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불길 속 무언가 (6)
불이 난 산의 모습은 여전했다.
살아있는 나무는 보이지 않고, 동물의 소리도 지금은 들리지 않는다. 오직 아직도 매캐한 냄새만 풍기는 숯덩이만이 가득할 뿐이다.
월이는 눈을 찌푸렸다.
“와, 이야기로만 들었는데 좀 심각하긴 하다. 과장 좀 섞인 줄 알았더니.”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던 월이는 조금 소름이 돋은 듯 몸을 살짝 떨었다. 실제로 그럴만해 보이는 환경이다. 제대로 된 것이 보이지 않아, 오히려 어지간한 무덤보다 더 음산하다.
“바로 옆에 있는 산은 푸릇푸릇해서 더 비교되잖아? 그래도 산에 간다고 하니까 조금 상쾌한 공기를 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월이는 코를 살짝 훌쩍였다. 다른 사람이 맡아도 충분히 불쾌한 냄새인데, 민감한 코에는 더 강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으- 코가 찡해!”
조금 충격을 받은 듯 월이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봤다. 오늘따라 일찍 뜬 달이 월이의 눈에 반짝거렸다.
그 눈을 본 설이가 말했다.
“와, 진짜 개 같다!”
갑작스러운, 그리고 악의는 없는 설이의 말에 월이는 눈을 찌푸렸다.
“야 개 같다니? 난 그냥 코가 좀 민감할 뿐이라고.”
“응? 냄새가 아니라! 그, 동물들은 밤에 보면 눈이 반짝거리잖아? 근데 네 눈이 지금 그래! 진짜 개 같아!”
“어, 어?”
아주 순수한 그런 말투다. 월이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화를 내겠지만, 말을 한 사람이 사람인지라 차마 뭐라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 그래?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 좀 어떻게 표현을 좀….”
“응? 하지만 진짜 그런데?
“…그냥 다른 걸로 하라고! 개는 좀 아니잖아! 강아지도 있고… 아니, 강아지도 별론데.”
“그럼… 고양이 같다? 이건 괜찮아?”
“그것도 별로긴 한데… 그래, 뭐 그편이 낫긴 하네.”
한 번 더 교환했다가 더 이상한 동물이 붙는 것보다는 그게 낫겠다고, 적당히 타협한 월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했다.
“에잇! 그나저나, 그 하얀 뭔가를 찾으면 되는 거야? 그게 뭔지 알아내려고 온 거잖아?”
월이는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걸 찾아도 좋고. 아니면 다른 걸 찾아도 좋고. 결과가 확실하기만 하면 돼.”
“뭐라는 거야? 결과가 확실하기만 하면 된다고?”
월이는 눈을 조금 찌푸린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된다는 말인데? 잘 모르겠거든?”
“설명이 그다지 직관적이지 않았나?”
태주는 조금 더 간단하게 설명하기로 했다.
“별 거 아냐.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돼. 평범하게 산을 좀 뒤적거리면 되는 거야.”
다른 상황이라면, 월이에게만 전부 떠넘기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조금 어렵다.
“그거면 끝이야?”
“그래, 그걸로 충분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돌아다니기에 지금 이 산은 좀 위험하거든.”
부주의했다고는 해도 위험한 곳에 출동하는 일이 잦은 승현마저 이곳에서 부상을 입었다. 이런 현장에 와 본 것은 처음인 두 사람이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닥이 무너지거나, 나무가 쓰러지면 바로 대처할 수 있는 게 너뿐이잖냐.”
“그래서 나한테 시키는 거구나? 그냥 뭔가 찾아보면 된다는 거지?”
단순한 이해지만, 정확하다. 태주는 한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래 요약해서 말하면, 뭔가 조금이라도 수상한 게 있으면 일단 와서 보고하면 되는 거야.”
월이는 무슨 생각인지 얼굴이 조금 일그러진 채 물었다.
“다 좋아, 좋은데…. 그런데 너 혹시 나를 무슨 탐지견 같은 거로 생각하는 거 아냐?”
‘개’라는 발언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인지, 월이는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너, 너도 날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
“개? 당연히 아니지. 네가 하는 일이 훨씬 대단한 일이라고.”
