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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150화 (150/269)

15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극장의 유령 (17)

공연은 예정대로 재개되었다.

첫날의 커튼콜이 끝나고 난 뒤, 태주는 미연에게 다가가 말했다.

“잘 봤어요.”

미연은 태주의 말을 듣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정말요?”

“네. 정말요.”

“이런 대화 전에도 비슷하게 한 거 같은데?”

미연의 말을 들은 태주는 잠깐 웃고는 말했다.

“확실히 조금 아쉽긴 하네요. 이번 이후로 빠른 시일 내에 공연을 재개하기는 어렵다니까 말이에요.”

“당장은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어떻게든 할 거예요. 다른 일을 하다 올 수도 있겠죠. 다른 장르로 넘어가서 연기를 조금 더 하다 와야 할지도 모르고요.”

그러나 언젠가는 분명히 돌아올 것이다. 미연은 그런 결의에 찬 눈이 되었다. 태주는 질문했다.

“배우로서의 최종적인 목표가 뭐에요?”

“목표요?”

미연은 웃었다.

“이런 극장 하나 갖는 거요.”

“와.”

태주는 입을 벌렸다. 자신도 모르게 한 일이다.

“힘든 거 보셨으면서.”

“힘들어야 재밌죠?”

“재미라….”

확실히 태주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 같기도 하다.

“전 그게 재미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런 건 모르겠고 드릴 건 있어요.”

태주는 웃으며 말했다.

“이거,”

투명한 유리구슬이다.

“앗, 원래는 까만색이었던 그거 맞죠?

“네. 그거에요. 기념으로 가지세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신반의했는데, 정말로 없앴네요. 좀 놀랐어요.”

“정말 없앴죠.”

미연은 웃었다.

“나는 죽어도 연극은 안 죽어요! 무적이야!”

* * *

“나 이렇게 놀아도 돼?”

공연이 재개된 첫날. 연극을 보고 나온 월이는 머리 뒤로 손깍지를 껴고는 스트레칭을 했다. 설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나 이번에 너무 아무것도 안 하는 거 같아서.”

“나도 아무것도 안했는데?”

“너는 뭐… 방학의 반 정도를 나가서 고생하고 왔잖아. 나는 방학 중에 거의 아무것도 안 했어.”

저번에 한 일도 뭘 했다기보다는 놀다 보니 끝난 느낌이다.

“잘됐네! 쉬고 싶었던 거 아냐?”

“…맞긴 한데.”

정작 또 아무 일도 안 시키니 눈치가 보인다. 이번에도 연극이나 한번 보러 오래서 봤을 뿐이니, 정말로 너무 노는 거 아닌가 싶다.

“잘 봤냐?”

그새 극단 사람들과 대화를 하던 태주가 하던 이야기를 끝냈는지 돌아왔다.

“잘 봤어.”

“네! 잘 봤어요!”

“재미는 있었고?”

“볼만하긴 했는데 연극이 재미있냐면, 아니.”

월이는 냉정하게 말했다.

“저, 저는 그래도 볼만 했는데요.”

“뭐야, 잘 봤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태주의 말을 들은 월이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내용은 확실히 재미가 없더라고.”

월이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근데, 개인기 구경이라 해야 하나. 배우들 연기하는 거 구경하는 게 생각보다 재밌어.”

개인기 구경이라. 생각보다 정확한 평가다. 엄청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볼만은 했다는 게 월이의 결론인 셈이다.

“뭐, 재미라는 건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른 법이니까.”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월이는 깜짝 놀라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깜짝이야!”

거의 일 미터를 뛰어올랐다. 천장이 있었으면 분명히 머리를 박았을 만한 그런 높이다.

“어허, 참. 내가 더 놀라겠다.”

전혀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소장은 말했다.

“언제 왔어요!”

월이는 소장에게 물었다.

“언제라니? 처음부터 있었는데?”

“연극 볼 때 없었잖아요!”

“그야, 나는 여기서 딴짓하고 있었으니까.”

“딴짓이요?”

"늘 내가 하던 일 있잖아. 아무래도 이번에 받을 건 평소랑은 느낌이 많이 달라서.”

“신기하네요.”

태주는 말했다.

“위조 신분도 그냥 저한테 직접 주라고 대충 던져주신 분이.”

“그거 위조 아니야. 가짜라는 증명이 불가능하니까 진짜지. 어쨌든, 이번엔 뭘 받았는가 하면.”

소장은 웃으며 말했다.

“이 극장을 받았어.”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극장이요?”

