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극장의 유령 (16)
노인은 극장 앞에서 홀로 서 있었다. 친구가 한 말이 아니었다면 노인은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 일궈온 것의 유령이라. 내 평생에 여길 들어가기 싫었던 적은 처음이군.”
일종의 책임감 때문에 오기는 했으나, 유령을 보고 싶지는 않다.
“끔찍한 일이야.”
여기에 처음 들어온 것이 언제였던가. 노인은 기억한다. 그걸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첫사랑이 연극을 좋아해서, 라는 바보같은 이유로 연극을 보러 가서, 정작 그 사람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 연극을 봤다.
별 기대 없이 봤던 연극은, 노인의 생각보다도 훨씬 재미가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이렇게 인생을 꼬라박기에는 어처구니없는 이유지만, 동시에 웃음이 날 만큼의 추억이다.
“원, 몇십 년 전 일인지.”
노인은 천천히 극장의 문을 열었다. 마치 처음 이 극장에 들어가는 날처럼 긴장이 된다.
“음?”
아무것도 없다. 안에서 들려야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정도는 아주 작게 들리지만, 사람의 목소리나, 무언가를 테스트하는 소리 같은 것은 들리지 않는다.
적막하다. 그렇게 표현해야 한다. 도저히 리허설 직전의 활기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연습 중이 아닌 건가?”
익숙한 공간, 낯선 분위기. 노인은 처음 이 장소에 온 날처럼 두리번거리면서 극장 안쪽으로 향했다.
이 극장에서 이렇게 사람과 마주치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노인은 큰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도 없나?”
대답은 없다.
천천히, 노인은 복도를 지나 극장 객석이 있는 문을 열었다.
노인은 눈을 찌푸렸다.
“너무 뻔한 연출이야.”
그저 한가운데, 이곳에서 가장 무대가 잘 보이는 그 좌석에 스포트라이트 하나만 놓여 있다. 노인은 헛웃음을 한 번 지었다.
뻔한 연출이라 하기는 했지만, 굳이 그곳에 앉지 않을 이유가 없다. 누군지는 몰라도, 꽤 재미있는 일을 꾸몄다.
약간의 기대. 노인이 그곳에 앉자 무대 위에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닫혀 있던 막이 올랐다.
지금 이건 리허설 같은 게 아니었다. 정말로 공연이었다.
“관객도 없이 무엇을 하고 싶은 거냐.”
노인은 중얼거리다가 곧 깨달았다.
“아니, 내가 관객인가.”
평소라면 스스로를 관객으로 취급하지 않는 노인이지만, 지금만큼은 다르다.
지금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연극은 원래 노인이 감독하던 것과는 다르다. 배우들의 행동이, 대사들이, 연출이 조금씩 변해 있다. 내용은 같으나, 결코 같은 연극이 아니다. 이건 확실히 노인의 손에서 벗어난 무언가다.
다 아는 얼굴의 사람들이,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낯선 무언가라도 본 기분이다.
무당은 어제 분명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평생 일궈온 것의 유령이라면 보고 싶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공연은 자신이 평생 하던 것이 맞는가.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난 모르겠네.”
이야기의 줄기는 따라간다. 하지만 완전히 애드리브다. 잘 짜여진 그런 것이 아니라, 완전히 날것의 무언가다.
이윽고 미연이 홀로 남고, 불이 꺼졌다. 이것이 연출인지, 혹은 유령이 한 짓인지 노인은 알 수 없다. 이미 노인이 준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진행되고 있다.
맨 처음 공연을 중단해야 했던 바로 그 상황이 지금 다시 재현된 것이다.
“이게 정말 유령이 나타난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노인의 혼잣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미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령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이건 애드리브도 아니다. 그저, 그냥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일 뿐이다. 노인이 당황한 순간, 미연의 목소리는 크게 울려 퍼졌다.
“이곳에 유령은 없어요. 최소한 지금은요.”
그 말에 노인은 눈을 살짝 찌푸렸다.
“그렇다면 왜 멈췄지?”