“그래? 정말이지?”
“그래. 정말이야.”
월이는 그 말에 어딘가 만족한 듯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월이가 만족하는 사이 태주는 옆에 있던 설이에게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주변에 아무도 없지?”
“네. 저도 확인했어요.”
“그럼 그, 네 할아버지께도 좀 부탁드려도 될까? 뭐 이상한 게 이 자리에 있는지 알 수 있도록 말이야.”
“아, 그거요?”
설이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벌써 찾고 계신데요?”
설이는 저 멀리 손을 흔들며 말했다. 저 멀리 지네가 보였다. 태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빠르네. 언제 나온 거지?”
“처음부터요!”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오히려 좋다. 빨리 끝날수록 빨리 쉴 수 있으니까.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한 뒤 월이에게 말했다.
“어쨌든, 같이 시작하면 된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이미 저쪽은 시작했다는데? 그러니까 그냥 바로 하면 돼.”
월이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저 멀리 뛰어갔다. 태주는 순식간에 멀어진 월이의 모습을 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맨날 귀찮은 척은 다 하지만 저래 보여도 꽤 열심히 한단 말이지.”
“그렇죠. 월이가 열심히 하는 건 진짜 열심히 하잖아요?”
설이의 말을 들은 태주는 작게 웃었다. 열심히 안 하고 싶은 건 전혀 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지만, 할 생각이 있어 보이는 지금은 든든하다.
“그래. 저런 성격이니까. 뭐, 잠시 느긋하게 기다려 볼까? 저 둘이 뭔가 냄새를 맡기 전까지 우린 할 일이 없잖아?”
심지어는 월이 뿐만 아니라 지네도 있다. 무언가 있다면 놓칠 리 없다.
설이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저쪽은 괜찮을까요?”
“저쪽? 그러니까 누나 있는 쪽 말하는 거지?”
“네, 시아언니 혼자 있잖아요. 물론 크게 걱정되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적으니 걱정이 된다고 설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뭐, 문제가 생긴다면 그쪽에서 생길 확률이 높긴 하지.”
태주의 말을 들은 설이는 당황해 말했다.
“어어? 저기 안 괜찮은 거예요?? 무슨 문제가 생겨요? 위험한 일이라도 생기는 거예요?”
질문이 와르르 쏟아진다. 한쪽은 관심이 없는 데는 전혀 질문을 안 하고, 한쪽은 질문을 엄청 많이 한다.
둘을 합쳐서 반으로 나눌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한 태주는 작게 웃었다.
“아, 거기에 뭐가 나타나는 상황을 걱정하는 게 아니고. 그런 건 하나도 걱정 안 해. 혼자 감당 못 할 수준의 어떤 게 나올 상황을 고려했다면, 누가 더 남았겠지. 월이를 남기던가, 너를 남기던가.”
하지만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정체불명의 괴물이라 하면 굉장히 무서운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하거든. 잠시 뒤에 그 이야기도 하겠지만, 그런 건 문제가 아니야.”
태주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런 쪽 문제가 아니라, 사람 쪽 문제를 말하는 거야. 이번 손님은 조금 기묘한 사람이거든. 처음엔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기묘하다니요?”
“조금 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겠지.”
태주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모르겠어. 다른 소방관을 본 적이 없어서 소방관이 원래 다들 그런지, 아님 그분이 특이한 사람인 건지는 모르겠는데.”
태주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분은 원칙주의자고, 합리적인 사람이야.”
“그건 좋은 사람 아니에요?”
“그래, 좋은 사람이지. 단순히 좋은 사람인 수준이 아니라, 조금 더 제대로 된 좋은 사람이라 해야 하나.”
단순히 선한 정도가 아니라, 선뜻 하기 어려운 일을 그것이 올바르기에 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편이 합리적이라면, 그렇게 하는 사람이야. 누군가 해야 하고, 자기가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사람. 엄청나게 모범적인 소방관이라 해야 할까?”
이번에 겪은 일에 대한 것만 봐도 그렇다.