“응.”

“어디다 쓰게요?”

“어디다 쓰긴, 언젠가 쓰겠지. 부동산 아니냐?”

“어, 아니.”

말도 안 되게 큰 걸 받아왔다.

“돈으로 안 받는 게 우리 모토 아니에요?”

“돈 아니잖아.”

“말 돌리지 마요. 재산이잖아요?”

“그래 뭐. 돈 욕심 나서 이걸 받은 건 아냐. 정확히는, 대여에 가까운 형태야.”

“대여요?”

“그래. 이런 건 어차피 팔려고 해도 바로 팔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결국은, 이 극장의 진짜 주인이 나타나기 전까지 임시로 맡는 느낌에 가깝다고 소장은 말했다.

“나중에 이곳을 한번 쓸 일이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먼 미래에 다시 누군가에게 헐값에 팔아넘길 생각이지만 말이야.”

소장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뭐 설령 안 쓰더라도 상관없지. 나중에 심심하면 여기서 놀던가.”

월이는 어처구니 없는 눈으로 소장을 쳐다봤다.

“됐거든요? 여기 뭐 놀 게 있다고.”

“그런데 그러고 보니 다 와도 됐던 거에요?”

설이는 소장에게 물었다.

“늘 사무소에 한 사람은 남아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왜냐하면, 한 사람 정도는 거기에 있어야 거기에 있는 장치가 유지가 되거든.”

“그런데 왜 다 나왔어요?”

설이는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왜긴.”

소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거기 한 사람 있으니까 그렇지.”

“한 사람?”

“잠시, 나 대신 거기 앉아 있어 주기로 한 사람이 있거든.”

“외부인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니에요?”

월이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는 그제야 뭔가 잊어버린 게 떠오른 것처럼 주변을 돌아봤다.

“근데 언니는 어딨어요?”

소장 대신 태주가 답했다.

“먼저 갔어.”

“왜 혼자 먼저 갔는데?”

“우리 있는 데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태주는 살짝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설마 지금도 싸우고 있진 않겠지.

* * *

어색한 분위기다. 시아는 어설픈 실력으로 커피를 내렸다. 무당은 커피를 한 번 홀짝이고는 말했다.

“…맛은 별로 없구나.”

“초보라 말입니다.”

시아는 처음보다는 많이 누그러진 말투로 툭 던졌다.

“화해가 하고 싶었습니까.”

“…아니.”

“거짓말 마십시오. 이미 우리 소장에게 물어보고 왔으니.”

두 사람만 있으니 굳이 거짓말할 필요 없다고, 시아는 말했다.

“그 인간이 그걸 순순히 대답했다고?”

무당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예, 성격상 대답할 사람은 아니나, 대답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꽤 비싼 것을 지불했으니까 말입니다.”

“비싼 것이라.”

무당은 한숨을 쉬었다.

“뭔지는 몰라도, 정말로 그런 것을 줬나 보구나.”

거짓말은 의미가 없겠다면서, 무당은 한숨을 쉬었다.

“화해를 원하는 거였다면, 왜 말로 하지 않았습니까.”

무당은 웃지 않으며 말했다.

“나는 전통을 이어나가는 사람이니 말이다. 여전히 나는 그때 그 행동이 잘못했던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뒤를 이을 사람을 구하는 것은 내 의무였고, 그 의무를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무당은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는 선이라는 듯 말했다.

“심지어는 네게 재능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무당 노릇 할 생각이 없다!’라는 소리를 하고 뛰쳐나간 시아에게 무당은 화를 냈었다.

“그래. 그게 문제였지. 나는 네가, 당연히 나를 이어받을 거라 생각했던 거야.”

겨우 그런 정도의 생각밖에는 하지 않았으니, 갑작스럽게 시아가 반발했을 때 그것을 배신으로 여겼다.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은 못 하고, 그저 화가 났던 거야.”

잘못이라 한다면 그쪽이었다고. 무당은 말했다.

“네가 뛰쳐나갔을 때, 그저 나는 네가 나를 배신했다 느꼈다. 화가 많이 났었지. 나 정도 되는 사람이 분노에 차 움직이고 있다면, 그거야 그 태주라는 꼬맹이가 오해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거의 악귀의 모습에 가까워 보이지 않았을까. 무당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글쎄.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알겠더구나. 너는 한 번도 내가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던 적이 없었어. 그저, 내가 가르치기에 배웠을 뿐이었어.”

미연과는 정 반대다.

