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극장의 유령 (15)
“이게 다예요?”
미연은 의아하다는 듯 질문했다.
“더 보여드릴 게 없어서 허무하지만, 네. 당장은 그게 다예요.”
태주는 슬쩍 시아 쪽을 바라보곤,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부적 같은 거 안 해요? 하신다면서요?”
미연은 잔뜩 쫄아 있던 모습 그대로, 뭔가 억울한 듯 물었다.
“네? 할 수 있다고 했지, 이번에 한다고는 안 했잖아요. 고작 이런 정도의 유령에 굳이 어렵고 복잡한 방법을 쓸 필요가 없죠. 여기 사람들은 프로라구요.”
“…뭔가 실망이에요. 잘 됐다고 하시니 다행이긴 한데.”
유령을 직접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생각보다 너무 굴곡이 없으니 미묘한 기분이 된 모양이다.
조금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숨기지도 않은 미연은 이어지는 태주의 말을 듣고는 조금 긴장했다.
“글쎄요, 진짜 끝은 아니에요.”
"어, 다 끝난 거 아니에요? 유령?”
“‘당장은’이라고 말씀드린 거였죠. 애초에 저기에 유령이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저 유리구슬처럼 되어버린 유령을 본 미연은 고개를 한 번 더 갸웃거렸다. 태주는 이어 말했다.
“유령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저 저기 갇혀있을 뿐이죠. 유령은 극장에서 나간 적이 없다고 말씀드렸죠?”
“그랬죠.”
“그래서 써먹은 방법이에요.”
나갈 생각이 없어서 바깥으로 쫓아 보내기가 어렵다면, 반대로 점점 유령이 있을 만한 공간을 좁혀 나간다.
“일종의 역발상이죠. 간단한 방법이에요.”
처음에는, 건물 하나 정도의 경계에서, 다음에는 공연을 하는 이 객석 정도의 크기로 점점 더 그물망을 조인다. 그렇게 조금씩 안쪽으로 유인하고 행동반경을 제한하다가, 마침내는 이런 작은 공 안에 가둬 버린다.
“간단… 한 건가요? 이게?”
“네. 쫓아내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방법이죠. 꼼꼼해야 할 필요는 있지만요. 어쨌든 이렇게까지 해 놨으면 유령은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잘 모르지만,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미연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가두는 거로 끝이에요? 또 그 전에 한 질문들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거고요?”
질문이 두 개다. 태주는 뒤의 질문부터 대답했다.
“질문들에 무슨 의미가 있었냐고요? 아주 의미가 있었죠. 유령의 행동 방식이나, 약간 애매했던 부분들을 알 수 있었고요.”
태주의 말을 들은 미연은 고개를 한 번 더 갸웃했지만, 이어지는 말에 눈을 조금 찌푸렸다. 태주는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게다가, 왜 가두는 데서 멈췄는가 하면 저 유령은 제삼자가 멋대로 없애버려도 될 그런 게 아니거든요.”
“멋대로 없애면 안 된다니요?”
“그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나 조금 해 볼까요?”
유령이 든 유리구슬을 쳐다보며, 태주는 말했다.
“누나는 유령이 나타난 이유가 단장님의 아쉬움 때문이라고 했어요.”
연극이라는 장르가 죽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 그것이 이번에 유령이 나타난 이유라고 태주는 설명했다.
“…그건.”
“그럴듯하죠?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가지 설명되지 않는 게 있어요.”
시아의 결론은 거의 정확하기는 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박수는 그렇다 쳐요. 연극에 대해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왜 하필 유령은, 당신만을 지켜보고 있었을까요?”
미연은 침묵했다.
시아는 노인이 미연을 붙잡은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과정을 고려한다면 그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재미있는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유령은 여기에서 나가지 않아요. 그리고 미연 씨도 그렇죠. 물론 잠시 생필품을 구하러는 나가지만, 기본적으로 이 장소에서 나가지 않아요. 놀러 나가거나, 다른 일을 하러 가거나. 어느 쪽도 하지 않더라고요.”
고작 며칠만 본 것이라고는 해도 충분히 이상하다.
“그래서 여쭤봤죠. 부단장님께 말이에요.”
그래서 태주는 부단장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혹시 바깥에서 미연씨를 본 적 있었느냐고.
“그러고 보니 한번도 밖에서 만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꽤 오랫동안 함께 하셨을 텐데 말이에요.”
“전 나갈 필요도, 이유도 없으니까요.”
미연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요. 유령이라면 모를까 사람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밖에 나갈 이유가 있어요. 괜히 사람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가두는 것이 형벌인 게 아니라고요.”