노인의 질문에 미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지금 하고 있는 것도 연극이에요.”
“감독과 대화를 하는 게?”
“지금은 관객이잖아요?”
미연은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알기로는 그래요. 관객이랑 대화하는 것도 연극이에요.”
“틀린 말은 아니야. 나는 선호하지 않지만.”
노인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한 번 해보라는 태도다. 그리고 난 뒤, 보이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노인은 말했다.
“이런 걸 왜 준비했지?”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었어요.”
“질문?”
“지금 한 거, 재미가 있으셨나요?”
미연의 질문에 노인은 눈을 살짝 찡그린 채 말했다.
“완성도가 낮다. 그저 즉흥으로 계속 주고받기를 한 모양이구나.”
“다행이네요. 재미없다는 이야기는 안 하시는 거 보면. 어제저녁부터, 다 같이 준비한 거예요. 즉흥적으로요.”
전한 이야기는 하나뿐이다.
“내일, 리허설이 아니라 그냥 공연을 하자고 사람들한테 말했어요. 갑자기 말이에요.”
“그냥, 아무런 준비도 없이?”
“네. 시아 씨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정도는 도움을 주셨지만요.”
그냥 가능한 사람만 와서, 단장님 앞에서 한번 이런 걸 해 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한 사람도 거절하지 않았다.
“하루 만에, 완전히 즉흥적으로 해 보자고 말했어요. 대본을 무시하고, 이렇게 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하는 식으로 해보자구요. 조명이나, 배우나, 다른 설비들도 모두 다 즉흥이에요. 줄기만 따라갔고요.”
재즈로 따지면 잼 같은 것, 힙합으로 따지면 싸이퍼 같은 것이다. 큰 줄기는 따르되, 다 같이 즉흥으로 합을 맞출 뿐이다. 그러니 당연히 극으로써의 완성도가 낮다.
“그러니 완성도가 낮았나. 하지만, 그래. 그런 것 치고는 재미는 있었구나.”
“그거면 됐어요. 저는 정말로 그렇다면 후회가 없어요.”
“후회가 없다고?”
“이렇게 이 사람들과 여기서 하는 연기가 전 너무 재미있어요. 안 하고는 못 배기겠어요. 그리고, 사실 다들 그래요. 여기 사람들은 말이에요.”
미연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연극이 죽었다고 생각하세요?”
단도직입적인 질문이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최소한, 내가 하던 그런 공연은 죽었다. 그리고 그걸 인정하지 않아서 이 꼴이 됐지.”
“그런데 저는… 모르겠어요.”
미연은 솔직히 말했다.
“저는 공연이 한창 잘 나갈 때를 몰라요. 단장님의 전성기가 있었다고 듣긴 했지만, 그때 대체 어떤 느낌이었는지 저는 짐작도 잘 안 가요.”
본 적이 없어 상상 자체가 안 된다.
“그리고, 그런 제 입장에서는 연극은 원래 이런 거예요. 알면서 시작했어요. 그리고, 사실은 다들 그럴 거예요.”
노인이 무언가를 속인 것이 아니다. 그저, 미연은 여기에 온다면 힘들 것을 알면서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뿐이다.
“옛날에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죠. 우연히 본 연극이 너무 재미있어서, 시작했다고 말이에요.”
그냥 그런 이야기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미연의 말과 함께 불이 켜졌다. 노인은 눈부신 듯 눈을 찡그리고는 말했다.
“언제?”
모두가 무대 위에 올라와 있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어느새 무대 위에는 극단의 전원이 올라와 있다.
배우뿐만이 아니라, 다른 역할을 맡던 사람까지 전부.
“언제부터?”
“불 꺼진 뒤 한 사람씩 올라왔어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그걸 어떻게 잘 해주시더라고요. 방법은 저도 몰라요. 뭔가 부적가지고 휙 하면서 해주시던데?”
미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봐요. 여기에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다 있어요. 억지로 남은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단장님이 아니라면 연극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여기에 있어요.”
