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극장의 유령 (14)
“…도와줄 사람을 부른다고 하더니.”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시아는 태주의 멱살을 잡고 몇 번 앞뒤로 세게 털었다.
“야! 저 인간을 부르면 어떻게 해! 도움은 무슨!”
“으아, 아, 아, 저 인간이라니, 말이 심하시네!”
머리가 사정없이 앞뒤로 흔들리면서도 태주는 할 말은 했다.
“누나 어머니인데요!”
“내가 알 바야? 당장 치우지 못해?”
“이미 오신 분을 어떻게 치워요! 그리고 아직 여기 다른 사람 한 분 계시거든요?”
시아는 난처한 표정의 미연을 보고는 결국 태주의 멱살을 슬그머니 풀었다.
“하여튼, 왜 오신 겁니까.”
시아는 무당을 노려보며 말했다. 무당은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내가 억지로 부탁한 거니 그만하거라. 기분이 나쁜 것 정도는 나도 알겠다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을 우선해야 하지 않겠느냐? 너도 프로일 텐데.”
무당의 말에 시아는 짜증이 가득한 눈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틀린 말이 아니라 화가 난다.
“그래서, 무엇을 도우러 오신 겁니까? 도움 따윈 필요 없었는데요.”
“뭐, 너에게 도움은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 나도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네 일을 도우러 온 것은 아니다. 유령 자체는 너 혼자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정도는 있으니 말이다.”
무당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글쎄, 한가지 정도는 내가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한 가지?”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입니까? 굳이 제 앞에 나타나야 할 만큼?”
“그래. 내가 이곳에 처음 방문했을 때 했던 일이지.”
무당은 침착하게 말했다.
“이 극장이 그 녀석 소유로 넘어갈 때, 내가 여기를 한번 축성한 적이 있었다. 그 일 관련한 부분은 내가 풀어야겠지. 친구로서, 내가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있고.”
“그것만 하고 빨리 가시지요, 그럼.”
“빨리 갈 수는 없겠구나. 하지만 너 하는 일엔 손대지 않으마. 구경만 하도록 하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태주는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저기 있다가는 아마 삼십 분 만에 기가 다 빨려 미라가 되고 말 거다. 태주는 미연에게 말을 걸었다.
“잠시, 자리를 좀 비울까요? 멀리 가는 건 아니고, 그냥 잠시 거리를 좀 두죠. 한참 걸릴 거 같으니까요.”
* * *
두 사람이 거리를 좀 벌린 뒤에도 그 두 사람은 아직도 한바탕 하고 있다.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손님 옆에 두고 뭐 하는 짓들인지.”
미연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렇게 그, 싸우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유령을 잡을 수 있어요?”
두 사람이 싸우는 복도 쪽에서 떨어진, 인기가 없어서 오히려 가장 멀쩡한 좌석 쪽에 앉은 미연은 당연한 의문을 하나 입에 올렸다.
“그, 제가 생각한 광경이랑은 전혀 다른데요.”
“어떤 광경을 생각하셨는데요?”
“으음, 그 유령 청소기는 아니더라도 뭔가 부적으로 휙! 휙! 하는 그런 정도는 상상했는데요.”
상상이긴 해도 동작이 꽤 절도 있다. 태주는 살짝 웃었다.
“하하, 그것도 당연히 돼요. 굳이 그런 장비까지 필요할 사람들인가 싶긴 한데.”
일부러 그럴 수야 있지만, 퍼포먼스에 가까운 행동이다.
“진짜요?”
“네.”
태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래 보여도 전설이랑, 전설의 딸이거든요. 둘 중 하나만 있어도 무조건 이번 유령은 잡혀요. 둘이 사이가 조금 안 좋긴 하지만요.”
“조금요?”
“…조금 많이요. 하지만 어디에나 있는 가족 싸움 같은 거예요. 격렬하지만요.”
