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불길 속 무언가 (3)
태주는 표정을 조금 진지하게 고쳤다.
“이해할 수 없고 잊을 수 없다니,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렇다 쳐도 잊을 수 없는 건 불이 꺼진 지 이틀 정도밖에 안 된 일이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요?”
“아뇨, 평범한 게 아니에요.”
승현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제가 집중력이 그리 나쁘지는 않아요. 특히, 목숨 걸린 일에서 다른 짓을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이쪽 일 오래 한 사람은 다 그래요.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자기 목숨만 위험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동료들도 같이 위험에 빠트리는 거니까요.”
일종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일에만 집중하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기본적인 성향이라고 승현은 말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저는 불이 아니라 그 이상한 걸 계속 보고 싶어졌어요.”
이렇게 팔을 다친 것 역시 불을 끄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 하얀 무언가를 본 이후로 주변 상황에 집중하지 못해 다치게 된 것이라고, 승현은 말했다.
“그러니까 다행이라는 거에요. 저만, 그것도 작은 부상만 입고 끝이었으니까요.”
언제 넘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불타버린 나무들 사이에서, 정신을 놓고 있었다면 다친 이유는 사실 외부 요인 때문이라기보다는 정신을 놓은 본인의 탓이다.
승현은 조금 찌푸린 눈으로 말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어쩐지, 일하다 입은 상처 치고는 오히려 숨기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 보이시더니.”
“네, 뭐. 이 정도면 솔직히 불 끄다 다친 거라 하기도 민망하긴 하죠.”
승현 역시도 자신의 부상을 어떤 명예로운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승현은 침음성을 흘렸다.
“사실 그랬으면 안 된다는 건 알아요. 다시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당시에도 지금 이 상태가 계속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데도 불에 신경을 쓸 수 없었어요.”
조금은 더듬거리기도 하면서, 승현은 말했다.
“그래도, 그 생각을 하면서도 저는 그걸 계속 따라가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태주는 눈을 살짝 찡그리고 말했다.
“손님이 보기에, 그게 뭐 같았나요? 그러니까, 뭐랑 가장 비슷해 보였던 건가요?”
승현은 중얼거렸다.
“잘 모르겠어요. 굳이 따지면, 가게 앞에 세워두는 홍보용 풍선… 그게 풍선이 맞나요? 어쨌든 바람에 날리는 그런 것과 비슷한 느낌은 있지만, 그런 부자연스러운 느낌은 아니고 확실히 생명체라는 느낌이에요.”
“뱀 같은 움직임인가요?”
“뱀이라기엔 뭐랄까, 너무 꼿꼿해요. 다른 동물이랑 착각했다기에는 너무 크고 또 가늘어요.”
결국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고 그저 그 기묘한 인상만이 남았다면서 승현은 고개를 저었다.
“자세히 봐도 크기를 잘 모르겠어요. 원근감이 이상해요.”
처음엔 그게 무슨 작은 동물이라 생각했다. 아주 작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냥 불길에 휘말려 도망가지 못하고 죽어가는 짐승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 나무와 크기를 비교하기 시작하니 사이즈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일단 그 크기라면 분명히 나무 하나 정도의 크기는 되는 거예요. 작은 거 말고, 엄청나게 큰 종류의 나무 말이에요.”
그런 동물이 어디에 있겠냐면서, 승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태주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며 내용을 적었다. 그리고는 승현의 눈을 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본인이 보신 것에 대해 확신은 있으신 거죠? 잘못 봤거나, 혹은 그저 야생동물은 아니라는 자신은 있으신 것 같은데요.”
태주는 승현을 보며 물었다.
“보통은, 그냥 착각인가 하고 넘기잖아요?”
“으음, 아무래도 문제가 하나 더 있다면, 그 하얀 게 며칠째 보이고 있다는 점일까요.”
“며칠씩 보이고 있다고요?”
“지금도 가끔씩, 주변에 나타나요. 그 이상한 무언가가 말이에요.”
태주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되어서는 말했다.
“아니, 그것부터 말씀하셨어야죠.”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대체 며칠… 아니, 화재가 일어난 게 이틀 됐죠.”
태주의 자문자답을 들은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죠.”
“이틀 동안 그러면 계속 그런 걸 보신 거고요?”
“네. 물론 계속 보인 건 아니에요.”
승현은 차분하게 말했다.
“보통은 혼자 있을 때 나타나요. 시간은 아무래도 크게 의미 있는 것 같지 않긴 한데, 제가 잘 때도 나타나는 건지는 모르겠네요. 밤인지 낮인지는 크게 상관없는 것 같아요.”
꽤 자세하다. 태주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승현은 하던 말을 이어 했다.
“특별히 저를 해치려 들지 않아요. 그저, 원근감이 이상한 뭔가가 계속 같은 크기,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 같은 크기라는 말이에요, 어쨌든 그런 게 주기적으로 나타나요.”
설명하기가 어려운 듯 승현은 잠시 눈을 굴렸다.
“그러니까, 그 꿈틀거리는 게 어느 거리에 나타나든 같은 크기로 보인다는 말인가요?”
“네, 그게 정확하겠네요.”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멀리 있든,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든 간에 제 눈에 보이는 크기는 늘 일정해요. 영문을 알 수 없죠.”
꽤 자세하다. 이미 여러 번 본 상황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말이 계속해서 튀어나온다. 태주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진짜, 대체 왜 그 이야기부터 안 하신 건가요?”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 며칠 동안, 그걸 제외하고는 아무래도 별 이상이 없었어서요. 팔 고치고 돌아다니느라 바쁘기도 했고요.”
