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불길 속 무언가 (5)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네요.”
설이는 이 이야기가 별로 무섭지는 않았던 듯 그저 눈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하기만 했다. 물론 일부러 무섭지 않게 이야기 한 거기는 하다.
“정말로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래, 그게 핵심이야.”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보거나 이해하면 안 된다. 이해한 사람은 미쳐버리고 만다. 그게 바로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구조적으로 이 이야기는 이해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니 꿈틀꿈틀 같은 이름이나 붙이고, 더 이상 깊게 파고들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놨지.”
제대로 분석이 불가능한 이야기다. 추측은 할 수 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다.
“그나저나 그 동생은 어떻게 되는데?”
월이의 질문에 태주는 한 번 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글쎄, 이것조차도 이야기가 여러 가지 있다 보니. 나도 잘 모르겠네. 마지막까지 그것에 대해 궁금하지만 두려워하면서 이야기를 마치거나, 혹은 본인도 그걸 보고 미쳐버리는 것처럼 끝나거나.”
“뭐? 앞은 그렇다 쳐도 본인도 미치면 그 이야기는 누가 해주는데?”
월이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태주가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글쎄, 그걸 알 수 없으니 괴담인 게 아닐까?”
결국 이 이야기의 핵심은 설이 말마따나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뿐이다.
“뭐 빼먹거나 한 거 있을까요?”
태주는 시아에게 물었다. 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딱히 지적할 건 없구나. 역시, 이런 설명은 네가 좀 더 나아.”
“이게 이야기의 근본적인 틀이죠. 변종이야 수도 없이 많지만요.”
태주는 그렇게 대답한 뒤 승현에게 물었다.
“아마 손님이 아시는 이야기도 지금 이거랑 크게 다르지는 않죠?”
태주의 질문을 들은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 크게 다른 점이 없네요.”
승현은 태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본건, 혹시 쿠네쿠네인가요?”
“글쎄요. 저도 확실하게 대답을 드리고 싶지만, 지금은 몰라요.”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확실히 손님이 본 것과 비슷한 점이 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마 저라도 이런 일에 대해 잘 모르고 앞선 이야기만 들었다면 비슷한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에요. 손님이 괜히 그렇게 생각하신 건 아닌 셈이에요.”
결국 그 이야기만을 놓고 생각하다 보면 그 하얀색의 무언가가 쿠네쿠네일 가능성은 꽤 높아 보일 수밖에 없다.
“누나는 어떻게 생각해요?”
“아주 비슷한 점이 있긴 해.”
시아는 태주의 질문을 듣고는 바로 말했다.
“그래, 나 역시 쿠네쿠네라는 말을 부정할 근거가 마땅치는 않아.”
하지만 시아는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영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멀리서 보이는 이상한 것이고, 사람의 정신을 이상하게 만들고, 시골에서 저 아주 멀리에서나 보인다. 심지어는 외양에 대한 묘사나 움직임마저도 비슷하지.”
그런 의미에서 이것이 쿠네쿠네가 아니라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또 쿠네쿠네가 맞는다고 단언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시아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평범한 논밭과는 달리, 커다란 화재현장의 한가운데서 마주쳤다. 일단은 장소의 문제지. 그리고 이미 몇 번이나 승현 씨의 앞에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아주 똑바로 본 건 아니라지만, 승현 씨는 미치지 않기도 했고. 이건 그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 아니야.”
시아는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게 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히 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쿠네쿠네의 특징이냐 하면 사실 전혀 달라.”
승현은 이미 그것을 몇 번이나 봤음에도, 미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을 보고 있는 동안은 분명히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지만,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처럼 완전히 미쳐 있지는 않다.
“보거나, 이해하면 미친다는 게 핵심인데 승현 씨는 전혀 그렇지 않지. 그렇지 않습니까?”
“어어, 네.”
갑작스럽게 던져진 질문에 승현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번, 반복해서 봤는데도 그렇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그랬죠. 제 입으로 제가 안 미쳤다고 말하는 것도 기분이 이상하긴 하지만요.”
“어쨌든 멀쩡하시지 않습니까.”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결국, 애매한 상황입니다.”
그것이 쿠네쿠네라는 결론을 내리더라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더라도 둘 다 말이 된다.
“최소한 이대로는 더 알 수 있는 것이 없는 셈입니다.”
시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를 정리하면, 사실 뭔가 제대로 된 결론이 나왔다고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쿠네쿠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솔직히 이런 걸 그리 유의미한 결론이라고 할 수 없다.
“끔찍한 수준입니다. 명확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이 이렇게나 없다니.”
하지만 쿠네쿠네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변명을 조금 하자면, 정체불명에 대한 괴담이라는 것은 늘 이런 법이지요.”
시아는 말했다.
“정체불명의 그냥 하얀 빛의 꿈틀거리는 것이라고 해버린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게 왜 문제죠?”
“그것이 무엇인지, 다른 이들에게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게 뭔지 모르는 사람에게 쿠네쿠네에 대해 설명하려면, 이 이야기 전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문제다.
“방금 유니콘 이야기가 나왔으니, 유니콘으로 예를 들어보지요. 예를 들어, 유니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우리는 유니콘 이야기를 하지 않고도 그 사람에게 유니콘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뿔이 달린 말이라는 짤막한 말로 유니콘은 설명될 수 있다.