부모의 기대와 그것을 배신한 자식의 싸움은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보통은 어느 한쪽이 물러나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어느 쪽도 물러나지 않는 경우는 저렇게 되어버리고 만다.
“어머니 쪽은 재능이 있는 딸이 자신이 하는 일을 물려받았으면 했고, 딸 쪽은 재능은 있지만 그게 너무 하기 싫었거든요.”
그렇기에 대판 싸웠다.
“안 받겠다면 안 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또, 이게 물려주지 않으면 결국은 사라지는 종류라서요.”
결국 어떻게든 어거지로라도 넘기려 했던 사람과, 어떻게든 안 받으려고 도망친 쪽의 싸움이었다는 말이다.
“아무도 계승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죠. 미연 씨랑은 반대지만,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죠?”
“그렇게 말씀하시면… 뭐, 조금 알겠네요. 어쨌든 저분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시죠?”
미연의 말을 들은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보다는 이쪽 이야기나 해 볼까요. 중요한 이야기에요.”
“어떤 중요한 이야기인가요?”
태주는 본론을 꺼냈다.
“미연 씨는 연기가 좋으신 거죠?”
“네.”
즉답이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다.
“그것도, 여기서 하는 연기가 가장 좋으신 거고요.”
“네.”
이 역시 즉답이다.
“그렇다면 만약에, 이곳에서 연기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실 거에요?”
“이곳에서 연기를 할 수 없다고요?”
“네. 다른 곳으로 진출할 생각이 있나요? 다른 극장이라거나, 혹은 아니면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거라던가.”
“어어, 글쎄요?”
그리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듯 미연은 말했다.
“제가 여기서 쫓겨나거나 하는 상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런 상황을 가정하셔도 괜찮고, 다른 상황을 가정하셔도 괜찮아요. 그냥, 어떻게든 다른 쪽으로 나아가실 생각이 있는가 하는 거죠.”
태주의 질문에 미연은 어렵다는 듯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결국 다른 곳… 어?”
미연이 뭔가 대답하려는 찰나, 문제가 생겼다.
쿵- 하고, 열어둔 문이 닫혔다.
“뭐죠?”
“아, 아뇨. 무시하셔도 괜찮아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누가 봐도 이상한 현상이다.
“저, 저걸 어떻게 무시하죠?”
“그냥 문이 닫힌 거잖아요? 바람이라도 불었나 보죠.”
“여기 문이 바람으로 닫힌다고요? 그 뻑뻑한 문이?”
어처구니없어하는 미연의 말에, 태주는 웃으며 말했다.
“음, 뭐 누가 닫았든 아무렴 어때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죠.”
지금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이라면서, 태주는 말했다.
“…다른 곳으로 가긴 가야겠죠. 제가 쫓겨난다면요.”
미연의 대답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금 질문을 바꿔볼까요? 만약, 이곳에서 당신을 더는 챙겨줄 수가 없어요. 지금 받을 수 있는 쥐꼬리만큼의 돈도 줄 수가 없다면, 그래도 당신은 남아있을 건가요?”
“…식사는요?”
“부실해요. 돈이 없어서 못 주니, 밥도 제대로 줄 수 없겠죠.”
“그건….”
조금 싫은 듯한 기색이 보이자 한 번 더, 쿵 소리가 났다. 이번엔 뭔지도 알 수 없었다.
“이건 또 뭐죠?”
“음, 뭔가 내려앉은 소리일까요? 어쨌든 무시하세요.”
“저기, 이거 그 유령 맞죠?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는 거 아니에요?”
불안해하는 미연의 모습에도, 태주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유령이야 뭐, 대단한 사람이 둘이나 있어요. 저길 보세요.”
두 사람은 저런 이상한 소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덤비는 꼴에 가깝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저래도 되는 거예요?”
“저 두 사람은 저래도 되니까 저러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안심해도 된다며 태주는 웃었다. 미연은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저는, 그럼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쾅!