노인이 잡아둔 것이 아니라, 그저 연극을 하고 싶어서 모인 사람들.
물론, 상황이 좋지 않다. 언제까지나 여기서 연극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른 일을 했다면. 저도 다른 곳에서 다른 연기를 했다면. 상황은 좀 나았을지도 몰라요. 아마 실제로 몇 푼이라도 더 벌었겠죠. 하지만, 대신 저흰 후회가 없어요.”
미연은 말했다.
“늘 뭔가 아쉽죠. 하지만, 하는 데 까지 못해본 후회는 남지 않았어요. 단장님 덕분에요.”
그리고 그렇기에 연극은 끝나지 않는다.
“봐요,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연극을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아마, 단장님이 재미있다고 말씀하신 이번 공연을 보고 또 누군가가 연극을 시작할 수도 있을 거예요.”
갑자기 노인은 눈물이 났다. 연극을 시작한 뒤 평생, 눈물을 흘린 적 없던 노인은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은퇴할 때가 되긴 되었구나.”
노인은 흐르는 것을 닦지도 않으며 말했다.
“나는 이 극장에서 죽을 거라고, 한창 젊을 때 그렇게 생각했는데.”
“안 죽어요.”
미연은 당돌하게 말했다.
“고작 극단 하나가 잠시 쉴 뿐이고, 연극은 죽지 않아요. 애초에 연극이란 건 생명체가 아니잖아요?”
“그래, 그렇지.”
“아마 상황이 좋지 않으니 쉬다가, 누군가가 다시 시작할 거에요. 아마 저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일지도 모르지만요. 확실한 건 누군가 이걸 다시 시작할 거에요.”
노인은 그제야,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러나 그 공연을 본 이에게는 잊혀지지 않을 무언가를 남기는.
그렇게 노인만을 위한 공연은, 막을 내렸다.
* * *
“뭔가 아쉽군.”
시아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나도 같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닐걸요.”
태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것은 온전히 저기에 빠진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는 연극이다.
“저희가 봐서는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죠.”
“재미로 보려던 건 아니었다만.”
변명하듯 말하는 시아에게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뭐, 하지만 본 공연이 제대로 시작한다면 한번 우리 애들도 데려와서 보면 좋겠네요. 마지막 장면도 보고 싶고, 그렇지 않더라도 한 번쯤은 볼 만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래. 한 번쯤 볼 만 하겠지.”
시아는 살짝 웃었다.
“왜 웃어요?”
“아니, 그냥.”
시아는 조금 미묘한 웃음으로 말했다.
“마치 학부모처럼 말한다 싶어서 말이다.”
명백히 놀리는 말이다. 태주는 웃으며 말했다.
“학부모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태주는 말 나온 김에 이야기했다.
“누나 어머니랑은 대화를 좀 더 해봤어요?”
“…아니. 이제 해야지.”
바보가 아니라면 알 수 있다. 어머님은 확실히 시아와 화해하고 싶어 한다.
“본인이 해결할 수도 있는 일을 굳이 와서 말을 걸었어요. 누나가 싫어할 만한 짓은 일부러 안 했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의 문제를 일부러 가져다줬어요.”
그 뿐만이 아니다. 딸의 주변 동료들에게 살갑게 대하고, 이번 일을 해결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한다. 이쯤 되면 누가 봐도 뻔하다.
“그냥, 이쯤 되면 충분한 거 아니에요? 솔직히 그렇게나 오래 꽁해 있었으면 이젠 충분하지 않아요?”
더 이상 새우 등 터지는 것은 사양이라고 태주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거기다 누나도 어머님한테 잘 보이려 드는 거 티 났거든요?”
굳이, 자신이 해결하겠다 말한다. 어머니가 나타난 이후에는, 좀 더 어려운 기술을 쓴다.
“그냥 져 주고 화해하면 안 돼요?”
“시끄러.”
시아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하나 써먹은 게 있단 말이다.”
“어, 진짜요?”
태주의 말을 들은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하긴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