“물론 그것만 가지고 자세한 사항을 전달할 수는 없겠지만, 유니콘이 어떤 전설에서 나왔는지, 무엇인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해시킬 수 있다. 정체불명이 아니라, 명확한 실체가 있는 이야기라면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가 있다. 하지만 쿠네쿠네 같은 것은 다르다.
“쿠네쿠네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쿠네쿠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이상 들려주지 않고서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해시키기가 어렵겠지요.”
이야기를 처음 전달한 사람조차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하얀빛의, 멀리서 꿈틀거리는 무언가이며 보거나 이해해서는 안 되는 것.
“이 정도 설명으로 그게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태주가 방금 한 것 같은 이야기 전체가 없으면, 쿠네쿠네가 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쿠네쿠네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그 와중에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명백하게 다른 특징을 가지는 이야기들도 많이 생겨났고요.”
그러나 그중에 어떤 것이 쿠네쿠네고, 어떤 것이 아니라는 확실한 말은 누구도 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정체불명이니, 내가 본 것이 쿠네쿠네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쿠네쿠네가 아니라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누군가 본 것이 쿠네쿠네라고 확실히 긍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쿠네쿠네의 문제점이다.
“그러니, 지금처럼 이야기만 들어서는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선입견까지 생긴 셈이니 오히려 위험하기 그지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일이 단순해지기도 했다.
“어떤 의미로는, 그렇기 때문에 눈앞에 생긴 과제는 오히려 단순해졌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해졌다고요?”
“그것이 쿠네쿠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 최우선 고려 대상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승현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눈을 찌푸렸다.
“방금까지는 그것이 쿠네쿠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알 수 없는 걸 알아내시겠다는 말씀이신 거에요?”
“아니, 저는 그것이 맞다는 것을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내면 됩니다. 그것이 쿠네쿠네인지, 아닌지. 억지로라도 좋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이라도 좋겠지요.”
중요한 것은 결론을 내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일의 절반 이상은 끝난 거라 보시면 될 겁니다.”
그 결론을 어떻게 내면 되는가. 승현이 질문하기도 전에 설이가 물었다.
“그럼 저희, 어떻게 해요? 뭐 방법이 있어요?”
“어떻게 하긴?”
시아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늘 하던 대로 해야지.”
“설마.”
뭔가를 직감한 월이의 말에 시아는 웃었다. 그 웃음을 본 월이는 심통이 나서는 말했다.
“이런 젠장. 한국엔 산이 너무 많아.”
“산에 가면 내일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될 텐데?”
“너무 많아서 너무 좋네?”
시아의 당근을 덥석 문 월이는 헤헤 웃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위험한 방법이지만 호랑이랑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쓰지 않는 것이 더 바보 같은 방법이다.
“그 산으로 간다고요?”
승현은 당황해 말했다.
“네. 약간의 위험부담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가장 빠르지 않겠습니까?”
“여러 사람이라….”
시아의 말을 들은 승현은 그렇게 한번 되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승현이 본 것은 본다고 바로 미치는 종류의 것도 아니니, 굳이 거기까지 안전을 구하기 위해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
“그렇네요, 빨리 해치우는 편이 낫겠어요. 제 휴가도 거의 남지 않았고요. 그럼 언제 가죠? 지금 바로 가나요?”
조금 성급하기마저 한 소리다.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산으로 간다는 말은 했지만, 곧바로 산으로 출발할 수는 없다.
“지금 당장은 무리입니다. 준비도 없고, 계획도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일단, 저희는 밤에 갈 생각입니다.”
“밤이요?”
승현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밤에 간다고요? 산에요? 안 그래도 위험한데, 지금은 특히 더 위험할 텐데요.”
“소방관으로서 밤에 산에 가는 걸 권장하실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편이 낫습니다. 밤중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이쪽엔.”
시아의 말에 승현은 영 불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태주의 설명을 듣고는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일단, 저희가 산에 갈 때 주변에는 사람들이 없어야 해요.”
“그 산에 가는 게, 목격되면 안 되는 건가요?”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목격되면 안 되는 건 저희가 아니에요. 그 쿠네쿠네로 추정되는 무언가죠. 그건 보면 안 되는 종류의 무언가에요. 그러니 혹시나 마주칠지 모르는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돌아다니면 좋을 게 없겠죠?”
물론 이미 다 불타버린 산이니 누가 올 확률이 적다는 건 알지만, 기왕 하는 김에 좀 더 안전한 게 낫지 않겠냐는 말을 들은 승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은 아무래도 정신력이 튼튼한 편이신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봐도 멀쩡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렇네요. 다른 사람들도 같이 위험부담을 질 필요는 없겠어요.”
승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산에 갈 준비를 좀 하고 오면 될까요?”
“아, 아니요.”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마침 지금 말씀드리려던 거였네요. 다른 하나를 더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두 조로 나눌 생각이에요.”
“두 조요?”
“네. 그리고 손님은 여기에 남는 조에 계실 거에요.”
승현은 자신도 산에 가는 게 낫지 않은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태주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손님은 여기에 계시는 편이 나을 거에요. 그 쿠네쿠네인지 아닌지 모를 것은, 손님이 어디에 있든 나타난다고 하셨잖아요? 산 전체를 뒤져서 찾거나, 혹은 손님께 그것이 나타나거나. 이 중에 전자는 손님이 없어도 할 수 있지만, 후자는 없으면 안 되죠. 둘 다 하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어요.”
태주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무려 확률이 두 배인 이벤트인 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