“화재 현장에서의 판단도 그렇고, 지금도 그래. 자기가 겪은 일을 파악한 뒤, 우선순위에 따라서 정확하게 문제를 따라가.”
자기 자신이 겪은 일을 개인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파악한 뒤, 그걸 바탕으로 할 수 있는 판단을 한다.
“그게 왜 문제에요?”
설이는 도저히 그게 왜 문제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다.
“좋은 사람이면 좋은 거잖아요!”
“당연히 좋은 사람인 건 문제가 아니지. 그게 왜 문제냐 하면, 그런 사람이, 자기가 본 게 괴담 속의 무언가라고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게 문제인 거야.”
이런 종류의 사람은 어지간하면 괴담과 만나지 않는다. 만나더라도, 별 것 아닌 것처럼 스쳐 지나갈 뿐이다.
“보통은,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한 것이 그냥 착각이나, 실수인 것처럼 여기고 말아. 내가 뭔가 잘못 봤겠지, 하고 넘기는 거야.”
그리고 본인이 믿지 않으면, 결국 이런 종류의 괴담은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 오히려 정체불명이기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오면 그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런 괴담은, 결국 자기가 본 것이 ‘봐서는 안 될 무언가’라는 확신이 없으면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셈이니까 말이야.”
실제로, 괴담 속에서도 그렇다.
“멀리서, 그냥 뭔지 잘 모르겠는 상황에서 만났을 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아. 실제로, 그게 뭔지 자세히 보지 못한 화자는 멀쩡하잖아?”
“하지만, 그분은 이미 그런 걸 몇 번씩이나 봤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그렇지.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본 게 쿠네쿠네라는 괴담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었어.”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아주 단단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가진 확신은, 괜히 가진 확신이 아니다.
다른 유약한 사람이라면, 적당히 뭔가 착각했을 거라고 말해줄 수 있겠지만, 이번 손님에 한해서는, 설령 그것이 착각이라 하더라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 확실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현시점에서 태주는 짐작이 가는 구석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게 대체 뭐인지부터 알아야 해. 아이러니하지? 가장 괴담을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가장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는 게 말이야.”
* * *
“역시 제가 갔어야 했을 것 같은데요.”
승현은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야 몇 번 보고도 정상적인 걸 확인했지만, 다른 분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괜찮습니다.”
시아는 느긋하게 말했다.
“이곳에 그런 걸 조금 봤다고 큰일이 날 만한 사람은 없거든요.”
“그런가요?”
“그렇지요, 이걸 업으로 삼는 사람이 그런 걸 목격하는 걸 견딜 수 없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는 사람은 애초부터 여기에 남을 수 없다.
“그보다는, 마음 편히 계시지요. 아마 장기전이 될 것 같으니.”
시아는 의자에 조금 편한 자세로 앉았다.
“뭔가 나타날 때까지, 대기하는 것도 나름 힘든 일이니 말입니다.”
“그렇긴 하지만요.”
그때, 갑작스럽게 뒷문이 열렸다.
“…소장님?”
시아는 조금 놀라 물었다. 소장이 내려오는 것은 당연히 자주 있는 일이지만, 손님이 있을 때 이렇게 대놓고 나가는 건 처음이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무슨 일? 있긴 하지. 나 지금부터 나갔다 와야 할 일이 좀 있어서.”
“나갔다 오신다고요?”
“그래.”
빈말이 아닌 듯, 늘 바깥에 나갈 때 입는 복장을 한 소장은, 시아를 쳐다보고는 말했다.
“재미있네.”
소장은 말했다.
“여기 네가 혼자 남을 줄은 몰랐거든?”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모르는 게 없으시다는 분이.”
“아니, 진짜야. 가끔씩은 있다니까?”
소장은 그렇게 말한 뒤 머리를 살짝 긁적였다. 잠시 침묵 이후, 소장은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
“조금, 한 가지만 미리 말해주자면,”
“뭡니까?”
소장은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
“이번에 저 손님이 만난 것은, 이미 죽었어.”
“…예?”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네가 들은 게 맞아.”
하지만 소장은 그저 웃으며 말했다.
“이미 죽은 것을 만난 거야, 저 손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