그럼에도 바깥에 나가지 않을 이유는 둘 중 하나뿐이다. 안에 있어야 할 너무나도 중요한 이유가 있거나, 바깥을 너무나도 두려워하거나.
“하지만 연극 하시겠다고 집도 나오셨다고 말씀하신 분이 그게 두려울 리는 없으니,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죠.”
누군가 강요하지 않아도, 계속 이 안에 살면서 생각날 때마다 연습을 한다. 연극에 인생을 바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미연은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표현이 적당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생을 갈아 넣는다… 고 표현할 수 있을 거예요.”
노인을 제외한다면, 이 장소에서 가장 노력하는 사람은 확실히 미연이다.
“미연 씨도 이미 알고 있죠? 미연 씨는 바보가 아니니까요. 연극이라는 장르를 계속해 나가는 게 인생을 낭비, 물론 실례되는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이죠. 어쨌든 다른 장소에서 다른 연기를 해야 할 상황이 곧 닥치고 말 거라는 걸 미연 씨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생각하려 할 때마다 유령이 나타나 막는다.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그것을 마치, 두려워하는 것처럼.
“재미있는 일이에요. 사람이 유령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유령이 사람을 두려워하다니.”
미연이 이 자리를 뜨는 것이야말로,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말이기에, 유령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미연이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시아는 유령의 이 행동을 노인의 억지 때문이라 생각했다. 미연이 괜히 이어받을 필요가 없는 것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그렇긴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
“누나가 간과한 게 그거에요. 미연 씨는 스스로 이곳에 왔어요. 따지고 보면 단장님은 예상치 못한 면접을 했을 뿐이니까요. 그러니, 왜 뽑았는가를 단장님에게 묻는 건 저는 조금 잘못 짚었다고 봐요.”
노인이 고집을 부려 미연을 붙잡고 있었다기보다는, 노인이 부리던 고집이 결국 누군가에게 닿았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이 유령의 지분의 반 이하는 다른 사람들 거죠. 그리고 그 나머지 중에서는 미연 씨의 비중이 가장 높을 거고요. 처음부터 듣지 않으셨던가요? 유령이란, 정말 억울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억울할 거라 생각하는 것이라고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 말이에요.”
장르의 죽음을 억울해한 것은 한 명이 아니다. 미연은 눈을 찌푸렸다.
“사실은 저도, 연극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으시다는 말인가요?”
“아닌가요?”
모두가 안다. 이 극단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당장 연극의 인기가 반등할 여지는 없어 보여요. 그러니 부업이라는 표현을 누나도 쓴 거겠죠.”
“그래도 전 아직 끝났다고 생각 안 해요.”
“네, 그건 저희가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죠. 저흰 연극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니까요.”
그렇기에 유령을 제삼자가 잡으면 안 된다. 그 유령을 외부 사람이 퇴치해버리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기회의 박탈이 되어버리고 만다.
“저희가 유령을 알아서 처리해 버리면, 그건 저희가 멋대로 연극이 죽었다 판정내리는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그럼 그걸 어떻게 하는데요?”
미연의 찌푸린 눈을 본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글쎄, 아직 연극이 살아있다는 증명을 해 보세요. 그럼, 유령이라는 건 애초부터 없었던 거잖아요?”
어려운 일이다. 미연은 순간 입을 벌렸다.
“아직 연극은 살아있다고, 이곳의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고 믿게 만드실 수 있다면 유령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던 거에요.”
태주는 눈빛으로 물었다.
할 수 있겠냐고.
* * *
미연을 뒤로 한 채, 두 사람은 극장을 나섰다.
“나도 나지만, 너도 너대로 끔찍할 정도로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는구나.”
무당은 태주에게 말했다. 태주는 어색한 미소로 말했다.
“끔찍하다뇨.”
“끔찍하지.”
무당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떤 의미로는, 시아가 처음에 끝내려던 대로 끝내는 편이 여러 사람 행복했을지도 모르지 않니?”
“음, 글쎄요.”
태주는 무당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전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한 사람이 죄다 떠안고 십자가에 매달리면 현실의 문제가 다 해결이 되나요?”
“위험한 소릴.”
무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글쎄. 네가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다. 사람들에게 선택지를 주는 편이 더 인도적인 것 같다는 말이구나. 한 사람이 아니라.”
“정확히는, 모두가 다 함께 고민할 문제라 생각하는 거죠.”
태주는 잠시 침묵하다가는 말했다.
“‘이 정도면 됐어. 잘 했어. 다른 경쟁자들이 많아졌고, 연극은 돈이 안 돼. 그러니, 이 정도면 우리는 할 만큼 했어. 더 손해보기 전에 이쯤 해서 접자.’ 이게 평범한 생각이겠죠.”