결국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이야기다. 태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실제로 팔 때문에 병원을 왔다 갔다 하기도 했을 텐데, 그보다 우선해서 오라고 하기도 어렵기는 하다.
“별 일 없으셨다니 다행이라면 다행이긴 한데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한테도 확신이 좀 필요했어요.”
“확신요?”
“사실, 처음엔 저도 열이 오르고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서 헛것을 봤던 건가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승현은 덧붙였다.
“전 소방관이에요.”
“네, 그렇죠.”
“그리고 소방관이라는 직업 특성상 끔찍한 꼴은 종종 봐요. 여긴 결국 그런 끔찍한 걸 견딜 수 있는 사람만 남죠.”
누군가가 위기에 처하면 가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누구 하나 크게 다친 상황을 보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좀 더 드물게 시체를 볼 때도 있다. 어쩔 수 없이, 그렇다.
“그나마 평범한 시체라면 그래도 이번에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야 할 정도예요. 그게 일상… 까지는 아니어도 꽤 자주 있는 일이죠.”
그렇기에 자신에게 있어 끔찍한 꼴을 보는 게 결코 드문 일이 아니라고, 승현은 말했다.
“물론 볼 때마다 끔찍하죠. 기분도 나쁘고요. 하지만, 자주 겪는 일이에요. 자랑은 아니지만, 이제 와서 큰불이나, 그 안에서 산채로 타 죽는 야생동물을 보는 것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어요. 심지어는, 타고 남은 잔해만 봐도 그게 뭔지 대충 알 수 있죠. 많이 봤으니까요.”
승현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어느 부위인지, 어떻게 죽었는지, 이런 상처는 어쩌다 생기는 건지. 전 다 알아요. 실제로 꽤 자주 보고요. 그러니까, 이제 와서 그 불길 속에서 무언가가 타죽는 걸 본다고 그걸 제가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의 정신상태는 아니에요.”
소방관도 사람인 이상 무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익숙해질 수는 있다.
그리고 그런 끔찍한 광경에 한없이 익숙해진 승현이 보기에, 이건 자신이 단순히 충격받아 일어난 일이 아니다.
“며칠 지나면서 복기해 보니 알겠어요. 이건 그런 단순한 정신적 충격이 아니에요. 그냥, 그냥 제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뿐이에요. 그냥, 그럴 뿐이에요.”
그저 그것뿐이라고, 승현은 찌푸린 눈으로 말했다.
“평소대로라면 당장 다음날 잊어버려도 큰 문제가 없을 법한 그런 문제에요. 그런데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보인다면…. 그건 뭔가 이상하잖아요?”
승현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래서 왔어요. 뭔가 제가 잘 모르는 것이 정말로 있는 것 같아서요.”
태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제 발로 멀쩡한 정신상태로 이곳에 온 데다, 그런 비현실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설득을 할 필요도 없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로는 많이 편하다.
“이미 어느 정도 자기가 본 게 이상한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곳에 오셨다는 말이네요. 어떤 의미로는 굉장히 좋은 손님이긴 한데요.”
하지만 이런 사람이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다. 스스로 천천히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손님 역시 이틀이나 지나서 왔다.
“그래요, 그래도 며칠 안에 오셨으니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그게 그렇게 신경이 쓰이셨나요? 눈앞에 산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는 불길이 있는데도요?”
태주의 질문을 들은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랬어요. 도저히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죠.”
승현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큰 불이었어요. 평소라면 절대로 주의를 놓치지 않을 그럴 만한 불이요. 그런데도 저는 그때 불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 이상한 기분의 원인은 그 하얀 무언가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는 거네요.”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불에 대한 건, 물론 말하려 한다면 더 말할 수 있는 거야 많지만 굳이 더 말씀드릴 만한 게 없어요. 어쨌든 꺼진 불이기도 하고요.”
물론 궁금한 게 있다면 얼마든지 대답할 수는 있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태주도 지금 당장 거기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다.
“하얗고, 길다랗고, 꿈틀거리는 그 무언가가 며칠째 보인다. 이게 문제의 핵심이라 보면 되는 거겠죠?”
“네.”
승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는 이어서 말했다.
“며칠 동안 그걸 보시는 내내 같은 현상이 있었고요?”
“뒤로 갈수록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네.”
도저히 그것을 보는 동안은 신경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고, 마치 빨려 들어가듯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고 만다고 승현은 말했다.
“이게 뭔지, 아시겠나요?”
“글쎄요. 아무리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조금?”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누나, 알겠어요?”
“글쎄.”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것만 가지고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
“으음….”
잠시간의 침묵이 있던 도중, 승현이 말했다.
“사실, 하나 아직 말씀 안 드린 게 있어요.”
“뭔가요?”
“여기 오기 전에, 미리 좀 알아본 게 있거든요.”
“미리 알아봐요?”
조금 찌푸린 태주의 표정을 본 승현은 황급히 덧붙였다.
“알아요, 의사들은 늘 환자들한테 증상을 검색하지 말고 오라고 하죠. 뭔가 착각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람이 자기 증상을 검색해 보는 건 당연하잖아요? 궁금하니까요.”
무슨 기분인지는 알겠다. 태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이야기나 들어보죠. 뭐 같으셨나요?”
“쿠네쿠네요.”
“쿠네쿠네요?”
태주는 눈을 찌푸리고 말했다.
“하필이면 또 그런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