해 주지 않았다면, 그래서 일이 꽤 복잡해졌을 거야.”
“복잡해져?”
“이쪽에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 않은 것에서, 지금 이 장소에 없는 것만은 확실한 것이 되었다면 엄청나게 많이 진전된 거거든.”
“음… 그런가?”
“그렇지.”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너도 이제 꽤 오래 있었는데 슬슬 어느 정도로 일이 진전된 건지는 알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아?”
“그렇잖아? 네가 하는 일이 무의미한 게 아니라는 정도는 슬슬 알아야지.”
“잘 몰라. 니가 시키면 의미 있는 거겠지 뭐.”
월이는 하품하며 말했다.
“하여튼, 쓸모없는 짓이 아니었음 됐어.”
“그래. 중요한 일이었어.”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설이 쪽을 보고는 물었다.
“그쪽은 어디까지 이야기했어? 뭐, 들은 거 있어?”
“네, 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창 지네랑 이야기하던 설이는 흠칫하다 말했다.
“뭐를요?”
“그러니까, 뭐 이상한 흔적 같은 거라도 있었대?”
월이가 찾지 못했다면, 지네가 무언가 봤을 수 있다. 애초에 그래서 둘을 함께 보낸 것이다.
“어, 잠시만요. 방금까지 그 이야기는 안 했어서.”
설이는 허둥대며 뭔가 이야기하게 시작했다. 월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에이, 나도 못 찾은 걸 쟤가 찾는다고?”
“또 쟤라고 하네…. 아니, 지금은 넘어갈까.”
태주는 잠시 눈을 찌푸렸다가는 말했다.
“내가 괜히 둘을 다 보낸 줄 알아? 애초에 너랑 저 지네랑 잘 찾는 게 다르다고.”
아무래도, 단순히 무언가가 있느냐 없느냐를 찾는 데는 월이가 몇 수는 앞설 것이다. 무언가 살아있는 것이 숨거나 움직이는 것을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월이다.
“하나 문제가 있지. 너, 관찰력은 없다시피 하잖아?”
“…좋거든? 뭔가 있었으면 무조건 찾았을 거거든?”
“그런 의미가 아냐. 목표를 찾는 건 잘하는데, 그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한다는 거야.”
대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고, 없다면 더 살피지 않고 넘어간다. 뭔가 있다면 자기가 볼 수 없을 리가 없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짓이다.
“그리고, 이런 네가 잘 모르는 환경에서는 조금 더 심하지.”
어쩔 수 없다. 이건 특별히 월이가 못나서 그렇다고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너는 야생에서 살아본 적이 없잖아.”
“무슨 당연한 소릴?”
월이는 눈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너도 없잖아! 그런 경험은!”
“그래, 그래서 그래.”
말하고 보니 한 문장에 그래가 셋이나 들어갔다. 태주는 혼자 피식 웃고는 말했다.
“뭔가, 평범한 어떤 것이 남긴 흔적과 평범하지 않은 것이 남긴 어떤 흔적을 구분할 수가 있을 리 없어. 네가 방금 말한 대로 나도 그렇지.”
태주도 평범하게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그렇기에 지네가 필요했다.
“그나마 설이라면, 조금 볼 수 있는 게 있었을지도 모르지. 눈도 있고 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바닥이 이래서야.”
“결국 나는 못 찾는 걸 저건 찾을 수 있었다는 거 아냐!”
조금 허탈한 듯, 억울한 듯 월이는 소리쳤다.
“나… 나도 방법만 알면! 할 수 있어!”
“어, 뭐가 있긴 있었다는데요?”
설이의 말에 월이의 말은 중간에 끊기고 말았다.
“그래? 일단 거기로 가보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해 달라고 해줄래?”
“네! 그리 멀진 않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