“재능이 있음에도, 나는 너의 의지를 만들지는 못했던 게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녀석이 부러웠다.”

본인이 하던 것을 이어가겠다고, 누군가 찾아와 알아서 이어가는 것이 무당에게는 정말로 부러운 일이다.

“그런 녀석이 스스로 유령을 만들어 놨으니 그것을 내가 처리할 수는 없는 일이지.”

두 사람은 무언가를 이어나가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은 있었지만, 그 과정과 결과가 너무나도 달랐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돌아오라 이겁니까?”

시아는 은은한 짜증이 섞인 눈으로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이 든 무당은 조금 피곤한 얼굴이 되었다. 그 얼굴에서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기에, 시아는 잠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언제부터, 어머니는 이렇게 주름이 많았던가. 지금까지는 화가 앞서서 눈치채지 못했다.

“네가 그러고 싶지 않다면, 그래. 나는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하고 싶구나.”

어차피, 원치 않는 채로 이런 것을 이어가는 것도 못 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누군가가 와서 알아서 이어가고 싶어 하는 거라면 나도 별 고민이 없겠지만 말이다.”

만약 무당이 시아에게, 억지로 자신이 가진 것을 물려준다 한들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네가 싫은데도 이어간다면. 그다음 사람도 싫은데 이어간다면. 그건 의미가 없는 거겠지.”

이미 그건 무언가 이상한 꼴이다.

“됐다. 어차피 마지막까지 이어갈 수 없다면, 차라리 그 끊는 것을 내가 하는 것이 맞겠지.”

무당의 말을 들은 시아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제가 가장 싫었던 게 뭔지 아십니까? 결국 저도 어머니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겁니다.”

옷을 입어도, 서양식으로 입는다. 담배를 피워도 전자담배를 고른다.

하지만 이미, 거기에 신경 써서 반대로 간다는 것 자체가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주녀석이 말하더군요. 진짜 그런 소리 하려면 담배나 끊고 말하라고.”

반쯤은 염려 섞인 농담에 가까운 말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농담이 아니다.

“어렵더군요, 이거. 어머니와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별로 다를 것도 없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적성이란 것이 무섭습니다.”

그렇게나 어머니와 다른 일을 하겠다고 호기롭게 나와 놓고. 가면 갈수록 비슷한 일을 한다.

“결국 이럴 거라면 나는 왜 뛰쳐나온 걸까 싶기도 하고 말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다.

“닮은 꼴인거지.”

“예, 그렇지요.”

소장은 말했다. 어차피, 두 사람은 서로 같은 걸 생각하고 있다고.

“지나고 보니 별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시아는 슬쩍, 어머니의 컵 안쪽을 봤다.

좋아하지도 않는, 그리고 잘 만들지도 못한 커피를 무당은 전부 마셨다.

“가끔씩, 가끔씩 오시는 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다시는 저한테 강요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자주 오란 말은 안 하는구나.”

농담처럼 던지는 무당의 말에, 시아 역시 농담처럼 말했다.

“솔직히 그럼 우리 사이에 또 싸우지 않겠습니까?”

“그래, 가끔 오마. 그, 네가 애동으로 기르는 그 아이에 대해 뭔가 질문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고.”

“뭐, 그런 게 얼마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중에, 그런 게 있다면 여쭤보지요.”

* 다음이야기 *

“비다! 비야!”

주변에서 기뻐하는 소리가 들린다. 당연하다. 분명 제때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대형사고가 되었을 거다.

징그럽게도 타오르던 거대한 불길은 이미 산 하나를 통째로 태워 먹었다. 그리고, 지금 이 비가 오지 않았다면 몇 개나 되는 산을 더 태워 먹었을지 알 수 없다.

그 거대한 불길 앞에서, 소방관인 승현은 그저 멍하니 있었다.

“뭐해!”

옆에서 소리를 치는데도 승현은 멍하니 불길을 쳐다봤다. 그 꼴을 보다 못한 동료가 승현의 어깨를 툭 쳤다.

“아?”

“뭐해! 아직 불 다 꺼진 거 아냐!”

동료의 말이 맞았다. 지금 이곳은 이러고 있을 정도로 안전한 장소가 아니다.

승현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그래.”

“정신 놓지 마!”

동료는 그렇게 말한 뒤 뛰어갔다. 승현은 뒤를 따랐다.

“그건 뭐였던 걸까?”

아무도 듣지 못할 질문을 중얼거리면서 승현은 동료를 따라나섰다.

그 꿈틀거리던 하얀 것은 대체 뭐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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