“오, 이번엔 소리가 좀 크네요. 많이 가까워진 모양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말이나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이거!”
미연은 황급히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뭔가 있잖아요! 여기에!”
“당연히 있죠. 말씀드렸잖아요? 여기엔 유령이 있다고.”
“그런데 이런 이야기나 해요?”
“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해요. 일단 그리고, 이것까지는 답해 주세요. 만약에 이 극단이 활동을 중지한다면, 당신은 다음에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떻게 하냐니요?”
“연극을 포기하실 건가요? 본가로 돌아가서 다른 일을 하는 방법도 있을 테고, 아니면 인기가 많은 다른 장르로 갈 수도 있겠죠.”
태주의 질문에, 갑자기 스피커가 켜지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귀를 찢는 것 같은, 그런 소음에 미연은 움찔했다.
“몰라요! 다른 일을 할지도 모르죠! 다른 오디션 같은 걸 보러 다닐 수도 있겠고요!”
당황한 채 미연은 말했다.
소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데, 태주는 태평하기만 하다.
“왜, 왜 그냥 가만히 계신 거예요?”
“왜 가만히 있냐니요?”
“유령이 오고 있는 거 아니에요?”
“뭐, 오고 있죠.”
태주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위험하지는 않거든요. 유령이 하는 일은 고작해야 당신의 발목을 붙잡는 일뿐이거든요.”
“발목을 붙잡다뇨?”
“비유긴 하지만 말 그대로의 의미에요. 미연 씨가 어디에도 가지 못하도록, 유령은 방해하고 있어요.”
태주는 느긋하게 말했다.
“유령은 연극이 끝나는 걸 막고 싶어 해요. 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조금 더 포괄적인 의미였고요.”
그리고 연극이 끝나는 것을 막으려면, 미연이 바깥으로 나가면 안 된다.
“스토커 같다고, 제가 이전에 말한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그래요.”
“스토커 같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미연의 불안한 질문에 태주는 살짝 한숨을 쉬며 말했다.
“유령은 당신의 모든 것을 신경 쓰고 있었어요. 처음에, 무대에서 혼자 연기를 시작할 때 불을 끈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셨었죠.”
연기를 시작하지 않으려 할 때는, 기다려 주다가 시작하면 곧바로 끈다.
“그랬죠.”
“그건, 아주 신경 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유심히, 끊임없이 살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죠.”
단순히 동작을 살피는 수준이 아니다. 호흡이나, 손의 떨림 하나하나까지 모두 살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이건 공연장의 설비를 잘 다루는 것과는 이야기가 다르죠. 기계에 대해 잘 아는 것과 배우가 가지는 호흡을 아는 건 다른 이야기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절 보고 있었다는 말이에요? 극의 진행과는 전혀 상관없이?”
“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극이 끝나는 걸 신경 쓰는 게 아니고요?”
“그것도 사실 같은 거예요. 당신이 떠나면 이 극단은 끝나니까요.”
실제로 그랬다.
“과장 없이, 당신이 아니었다면 이 극단은 한참 전에 사라졌을 거니까요.”
그렇기에 유령이 하는 짓은, 이번 공연이 끝나는 것을 막는 일이고 또 미연이 다른 곳으로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외의 일에는 관심도 없고, 다른 일은 하지 않아요. 오히려 당신에게는 찬사를 보내고 있지요.”
“그, 그래도 이거 뭔가 좀.”
“아, 이제 거의 근처인가 보네요.”
“으에에!”
미연은 눈을 꼭 감았다. 발소리 같은 것이 들리다가 멈췄다.
“괜찮아요. 이젠 잡았어요.”
태주의 말에 미연은 당황했다.
“뭐를요?”
“유령을요.”
태주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유령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렸죠?”
어느새, 무당도 시아도 조용해진 상태다. 미연은 그제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역시 부적은 필요 없었네요.”