다들, 그런 생각을 했을 거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심지어는 모두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장님은, 동의할 수 없었던 거에요.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거죠.”
차라리 그나마 인기가 있는 종류인 뮤지컬 같은 것을 하거나, 다른 것을 도전하거나, 아니면 그냥 포기하거나.
어떤 다른 선택지도 고르지 않고, 그저 우직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제일 잘 하는 일을 한다.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저 하던 장르가 쇠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헤딩하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이야기로 들을 때는 멋있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정말로 옆에서 함께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조차 내심 연극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글쎄요. 뒤집을 수 있을지.”
아무리 천재라도 그걸 뒤집을 수 있을까. 과연 미연은, 예정에 없던 연극을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가능성은 반반 같아요.”
“반이라면 꽤 괜찮다는 생각도 든다만.”
무당은 그렇게 말하고는 말했다.
“그 이야기만은 내가 전해 주도록 하마. 친구인 내가 전해야 하겠지.”
* * *
“대단하군, 의기소침한 모습은 삼십 년 동안 처음 보는데.”
노인은 익숙한 인물을 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시끄러. 놀리러 왔나? 애초에 여긴 또 어떻게 알고?”
“십 년쯤 전에 네 집을 들은 적이 있었다. 네가 이사 같은 걸 갈 리는 없고, 근처에 공짜로 있을 만한 생각하기 좋은 장소라 봐야 뻔하지.”
무당의 말에 노인은 반박할 말이 없는 듯 혀를 찼다.
“그 여자애. 네 딸이라 했던가.”
“그래.”
“신랄하더군.”
솔직히 말해 조금 아플 정도다.
“한 오 년 전에 그런 소리 들었으면 울었을걸?”
“울지 그랬나?”
“글쎄. 남들은 나이 먹으면 눈물이 는다는데, 나는 오히려 마르더군.”
노인은 그렇게 말한 뒤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틀린 말도 아니었고 말이야. 듣고 나서야 알았네. 난 무심코 욕심을 부리고 만 거야.”
노인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나름 연극의 원로라서, 원래라면 접어야 했던 타이밍에 지원을 받고 사람들을 이끌 수도 있었지.”
하지만 어쩌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던 건지도 모른다. 몇 명의 미래를 담보로 잡아서, 자신은 이 극장을 유지하고 있었던 걸까.
“청춘을 바쳤다. 이 극장의 전성기가, 나의 전성기였어. 그렇기에 놔주지 못했어.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야.”
노인은 한탄했다.
“내 평생을 연극에 바친다, 그건 정말 가치 있는 일이었어. 내 인생 정도는 그래, 몇 번이고 줄 수 있지. 하나밖에 없다는 게 문제였을 뿐.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의 인생도 내가 마음대로 써서는 안 됐어. 그냥, 놔 줬어야 했던 거야.”
“아니, 그럴 수 있을 리 없지.”
무당은 고개를 저었다. 당연하다. 사람이 자신의 인생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놔줄 수 있을 리가 없다.
“자신의 평생을 바친 것을, 그리 쉽게 놓아줄 수 있을 리 없어.”
“하지만 내가 끝까지 하지 않았으면, 여기 사람들이 고생하지 않았을 거야.”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틀린 말은 아니지.”
“자네는 날 위로하러 온 건가? 아니면 추가타를 날리러 온 건가?”
노인은 그렇게 말한 뒤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마지막 공연을 할 때가 되어서야 깨닫다니. 너무 늦었어.”
“그런가?”
무당의 말을 들은 노인은 눈을 찌푸렸다.
“왜, 죽기 전에 깨달았으니 생각보다 빨랐다는 말이라도 하려고?”
“평소라면 그런 말이라도 해 줄까 했지만, 그런 표정으로 말하고 있으니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나?”
무당은 고개를 저은 뒤 말했다.
“그게 아니야. 유령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하러 왔어.”
“잡혔나? 그게?”
“붙잡아만 놨지.”
“흠, 왜지?”
“잡는 게 약속이지, 없애는 게 약속이 아니었잖나?”
노인은 어처구니없는 소리라는 듯 혀를 찼다. 무당은 슬쩍 웃으며 말했다.
“한번 돌아가 봐. 내일 리허설에는 단장이 있어야지. 공연 전, 마지막 리허설 아닌가.”
“난 됐네.”
“헛소리 말고 가봐. 좋은 구경 할 테니까.”
무당은 노인에게 말했다.
“지금 아니면 못 봐. 자기가 평생 일궈온 것의 유령이라면, 어쨌든 한번 보고 싶긴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